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퇴사하고 2
은행지점에서 근무는 정말 맨땅에 헤딩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출납계에 근무할 때인데, 건장한 남자 두명이 예금을 받는가 물어 왔습니다. 지점근무한지 몇일되지 않아서, 아니 은행지점에서 예금을 받지 않받습니까하고 대답했습니다.
잠시후 그들은 큰 마대자루 2개를 낑낑거리고 가져왔고, 그 안에는 지폐로 가득했습니다. 고참이 옆에서 보고 사색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받으면 않된다고.
은행의 금고에는 사실 돈이 많이 있지 않습니다. 돈보다 중요 서류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금고에는 매일 필요한 소량의 현금만 있어야 하지, 몇십억이 있으면 도난 위험이 급속도록 증가합니다. 따라서, 시제를 딴 지점에 팔거나, 아니면 한국은행으로 보내 버려야 합니다.
제가 계수기로 일일이 지폐를 세고 있을 때에, 고참은 여러지점에 전화를 걸다가 않되어서, 결국에는 한국은행으로 보내게 어레인지 했습니다. 그때에 교훈은 참 함부로 예금을 받으면 않된다 였습니다. 1998년 동역삼동 지점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 있네요.
지점 생활 10개월 동안에 출납계, 개인대부계, 신용카드계, 감사계를 거치어 마지막에는 수출계에 근무하였습니다. 국제금융부로 다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고, 지점 근무는 너무너무 따분하고, 경직된 수직적인 조직문화도 너무 싫어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일단, 퇴사를 결정하니까 무엇을 할지가 막막했습니다. 특히, 그 때에는 있는 직장도 없어진 IMF 사태가 위력을 발휘하던 1998년이었습니다. 우연하게, 미국유학생 와이프가 AICPA 시험에 합격해서 한국에서 전문직 직장을 잡고 잘 다닌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그래 나도 미국유학생인데 이것 하나 못 따겠나, 이것을 따서 평소에 가고 싶던 비즈니스 컨설팅 업계로 커리어를 바꾸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기다가, 직장 생활하다가 항상 느낀점이 나에게는 회계에 대한 이해부족이 업무를 하는데 걸림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예로 수출계에서 근무했을 때에 전표 이름이 신발대충 이었습니다. 은행과 신발이 무슨 관련성이 있을까 했지만, 그것이 신용장 발행 대손충당금을 의미한다는 것은 회계를 공부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1998년 11월에 은행을 관두고 강남역에 있는 AICPA 학원에 등록을 하여서 6개월 동안의 학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 만 30세였고, 학원 생활과 구직에 대하여서는 다음편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