뒤로가기
자유주제
자유주제
참여자 3,318,835
 · 
공지
리멤버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글쓰기
회원님, 일 관련 고민이나 업계 이슈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최신글
용산어린이 정원
시간 내서 방문해 보세요!!
송작가카페
08월 14일
조회수
204
좋아요
3
댓글
2
죽을 실행 용기는 안나는데 요즘 정말 죽고 싶네요.
88년생이라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모아둔 돈은 없고 회사 일도 잘 안되서 입에 풀칠할 정도인 200만원 임금 받는 회사에서 한달 살이 정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 했고 직장에서 잘 자리 잡아서 살아가는데, 저만 계속 뒤쳐지는 것 같고 요즘 기사들 보면 청년 고독사가 넘쳐 난다는 기사를 얼핏 봤는데, 정말 요즘 제 자신이 병신 같이 느껴지고 한심한 것 같단 생각에 그냥 이렇게 살바에 죽는게 나은 것 같단 생각도 멤도네요. 막상 죽을려면 죽을 실행력도 부족한데.... 참 우울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그러네요....... 답답해서 뭔가 털어 놓고 싶어 두서 없이 아무말 끄적였네요.... ㅠㅠ
aplomb
08월 14일
조회수
852
좋아요
8
댓글
14
살면서 마음에 걸리는 일 딱 하나있는데
고등학생때 집안이 망해서 20대 초반 시절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런 암울한 시기가 있었는데 여느때와 같이 또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하던 날.. 고등학교 동창 중에 나름 친하게 지냈던 친구놈 아버지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음 생각 할 틈도 없이 그냥 바로 한달음에 달려갔음 도착하고서 부조금을 내려고 통장을 확인했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게 가진돈이 3만원 뿐이 없더라.. 매일 뼈부러지게 일했는데도말야 참 묘하고 알 수 없는 기분이 들더라.. 근데 그거라도 돈 뽑아서 냈다 가진 3만원 전부 그때 참 속상하고 미안하더라 시간은 꽤 흘렀는데 그게 아직도 그렇게 마음에 걸려서 아직도 가끔 생각 남..
뽀송뽀송개뽀송
08월 14일
조회수
331
좋아요
2
댓글
3
연예인 친일파 논란보다 독립운동가 후손 스타들을 더 조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연예계 소식을 보다 보면 친일파 후손 논란이나 집안 비위는 자극적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유포되고 대중의 관심도 높더라고요. ​반면에 조부모님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립유공자 후손 연예인들에 대한 소식은 상대적으로 묻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김지석 씨나 청하 씨처럼 남다른 역사 의식을 가지고 묵묵히 활동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TOP 5 관련 글 공유드립니다. https://m.blog.naver.com/lanezzang/224378192745
안녕아시아요
08월 14일
조회수
314
좋아요
5
댓글
4
리멤버에서 프로필 조회시
개인회원이 다른 사람 프로필 조회하면 알림이 뜨나요? 아니면 인사담당자(기업) 계정만 알림이 가는건가요?
진지허게임하는중
08월 13일
조회수
497
좋아요
3
댓글
0
대기업 때려치고 2억 넣어 이삭토스트 창업
대기업 오래다니던 사촌오빠가 더이상 회사 안다니고싶어서 프랜차이즈를 차리고 싶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반대한다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는데 저는 아는게 없어서 글을 올려봅니다..!! 이삭토스트를 차리면 2억정도 들거 같다고 하는데 나중엔 본인아이템 할생각도 있고 돈을 벌고 싶어서 하신다고 하고, 알바는 40대라 안뽑아주기 때문에 경험을 쌓기위해 프차를 차려서 해보고싶다고 하십니다. 이삭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프랜차이즈를 생각한다고 하는데 혹시 잘 아시는분 계신가요??
돈좀주세요
08월 13일
조회수
19,685
좋아요
167
댓글
115
댓글 하나가 저를 살렸습니다.
한동안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근길에 차도로 뛰어드는 상상도 종종 했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머릿속은 늘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러다 여기 리멤버 커뮤니티에서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이 올린 글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단 몸을 움직여보라는 이야기였어요. 그 말이 딱 마음에 박혔습니다. 그날 저는 그냥 밖으로 나가서 무작정 뛰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라 다음 날 온몸이 아파서 죽을 것 같았지만, 그날부터 계속 나가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달리니까 뭔가 조금씩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원래는 밤에 누워도 잡생각 때문에 잠을 잘 못 잤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들이 예전만큼 저를 붙잡지 않습니다. 잠도 훨씬 잘 자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힘들었던 건 몸도 마음도 계속 멈춰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만 문제를 풀려고 하니까 생각이 생각을 물고 계속 커졌던 거죠. 몸을 움직이는 순간엔 이상하게 그 생각의 고리가 잠깐 끊어지더라고요. 거창한 각오나 계획 없이 그냥 오늘 한 번 나가보는 것. 그거 하나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비슷하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 있다면 저에게 그 댓글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이 글이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끈적손
금 따봉
08월 13일
조회수
15,019
좋아요
730
댓글
52
지하철에서 울고 있는 여자에게 사탕 주신 분
팀원들이랑 조금 삐걱대다가 결국 은근한 따돌림 같은 게 시작되어 요즘 매일이 지옥 같습니다. 이직을 준비하고 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아 하루하루를 악으로 견디는 중이에요. 오늘도 같이 밥 먹을 사람조차 없어 끼니도 거른 채 밤 8시까지 혼자 일하다가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텅 빈 속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지하철에 앉아있는데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고개를 숙이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훌쩍이고 있었는데 허벅지 위에 뭔가 느낌이 들어서 보니까 말랑카우였어요. 깜짝 놀라서 고개를 살짝 드니까 초등학생도 안 된 것 같은 어린아이가 앞에 서있었어요. 그러더니 제 허벅지를 토닥토닥하더니 울지마 이모 하고는 문앞에 서있던 여성분께 가더라고요. 어머니셨던 것 같은데 저랑 눈이 마주치니까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해 주셨습니다. 말랑카우를 뜯어서 입에 넣는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너무 달고 맛있었어요. 그리고 베시시 웃음이 나더라고요. 온 세상이 나를 등진 것 같고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아 서글펐는데 이름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작은 호의 하나에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맞아.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를 몰라주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도 세상에 많다는 걸 잊고 살고 있었어요. 알지도 못하는 내게 내밀어준 그 작은 온기 덕분에 내일도 어떻게든 다시 버텨볼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고맙단 말을 미처 하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혹시나하고 여기에라도 글을 남겨 봅니다. 정말 고마워요.
한번봅시다
08월 13일
조회수
15,881
좋아요
713
댓글
69
이런 상황에서 차 어떻게 빼야하나요?
그림을 잘 못그려서;; 제 차가 초록색이고 빨간색 차가 제 차 뒷꽁무니에 쪼금 튀어나와있었는데요. 차를 빼려고 꼼지락 꼼지락 하다가 자꾸 빨간색 차 방향으로 나가야해서 차 앞쪽을 돌리면 앞에가 닿을것같아서 걍 그대로 넣어두고 출근했거든요 뭔가 방법이 있을거같은데 ㅠ 어떻게 해야하나요??
해외여행가고싶다
금 따봉
08월 13일
조회수
835
좋아요
7
댓글
11
라이따이한 에 사과 없는 한국인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서 흥미로운 해석이 나온다고 한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를 속이고 함락시킨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그런데 놀란의 해석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승리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죄책감과 의문을 느낀다. 고전의 영웅이 단순히 승리한 전사가 아니라, 자신이 승리를 위해 저지른 폭력을 돌아보는 인간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놀란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야만’과 ‘문명’을 구분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야만인은 승리 자체에 도취한다. 반면 문명인은 묻는다. “우리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이기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그 기준으로 보면 한국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 사회에는 도덕과 윤리, 정의보다 힘의 논리가 너무 강하게 작동한다. 권력자, 세습 재벌, 강대국처럼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지나치게 비굴하고 순종적이면서,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는 갑질과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강자에게 붙어 자신의 이익을 얻고, 그 힘을 이용해 더 약한 사람에게 완장질하는 구조다. 이것은 단순히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오랫동안 그런 행동을 용인하고 보상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트남전쟁의 민간인 피해 문제다. 한국 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그것 자체는 정당한 요구다. 그렇다면 동시에 물어야 한다. 한국군과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무엇을 했는가? 라이따이한 문제와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얼마나 진지하게 조사하고, 보도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는가? 일본의 잘못을 비판하면서 우리의 잘못에는 침묵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선택적 도덕성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이런 문제를 내부에서 끈질기게 파헤치는 언론과 지식인이 얼마나 있었느냐는 것이다. 강한 상대에게는 정의를 외치면서, 상대적으로 강한 위치에 있었던 사건에서는 침묵한다면 그것이 과연 문명사회인가. 역사를 돌아보면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한국인이 다른 강대국들처럼 세계를 침략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졌다면 과연 더 나은 행동을 했을 것인가? 그 질문에는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작은 조직의 권한 하나만 주어져도 ‘완장질’과 갑질이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군대, 관공서, 기업, 학교, 아파트 등 곳곳에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문화가 반복된다. 힘이 없어서 착한 것과, 힘이 있어도 착한 것은 전혀 다르다. 진정한 문명은 힘을 갖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힘을 가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선진국이라고 자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잘못을 얼마나 직시하고 반성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의 강압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자신의 이익을 챙긴 한국인들이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 권력에 붙어 부와 지위를 얻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오늘날에도 힘 있는 사람에게 붙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면,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는가.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이 더 강한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강한 자기반성이다. 일본을 비판할 때와 똑같은 기준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미국과 중국을 비판할 때와 똑같은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해야 한다. 우리의 승리와 성공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가한 피해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문명이다. 우리가 강해서 다른 사람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 한국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력이나 군사력보다 먼저 이것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불신, 극단적인 경쟁과 갑질, 그리고 저출생과 자살이라는 현상 역시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너진 결과일 수 있다. 국가가 쇠퇴한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면, 쇠퇴를 막을 자격도 없다.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한국인은 얼마나 문명인인가. 그리고 한국인들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참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___ (출처: 구글) 라이따이한(Lai Đại Hàn)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병사나 한국인 노무자(기술자)와 현지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베트남인 2세를 뜻하는 말입니다.'혼혈' 또는 '잡종'을 뜻하는 베트남어 '라이(Lai)'와 '대한민국'을 뜻하는 '따이한(Đại Hàn)'의 합성어로, 전쟁이 남긴 비극적인 역사와 인권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주요 발생 배경과 현황출생 배경: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약 32만 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여성과의 사실혼·국제결혼을 통해 아이가 태어나거나, 군인 및 민간인에 의한 성폭력 등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추산 규모: 정확한 공식 통계는 없으나, 최소 5,000명에서 최대 3만 명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쟁 직후의 고통: 1973년 한국군이 철수하고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통일)되면서, 한국인 아버지는 대부분 자녀를 두고 귀국했습니다. 이 때문에 라이따이한과 그 어머니들은 베트남 사회에서 '적군의 자식 및 가족'으로 분류되어 극심한 냉대와 사회적 차별, 빈곤 속에 방치되었습니다. 현재 상황과 과제생존자들의 현실: 현재 라이따이한 세대는 장·노년층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상당수가 교육과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가난의 대물림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버지를 찾거나 아버지의 나라를 방문하고 싶어 합니다. 역사적 논쟁: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조사나 보상, 사과는 미비한 상태입니다. 영국 등 해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라이따이한에게 정의를(Justice for Lai Dai Han)과 같은 연대 기구가 조직되어 국제사회에 공론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법적 공방: 최근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및 피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 대상의 국가배상 소송이 진행되는 등, 과거사 청산과 미래지향적 한-베트남 관계 구축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라이따이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라이따이한(베트남어: Lai Đại Hàn … 월남인(韓國系越南人)은 대한민국이 1964년부터 참전한 대한민국 국군 병사와 현지 베트남 여성의 결혼으로 태어난 2...YouTube·JTV뉴스고발뉴스, '베트남 라이따이한' 챙겼다 한-베트남 과거사 보듬는 마음씨 '숙연'Aug 7, 2025 —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 배상 소송을 진행하여 1심과 2심 모두 승소하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베트남 라이따이한 생존자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6:10나무위키라이따이한 - 나무위키Jul 29, 2026 — 정확한 숫자는 추산하기 힘들지만 최소 5000명에서 3만 명으로 추산된다.#덕성여대신문베트남의 라이따이한, 그들은 누구인가? - 덕성여대신문Dec 4, 2017 — '경멸적인 혼혈' 혹은 '잡종'을 뜻하는 '라이(lai)'와 … 참가한 한국인 군인과 민간인은 모두 약 40만 명으로 추산된다.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라이따이한 사랑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 티스토리Mar 23, 2022 — 단어 '라이따이한'에서 '라이'는 베트남에서 경멸의 의미를 포함한 '잡종'을 뜻하며, '따이한'은 '대한'을 베트남어식으로 읽은 것입니다.Justice for Lai Dai Han라이따이한, 그들은 누구인가? - Justice for Lai Dai HanOct 5, 2022 — 1964년부터 1973년 사이에 약 32만 명의 한국군이 월남에 파병되어 미군과 함께 싸웠습니다. 당한 여성 중에는 심지어 12~13세 소녀도 있었으며 800명 ...YouTube·엠키타카 MKTK라이따이한(Lai Daihan)에 대하여,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MBC경남 보도 ...Jul 1, 2019 —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라이따이한들의 간절한 소망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를 그리는 것이다.41:41Justice for Lai Dai Han홈페이지 – - Justice for Lai Dai Han라이따이한은 '혼혈'이라는 뜻이며, 강간 희생자들의 자식입니다. 우리는 라이따이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정의가 행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트남대사관
Matrix
쌍 따봉
08월 13일
조회수
231
좋아요
1
댓글
1
한국인들 보다 용감하고 진실된 일본인
한국인들은 비겁하다. 일본인들은 내부 고발자들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내부 고발자가 거의 없다. ***‘위안부 문제 해결 선봉에 선 일본인들...공격 당해도 끝까지 간다’*** 한국인들이 분노한 위안부에 대해 최초 보도한 것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라 한다. (한국 기자들은 도대체 뭐했나) 그래서 35년째 일본 내에서 우익에게 고난을 당하고 소송 당하고 있다 한다. 그를 돕는 일본 변호사들이 100명이 넘는다 한다. 방송 등 전언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사들에게도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한다 (한국인들은 기회주의자에 믿으면 안 되는 뒷통수 민족) ___ 우에무라 다카시(일본어: 植村隆 うえむらたかし[*], 1958년 4월 28일[1] ~ )는 일본의 언론인이다. 1991년 위안부의 만행과 김학순의 증언을 기사에 게재하여 화제가 되었다. 위안부 보도로 '표적'이 돼‥日 기자 고난의 기록 입력 2021-10-23 20:31 | 수정 2021-10-23 20:36 30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던, 당시 아사히 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 다카시'씨 입니다. 일본의 치부를 들춰낸 그는 우익의 표적이 됐고 온갖 협박과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명예훼손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우익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6년간의 외로운 싸움, 그 시간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쿄에서 고현승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전 종군위안부,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 30년 전인 1991년, 아사히신문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충격적인 진실을 특종 보도했습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 최대 외교 현안이 됐고, 이듬해 일본 총리의 사과, [미야자와 기이치/전 일본 총리(1992년)] "반성과 사과의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어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로 이어졌습니다. [고노 요헤이/전 관방장관(1993년)]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이송에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발한 기자는 그러나 우익의 표적이 됐습니다. 매국노라며 신문사는 물론 가족에게도 살해 협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에무라 다카시/전 아사히신문 기자] "딸의 이름이 인터넷에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마지막에는 협박장, 딸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장까지 날아왔습니다." 우익은 '날조 기사'라며 집요하게 공격했고, 내정됐던 대학 교수직도 잃었습니다. [사쿠라이 요시코/국가기본문제연구소 이사장] "오히려 역사를 바꿔쓰려는 것은 아사히신문이며, 우에무라 씨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에무라 기자는 사과문을 요구하고 명예훼손 소송을 냈습니다. 6년 간의 외로운 투쟁, 하지만 법원은 우익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우에무라 다카시/전 아사히신문 기자] "일본 법원이 상당히 보수화, 우경화되어 정권의 눈치를 심하게 본 것 아닌가라는 것이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젠 혼자가 아닙니다. 100명 넘는 변호사들이 힘을 보태고, 한일 양국 시민단체들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돼 우경화된 일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또 다른 고발로 이어졌습니다. [아베 신조 / 전 일본 총리]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성노예를 운영했다는 부당한 중상모략이 지금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큐 영화 '표적'은 올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됐고, 감독은 안종필 자유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니시지마 신지/다큐 영화 '표적' 감독] "신문기자가 (정권의) 기대와 다른 내용을 기사로 쓰면 그 기자는 공격 목표, '표적'이 됩니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일본의 현실입니다."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우에무라 기자가 책으로 남긴 기록입니다. 재판을 통해 오명을 씻어내진 못했지만, 오롯이 남은 기록과 영상을 통해 그의 보도가 옳았고, 싸움은 정당했다는 진실은 더욱 뚜렷하게 역사에 남게 됐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 : 이장식, 김진호(도쿄), 이상용/영상편집 : 정지영 ____ 위안부 문제 해결 선봉에 선 일본인들...공격 당해도 끝까지 간다 입력 2023.09.20 수정 2023.09.21 위안부 증언 첫 보도’ 우에무라 전 〈아사히신문〉 기자 일본우익, 보도 후 노골적 공격에 가족 협박 당해 위안부 김학순 피해 사례 기사 날조 오명 쓰기도 "해결될 때까지 함께...위안부 문제 손 안 놓는다" 경남 위안부 역사관 건립 사업 폐기 결정에 '분통' '여성 인권 증진에 앞 장' 와타나베 미나 ‘왐’ 사무국장 2005년 이래 매년 위안부·전시 성폭력 특별전 책 출간 이어 연구·피해자 증언 자료 등 공개 김학순 증언일 ‘유엔 위안부 기념일’ 지정 운동 "경남지역 위안부 이야기 들려줄 역사관 필요" 한국인보다 더 ‘위안부’ 할머니들 편에 서서 연대 목소리를 내는 일본인들이 있습니다. 일본 진보 잡지 <슈칸 긴요비>(주간 금요일) 사장인 우에무라 다카시(65) 전 <아사히신문> 기자와 일본 민간단체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왐·WAM)에서 활동 중인 와타나베 미나(52) 사무국장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이 ‘위안부 역사의 부정 현상 대응 방안 모색’을 주제로 열린 국제토론회에 참석차 19~20일 창원을 찾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시민모임’이 마련한 행사입니다. 두 사람을 지난 19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났습니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잡아떼도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이 자행한 흉악한 전쟁 범죄다. 성욕을 해결하려고 여성들을 강제 동원해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이런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일말의 반성이나 뉘우침, 사과도 없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과 회한에 어떠한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피해자들이 목놓아 사과를 촉구해도 꿈적 않고 귀를 닫고 있다. ◇매국노로 몰렸던 기자 = 1991년 8월 11일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위안부 문제를 최초 보도했다. ‘전 조선인 종군위안부, 전후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 사례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핵심은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김학순 할머니가 여자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연행돼 일본군을 상대로 매춘 행위를 강요당했다’고 썼다. 보도 3일 뒤인 8월 13일 김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공개 석상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피해 사실을 고백한 첫 사례다. 그해 12월 김 할머니는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를 도쿄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는 한일 외교 문제로 번졌다. 결국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사과했다. 보도 이후 우에무라 씨는 매국노로 몰렸다. 역사를 부정하는 우익 세력은 그를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가족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날조 기자’라는 비난도 샀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고충에도 위안부 문제를 향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인터뷰한 사람을 다 기사로 쓰지 못했지만 저는 역사의 피해자를 만났잖아요. 위안부 문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문제예요. 여성 인권이 차별당하는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해야 하는 게 인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는 역사 인식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는 ‘고노 담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일본은 좋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있잖아요. 특히 아베 정권하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고노 담화’도 바꾸고 싶어 했으니 여러모로 어려웠죠. 지금도 우익 탄압이 심한 상황인데 이런 때에 제가 해야 하는 일은 기자 출신이니까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춘 기자를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은 역사 인식이 부족하고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안 받아요. 그래서 역사를 올바르게 아는 게 중요해요.” ◇여성 인권·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에 앞장선 활동가 = 와타나베 미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사무국장은 1990년대 위안부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만난 게 발단이 됐다. 그는 1990년대에 받은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로 위안부 문제를 꼽는다. 이에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여성 인권과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한 8월 14일을 ‘유엔 위안부 기념일’로 하자는 운동도 폈다. 이날은 국가기념일(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됐다. 그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왐은 위안부를 중심으로 전시 성폭력 관련 증언과 자료를 모은 자료관이다. 2005년 출범 후 그의 주도로 매년 위안부, 전시 성폭력 특별전, 관련 세미나가 왐에서 열리고 있다. 위안부 관련 소송 문서와 연구 자료 등도 수집해 공개하고, 위안부 실태를 알기 쉽게 소개한 64쪽짜리 책 <일본군 위안부>를 펴내기도 했다. 또 아베 정권의 위안부 대응을 비판한 단행본 <무라야마·고노 담화 재검토의 착오>도 냈다. “기본적으로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 추구예요. 그래서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당시 무엇을 했는지,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 당시 무엇을 했는지 알리는 게 최대 과제라고 보고 있어요. 고노 담화 문제에서 나타나듯 일본 정부는 역사를 인정했다가 부정하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어요. 운동하는 저희로서는 정부가 이런 행태를 멈추고 쭉 인정하는 것, 그것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와타나베 씨는 우에무라 씨처럼 일본 우익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일본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매국노로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일반 사람들은 제가 고생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협박을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 같지는 않아요. 왐을 운영하면서 재정적으로 힘든 점이 있는데요. 1년에 1000명 이상씩 우리에게 후원해 18년간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었어요. 모두 우리를 지탱해주신 분들 덕이에요.” ◇역사관 지어 시민에게 보여줘야 = 오랜 기간 위안부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낸 두 사람은 일본과 한국 모두 ‘위안부’ 문제를 중요한 인권 문제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짚었다. 이를 풀어내는 것은 과제라면서 역사관 건립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물관이 있어야 역사를 기록할 수 있고 시민들에게 진실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남도가 위안부역사관 건립사업을 폐기한 것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앞서 2020년 8월 14일 김경수 당시 경남도지사는 경남도립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취임하고 나서 결정이 엎어졌다. 연구용역 결과 경제적 타당성이 낮고, 역사관에 전시할 자료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역사관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부가 바뀌어도 역사 진실은 전달해야 하지 않습니까?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든, 더불어민주당이 잡든 진실은 꼭 전달해야 합니다. 짓기로 했던 공간을 만들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져서 화가 나고 걱정도 됩니다. 일본 운동인으로서 저는 이경희 대표를 도울 것입니다.”(우에무라 다카시) “경남에 역사관이 만들어지면 남부지역에서 조선인 여성들이 어떻게 끌려가서 어떠한 고통을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경상남도에서만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위안부 역사 이야기도 있습니다. 박물관과 같은 시설을 만들려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 괜찮냐가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창원에 만들어지게 된다면 다른 지역 위안부 문제까지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와타나베 미나) /최석환 기자
Matrix
쌍 따봉
08월 13일
조회수
200
좋아요
2
댓글
0
2천원짜리 당근하다가 만난 예쁜 분
사무실에서 키우던 고사리 화분이 환경이 잘 맞았는지 폭풍 성장해서 포기 나누기를 했습니다. 다이소 화분에 나눠 심은 뒤 화분 값만 건질 생각으로 당근에 2천원으로 올려놨더니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건물 아래로 내려가 너무 예쁜 구매자분을 만났는데, 예쁜 식물을 너무 저렴하게 줘서 고맙다며 복숭아 한 봉지를 건네주셨습니다. 요즘 복숭아가 달고 맛있어서 사 왔다며 손에 쥐어주려 하시는 것을 한참 사양하다가 결국 저도 2천원을 받지 않고 복숭아와 식물을 물물교환하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사무실로 들고 올라와 봉지를 열어보니 잘 익은 복숭아가 7개나 들어있었습니다. 마침 우리 팀 인원이 다섯 명이라 팀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고 제 몫으로 세 개를 챙겼습니다. 씻어서 바로 먹어보니 정말 달고 맛있어서 기분이 참 좋더군요. 이렇게 서로 소소한 호의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훨씬 아름답고 따뜻해지는 기분이라 짧게나마 훈훈함 공유합니다. 다들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가린발라
08월 13일
조회수
977
좋아요
11
댓글
7
결혼때 축의금 논쟁이 의미없는 이유
베스트글에 남친이랑 와서 10만원 주고간 친구에 대한 글이 있어 한마디 하는데... 결혼 10년차가 되보니 이건 아무 의미 없음 10년전 나도 밥값이 5만원이 넘었지만 만원 낸 사람 3만원 낸 사람 5만원내고 여러명이 먹은 사람들이 있었지 근데 난 진심으로 와준것만으로도 감사했음. 당시 난 내가 사회성 덜떨어진 아싸 개찐따라고 생각했거든 심지어 결혼식 시간도 토요일 오후 마지막 타임이라 다끝나면 5시였음 그런데도 우리쪽하객만 700명이 넘었고 와이프쪽이랑 합쳐 1000명이 넘음 암튼 그래서 액수랑 상관없이 와준 분들 모두에게 정말 진심으로 감사했단 말이지 근데 내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3만원낸 사람들 5만원내고 2~3명이 먹은 사람들 이런 분들이랑은 관계가 지속되지 않아 그 이유가 가치관 차이 혹은 경제력 차이도 있지만 결국 인간관계라는건 일방적이지 않거든 쌍방이 서로 함께 맺는게 인간관계인데 만원낸 사람은 내 마음과 상관없이 나와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생각이 없던 분들이더라고 ㅋ 그에 비해 30만원 50만원 낸 사람들이랑은 아직도 좋은 관계가 이어지고 있음. 암튼 결론적으로 내가 그 사람들을 거지로 보든 진심으로 고마워하든 관계는 끊어짐 그러니 논쟁이 필요없지. 결과가 똑같으니까
munin
금 따봉
08월 13일
조회수
371
좋아요
5
댓글
0
아직도 이름 3글자만 받는 시스템
한국인 중에서도 3글자 이상인 분 많은데요. 간혹 공공시스템이나 사기업 교통 예약 시스템에서는 3글자 이름만 입력하도록 하는 곳이 있습니다. 시대가 어느시대인데...
gigrydh
억대연봉
쌍 따봉
08월 13일
조회수
351
좋아요
0
댓글
1
이혼 혹은 이혼을 고민하신 선배님들께 자문 구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직장생활 10년차, 회사생활 10년차인 애 둘 아빠이자 직장인입니다. 일단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 와이프와 이혼소송 중에 있습니다. 7년전쯤 우연히 와이프의 과거*를 알고 나서 복수심 비슷한 생각으로 외도를 저질렀고, 그 때 와이프와 허심탄회하게 울고불고하면서 대화를 하고 화해 이후 수년간 결혼생활을 지속해왔습니다. * 대학생때 낙태, 수년간 동거, 전 남자친구와 xx비디오 수십개 촬영 등 사실 저 때는 와이프한테 오만 정이 다 떨어져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는3ㅔ, 오히려 그 때부터 둘 다 마음잡고 살기 시작해서 나름 화목하게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혼소송 준비하면서 수개년의 카톡과 사진을 봐도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화목한 부부에 가까웠구요. 작년에 배우자와 큰 부부싸움 이후(폭행 등은 없었고, 둘 다 자녀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는 약속을 하고 10년간 지켜왔는데 서로 이걸 깨고 서로 소리지르고 밀쳤을 정도이니 감정에 극에 달한 상황이였습니다) 대화도 점점 줄어들고, 각 방을 쓰기 시작하다가 현재 소송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사실 저도 그 사이에 와이프한테 불만이 없었던건 아닙니다. 연봉 2억을 넘게 받으면서도 월급일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고, 퇴근 이후에는 전업주부인 배우자의 불평/불만만 들어주면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주말에도 수년간 제 시간이라고는 산책이나 운동하는 시간 2시간 제외하고는 빨래, 설거지, 청소, 아이들이랑 놀아주기, 장보기 등하면서 10년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이 가정 끌고 가고 싶어서요. 최근에는 아이들이 꽤 크고 나니 흔히 말하는 부모따돌림 같은걸 경험하기도 했었구요. 작년 배우자와 사이가 안좋아지면서 배우자와 대화가 사라지고 제가 집에 들어와도 인사를 하지 않는 시간이 몇개월 반복되니 아이들도 똑같이 따라하더군요. 살면서 저 역시도 이혼생각은 많이 했고 자살까지도 생각해봤으나 막상 이혼소송을 하게 되니 아이들이 안쓰럽고, 또 와이프한테 미운 정도 들었구나 싶어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왔다갔다 합니다. 아직 나이가 젊으니 재기할 수야 있겠지만 이혼하고나서의 삶이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저한테 쓴 소리든 뭐든 좋으니 경험을 나눠주시면 더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퇴사를기다리며
08월 13일
조회수
1,409
좋아요
7
댓글
19
대표전화 : 02-556-4202
06235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134, 5,6,9층
(역삼동, 포스코타워 역삼) (대표자:최재호, 송기홍)
사업자등록번호 : 211-88-81111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2016-서울강남-03104호
| 직업정보제공사업 신고번호: 서울강남 제2019-11호
|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2020-3220237-14-5-00003
|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F1200020240004
Copyright Remember & Compan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