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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이 있는데도 회사가 굴러가는 이유
'월급 루팡' '프리라이더' '월급 루팡'은 국립국어원이 2011년 7월 1일부터 2012년 6월 30일까지 한 해 동안 일간지와 인터넷 등 139개 매체에서 사용한 신조어를 정리한 <2012년 신어 기초 자료> 보고서에 실렸다. '월급'과 도둑의 대명사인 프랑스 괴도 소설 주인공 '루팡(Lupin)'을 결합한 단어다.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주로 '하는 업무가 없는 데도 바쁜 척 하기', '업무 시간에 다른 일하기', '자신의 업무를 다른 직원에 전가하기'등의 행태를 보인다. '프리라이더'는 원래는 요금을 내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선 조별과제나 프로젝트에 아무런 노력이나 참여를 하지 않고 결과만 취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이 또한 어학사전에 단어를 넣으면 뜻이 풀이된다. 고로, 한글과 영어가 혼합된 이 말은 모두 어학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사전에 어느 단어가 등재되었다는 것은 곧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나, 그것이 신조어라면. 본래 사전은 있는 단어의 뜻을 찾는 게 주 용도인데, 현대 사회에 이르러 사회가 복잡화되다 보니 신조어는 양산되고 모두가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사전에 등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체 어떻게 회사에 들어왔을까? 그러한 사람을 볼 때 우리네 기분은 그리 썩 좋지가 않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이고, 고도의 업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데. 대체 어떻게 저 사람이 내 옆에 있을까란 의문이 들면 마음이 편치 않게 되는 것이다. 마치 주변 모두가 하향 평준화되는 느낌. 저 사람이 들어올 정도라면, 내가 어렵게 들어온 그 의미와 가치는 훼손되고 그나마 있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곤두박질치는 순간이다. 그러게.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회사에 들어오게 된 걸까? 그리고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걸까? '월급 루팡'과 '프리라이더'를 통합하여 '그들'이라고 명명해보자. 그들은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뉜다. '선천성'은 원래 기질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후천성'은 직장생활을 해가며 그렇게 변화하는 사람이다. 물론, 복합형도 있다. 원래 그러한 사람이,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이 어떻게 내 옆에 있느냐 인데 '후천성'은 그나마 이해가 된다. 들어올 땐 멀쩡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일을 전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의 기질을 숨겼을 것이 틀림없다. 원래 서류나 면접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최선과 최상을 말한다. 그러하니 사실 변별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이미 우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는 '게으른 천재'일 가능성도 있다. 게으르려면 똑똑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부담은 최소화하고 효율을 높이려는 그들의 기질이,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온 것으로 해석된다. 나는 '그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나? 그런데 재밌고도 섬뜩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우리도 사실 누군가에겐 '저 사람'이고, '그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며 아무것도 안 하고 일을 전가하는 김 부장이나, 교묘하게 광만 팔고 결과만을 빼먹는 이대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돌이켜야 한다. 그러하면 남들도 이해가 된다. 우리는 언제나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할 수가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러할 수 있겠나. 컨디션은 등락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 우리는 슬럼프와 번아웃을 겪는다. 직장인의 슬럼프는 3년, 3개월, 3주, 3일 그리고 3시간. 심지어는 3분마다 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 상황이니까. 그만큼 직장 생활은 다이나믹하고 안쓰럽다. 이 상황에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타인도 마찬가지다. 일 잘하던 사람이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개인사로 힘들어 일을 제때 쳐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용서받거나 정당화될 일은 아니다. 직장은 모두가 계약 존재이고, 사람이라기보다는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므로 우리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TV가 켜지듯이 출근하면 우리는 '업무 전원'을 켜 각자의 몫을 (무조건) 해내야 하는 게 맞다. 여기서 떠올려야 하는 단어는 바로 '관용'이다. '관용'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그저 눈감아 주는 게 아니다. 그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인데, 중요한 지점은 바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내 성장의 기초가 된다. 받아들이면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저 욕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초석이 되고 그러함으로 남을 이해하는 것. 그것에서 오는 성장의 폭은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자이언트 스텝이다. 저런 사람이 있는데도 회사가 굴러가는 이유 '그들'을 보며 회사가 굴러가는 게 신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이란 점에서,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게 이미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회사는 굴러가는 것일까? 정답은 바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컴퓨터로 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될 수 있다. '하드웨어'는 건물, 사무실, 책상 그리고 컴퓨터 및 현물 자산 등을 말하고, '소프트웨어'는 사람, 조직, KPI, 브랜드, 시스템, 역량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회사는 이미 잘 짜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붕괴되거나, 몇몇 사람으로 뭉그러지지 않는다. 우리 몸 또한 잘 짜인 시스템이다. 몸 어느 곳이 다쳐도 이내 우리는 회복하고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나 몸 어느 한 곳의 아픔을 방치하면 심각한 장애가 올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까지 위태롭게 된다. 조직도 이와 마찬가지. 당장 시스템이 붕괴되진 않겠지만, 너도 나도 '그들'이 된다면 조직은 병들고 조직의 합인 회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더, '관용'이란 말을 떠올리면 좋겠다. 남을 그저 봐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일 수도 있음을 깨달으며 그들의 상황을 헤아리고 '나는 저러하지 말아야지' 또는 '혹시라도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메타인지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불어, 그러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고 내가 있는 곳을 하향 평준화해서 보기보단 그저 내 할 일을 자신 있고 감사하게 해내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 그러하므로 '그들' 중 한 명은 줄어들게 될 것이고, 나와 회사는 동반 성장하게 될 것이니.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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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
- 통근(通勤) - '통근'은 하루를 시작하는 길이다. 사람들의 모습은 비장하면서도 비루하다. 가족을, 또는 자신을 건사하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은 그렇게 비장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꾸역꾸역 회사로 향하는 모습은 비루하기 그지없다. 나의 길도 그렇다. 하루는 비장하고, 또 하루는 비루하다.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은 그렇게 반복된다. 정해진 시간, 통근버스에 오른다. 거리로 10km. 약 40분이 걸리는 출근길은 잠자기엔 짧고 깨어 있기엔 뭔가 아쉽다. 하루는 마음을 차분히 해주는 음악을 듣거나, 또 하루는 어학코스를 듣는다. 때론, 아무것도 듣지 않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할 때도 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나와 전쟁터인 직장 사이엔, 그렇게 '통근'이 있는 것이다. 잠시의 여유를 주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회사 앞으로 향하는 통근버스가 야속하기도 하다. 통근버스는 홍대를 가로질러간다. 지난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아침 7시 30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로 지난밤의 불야성을 마무리짓는 사람들. '젊음'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이런 모습이 '젊음'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분명한 건 그것은 젊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을 위한 걱정보단 부러움이 좀 더 큰 마음을 뒤로하고 통근버스는 나아간다. 서강대교를 지나면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한강 때문이다. 탁 트인 한강은 무거운 마음을 부력으로 떠오르게 한다. 날씨가 좋을 땐 물 표면에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이 나를 응원한다. 비가 올 땐 자욱한 물안개가, 직장인은 마음을 차분히 할 필요가 있다고 일러준다. 통근 길에 한강이 있다는 건 작지만 큰, 사소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서강대교 끝에서 통근버스가 좌회전을 하면 나는 다짐한다. 또다시 시작될 하루. 직장인으로서 반복될 뻔한 하루지만, 그 안에서 '새로움'과 '배움' 그리고 '의미'를 찾아보자는 발버둥을 친다. 내가 시시포스라면, 떨어진 큰 돌을 밀어 올릴 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겠다는 의지이자 발악. '반복'되는 일상에 숨 막히는 직장인의 삶이지만, 반대로 그것은 내가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통근'의 '근'자가 '부지런할 근'이란걸 알게 됐다. 직장인인 우리는 스스로를 의지가 약한 작은 존재로 치부하기 일쑤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통근'하는 그 자체로 우리는 부지런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통근'하는 모든 존재는 부지런하다. 나도, 당신도.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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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출산휴가
입사 후 야근수당, 연차수당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급하고있지않은 회사들이 워낙 많기에 넘어갔습니다...근데 최소한 배우자 출산휴가같은 경우에는 해줘야하는거아닌가요...?
정냄쏙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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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은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직장인이 책 8권 낸 이야기...)
이루 말할 수 없는 평범함이 지속되는 나날이었다. 나는 이 평범함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가. 어렸을 때 그저 그렇게 생각했던 '보통'과 '평범'이라는 단어가, 이리도 쟁취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니. 뭔가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았는데 보통 이상의 것을 얻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그나마 어느 정도 평범함의 범주에 들었다는 안도 속에서 보내던 하루하루.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결국, 이 묵직한 질문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 질문이 증폭된 건 바쁜 하루의 일상을 끝내고 온 어느 날 저녁이었다. 퇴근한 존재는 비루하다. 몸은 녹초가 되어 있고, 녹초보다 더 허름한 정신과 마음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는데 정확히 그게 뭔지 몰라 그 공허함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련의 연속은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마음을 뭉개며 어제와 다르지 아니한 하루를 양산해낸다. 그렇게 무기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휴대폰을 보는 것이었다. 지쳐 쓰러진 그 자세 그대로.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올린 SNS 피드를 보거나.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항상 소고기를 먹고, 항상 해외여행을 하고, 항상 웃는 사람들. 나에겐 특별한 날이 그들에겐 평범한 일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또 다른 질문이 엄습했다. '나는 왜 이렇게 소비적으로 사는 걸까?' 나를 위한 시간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걸 보며 쉽사리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를 알아차린 것이다. 누워서 그것들을 소비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훅하고 지나가고, 그러면 여지없이 하지 못한 일로 후회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누워서 보던 휴대폰이 얼굴로 떨어져 화들짝 했던 적도 여러 번. 문득,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와 오기가 올라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생산할 수 있을까? 직장인이라는 본업이 있는 나. 공장을 세워 말 그대로 물건을 생산해내기엔 자본이 없고, 유튜브를 하기엔 사생활 노출과 막대한 시간 투자가 부담되고(무엇보다 당장 시작할 콘텐츠도 없고). 이래저래 고민하던 찰나, '글쓰기'가 떠올랐다. 글쓰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던 내가 그것을 떠올린 건, '감당 가능한 도전'이라는 생각에서였음이 틀림없다. 당장 시작하기에 무언가 준비를 크게 요하는 것도 아니고, 본업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도전. 더불어, 개인적으론 직장인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을 때였고, 서점엔 한창 직장인을 희화화하는 콘텐츠들이 유행했던 때였다. 보람 따위는 됐으니 그건 개나 줘버리고 야근 수당이나 달라는,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위트 있는 이야기를 보며 함께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남는 건 없었고, 직장인으로서 초라한 나만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아, 내가 내 얼굴에 침 뱉고 있었구나. 내가 나를 보며 스스로를 비웃고 있었구나. 힘든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억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을 돌이켜 악착 같이 뒤져보면, 무언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나는 발견해내야만 했다. 그것이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이유이므로. 더불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칠 후배들을 위해 이것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생활의 초기에 정체성의 혼란이 클 것이므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오만가지 것들을 몸소 맞닥뜨려야 하므로.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나를 돌아보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그렇게 나의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어느새 나에게 '작가'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안겨 주었다. 그저 써 내려간 글들이, 어느새 책이 되어 누군가에게 읽히고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보니, '책쓰기'가 아닌 '글쓰기'를 한 것이 오히려 나에게 지속 가능한 기대치 못한 결과가 되었다.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소비적으로 사는 걸까?' '나는 무얼 생산할 수 있을까?' 게다가 글쓰기는 내가 맞이한 인생에서의 큰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주었다.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나는 오늘도 나만의 해답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범함을 넘어 특별한 내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글쓰기를 하며 내가 깨닫고 있는 건, 특별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평범함이 주는 소중함을 일깨우고 평범한 나를 다그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평범하지 않은 비범함이다.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관점, 보통의 것을 평범하지 않게 표현해내는 감성. 글쓰기는 소재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소재 자체를 생산해내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러는 와중에 내 관점과 생각도 바뀐다. 결국, 특별함은 평범함에서 피어난다는 걸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고로, 나는 책 몇 권 냈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말한다. 오히려, 삶이 바뀌었기에 글을 썼고 그것이 책이 되었다고 말한다. 스멀스멀, 나도 모르게 변화되는 글쓰기의 매력을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 또한 글쓰기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그 다짐이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게 만들고 있다.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생산자의 삶'. 글쓰기가 나에게 일러준 삶의 방향이다. 나는, 이 삶의 방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뵙길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지금의 당신도.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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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동료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스테르담 직장인 심리카페 의뢰 내용을 정리하여 연재합니다. Q. 직장동료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얼마 전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한 비밀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인관계가 좁아질까 봐 관계를 끊는 것도 두렵습니다. 직장동료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A. 질문자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믿었던 동료들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일을 겪고 나니 저는 어떤 노하우를 습득하게 되었는데요. 그건 바로, '마음은 반만 주자'란 생각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직장에서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모두 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함으로써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겁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됩니다. "아니, 나는 마음을 다 열어 주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뭐라고 말할까요? 아마 이렇게 말할 겁니다. "누가 마음을 모두 열랬어?" 직장에서의 인연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닙니다. 바로 밥그릇과 밥그릇의 만남입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월급이나 승진을 서로 양보할 사람이 있을까요? 친하다고 해서 내가 저 사람 대신 퇴사를 해줄 수 있나요? 좋을 때는 좋지만, 자신에게 위기가 오면 나만 챙길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친했던 직장 동료가 나의 '먹고사니즘'에 방해가 된다면 어떨까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란 생각이 들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아예 주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반'만 주자는 겁니다.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는 걸 보고 어떤 이는 물이 반 밖에 없다 하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차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만큼의 마음을 보고 어떤 이는 차갑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 정도면 회사에서 적당한 마음이라 생각할 겁니다. 저는 후자 쪽입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면 상처도 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업무적이든, 사적이든. 반만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이 진행되고, 그래야 일이나 사람 관계가 잘못되었을 때에도 나는 금세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가 이에 대한 격언을 하나 말씀드리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과 함께 직장생활에서 '믿음'에 대한 곤경에 처했을 때 꼭 떠올리시며 힘을 내시면 좋겠습니다. "설명하지 마라. 친구라면 설명할 필요가 없고, 적이라면 어차피 당신을 믿지 않을 테니까." - 엘버트 허버드 -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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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마음을 지켜주는 '3척'
행복하니 웃는 걸까요, 웃으니 행복한 걸까요 '안면 피드백 이론(Facial Feedback Theory)'.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란 잘 알려진 말은 1960년대 미국 심리학자 톰킨슨의 말입니다. 사람의 감정 체험이 얼굴 표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을 세운 겁니다. 1988년 독일의 심리학자인 프리츠 슈트라크는 이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피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볼펜을 코와 윗입술 사이에 물게 하고, 다른 그룹은 위아래 어금니 사이에 물게 해 같은 만화를 보여주었는데요. 이는 각각 찡그린 얼굴과 미소 짓는 얼굴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두 번째 그룹 피험자들이 만화를 더 재밌게 보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또 하나. 현대 과학은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예를 들어, 레몬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금세 입 안에 침이 고입니다. 뇌의 착각입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란 말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멘탈 관리를 위해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오감을 바탕으로 상상하면 실제 훈련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죠. 2016년 리우 올림픽 펜싱 종목에서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라고 읊조리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던 모습은 이미지 트레이닝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뇌의 특성을 활용해 우리네 직장생활에 적용을 시켜보면 어떨까요? 직장인의 마음을 지켜주는 '3척' '척'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그럴듯하게 거짓으로 꾸민 태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우리가 '~하는 척'을 하면 뇌는 실제로 그것을 신호로 만들어 온 몸으로 호르몬을 내어 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하는 척'을 해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있습니다. 페르소나의 어원 자체가 고대 그리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는 말은 그래서 '연기'가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연기'는 다름 아닌 '~하는 척'입니다. 직급과 직책에 맞추어 때로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나를 연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는 것은 버거운 일입니다. 동시에,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는 척'은 이처럼 양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의미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마음을 다치게도 할 수 있고 다독일 수도 있습니다. 아래 설명하는 세 가지 '척'은 마음을 다독이기 위함입니다. 직장인의 마음을 지켜주는 '3척'을 알아볼까요? 1. 잘난 척 직장인은 때로 '잘난 척'을 해야 합니다. 이는 어려운 과제를 받았거나 어려움을 돌파해야 할 때 필요한 '척'입니다. 직장이란 곳은 내 능력의 고하에 관계없이 탑다운으로 일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되어서,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 답답한 목표를 받았을 때, 자신 없는 프로젝트를 부여받았을 때. 우리는 '잘난 척'을 해야 합니다. '잘난 척'을 하면 잘났다는 기분이 들 테니까요. 저는 실제로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중요한 보고가 있을 때,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할 때. 저는 '잘난 척'을 통해 좋은 결과를 이루어 인정받는 제 모습을 상상합니다. 걸을 때도 자신감을 가지려 하고, 문을 열 때도 힘차게 엽니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활짝 열어보기도 하고, 입꼬리를 올려 기분을 전환하기도 합니다. 정말 효과가 있습니다. '잘난 척'을 하니 자신감이 생깁니다. 목소리도 커지고, 적극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주눅 들 때가 많은데, 이러한 때 '잘난 척'을 해보세요. 단, 실력 없이 우쭐댄다는 느낌보다는 잘난 사람에게 걸맞은 역량을 갖추겠다는 한다는 마음으로. 그러면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함께 실제로 내 역량도 발전하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2. 모른 척 아는 것을 모른 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직장엔 수많은 호사가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인정받기 위해 정보를 누설하는 사람들이죠. 최신 정보를 선점하고 있으면 인정받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모자란다고 여겨질까 봐, 또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로 인해 호사가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잠시의 재능(?)을 뽐내려 하다가 오히려 다른 사람의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호사가가 저에게 다가와 여러 정보를 늘어놓고, 여러 사람을 헐뜯거나 깎아내리려 할 때 저는 크게 동조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모른 척'합니다. '모른 척'하며 상대방으로부터 먼저 말을 하도록 하여 참을성 있게 들어주면 상대방은 참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내용을 술술 이야기합니다. 정보는 얻되 같이 남을 헐뜯으면 안 됩니다. 호사가는 호사가를 알아봅니다. 저도 이러한 통찰이 없었을 땐, 함께 동조하며 여러 정보를 나누었는데 그 말이 돌고 돌아 오해와 갈등을 낳는 걸 보고 '모른 척'을 결심한 겁니다. 함께 험담을 했으면서, 제가 그런 말을 한 것처럼 악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뒤 오히려 서로 경계하게 된 사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른 척'. 불필요한 갈등과 상처를 줄이는 묘약입니다. 3. 못난 척, 괜찮은 척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인격적인 공격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폭언이 날아오거나 질타를 받을 때. 이러한 때 여러분은 마음을 어떻게 지켜내고 계신가요? 인격을 비하하거나 폭력적인 언급을 들었을 때. 저는 '못난 척, 괜찮은 척'을 함께 떠올립니다. '척'의 역설을 활용합니다. 앞서 '척'은 '연기'를 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척'은 근원적 자아가 아닙니다. '못난 척'을 한다는 건, 정말 내가 못난 게 아니라는 메타인지적 발상입니다. 분노하고 그것을 삭이는 것보단 내가 못남을 연기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부정하려면 할수록 마음만 더 아파집니다. 여기에 '괜찮은 척'을 얹으면 마음의 상처는 그리 깊게 베이지 않습니다. '괜찮은 척'은 나를 다시 일으키는 소중하고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주눅과 우울함 속에서 나 자신을 구원하는 '척'입니다. '괜찮은 척'은 주눅과 우울함의 시간을 단축시킵니다. '괜찮은 척'을 하다 보면 정말 괜찮아집니다. 안 괜찮아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365일 내내 괜찮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오늘도 저는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연기합니다. 연기할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나 자신과 내 역할의 괴리감만 커집니다.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여 맡은 캐릭터를 잘 살려낼 때.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 상도 받게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배우로서의 자긍심일 겁니다. 자긍심을 얻은 배우는 나날이 발전하는 연기를 보이게 될 겁니다. 직장인이라는 역할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언젠간 회사를 떠나야 하는 날이 분명 옵니다. 그렇다면, 제한된 시간 안에 혼신의 힘을 다해, 후회 없이 연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메소드 연기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질 땐, 그것이 살아가는 데 아주 소중했던 경험이었구나... 를 깨닫게 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상처받아 본 사람이, 상처를 보듬을 줄 아는 법이니까요.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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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신입 포지션 제안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취직 준비중인 사회초년생입니다. 얼마전 헤드헌터가 중견기업 신입 생산기술 포지션으로 제안왔습니다. 제안을 수락했고, 그 이후 헤드헌터 분이 "지원 진행하였고 결과는 1~3주 후 알려드립니다." 라고 왔습니다. 헤드헌터가 신입포지션 제안하는 경우가 많나요? 지금 지원한 회사에 취업하고 싶은 데 헤드헌터 분을 통해서 지원하면 서류라도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지 계속 생각나서 다른 활동에 지장을 줍니다. ㅠㅠ
아휴우우웅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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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저희 회사만 우편 보낼 일 많나요? 우편 업무 귀찮아요...
오늘 우편보낼 거 있어서 우체국 갔는 데, 저희 회사에서 우체국까지 걸어서 15분 거리라 평소에는 그냥 운동삼아 갔는데 요즘 들어 날씨가 추워서 우체국까지 가기가 귀찮더라고요. 뭔가 굳이 우체국 안가더라도 보낼 방법이 있을거 같은데... 저희 회사만 우편 보낼 일이 많나요? ㅠㅠㅠ
마린이1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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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못하겠네"..너무 많은 회의, 깔끔하게 정리하려면
안녕하세요, HBR Korea 편집장 최한나입니다. ✍ 일주일에 회의, 몇 번이나 하시나요? 저도 일과 중 많은 시간을 회의에 쓰곤 하는데요. 많은 직장인들이 회의가 너무 많아 정작 스스로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에 쓸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하곤 합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런 문제가 더 심해지는 게 일반적이죠. ‘지나친 회의’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연구한 HBR 아티클을 소개해 드립니다. 📜 - ✔뺄셈 사고방식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빼기보다는 자꾸 더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덧셈병’ 때문에 회의가 자꾸 쌓여 가죠.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미 가득 찬 일정에 계속해서 더 많은 일정을 끼워 넣습니다. 뺄셈 사고방식을 촉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레이디 클로츠 등이 제안한 ‘절반의 법칙(rule of halves)’처럼 무조건 뺄 수 있는 간단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모든 회의에서 횟수, 길이, 규모 등을 무조건 50%만큼 줄여보는 식입니다. 크게 의미 없는 회의는 영구적으로 없애고, 남아 있는 회의는 무조건 10분씩 단축하며, 주간 회의를 격주 회의로 바꾸는 등을 적용해볼 수 있을 겁니다. ✔완전히 비운 후 리셋 실험 참가자를 두 집단으로 나눈 후, 첫 번째 집단에 대해서는 48시간 동안 일정을 완전히 없애고 일정표를 다시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 집단에 대해서는 48시간 동안 정해져 있는 일정을 수행하되 시간을 줄여보는 식으로 바꾸도록 했습니다. 두 집단 모두 시간이 절약됐지만 전체를 비우고 다시 세팅한 첫 번째 집단의 경우 1인당 평균 5시간을 절약한 반면 두 번째 집단은 3시간을 절약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 위해 멈췄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오래된 습관을 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죠. 48시간의 백지 시간표를 받아든 첫 번째 집단 사람들은 어떤 회의를 추가하거나 삭제할지를 고민하는 한편 회의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던 개념을 ‘정화’하기도 했을 겁니다. ✔데이터를 적극 활용 반복되는 모든 회의를 두 가지 관점에서 평가해 봅니다. 1) 해당 회의에 필요한 노력(준비 작업, 실제 회의 시간, 후속 작업 등) 2)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른 해당 회의의 가치 이런 기준을 통해 회의가 갖고 있는 진짜 가치를 따져보면 어떤 회의를 유지해야 하고 어떤 회의를 지워버려야 할지 명확해질 겁니다. 다만 무작정 회의를 삭제해나가는 방식은 자제해야 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이 회의를 진행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회의의 가치를 충분히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s://www.hbrkorea.com/article/view/atype/di/category_id/2_1/article_no/798
최한나 | HBR 코리아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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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는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줄까?[Part.2]
현업이라는 실습 MBA라는 복습 대리시절 MBA를 공부할 자신과 배포는 없었지만, 대신 현업에 집중하겠다는 자기 합리화를 발동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니, 오히려 (나에겐) 좋은 선택이었다. MBA스터디를 포기한 지 15년 만에 나는 그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회사의 지원으로 말이다. 15년 동안 산전수전 겪으며 몸과 마음 그리고 머리로 습득한 모든 것들은 돈을 받으며 배운 역량이 되었고, 그 역량을 MBA로 복습할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복습은 또 다른 지식을 낳는다.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려 주거나, 또 다른 경험과 지식이 융복합되어 시너지로 폭발할 수도 있다. 미국 유학 MBA를 진학하는 학생들은 보통 5~6년의 직장 경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만약 대리 시절 MBA를 운 좋게라도 갔다면 나는 경력에 한 참 못 미쳤을 것이다. 얕은 경험과 지식으로 책 속의 마케팅을 배우며 머리만 채웠다면 어땠을까. 머리에 채워진 지식들로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이론과 실제가 다른 괴리감에 나는 또 괴로워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후자 쪽이지 않을까 한다. 유명 MBA가 학부생을 바로 받지 않는 이유다. MBA는 학문이라기보단 실전이기 때문이다. 고정값이 아니라 변화하고 진화하는 실제다. MBA는 예습이 아니다. MBA는 복습이어야 한다. 현업에 매진하자고 했던 그 결심을 나는 스스로 높이 산다. MBA를 공부하는 이유도 현업으로의 복귀를 전제로 한다. 실전에서 써먹지 못할 거라면, 또 실전에서 그 가치를 증명받지 못한다면 MBA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 졸업장 하나가 절실하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그러한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MBA를 처절하게 실전에서 활용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현업이라는 실습을 통해 MBA라는 복습을 한 건, 내게 있어 큰 행운이다. MBA를 공부하며 배운 것들 MBA를 통해 배워야 할 건 그 이름을 통해 유추해낼 수 있다.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전반적인 경영관리에 대한 것이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지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시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된다. 실전과 실무 복습으로는 최고다. MBA를 최고의 복습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는 MBA를 통해 배운 것과도 상통한다. 첫째, (내 일의) 퍼즐이 맞추어진다.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을 보면 전체 그림을 떠올릴 수 없다. 일전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벽돌 쌓는 겁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MBA를 공부하고 나니 이제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조직과 회사, 더 나아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는 것을 말한다. 경제, 경영, 마케팅, 광고, 전략, 조직, 인사, 벤처, 회계 그리고 전반적 관리까지. 모든 과목 하나하나가 나에겐 퍼즐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퍼즐과 가지고 있지 않았던 퍼즐. 그 하나하나를 끼워 맞추어가다 보니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그저 누가 시킨 벽돌 쌓기가 아니라, 스스로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퍼즐이 맞추어지면 큰 그림이 나타난다. 알지도 못하고 퍼즐부터 맞추는 것과, 그림을 인지하고 그것을 맞추어 가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둘째, 현업을 복습할 수 있게 된다. MBA의 가장 큰 가치는 여기에서 온다고 믿는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재정의가 된다. 직장인은 대개 자신의 일이 그저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한다. '반복' 때문이다. 반복은 지혜의 눈을 멀게 한다. 그저 반복되는 것으로 보면 나는 출근하여 엑셀 돌리고, 회의 갔다가, 욕먹고 보고서 쓰는 것 이상을 하지 않는 존재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우리는 '반복'이라는 무한 루프에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직장인은 마치 벌 받는 시시포스처럼 영원히 굴러 떨어진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직장을 더 다니고 싶어도 그러하지 못하는 날이 분명 온다. 즉, 우리는 '무한'이 아닌 '유한'에 갇힌 존재라는 것이다. 굴러 떨어진 돌을 또 밀어 올려야 하는 건 맞지만, 이것이 유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관점이 달라진다. 같은 돌이라도 어떻게 밀어 올려야 할지, 어떻게 하면 내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그것을 밀어 올려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일은 그저 지겨운 무엇이 아니라, 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복습'의 의미가 된다. 근육은 반복을 통해 단단해진다. 역량은 반복을 통해 향상된다. 암기는 반복을 전제로 한 능력이다. '반복'을 '복습의 기회'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MBA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복습의 기회'로 만들어 주었다. 셋째, 오너십을 가지게 된다. '주인의식'이란 말은 모든 직장인의 치를 떨게 한다. "주인 의식 가지라면서요. 그럼 주인에 상응하는 월급을 주거나 대우를 해주세요!"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런데 여기엔 달갑지 않은 전제가 하나 있다. 회사는 '주인', 나는 '머슴(또는 노예)'라는 로직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글쓰기와 MBA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나를 머슴과 노예로 비하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그러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월급이 성에 차지 않아서 그렇지 나와 회사는 엄연한 '계약 관계'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역량이 조직의 역량이고, 조직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다. 이 무슨 회사 편과 같은 말이냐고 반박할 사람이 수두룩하겠지만, 단언컨대 나는 '회사 편'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 편'이다. 내가 정의하는 '주인의식'은 '내 주인인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의 책임감'이다. 주인이 누군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월급은 '받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이다. '주인'이라는 주어를 재정의 해야 한다. 다름 아닌 '나'를 위해서. MBA를 통해 그렇게 나는 오너십을 가지게 됐다. MBA는 전반적인 경영을 관리하는 공부이므로, 경영자의 관점에서 내 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한한 직장생활 이후에 '내 일', '내 사업'을 하게 될 때 필요한 역량이다. 나는 지금부터 그러한 관점으로 내 일을 바라본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아니라서 그렇지, 일종의 경영수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차피, 언젠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경영자가 될 것이니까 말이다. 이 외에도 배운 것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 배움의 열매는 내가 현업에 뿌린 씨앗에서 피어올랐다고 나는 자부한다. 뭣도 모르고 MBA를 일찍이 가지 않았다... 못했다...라는 것이 다행일 정도다. 더불어, 나와 다른 업무를 하는 사람이나 또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커다란 자극이 된다. 반대로, 내가 지겹도록 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전문 영역이며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한다. MBA는 '메타인지'라는 선물을 주는 것이다. 이는 내가 글쓰기를 통해서도 받은 선물이다. 글쓰기를 통한 메타인지가 자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MBA를 통해 얻은 메타인지는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역량에 적용된다. 그래서, MBA는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준 걸까? 결론은 '그렇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밥도 가치 있게 먹을 줄 알게 되었다. '비싼 밥'의 정의는 무엇일까. 비싸기만 하다고 모두에게 좋은 음식은 아니다. 반대로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듯, 어느 정도는 그 질을 보증할 값을 매겨야 한다. 내 업무 역량은 더 발전했고, 스스로의 성장도 도모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현업의 실습과 MBA의 복습을 통해 다시금 현업에서 실력발휘를 하고 있다. 물론, 갈 길이 멀다. 그러함에도 두 번의 해외 주재와, 급여의 상승 그리고 그 이상의 기회들을 마주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MBA는 내게 큰 도약의 기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MBA를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적극 추천할 것이다. 단, MBA가 복습이 될 수 있는 그때에 도전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하지 않으면 나는 반대로 말리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약 2년여간의 공부를 마치고 'With Honors'라는 우수 성적으로 MBA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것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나는 직감했다. MBA는 복습이자 또 다른 시작. 그것의 토대를 이루는 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 깨우치고 배운 MBA의 가치다.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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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말고, 완전하세요
💬_________ 구글에 다닐 때 내 스승이었던 프레드 코프먼은 많은 상사가 잘못 알고 있는 '업무적인 태도'와 맞서 싸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문을 되뇌었다. "완전한 자아로 일터에 나가라." - 팀 스콧, 실리콘밸리의 팀장들 완전한 자아. 완전한 자아는 완벽한 자아가 아니다. 완벽한 팀장에 대한 강박 대신, 멋있는 팀원이 되고 싶다는 욕구 대신, 솔직한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일터에 나가자. 나는 완벽한 팀장이 아니라서 매 순간 팀원들의 솔직한 피드백을 받는다. 매 순간 조금 더 나아질 기회를 얻고 있다. 다름 아닌 팀원들이 나에게 그 기회를 주고 있다. 기쁘게도. 다행스럽게도. __________ 김민철 님의 책 <내 일로 건너가는 법>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일이라는 존재에 빼앗기지 않는 법. 일과 직업을 나의 소중한 일상을 지탱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으로써 단단하게 가꿔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처럼 일과 직장이 내 삶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그 사이의 균형에 대해 고민이 많은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권해봅니다. 🙂
박광현 | 현대트랜시스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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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1달 전에 1달 안에 끝나지 않을 일을 시키는데
퇴사 의향을 밝힌 것이 2달 전인데 이제 1달 남은 상황인데 1달 안에 끝날지 의문인 업무를 시킵니다 이거 오래걸리는 업무고 인수인계 생각하면 1달안에 못끝낼 수도 있다고 했음에도 일단 해보랍니다. 그러면서 우스개소리로 지나가듯 말하긴 했지만 일 안끝나면 퇴사 못하는거지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할 때까지는 해보겠지만 결국 달을 넘길거같으면 그냥 연락끊고 잠적하고 싶은 생각만 피어오르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23-02-04 추가 상상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관심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사실 글 올린 이후에 지금 이야기 나온 이 업무 다음주에 끝나겠냐는 소리듣고 오래걸린다고 분명 말했는데 그게 지금 무슨 소리냐고 한바탕 따진 상황입니다. 인수인계 관련해서 말해주신 분들 많았는데, 사람이 하나 둘 나가서 이미 사장 제외 둘밖에 남지 않은 회사인데, 저 나간뒤에 추가로 뽑을 생각도 없고, 사장제외하고 남은 사람 한명이라 둘이서 인수인계 받을 모양인데 솔직히 절대 불가능하다고 보고있습니다. 원래 들어올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인원이 5명은 됬는데 들어온 당일부터해서 한명 두명 그만두더군요. 사장이 저모양이니 당연한 이야기고 저도 포기했습니다. 말을 해도 안듣고 일터져도 안고치면 포기해야죠. 댓글 달아주신분들 다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하는데까지만 하고 뒷일은 알아서 하라고 할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게임 서버 관리입니다. 사람이 적어서 클라도 같이 보고있고요. 원래 웹 개발하던건 있었는데 게임회사 욕심을 못버리고 들어갔다가 회사 대충 보고 들어가서 이 고생 하고있고, 솔직히 굉장히 후회중이긴 합니다.
피곤한늘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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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리멤버 이 기능 없는게 말이 됨? 빨리 이 위젯 개발하셈
위젯에 '사진찍어 명함 추가 ' 기능이 없는게 말이 되나요 명함원툴 앱이 ㅋㅋ 사진이 아니라면 스캐닝방식으로 명함에 사진기 가져다대면 인식해서 업로드하는 방식으로라도 만들어야되는거 아님? 다른앱들은 qr코드 같은걸로 다 하더만 왜 없음 여기는?
돌연변이론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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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원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척(隻) 지다'란 말이 있다. 서로 원한을 품어 미워하거나 대립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척'이란 한자는 '외짝'을 이른다. '외짝'이라니. '서로 미워하여 등을 지는 사이'와 '외짝'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어원을 가로질러 올라가 보면, '척'이란 글자는 옛 조선 시대의 '피고(被告)'를 이르는 말이다. 피고가 있으면 '원고(原告)'가 있다. 그러니까, '원고'쪽에서 보면 한 쌍의 외짝은 '피고'가 되는 것이다. '피고'가 '외짝'을 뜻하는 한자 '척(隻)'의 의미와 부합하여 만들어낸 결과다. 민사에서 '원고'와 '피고'는 평소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분쟁이나 갈등은 결국,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옆의 동료나 가족이다. '척'이란 말 말고도, 그 뒤에 붙는 '지다'란 말에도 주목을 해야 한다. '지다'의 원뜻은 '어떤 좋지 않은 관계가 되다'란 뜻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짐을 짊어진다는 '지다'의 뜻도 가미한다. 가까웠던 사람과 관계가 어그러지면 그것은 내가 이고 가야 할 삶의 짐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단절되고,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다 보면 삶은 극도로 피로해진다. 그러나 나는 그 관계를 어거지로 이어 붙이지 않는다. 깨진 그릇은 이어 붙일 수도 없을뿐더러, 붙였다 하더라도 그릇으로 사용할 순 없다. 피로는 언젠간 풀린다. 깨진 그릇을 붙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오히려 더 큰 피로다. 대신, 나는 '원고'의 입장에서 벗어나 '판사'가 되어보기로 한다. 척을 진 이유의 모든 것이 상대방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를 탈피하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과연 내 행동과 반응도 그리 온당치는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심지어는, 내가 '원고'가 아니라 '피고'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상대에게 나는 '피고'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척을 진 내 원수들에게 할 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이라는, 예전에는 말도 안 되던 감정마저 피어오른다. 그들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상처받았던 마음과 혹독하게도 아팠던 영혼이 나로 하여금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말한 것이다. 더불어, 척을 진 원수들 덕분에 나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내 원수들을 심어놓은 누군가의 큰 그림이 아니었나 싶다. 가지 말란 길로 자꾸 가는 나에게, 그 방향을 어서 틀라는 누군가의 신묘한 장난이라고나 할까. 내 원수들 덕분에 나는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 덕분에 더 소중한 사람을 알아보게 되었다. 척을 지거나, 적이 되거나,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실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게 '정화(淨化)'의 과정이었다. 걸러질 것은 걸러지고, 소중한 사람들만이 남는 것을 목도한 것이다. 내게 남은 사람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애써 구별할 필요가 없어졌다. 살아가면서 척을 지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척지는 일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일어 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원수들이 양산된다는 말이다. 그게 삶이다. 살아가는 동안 원수가 생기지 않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다간, 자기 자신과 척질지도 모를 일이다. 소란한 마음을 잠재울 때마다 나는 내 원수들에게 마음의 편지를 적어 보내기로 한다. '때문에'란 말보단 '덕분에'란 말을 가득 채워서.
스테르담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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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는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줄까?[Part.1]
MBA 스터디를 기웃거렸던 추억 대리 시절이었다. 십 수년 전이었고, 생각이 많았던 그때. 기대했던 직장생활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 그즈음이었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과 '더 늦기 전에 지금 이 상황을 급격하게 바꾸거나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조급함이 몰려왔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터져버릴 것만 같은 현실과의 괴리감이 잠을 못 자게 했다. 주위를 살폈다. 여기저기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으며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싫었다. 나도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확신은 분명히 나를 고만고만하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가 나와 다를 바 없다는 현실 자각이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것이다. 그 시절, 새로운 상무님이 낙하산(?)과 같이 내려왔다. 내 팀장님보다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MBA를 다녀왔단다. 대기업이지만 잘 나가지 못했던 그 회사에서 염증을 느끼고 대리 때 퇴사를 한 뒤, MBA를 다녀와 컨설팅 회사에서 몸값을 올리고 우리 회사로 임원으로 스카우트된 거였다.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그래, MBA였구나. 이 고만고만한 현실을 바꿔 줄 정답! 구원과도 같은 MBA란 단어에 나는 흠뻑 취해있었다. GMAT이라는 두꺼운 책을 산 뒤, 강남역 근처 MBA 스터디에 가입을 했다. 내가 이렇게 실천력이 대단했던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놀라며 스터디를 시작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돌이켜 보니 나는 그저 MBA 스터디를 그저 기웃거린 것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처참히 MBA 스터디를 그만두었다는 말이다. 뭣도 모르고, 그저 현실이 싫어서. MBA가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줄 거란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어떻게'에만 혈안이 되어 달려든 결과였다. 두꺼운 책 몇 장에 밑줄 끄적거린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지 뭐...'란 생각과 함께 MBA 스터디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MBA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 사람은, 아니. 직장인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현실과 이상에서 오는 괴리감과 그 괴리감에서 피어난 인지부조화 현상을 타파하는 데 자기 합리화만큼 쉽고 편한 게 없기 때문이다. 천둥과 같은 아침 알람 소리에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월급과 대출을 떠올리면 기어이 몸은 일으켜진다. 일어나기 싫다는 마음과 출근해야 한다는 인지부조화는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MBA는 나에게 현실과의 괴리가 매우 큰 무언가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MBA에 합격을 했다면. 나는 그때 하던 일을 관두고 2년 이상의 시간을 해외로 나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더 큰 것을 가져다준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나는 빚을 내서라도 다녀왔어야 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배포는 없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훌륭한 자기 합리화가 되어 현실을 직시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전략적 부작위(不作爲)'였을까, 아니면 '비겁한 부작위'였을까. 당시엔 후자가 맞았다. 비겁한 부작위. 열심히 공부하지 못하고, 배포 없이 현실에 수긍해야 했던 내 모습은 비겁함 그 자체였다. 나는 MBA를 신 포도로 만들었다. 먹을 것이 못된다고 결론지었다. 말이 2년이지, 거기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나에게 그 이상으로 되돌아올까란 의구심을 키웠다. 실제로, MBA 졸업자의 희소성이 옅어지는 것도 한 몫했다. 예전엔 MBA가 젊은 임원을 배출해내는 성공의 물꼬였지만, 점점 MBA에 대한 공급이 더 많아지면서 대학원과 같은 성격으로 변모해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자기 합리화의 함정이었다. 어느 학교, 어느 레벨의 MBA를 가느냐와 졸업할 당시 개개인이 가진 역량은 그 변화의 추세로 단정 지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MBA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 내가 바라보기엔 너무나 비싼 것. 꾸준함도 비용도 부족한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해서 못하는 것. 자기 합리화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비겁한 부작위'에서 '전략적 부작위'로. MBA라는 기회. 자기 합리화의 매력은 멈추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나는 어떻게든 나 스스로를 꾸려가야 했다. 안 하는 것이든, 못 하는 것이든. 못난 나든, 꾸준하지 못한 나든. 어르고 달래며 이 세상을 잘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MBA를 신 포도로 간주한 뒤. 내가 재설정한 자기 합리화는 현업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 답은 현장에 있으니, 현장에서 답을 찾자는 것이었다. 마침, 번아웃 이후 시작한 글쓰기로 내 삶은 변화해 있었다. 내 일과 직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있었다. '본업'에서 '업'을 찾는 법을 알게 되었고, 주인과 머슴 관계가 아닌 '주체적 주인의식'으로 내 일을 바라보니 반복되는 일들도 가치 있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일생일대의 변화였다. 고만고만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던 순간. 내 주위 사람과 내게 일어나는 일은 고만고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일은 없다. 다만, 고만고만하게 바라보는 시선만이 있을 뿐. 대부분의 직장인은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선을 달리하니, 직장은 배울 것 투성이었다. 본업과 현장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식과 깨달음이 쏟아져 나왔다. 책에서만 보던 이론을 직접 체험하며 나는 빛나는 보석들을 마구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다 회사로부터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MBA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인재 발굴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행운이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행운을 맞이하기 위해선 일어나 어느 골목으로 걸어가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 온다는 말은 진리다. MBA고 뭐고, 그 좌절감에 고만고만하게 일하고 고만고만하게 직장생활을 했다면 내게 오지 않을 행운이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현장에서 줍줍 하던 보석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더 눈부셔 보였다.
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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