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가 쪼개본 ‘일 잘한다’는 것의 세 단계
평가 시즌만 되면 이런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은 잘하는데…”
듣기에는 나쁘지 않은 말인데, 정작 본인은
“그래서 난 잘하는 편인 건가, 아닌 건가”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누가 물으면 그냥 “시킨 일 하는 정도죠”라고 넘기게 되고요.
올해 리멤버에서는
“일은 잘하는데, 이 회사 안에서는 더 못 크겠다”는 구간을
여러 각도에서 같이 이야기해봤습니다.
이제 그 시리즈는 한 번 숨을 고르고,
오늘부터는 “일을 잘 한다는 것 자체”를 2~3편 정도로 나눠서 풀어보려 합니다.
COO 자리에서 팀과 사람들을 오래 보다 보니,
저는 보통 ‘일 잘함’을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게 되더라고요.
1단계.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가져가는 사람
1단계의 핵심은 “안 까먹고, 안 흘리는 것”입니다.
기한을 지키고, 중간에 막히면 먼저 공유하고,
마감 직전에 따로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결과물을 보면 디테일이 조금 아쉬울 수는 있어도
“전반적으로 정리가 잘 돼 있네”라는 말이 나오는 유형입니다.
요청받은 범위 안에서, 큰 사고 없이 일을 끝까지 들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조직에서는 여기까지만 올라와도
충분히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팀장 입장에서도 “저 친구에게 맡겨두면 최소한 사고는 안 나겠다”라는
기본 신뢰가 생기는 구간이죠.
2단계. 팀 전체의 속도와 퀄리티를 챙기는 사람
2단계부터는 시야가 달라집니다.
내 업무만 잘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속도와 퀄리티까지 같이 보는 사람입니다.
“이 이슈는 우리 팀보다 저쪽 팀이 먼저 막히겠다.”
“이걸 이번 분기 안에 안 맞추면, 다음 프로젝트에서 뒤탈 나겠다.”
이런 것들을 미리 보고 먼저 움직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정,정보,의사결정이 이 사람을 한 번 거쳐 가게 됩니다.
흥미로운 건, 이 단계 사람들은 평소에는 잘 티가 안 난다는 점입니다.
회사 바쁠 때는 그냥 “일 잘하는 선배/동료” 정도로 느껴지는데,
한 번 빠지고 나면 갑자기 회의가 산으로 가고, 커뮤니케이션이 꼬이고,
예전에 없던 이슈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 그동안 저 사람이 팀 전체를 받쳐주고 있었구나.”
이걸 뒤늦게 깨닫게 만드는 타입이 2단계 사람들입니다.
3단계. 판 자체를 바꾸는 사람
3단계부터는 아예 질문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이 일을 더 빨리 끝내려면?”이 아니라
“우리가 이 일을 애초에 이렇게 하는 게 맞나?”를 묻는 사람입니다.
프로세스를 통째로 바꾸거나,
목표를 다시 정의하거나,
고객에게 가는 가치 자체를 새로 설계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의 관심사는
“내 퍼포먼스”를 넘어서
“이 판이 앞으로 1~2년 안에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숫자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 협업 구조, 기준 자체가 달라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세 단계가 연차나 직급과는 생각보다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입니다.
8년 차여도 1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 있고,
3~4년 차인데도 이미 2단계, 3단계 감각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연말마다 저도 제 일을 돌아보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1단계에서 얼마나 탄탄한가.
나는 2단계, 팀이 굴러가게 만드는 일에 얼마나 에너지를 쓰고 있나.
올해 내 행동 중에 3단계, 판을 조금이라도 바꿔본 순간이 있었나.
어느 단계에 있든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를 조금 더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과,
그냥 “열심히 일한다” 정도로만 스스로를 설명하는 사람은
몇 년 뒤에 꽤 다른 자리에서 만나게 되더라고요.
올해가 거의 끝나가는 이 시점에,
한 번쯤은 각자만의 기준으로
“내 일 잘함은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나”를
조용히 짚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