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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TALK] 이보다 더 짧을 순 없다, 숏폼 콘텐츠
✅ 유튜브에서 숏폼 콘텐츠의 수익화를 시작했습니다. 즉, 숏폼 콘텐츠를 제작한 크리에이터들에게 수익배분을 시작했다는 의미인데요. 최근 들어 숏폼 콘텐츠들의 인기가 급증했고 틱톡 뿐만이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도 각각 쇼츠와 릴스라는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숏폼 콘텐츠들의 생산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또한 숏폼 콘텐츠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에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 일전에 썼던 글에서 "쇼츠 드라마"의 인기에 대해 언급했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여러 포맷의 숏폼 콘텐츠 중 "쇼츠 드라마"와 "드라마 쇼츠"에 대해 좀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 정확히 정의된 용어는 아니지만, “쇼츠 드라마"는 드라마 형식에 맞춰 1분 내외로 완결되는 콘텐츠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했고 "드라마 쇼츠"는 기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편집하여 숏폼의 형태로 만든 콘텐츠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쇼츠 드라마"는 최근 많은 제작사에서도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장르입니다. 22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수상까지 거머쥔 쇼츠 드라마 <편의점 고인물>은 최근 <편의점 뚝딱이>라는 후속 시리즈를 내며 또 한번 인기를 끌었습니다. 쿠팡에서는 <다 이렇게 살잖아>, 탑텐몰에서는 <셋셋남녀 : 패션 무지렁이들의 전성시대>, CGV에서는 <뷔.아이.피셜>이라는 쇼츠 드라마를 선보였구요. BC카드에서도 <힙지로딕댱인>이라는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 쇼츠 드라마의 특징으로는 브랜디드 성격이 강한 콘텐츠들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볼 때, 쇼츠 드라마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죠. 첫 번째로는 1분 내외의 짧은 RT이고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에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가성비를 꼽을 수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때 RT가 길어질수록 제작비가 비례해서 늘어나는데 쇼츠 드라마는 짧기 때문에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죠. 세 번째로는 상대적으로 조회수를 높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인데요. RT가 짧다 보니 끝까지 볼 확률도 높아지고(다 봐도 1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다시 반복해서 보기에도 부담이 없죠. ‼️ 드라마 쇼츠"도 최근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신드롬급 인기를 일으킨 <더 글로리>의 경우, 명대사 제조기라고 불리는 김은숙 작가와 연출의 대가 안길호 감독이 만나 장면 하나 하나마다 화제를 모았습니다. 찰진 대사, 그리고 숨겨진 여러 연출적 장치가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반복 시청을 유도하고 있기도 하죠. <더 글로리>의 경우에는 드라마 쇼츠가 훌륭한 마중물이 되어 본편의 화제성을 더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여기에서 드라마 쇼츠의 홍보마케팅적 역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는, 본편 관람을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눈길을 끄는 드라마 쇼츠를 보고, 흥미를 느낄 경우에 본편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정보 제공의 역할입니다.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 모든 콘텐츠를 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는 콘텐츠의 화제에 편승 가능하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이는 또 본편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높입니다. 세 번째로는 효율적인 만족감 제공입니다. 재미있는 부분만 반복해서 볼 수 있고, 자투리 시간에 볼 수 있어 바쁜 현대인들에게 짧은 시간에 만족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 숏폼 콘텐츠는 이제 대세로 자리잡았고, 여러 제작사 및 크리에이터들도 더욱 활발하게 콘텐츠를 제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숏폼 콘텐츠 시장이 얼마나 더 확대될지 지속적으로 주목해 봐야 하겠습니다. https://www.fnnews.com/news/202302011822382947
류진아 | 대중문화교류위원회지원단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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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앤노블 : 무너져가던 미국 최대 서점, 로컬 전략으로 부활하다
한국의 대형서점들은 책보단 문구점화 되어가고 있고 책도 주요 매대는 부동산처럼 광고로 파는 자리가 상당한데 반스앤노블은 대형서점 위치에서 독립서점의 전략으로 반전을 이끌어내고 있는데요 비즈니스하는 분들이 참고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 공유합니다. --- ● 아마존은 1995년부터 도서 사업에 뛰어들었지. 싼 가격, 다양한 재고, 편리한 주문으로 반스앤노블의 영역을 하나둘 빼앗아 갔어. 이때 반스앤노블이 택한 전략은 ‘잡화’였어. 책 만으로 안 되자 우산과 이어폰, 레코드판, 텀블러, 장난감 등을 팔기 시작했어. 2016년엔 해본 적 없는 레스토랑 사업까지 진출했어. 심지어 아마존과 붙어보려고 전자책 기기도 만들었지. 결과는? 대실패. 서점 내부는 책과 잡화가 엉켜 원하는 걸 찾기 힘들 정도였고, 사람들은 잡화에 관심도 없었어. ● 결국 반스앤노블은 경영난에 빠졌어. 2012년부터 7년 연속 매출은 내리막길. 그동안 CEO는 네 번이나 바뀌었어. 결국 2018년 인수·합병 대상이 됐지. 헤지펀드 엘리엇 어드바이저스Elliott Advisors가 6억3800만달러(약 7850억원)에 반스 앤 노블을 인수했어 ---- ● 제임스 던트 : 서점 회생전문가의 등판 던트는 서점 회생 전문가나 다름 없어. 원래 뉴욕에서 투자은행 JP모건을 다닌 그는 스물여섯이 되던 1990년, 돌연 회사를 그만둬. 이유는 아내가 된 여자친구 때문. “당신과 금융은 안 어울린다”는 조언에 업종을 바꿨어. 그리고 여행책 서점 던트북스Daunt Books를 열었지. ● 워터스톤즈 : 가격보다 책이 보이게 하라 던트의 성과는 2011년 영국의 대형서점 워터스톤즈로 이어져. 당시 워터스톤즈도 온라인 서점에 밀려 파산 직전이었어. 러시아의 억만장자 알렉산더 마무트Alexander Mamut가 워터스톤즈를 인수한 뒤, 그에게 전무 자리를 맡겨. 그가 택한 전략은 크게 네 가지였어. 1. 책 두 권을 사면 한 권을 공짜로 주는 ‘3 for 2’ 정책 폐지. 2. 출판사 판촉 정책 중단. 3. 관리자 수는 절반으로, 현장 직원의 30%도 구조조정. 4. 각 매장은 독립서점처럼 운영. -- ● 발견 : 먼지 쌓인 체인점, 행운의 공간으로 바꿔라 던트가 본 2019년의 반스앤노블. 8년 전 죽어가던 워터스톤즈와 비슷했다고 해. 카펫은 먼지투성이에 에스컬레이터는 고장 나 있었대. 카페는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볼 법한 곳이었고. 책꽂이는 금이 가 있었고, 책도 기준 없이 꽂혀 있었지. 던트는 반스앤노블을 ‘즐거움과 뜻밖의 행운serendipity이 가득한 서점’으로 정의했어. 메모가 쌓인 서점을 거닐다가 책을 보물처럼 발견하는 곳. 가격과 속도로 앞선 아마존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 거야. 이전의 반스앤노블과도 달랐어. -- ● 본질 : 배터리를 사러 서점에 가지 않는다 던트는 계속 서점의 본질에 집중해. 본질이 뭐겠어? 책이지. 그는 회사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했어. “반스앤노블은 서점과 관련 없는 것들을 많이 팔고 있었어요. 아무도 ‘듀라셀 배터리가 필요해. 서점에 가야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_2022년 뉴욕타임스에서 던트는 어린이·청소년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키웠어. 가족들이 모여 같이 책 읽을 공간을 만들었고. 또 해리포터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모임 초대장을 뒀고, 소설 속 인물처럼 마법사 옷을 입은 직원이 인사를 나누게 했어. --- ● 로컬 : 뉴욕 본사 책상의 큐레이션을 믿지 않는다 던트는 아예 매장 큐레이션 권한을 각 매장 관리자에게 줬어. 뉴욕 본사의 탑다운top-down 큐레이션을 버린 거야. 지역에 사는 직원만큼 현지 고객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봤어. 실제로 뉴욕에서 책 구매를 전담하던 시기에는 신간 반품률은 무려 50%였지. 또 던트북스 때부터 만든 원칙, 매장 직원을 시급제가 아닌 급여제 중심으로 고용해. 그래서 직원들이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했어. <전문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링크는 아래 첨부합니다.> 반스앤노블 : 무너져가던 미국 최대 서점, 로컬 전략으로 부활하다 https://www.longblack.co/note/566?ticket=NT760b047bf986cfa5e2d29763a0578d4b42b40e2b&utm_source=remember&utm_medium=affiliate&utm_campaign=post&utm_content=230131
김종원 | 타임앤코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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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이직
1. 소감 교수님 추천으로 조기취업한 회사에서 4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첫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회사에 정이 들었고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시절부터 함께했던 회사라 그런지 가족에서 독립하는 기분이 드네요. 2.각오 다행히도 재직중 취득한 석사학위를 인정받아 대리 1년차로 가게되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계열사로의 이직인 만큼 기존의 업무에서 배운 경험만 가지고 업무 프로세스는 모두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요청 선배님들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에서 중견, 대기업으로 이직하신 선배님들은 어떤점이 가장 힘드셨나요.(생활,업무 등)
망망망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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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내기) 기분 좋아지는 요일 목요일 vs 금요일
여러분은 금욜, 목욜 중 머가 더 좋으세요? 저는 당연히(?) 금욜은 돼야 좋은데요. 저희 팀 동료는 “목욜부터 행복해진다. 내일이 금욜이라서“라고 하더라고요;;;;;; 신박한 거 같기도 하고 궤변 같기도 하고.. (투표로 커피 내기 하기로 했습니다.)
momoya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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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이월
이제 2월 7일되면 1년이 됩니다 지난 22년동안 남은 연차가 10개인데 올해 지나고 나서 사용 안해서 다 소진됬다고 하시네요 원래 1년 안된 연차면 이월되야 법적으로 맞는지를 모르겟어서 반박을 못했습니다 어떤게 맞을까요 제가 안쓰고 싶어서 안쓴게 아니라 못쓴건데 억울해서요
바람처럼꾸미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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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할지 몰라 애매하다면.
애매하다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면. 잘하는 일을 찾아. 뭘 잘하는지 모르겠으면. 해야 하는 일을 해. 해야 하는 일이 버거우면. 그대로 버텨. 버티다 보면 무엇이 하기 싫은지 알게 될 것이고.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게 있을 거고. 잘하는 일이 늘어나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겠지. 그러니까 뭘 해야 할지 몰라 애매하다면. 그 애매함을 받아들이고 즐겨. 나는 평범하고 애매하다고. 그대로 앉아 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 애매함은 시작이야. 잊지 마. 애매함은 시작이라고.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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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
"어떻게 그렇게 직장 생활을 오래 하실 수가 있어요?" 이 질문을 받으면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질문을 받을 정도로 직장 생활을 오래 했을까란 '자문(自問)'. 둘째, (어느 정도는 했다고 치고) 도대체 정말 어떻게 버텼을까란 '의문(疑問)'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직장생활을 한 것은 맞다. 그래도 그것보단 상대적인 것이 한 몫한다는게 더 맞겠다. 이 질문은 대부분 강연을 통해 만난 취업준비생 후배들이나, 경력이 몇 년 되지 않은 멘티 또는 후배들로부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질문을 받으면 나도 덜컥 뒤를 돌아본다. 십 수년을 나는, 직장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직장생활의 어려움들을 어떻게 이겨 냈을까?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억울함, 분노, 망신, 자존심에 대한 상처들이 있는데. 미워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같은 공간에 있기도 싫은 사람이 지금도 분명 있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나는 옳은 길로 가고 있는가란 의구심이 때론 불같이 일어나는데. 물론, 보람과 기쁨, 환희의 순간도 있다. 그것은 잠시 뿐. 더군다나 그것이 내일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직장생활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일희일비'하지 말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찌 되었건,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은 해야겠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딱히 떠오르는 비법은 없었다. 그래서 요즘 떠오르는 생각들을 부여잡아 정리를 해보니 '맥'이 잡힌다. 그것들은 지난 시간 하나 둘 쌓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었다. 애초에 나에겐, 십수 년을 버틸 힘이 있진 않았다. 아마도, 하루하루를 버티며 직장인으로서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깨달음과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요즘 내가 마음에 요동이 칠 때면 무의식적으로 되뇌는 말들을 정리해봤다. 아마도, 이것은 힘든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1. "그럴 수도 있지" 요즘 들어선 이 말에 큰 의지를 한다. 억울한 일도, 기가 찬 일도, 황당한 일도. 이 말 한마디를 떠올리면, 심호흡을 할 여유가 생긴다. 참 신기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많이 생긴다. 누군가 말을 삐딱하게 해도, 상사가 갑자기 길길이 날뛰어도, 나는 똑바로 한 일이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어그러졌을 때도. 내 입장에선 정말 기분 나쁜 일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거나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眺望)해보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건 내게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야'라는 건 없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일이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더 불행하고 힘들게 한다. "그럴 수도 있지"란 마법의 주문이 필요한 이유다. 2. "하면 되지, 뭐!" '할 수 있다!'란 생각과 다짐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실용적인 주문이 있다. '하면 되지, 뭐!'다. 이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사나 다른 부서로부터 더 큰일이 떨어진다. 혼란이 생긴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 지도 판단이 서지 않고, 이 일을 갑자기 잘 해낼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선다. 결론적으로, 그 둘 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을 놔버린 스스로를 발견한다. 시간은 흐르고 조급한 마음이 앞설 때, 무어라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주문이 바로 '하면 되지!'다. '할 수 있다'란 조금은 과장된 거짓된(?) 다짐보다는, 결과는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시작이라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어떤 어려운 일이 나를 도사리고 있을 때, 한 번 속으로 크게 외쳐보자. "하면 되지, 뭐!". 그리고 시작하면 된다. 그냥. 3. "안되면 말고" '체념'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 때의 체념은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안되면 말고'는 최선을 다 한 후에 갖는 또 다른 '체념'이다. '기다릴 줄 아는, 또는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일단, 최선을 다한다.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아니, 후회해도 좋다. '하면 되지!'라는 주문과 함께 시작한 일. 그 결과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제대로 했는데, 일이 어그러질 수도 있고. 내가 미처 완벽하게 하지 못한 일도, 어찌어찌해서 잘 마무리될 수도 있다. 결과에 대해 '자기반성'과 '책임'을 지되, 그것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안되면 말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4. "저 사람은 저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일 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뒤통수를 때리는 대사가 나온다. 난, 아직도 이 대사를 마음에 품고 사람 때문에 힘들 때면 머리로 기억하려 애쓴다. 주인공 앤디가 푸념을 늘어놓기 위해 찾은 직장선배 나이젤에게서 들은 말. "그녀(미란다, 앤디의 상사)는 그녀의 일을 하는 것뿐이야!" 나에게 뭐라고만 하는 상사를 떠올려보자. 저러고 싶을까? 자기는 얼마나 잘났기에? 답답하면 자기가 하던가! 오만가지 감정과 불만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어떨까? 그 자리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실제로 그곳에 있게되면 나 또한 그와 같은 지시와 요청을 하게 된다. 직장에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란 말이 있다. 맞다. 사실이다. 정말 그렇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되뇌면, '메시지'와 '감정'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나에게 하는 공격 같지만, 그것은 '리더'로서 해야 하는 말인 경우가 많다. 감정만 상하다 보면 상처만 남는다. 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다시 가늠해보면, 거기엔 분명 '메시지'가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집중하면 나는 좀 더 성장할 수 있다. 나도, 내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자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5. "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일도 포함하여)" 우리는 이 말을 안 좋은 일에만 쓰는 경향이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읊조리면 위로가 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일만 지나가길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힘든 일이 지나갈 때 나의 감정, 노력, 기억과 시간이 함께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과 경험도 모두 소중하다. 좋지 않은 일이나 힘든 일은, 미래의 나에게 주는 (쓴) 약이다. 지나가는 과정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조망해야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오늘의 성과가 내일의 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다. 오늘의 성과에 취해,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면 안 된다. 그러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복기하고, 이 순간을 잘 보내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지나가는 모든 것의 중심엔, 내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난 앞으로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그 과정 중엔, 또 다른 '주문'이 생길 것이 확실하다. 오늘을 버텨야 내일이 오는 직장인의 삶은, 힘들고 고되지만 깨달음의 깨알 재미가 있다. 우리는 대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고, 남을 탓하며, 직장을 원망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제는 그 관점을 바꿔야 한다. 나를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고, 직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다. 위에 열거한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매일매일 그것들을 읊조리며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나는, 그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P.S 그러고 보니, '어떻게 그렇게 직장생활을 오래 했냐'는 질문에 '어떻게 버텨왔을까'를 늘어놓았으니 어쩐지 스스로가 짠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이 땅의 모든 직장인과, 예비 직장인들의 하루하루가 조금은 덜 고되고 도움이 되는 의미로 꽉 찼으면 좋겠다. 직장 생활이란 게 '즐기기'보단 '버티기'가 더 많이 필요하니까!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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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보다 '영리한 퇴사'로 내 마음 지키기
'조용한 퇴사'의 소란함 요즘,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소란합니다. '조용한 퇴사'는 미국 20대 엔지니어 자이드 펠린의 틱톡 영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펠린은 "(조용한 퇴사는)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라며,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어느 분들은 그 생각에 흔쾌히 동의하실 테고, 또 어떤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후자 쪽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 작가는 우리 편이 아닌 회사 편이야..."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든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겠죠. 단 한 가지.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저는 바로 '내 편'입니다. 고개를 갸우뚱 한 건 저를 위한 생각에서 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편이 되어야 합니다. '조용한 퇴사'를 선택하시는 분들도 스스로의 편에 서서 결정하신 걸 테니까요. 그러나, 무언가가 소란할 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대세가 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이 될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중점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주중이 불행한데, 주말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직장을 흔히 전쟁터와 비유합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은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직장과 전쟁터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퇴근'과 '주말'입니다.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두 가지. 그러하기에 직장인은 한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펠린이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가 우리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거나 좌우되면 안 되지만, '삶'과 '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우리네 삶은 더 고단해집니다. 더불어, 나를 위한 성장은 멈추게 됩니다. 월급 받는 것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직장인의 삶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이 이득이 되는 지를 가늠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주어진 일' 이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내가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될 텐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불어, 주변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게 됩니다. 통제권을 갖고 싶다면, 사장이 되거나 일을 그만 두면 됩니다. 내 업무 영역이나 역량에 선을 긋는 순간, 힘들어지는 건 나 자신입니다. 선을 넘어오는 것들에 대한 불편함으로 노이로제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낸 한 주의 끝. 주말을 맞이하면 마음이 편할까요? 주중이 불행하면, 주말에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주중에 무언가 보람을 느꼈다면.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덜 불행했다면. 주말엔 좀 더 편하게 쉴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인데, 놀랍게도 '주말'은 '주중'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이니까요. 월급쟁이라면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으면서 월급은 받으려고 하니 괴리감은 커지고,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겁니다. '조용한 퇴사' 보다, '영리한 퇴사'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저는 회사 편이 아니라 '내' 편입니다. 고백하자면, '조용한 퇴사'를 해보지 않은 게 아닙니다. 20년 이상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굴곡을 만나게 되고 그 사이에서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인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슬럼프나 번아웃이 오면 자연스럽게 '조용한 퇴사'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 당시, 몸은 편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여유 시간이 좀 더 생기긴 했지만, 그 시간을 보람차게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시간을 어서 이겨내고 더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한 퇴사'보다는 '영리한 퇴사'를 더 추천드립니다. 그렇다면, '영리한 퇴사'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걸까요? 저는, '영리한 퇴사'란 '언젠간 떠날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보다 더 많은 걸 얻어가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그 유형과 방법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할까요? 첫째, '퇴근'을 매일의 '퇴사 연습'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 더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장 생활은 유한하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왜 놀라운 사실일까요? 우리는 마치 직장생활을 영원히 할 것처럼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굴러 올린 돌이 떨어져 다시 그것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저주처럼 말이죠. '반복'의 늪에 빠지면 우리는 그것이 마냥 지겹고, 또 영원히 지속될 것이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때가 옵니다. 평생 월급쟁이의 삶을 투덜거리다,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닌 삶을 살게 되면 어떨까요? 막막하지 않은가요? 수 십 년의 직장생활 후 남은 게 불평과 행복하지 않은 삶 쪼가리라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저는 어느새부턴가 매일의 '퇴근'을 '퇴사 연습'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관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퇴사하면 나는 뭐가 될까. 어떤 존재가 될까. 회사 명함이,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가 벗겨지면 내 본질은 무엇일까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글을 쓰게 된 것도 질문을 던진 그즈음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니, 또 다른 길과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은. 다른 길과 기회를 엿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함과 의미를 새로이 찾게 되었다는 겁니다. 더불어, 직장생활은 저에게 많은 글감과 영감은 물론 성장의 기회를 안겨다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직장에서 얻은 인사이트 덕분입니다. 유한성을 깨닫고 나면, 모든 게 새로워 보입니다. 매일을 퇴사한다는 마음은 또 다른 많은 기회를 줌과 동시에, 지금 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둘째,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처를 입으면 즉시 마음속 퇴사를 할 것 "그걸 지금 보고라고 하는 거야? 초등학생도 그거 보단 잘하겠다!" 폭언이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이러한 말을 하는 상사들이 꽤 많습니다. 순한 표현을 써서 그렇지, 이보다 심한 말과 자괴감을 들게 하는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도 여전합니다. 예전에 저는 이러한 말의 비수를 그대로 제 마음에 갖다 꽂았습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내 부족함이야...' 또는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무례한 말을 한 상사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욕하기도 했지만, 자존감과 자존심이 바닥 치는 걸 막을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리한 퇴사'를 실천한 이후부터는 저는 덜 상처받고 덜 다치고 있습니다. 폭언이나 무례한 마음을 들으면, 저는 마음속으로 즉시 퇴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 퇴사'가 무엇일까요? 제 자신을 '회사 밖 존재'로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직장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집니다. 남극에 파견된 연구원과 군인들, 잠수함을 타고 오랜 시간을 해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우주 공간에서 우주인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할 때 심리와 행동이 격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립 효과(Isolated Effect)'입니다. 직장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은 격해지고, 상처는 더 커지는 이유입니다. 상사에게 욕을 먹었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비수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를 직장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재빨리 옮겨놔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나를 회사 밖 존재로 규정하는 겁니다. 직장에서의 내 모자람이, 내 존재 자체의 모자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업무에서의 실수와 부족함이, 내 삶의 전부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내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는 일은 지양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속 퇴사를 재빨리 하는 것은. 직장인으로 나 자신을 국한하는 것이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한 '영리한 퇴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셋째, 월급 이상의 것을 볼 것 (나갈 때 더 챙겨 나갈 수 있도록) 월급은 언제나 빠듯합니다. 얼마를 벌든 간에, 항상 얼마만큼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것은 월급의 미덕인지, 미스터리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래서 직장인은 월급에 절대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불평과 불만도 그것에 기인합니다. 일확천금과 같은 액수를 월급으로 받는다면 직장인에게 '불평'이나 '조용한 퇴사'와 같은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역설적으로, 월급 이상의 것을 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남는 장사를 위함입니다. 내 심리적 만족을 위함입니다. 마음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월급 이상의 것을 얻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의미 찾기'와 '의미 만들기'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십 수년 차에 저는 번아웃을 겪었습니다. '조용한 퇴사'를 누구보다 더 조용하게 실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긴 시간을 열심히 내달려 왔는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니 마음이 너무 허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찾지 못하면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을 글로 남겼습니다. '나'는 물론, 나와 같이 힘들어할 후배들에게 남길 요량으로 말이죠. 글과 의미가 모였고,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아 <직장 내공>이라는 저서가 되었습니다. 저는 월급 이상의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수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그 선물의 기반은 묵묵히, 또 열심히 일해 온 저의 시간과 경험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루하루 하고 계신 '반복'은 무의미한 게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직장생활은 유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복'은 무의미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그 어떤 '과정'이며 '근육'을 단련하는 행위라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란 시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적용하여 말하면, '내가 그 어떤 것들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것들은 나에게로 와 꽃(선물, 가치)'가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 어차피 나가야 한다면. 뭐라도 하나 더 챙겨 나가야 하는 게, '영리한 퇴사'가 아닐까요? 솔직해져 봅시다. 나는 '조용한 퇴사'를 외치면서. 상대방이 '조용한 퇴사'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할까요? 열정이 없다,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니냐,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학생의 본업은 '공부'고. 직장인의 본업은 '일'입니다. 언젠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상위 성적을 늘 차지하는 학생에게 왜 이토록 열심히 공부하냐는 인터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대답을 보며, 저는 전율을 느꼈는데요. 그 대답은 바로,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공부가 내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본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존재에게 '행복'이란 확률은 얼마만큼일까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선을 그어 놓는 직장인에게 과연 '의미'란 있을 수 있을까요? 지금 주어진 일도 제대로 해내지 않는데,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영리한 퇴사'는 얼마든지 각자의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위의 예시는 철저히 제 개인적인 방법입니다. 분명한 건, 저는 이 것을 통해 본업에 충실하고 또 새로운 페르소나와 기회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더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이전보다는 좀 더 주체적으로 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조용한 퇴사'를 할지. '영리한 퇴사'를 할지. 우리는 언젠간, 퇴사를 해야 하는 존재이니까요.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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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사이에 두달 텀 두는 것 괜찮나요?
안녕하세요. 제가 이직을 하게 되는데 뭔가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한달 동안 1일도 근무를 안하면 해당 달은 비근무로 처리되서 뭔가 안좋다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요. 이직 시 두달 텀을 두고 퇴사하고 입사해도 연말정산이나 다른 안좋은 점이 있을까요? 미리 감사합니다 !
김참치참치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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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지갑은 이미 열려있다. 당신이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면.
안녕하세요. 비즈니스를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독자분들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즈는 있지만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영역들이 많을 것이고, 혁신은 항상 힘들죠. 제가 주로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일해온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도화된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면 혁신은 ‘기술개발’이라기보다는 ‘관계의 재배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스타트업은 디지털 플랫폼을 앱이나 웹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기존 관계를 재배열합니다. 많은 시장에서 중간상인이 게이트키핑과 공급망 통제를 통해 공급량, 가격, 품질을 통제해왔는데, 중간상인을 바이패스하고 새로운 디지털 연결망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돕고, 플랫폼은 수수료를 받는 것이죠. 여기에는 디지털 혁신, UXUI 혁신, 린스타트업과 같은 비즈니스 방법론 혁신이 들어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관계의 재배열’이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는, 관계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인간은 습관화, 자동화된 마음의 운영체제로 살아가고 있죠. QWERTY 키보드가 세계적으로 가장 패권적인 키보드 구조인 이유는, 그냥 습관화되어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키보드가 더 인체공학적이거나 효율적일수도 있는데, 그냥 가장 먼저 선택되어서 퍼진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습관’은 매우 바꾸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이죠. 인간의 습관을 변화시켜 관계를 재배열하고자 하는 혁신가는 이 지점에서 딜레마를 직면합니다. 플라이휠 모델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말은, 사실 ‘사기를 치겠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규모의 경제를 이뤄서 ‘미친 가치 제안’을 할 수 있으려면 이미 플라이휠을 돌린 후여야 되거든요. 말하자면, 이 플랫폼에 세상의 모든 좋은 콘텐츠가 다 모여있고, 그 덕분에 세상의 모든 사용자가 모여있어서 정말 싼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면 습관 따위야 다 바꿔줄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어떻게 갈 것이냐는 거죠. ‘여기 다 있어요!’ ‘오세요!’라고 사기를 쳐야 세상 모든 콘텐츠와 사용자가 모일테니까요. ‘모든 비즈니스는 사기다’라는 진리는 제가 책모임을 기획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단 10명이 모이는 책모임인데도 ‘마치 이 책모임에 이미 10명이 오는 것처럼’ 강력하게 가치를 제안해야 했습니다. 왜냐고요? 10명이 모이기 위해서는, 첫번째 고객을 설득해야 하거든요. 두번째 고객도 모셔야 하고요, 세번째 고객에게도 가치를 제안해야 합니다. ‘10명이 다 오기로 되어 있다’고 첫번째 고객에게 사기를 칠 수는 없겠죠. 10명이 오지 않을 수 없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첫번째 고객은 왜 이 모임에 와야 할까요? 아직 10명이 모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것이 바로 모든 플랫폼 비즈니스의 딜레마입니다. 플라이휠이 돌기까지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고, 10명이 모이지 전에는 한명도 모으기 힘들다는 것. 이 지독한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제가 최근에 들었던 생각을 통해 오늘의 주장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객의 지갑은 이미 열려있다. 당신이 108배를 이미 매일 하고 있다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도시락을 싸는 마음으로] 저에겐 시사 뉴스레터 콘텐츠를 작성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무료였습니다. 대학원과 토론강사 생활 후에 일하기 시작했던 첫 스타트업이었습니다. 한 공유사무실에서 시작했죠. 대학원 때를 다 벗지 못한 때였는데, 이상한 고집을 부렸었습니다. 콘텐츠 하나를 만들어도 책, 논문, 영문기사 등 최대한 좋은 레퍼런스들을 많이 보고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5천~1만자짜리 하나 쓰는데 한주를 거의 다 썼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레터를 기억하는 어떤 독자분은 최근 ‘정말 고퀄리티였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분도 뉴스레터 운영자시니, 아마 빈말은 아니었겠죠. 그 중 제가 썼던 뉴스레터는 아마 별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썼으니까요. 그런데 일은 능력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이상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글이라도 잘써야 한다, 아니 글을 잘 쓸게 아니면 자료라도 많이 봐야 한다.’ 지리산 여행가서 숙소 들어가기 전에 피시방가서 다음날 뉴스레터 발행 전에 한번 더 편집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자료 보다가 머리가 아파서 공원을 뱅뱅 돌던 시간들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뉴스레터 그거 뭐라고 국내 최고 저자의 책을 보고 인터뷰 비슷하게 문의드렸던 적도 있고요. 사진으로 제가 그때 작성했던 뉴스레터 중 하나의 레퍼런스 목록을 공유합니다. 아침에 5분 읽는 뉴스레터 그거 뭐라고 인용 레퍼런스까지 달아야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습니다. 뭘 인용했는지 알려야 하고, 일부 독자는 레퍼런스 들어가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반쯤 돌아있었던 같습니다. 같이 일하기 싫을 정도로. 제 자랑이 아닙니다. 제 글은 그때도 별로였고, 지금도 뭐 딱히.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그냥 매일 할 뿐입니다. 다른 것은 전혀 없어요. 글쓰기로 자아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버렸거든요. 글쓰기는 내 비루한 자아를 인정받기 위해 하는게 아니라, 고객을 위해 하는 겁니다. 독자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독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성장했었고, 수천명의 구독자도 느는 것을 보며 뿌듯했었습니다. 타입폼으로 메시지도 꾸준히 들어왔었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몇분의 구독자가 있습니다. 60대, 교육수준도 매우 높으신 분 같은데 거의 매번 뉴스레터를 꼼꼼히 읽고 주제를 제안해주시고 평을 해주시던 독자분이 계셨습니다. 직접 칼럼을 쓰실 수준의 지식을 갖춘 분인 것 같은데, 응원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아 뉴스레터는 학위나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구나’라는 진리를 깨달았었죠. 다른 구독자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뉴스레터를 처음 구독했고, 정말 이렇게 정리해주는 곳 없다며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고객은 아니고 구독자였지만, 그 때 저는 비즈니스의 진리를 몸으로 경험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품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도시락을 싸는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진심을 도시락에 담으면,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상대가 반응하게 되어있다.’ [나를 감동시킨 서비스는, 나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제가 수년동안 써온 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꽤 오래 썼는데 사실 이 브랜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적은 거의 없습니다. 내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제품을 파는 회사이기 때문이죠. 바로 와이즐리라고 하는, 면도관련 제품을 D2C로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면도기를 팔다가 최근에는 스킨케어 쪽으로 넘어가 로션, 샴푸, 헤드 부스터까지 파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감동을 받았던 포인트는, 오래 전에 읽은 인터뷰에서 였습니다. 와이즐리는 기본적으로 플라이휠을 돌려서 고객을 감동시키고, 마케팅이 아닌 리퍼럴을 통해 성장하면서 얻은 수익을 제품의 가격과 품질에 재투자해 최저가로 판다는 전략을 가진 곳인데요, 인터뷰에서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객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를 끌지 않더라도 그들의 문제 해결을 돕는 서비스가 되고 싶다.’ ‘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모든 비즈니스 전략에 반대가 되는 전략이 아닐까요. 대다수의 플랫폼은 이제 ‘콘텐츠’로 사용자의 주의를 끌어 체류시간과 리텐션을 잡아야 제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콘텐츠-커뮤니티-커머스(CCC) 모델로 플랫폼화에 성공한 굵직한 사례가 많기 대문이죠. 사용자의 주의를 끄는데는 ‘콘텐츠가 왕’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 제품이 사용자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알고, 이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비즈니스라뇨. 이건 거의 종교적인 존경심이 들게 하는 말입니다. 조금 세게 얘기해보면, 이 서비스는 고객이 지갑을 열기도 전에 매일 108배를 하고 있는 서비스가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하면 더 많은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그 수익으로 가격을 더 내려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우주로 날아가는 플라이휠 모델이 아닐까요. 이타심이 이타심을 불러온다고 하는 것. [고객은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당신이 절을 하고 있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이고, 너무 제 개인 주관에 의한 관점이 맞습니다. 멋진 말잔치가 비즈니스 역량이나 전략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팀의 마음을 불태우고, 고객의 응원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관적인, 거의 수도승에 가까운 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마치 매일 108배, 아니 300배, 1000배를 하는 마음으로, 고객이 들어오기도 전에 계속 절을 하며 고민하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이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 실제로 <장사의 신>의 저자 우노 다카시는 ‘어떻게 하면 손님을 더 기쁘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계속했고, 이를 통해 정말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하게 되었고, 손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나갔다고 합니다. ‘고객은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주장을 이런 맥락에서 제기한 것입니다. 이제 고객은 꼭 먹고 싶은 식당에서 줄을 서고,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기 위해 밤샘이나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으며, 초기 서비스에 애정을 가지고 피드백, 응원, 지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는 이제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팔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내던지는 과정과 이야기 자체를 판다는 ‘프로세스 이코노미’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비즈니스는 이제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Business as art’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적 있습니다. 말하자면, 비즈니스는 행위예술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속은 없고 겉만 있는 연기가 아니라,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타심을 가져야만 고객의 진짜 문제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문제 해결이 우리를 좀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실제로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이런 마음가짐에 대해 불교를 인용하며 ‘순수한 마음’을 강조합니다.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비즈니스에 무슨 108배, 행위예술, 순수한 마음인지 싶을 수 있지만, 실제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이들이 일관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자라면, 뭔가 가치를 제안하고자 한다면, 레드카펫을 깔고 와인을 준비한 채 108배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뭘 더 줄 수 있을까? 지금 있는 서비스보다 뭘 더 잘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무료 뉴스레터를 만들기 위해 세상 비효율적으로 시간써가며 아마 머리도 좀 빠졌을 경험을 해보고, 그 레터를 받고 높은 온도의 독자 피드백을 받고나니, 언급한 이들의 말을 믿고 싶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고객은 이미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당신이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면.
이재현 | DMK GLOBAL Co., Ltd.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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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이 있는데도 회사가 굴러가는 이유
'월급 루팡' '프리라이더' '월급 루팡'은 국립국어원이 2011년 7월 1일부터 2012년 6월 30일까지 한 해 동안 일간지와 인터넷 등 139개 매체에서 사용한 신조어를 정리한 <2012년 신어 기초 자료> 보고서에 실렸다. '월급'과 도둑의 대명사인 프랑스 괴도 소설 주인공 '루팡(Lupin)'을 결합한 단어다.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주로 '하는 업무가 없는 데도 바쁜 척 하기', '업무 시간에 다른 일하기', '자신의 업무를 다른 직원에 전가하기'등의 행태를 보인다. '프리라이더'는 원래는 요금을 내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선 조별과제나 프로젝트에 아무런 노력이나 참여를 하지 않고 결과만 취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이 또한 어학사전에 단어를 넣으면 뜻이 풀이된다. 고로, 한글과 영어가 혼합된 이 말은 모두 어학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사전에 어느 단어가 등재되었다는 것은 곧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나, 그것이 신조어라면. 본래 사전은 있는 단어의 뜻을 찾는 게 주 용도인데, 현대 사회에 이르러 사회가 복잡화되다 보니 신조어는 양산되고 모두가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사전에 등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체 어떻게 회사에 들어왔을까? 그러한 사람을 볼 때 우리네 기분은 그리 썩 좋지가 않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이고, 고도의 업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데. 대체 어떻게 저 사람이 내 옆에 있을까란 의문이 들면 마음이 편치 않게 되는 것이다. 마치 주변 모두가 하향 평준화되는 느낌. 저 사람이 들어올 정도라면, 내가 어렵게 들어온 그 의미와 가치는 훼손되고 그나마 있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곤두박질치는 순간이다. 그러게.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회사에 들어오게 된 걸까? 그리고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걸까? '월급 루팡'과 '프리라이더'를 통합하여 '그들'이라고 명명해보자. 그들은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뉜다. '선천성'은 원래 기질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후천성'은 직장생활을 해가며 그렇게 변화하는 사람이다. 물론, 복합형도 있다. 원래 그러한 사람이,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이 어떻게 내 옆에 있느냐 인데 '후천성'은 그나마 이해가 된다. 들어올 땐 멀쩡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일을 전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의 기질을 숨겼을 것이 틀림없다. 원래 서류나 면접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최선과 최상을 말한다. 그러하니 사실 변별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이미 우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는 '게으른 천재'일 가능성도 있다. 게으르려면 똑똑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부담은 최소화하고 효율을 높이려는 그들의 기질이,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온 것으로 해석된다. 나는 '그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나? 그런데 재밌고도 섬뜩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우리도 사실 누군가에겐 '저 사람'이고, '그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며 아무것도 안 하고 일을 전가하는 김 부장이나, 교묘하게 광만 팔고 결과만을 빼먹는 이대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돌이켜야 한다. 그러하면 남들도 이해가 된다. 우리는 언제나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할 수가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러할 수 있겠나. 컨디션은 등락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 우리는 슬럼프와 번아웃을 겪는다. 직장인의 슬럼프는 3년, 3개월, 3주, 3일 그리고 3시간. 심지어는 3분마다 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 상황이니까. 그만큼 직장 생활은 다이나믹하고 안쓰럽다. 이 상황에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타인도 마찬가지다. 일 잘하던 사람이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개인사로 힘들어 일을 제때 쳐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용서받거나 정당화될 일은 아니다. 직장은 모두가 계약 존재이고, 사람이라기보다는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므로 우리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TV가 켜지듯이 출근하면 우리는 '업무 전원'을 켜 각자의 몫을 (무조건) 해내야 하는 게 맞다. 여기서 떠올려야 하는 단어는 바로 '관용'이다. '관용'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그저 눈감아 주는 게 아니다. 그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인데, 중요한 지점은 바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내 성장의 기초가 된다. 받아들이면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저 욕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초석이 되고 그러함으로 남을 이해하는 것. 그것에서 오는 성장의 폭은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자이언트 스텝이다. 저런 사람이 있는데도 회사가 굴러가는 이유 '그들'을 보며 회사가 굴러가는 게 신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이란 점에서,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게 이미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회사는 굴러가는 것일까? 정답은 바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컴퓨터로 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될 수 있다. '하드웨어'는 건물, 사무실, 책상 그리고 컴퓨터 및 현물 자산 등을 말하고, '소프트웨어'는 사람, 조직, KPI, 브랜드, 시스템, 역량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회사는 이미 잘 짜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붕괴되거나, 몇몇 사람으로 뭉그러지지 않는다. 우리 몸 또한 잘 짜인 시스템이다. 몸 어느 곳이 다쳐도 이내 우리는 회복하고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나 몸 어느 한 곳의 아픔을 방치하면 심각한 장애가 올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까지 위태롭게 된다. 조직도 이와 마찬가지. 당장 시스템이 붕괴되진 않겠지만, 너도 나도 '그들'이 된다면 조직은 병들고 조직의 합인 회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더, '관용'이란 말을 떠올리면 좋겠다. 남을 그저 봐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일 수도 있음을 깨달으며 그들의 상황을 헤아리고 '나는 저러하지 말아야지' 또는 '혹시라도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메타인지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불어, 그러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고 내가 있는 곳을 하향 평준화해서 보기보단 그저 내 할 일을 자신 있고 감사하게 해내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 그러하므로 '그들' 중 한 명은 줄어들게 될 것이고, 나와 회사는 동반 성장하게 될 것이니.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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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
- 통근(通勤) - '통근'은 하루를 시작하는 길이다. 사람들의 모습은 비장하면서도 비루하다. 가족을, 또는 자신을 건사하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은 그렇게 비장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꾸역꾸역 회사로 향하는 모습은 비루하기 그지없다. 나의 길도 그렇다. 하루는 비장하고, 또 하루는 비루하다.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은 그렇게 반복된다. 정해진 시간, 통근버스에 오른다. 거리로 10km. 약 40분이 걸리는 출근길은 잠자기엔 짧고 깨어 있기엔 뭔가 아쉽다. 하루는 마음을 차분히 해주는 음악을 듣거나, 또 하루는 어학코스를 듣는다. 때론, 아무것도 듣지 않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할 때도 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나와 전쟁터인 직장 사이엔, 그렇게 '통근'이 있는 것이다. 잠시의 여유를 주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회사 앞으로 향하는 통근버스가 야속하기도 하다. 통근버스는 홍대를 가로질러간다. 지난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아침 7시 30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로 지난밤의 불야성을 마무리짓는 사람들. '젊음'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이런 모습이 '젊음'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분명한 건 그것은 젊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을 위한 걱정보단 부러움이 좀 더 큰 마음을 뒤로하고 통근버스는 나아간다. 서강대교를 지나면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한강 때문이다. 탁 트인 한강은 무거운 마음을 부력으로 떠오르게 한다. 날씨가 좋을 땐 물 표면에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이 나를 응원한다. 비가 올 땐 자욱한 물안개가, 직장인은 마음을 차분히 할 필요가 있다고 일러준다. 통근 길에 한강이 있다는 건 작지만 큰, 사소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서강대교 끝에서 통근버스가 좌회전을 하면 나는 다짐한다. 또다시 시작될 하루. 직장인으로서 반복될 뻔한 하루지만, 그 안에서 '새로움'과 '배움' 그리고 '의미'를 찾아보자는 발버둥을 친다. 내가 시시포스라면, 떨어진 큰 돌을 밀어 올릴 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겠다는 의지이자 발악. '반복'되는 일상에 숨 막히는 직장인의 삶이지만, 반대로 그것은 내가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통근'의 '근'자가 '부지런할 근'이란걸 알게 됐다. 직장인인 우리는 스스로를 의지가 약한 작은 존재로 치부하기 일쑤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통근'하는 그 자체로 우리는 부지런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통근'하는 모든 존재는 부지런하다. 나도, 당신도.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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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출산휴가
입사 후 야근수당, 연차수당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급하고있지않은 회사들이 워낙 많기에 넘어갔습니다...근데 최소한 배우자 출산휴가같은 경우에는 해줘야하는거아닌가요...?
정냄쏙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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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은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직장인이 책 8권 낸 이야기...)
이루 말할 수 없는 평범함이 지속되는 나날이었다. 나는 이 평범함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가. 어렸을 때 그저 그렇게 생각했던 '보통'과 '평범'이라는 단어가, 이리도 쟁취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니. 뭔가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았는데 보통 이상의 것을 얻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그나마 어느 정도 평범함의 범주에 들었다는 안도 속에서 보내던 하루하루.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결국, 이 묵직한 질문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 질문이 증폭된 건 바쁜 하루의 일상을 끝내고 온 어느 날 저녁이었다. 퇴근한 존재는 비루하다. 몸은 녹초가 되어 있고, 녹초보다 더 허름한 정신과 마음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는데 정확히 그게 뭔지 몰라 그 공허함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련의 연속은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마음을 뭉개며 어제와 다르지 아니한 하루를 양산해낸다. 그렇게 무기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휴대폰을 보는 것이었다. 지쳐 쓰러진 그 자세 그대로.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올린 SNS 피드를 보거나.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항상 소고기를 먹고, 항상 해외여행을 하고, 항상 웃는 사람들. 나에겐 특별한 날이 그들에겐 평범한 일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또 다른 질문이 엄습했다. '나는 왜 이렇게 소비적으로 사는 걸까?' 나를 위한 시간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걸 보며 쉽사리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를 알아차린 것이다. 누워서 그것들을 소비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훅하고 지나가고, 그러면 여지없이 하지 못한 일로 후회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누워서 보던 휴대폰이 얼굴로 떨어져 화들짝 했던 적도 여러 번. 문득,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와 오기가 올라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생산할 수 있을까? 직장인이라는 본업이 있는 나. 공장을 세워 말 그대로 물건을 생산해내기엔 자본이 없고, 유튜브를 하기엔 사생활 노출과 막대한 시간 투자가 부담되고(무엇보다 당장 시작할 콘텐츠도 없고). 이래저래 고민하던 찰나, '글쓰기'가 떠올랐다. 글쓰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던 내가 그것을 떠올린 건, '감당 가능한 도전'이라는 생각에서였음이 틀림없다. 당장 시작하기에 무언가 준비를 크게 요하는 것도 아니고, 본업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도전. 더불어, 개인적으론 직장인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을 때였고, 서점엔 한창 직장인을 희화화하는 콘텐츠들이 유행했던 때였다. 보람 따위는 됐으니 그건 개나 줘버리고 야근 수당이나 달라는,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위트 있는 이야기를 보며 함께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남는 건 없었고, 직장인으로서 초라한 나만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아, 내가 내 얼굴에 침 뱉고 있었구나. 내가 나를 보며 스스로를 비웃고 있었구나. 힘든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억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을 돌이켜 악착 같이 뒤져보면, 무언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나는 발견해내야만 했다. 그것이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이유이므로. 더불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칠 후배들을 위해 이것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생활의 초기에 정체성의 혼란이 클 것이므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오만가지 것들을 몸소 맞닥뜨려야 하므로.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나를 돌아보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그렇게 나의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어느새 나에게 '작가'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안겨 주었다. 그저 써 내려간 글들이, 어느새 책이 되어 누군가에게 읽히고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보니, '책쓰기'가 아닌 '글쓰기'를 한 것이 오히려 나에게 지속 가능한 기대치 못한 결과가 되었다.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소비적으로 사는 걸까?' '나는 무얼 생산할 수 있을까?' 게다가 글쓰기는 내가 맞이한 인생에서의 큰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주었다.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나는 오늘도 나만의 해답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범함을 넘어 특별한 내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글쓰기를 하며 내가 깨닫고 있는 건, 특별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평범함이 주는 소중함을 일깨우고 평범한 나를 다그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평범하지 않은 비범함이다.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관점, 보통의 것을 평범하지 않게 표현해내는 감성. 글쓰기는 소재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소재 자체를 생산해내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러는 와중에 내 관점과 생각도 바뀐다. 결국, 특별함은 평범함에서 피어난다는 걸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고로, 나는 책 몇 권 냈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말한다. 오히려, 삶이 바뀌었기에 글을 썼고 그것이 책이 되었다고 말한다. 스멀스멀, 나도 모르게 변화되는 글쓰기의 매력을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 또한 글쓰기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그 다짐이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게 만들고 있다.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생산자의 삶'. 글쓰기가 나에게 일러준 삶의 방향이다. 나는, 이 삶의 방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뵙길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지금의 당신도.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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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동료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스테르담 직장인 심리카페 의뢰 내용을 정리하여 연재합니다. Q. 직장동료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얼마 전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한 비밀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인관계가 좁아질까 봐 관계를 끊는 것도 두렵습니다. 직장동료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A. 질문자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믿었던 동료들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일을 겪고 나니 저는 어떤 노하우를 습득하게 되었는데요. 그건 바로, '마음은 반만 주자'란 생각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직장에서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모두 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함으로써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겁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됩니다. "아니, 나는 마음을 다 열어 주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뭐라고 말할까요? 아마 이렇게 말할 겁니다. "누가 마음을 모두 열랬어?" 직장에서의 인연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닙니다. 바로 밥그릇과 밥그릇의 만남입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월급이나 승진을 서로 양보할 사람이 있을까요? 친하다고 해서 내가 저 사람 대신 퇴사를 해줄 수 있나요? 좋을 때는 좋지만, 자신에게 위기가 오면 나만 챙길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친했던 직장 동료가 나의 '먹고사니즘'에 방해가 된다면 어떨까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란 생각이 들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아예 주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반'만 주자는 겁니다.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는 걸 보고 어떤 이는 물이 반 밖에 없다 하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차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만큼의 마음을 보고 어떤 이는 차갑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 정도면 회사에서 적당한 마음이라 생각할 겁니다. 저는 후자 쪽입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면 상처도 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업무적이든, 사적이든. 반만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이 진행되고, 그래야 일이나 사람 관계가 잘못되었을 때에도 나는 금세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가 이에 대한 격언을 하나 말씀드리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과 함께 직장생활에서 '믿음'에 대한 곤경에 처했을 때 꼭 떠올리시며 힘을 내시면 좋겠습니다. "설명하지 마라. 친구라면 설명할 필요가 없고, 적이라면 어차피 당신을 믿지 않을 테니까." - 엘버트 허버드 -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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