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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000 넘게 받는 게 참 힘드네요
안녕하세요. 출판계에서 8년을 보내고 편집장까지 찍은 33세 남성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닌 출판사에서 연봉 3000 정도 받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직종을 교육이나 콘텐츠 기획 방면으로 전환하려 하는데요. 이 업계도 앞으로 지금 받는 연봉보다 더 높게 받을 수 있으련지 모르겠네요. 출판계는 워낙 이제 사양산업이고 적게 주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보니 그러려니 하지만 교육 콘텐츠 업계도 3000 이상으로 주는 게 힘들면 진짜 힘들 것 같아요 ㅠㅠ 제가 이쪽 업계는 잘 몰라서 선배님들 조언이나 정보 듣고 싶습니다.
다시책쟁이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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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코써치 후기
헤드헌팅사 '유니코서치' 부장 직급을 사용하면서, 팀장님 탓을 하던데. 정작 면접보기로 한 기업과 이야기 잘 되었고, 중간에서 서류 전달 안함. 처음 통화 시 무례하고 에의없는 말투. 이후 왜 서류 전달 안했냐 물으니 말투, 억양 바뀌며 태도전환
Ugh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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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대기업 이직 진짜 힘드네요
어려서부터 사정이 있어서 대학 졸업 후 중소라도 바로 취업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준비해서 중소에서 중견으로 옮기고 그리고 더 큰 중견으로 옮기고 이제 마지막 대기업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어렵네요 대학도 나름 서울권이고 어려운 자격증이랑 영어 IH 점수도 따고 했는데 나이가 내년이면 40이라 그런지 잘 안되네요 에휴... 최근에 면접도 2번 봤는데 다 1차에서 떨어져버리니까... 나이가 문제인가 아니면 이직을 2번해서인가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하면서... 더 무엇을 준비해야되나 생각하고 나이는 더 먹어가고 걱정입니다
기프트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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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죽을 용기는 잘 안나는데, 어떤 순간에 죽을 용기가 나는걸까요??
안녕하세요. 직장 내 괴롭힘 아닌 괴롭힘으로 고생하고(회사에서는 인사이동 시켜주었습니다.) 하루하루 버텨내가면서 이겨내려고 노력중인 직장인입니다. (ex. 이전 문서 보고 하라고 했는데, → 문서는 다 잠겨있음. → 일을 알려주지 않았음.(빌고 빌어야 하나씩 알려줌) → 가끔 기분 나쁠때는 물어보면 이런것도 못하냐고 하면서 전직장에서 어떻게 5년이상이나 다녔냐고 함. → 경력이 있는데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고 함. → (필자는 경력인정 못받고 회사규모가 커서 배울점이 더 많을거라 생각하고 이직한 상태였음) → 영어가 필수적이었던 곳이었는데, 영어를 잘 못했고 그래서 매일 점심시간이나 틈날때마다 영어공부했지만 기존 인력들에 비하면 당연히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었음 → 그렇게 6개월 이상 무시를 참아오면서 정신병이 찾아옴 → 공황, 대인기피, 극도의 긴장과 불안으로 사람이 어려워짐) (당시에 증빙까지 남겨가면서 신고하진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이 인생에서 처음이었고, 너무 힘들었고, 당시에 제 편이 아무도 없었기에 맞서 싸울 용기도 없었습니다. 근데 그 잔여가 아직 남아있는중이라 그런지 매우 힘든 상태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경험이었고, 전환기였음, 그 잔여가 아직 남아있는 상태라 너무 힘든상태임. 가끔 가만히 있어도 눈물나고 사람이 무섭고 겁나기 시작, 긴장하고 있는 상태임(항상) 여튼 과거 그 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신과전문의 진료를 1년정도 약물복용중이고, 의사선생님 진료를 받을때마다 약물의 정도를 계속 올리고 있으니까 너무 힘들음 예전에도 가끔 자살의 생각은 있었지만 그럴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음. 최근에 들어 자살할 정도의 생각은 어떤 용기가 있어야 하는지 궁금하기 시작함. 저는 결혼도 했고, 맞벌이 중인 아내도 있고, 집에 아빠아빠 안아안아 하는 귀여운 공주님도 있습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항시 부족하지만 집에서는 그래도 세탁, 빨래, 청소, 설거지 등 기본적인건 도맡아서 하려고합니다. 주양육자인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서요(육아 등) 그래서 가끔 이 감정의 선에서 계속 왔다갔다 하는 중입니다. 아내는 이런 절 믿고 어떻게 가정을 꾸려서 나가냐고 마음 단단히 먹어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네 모습을 보면 나도 너무 힘들고 그렇다고 합니다. 가끔 싸우면 제가 이렇게까지 쓸모가 없었나 가치가 없었나 생각이 들면서 사라지면 편하려나 어떻게 되려나 싶기도 합니다. 근데 저 혼자가 아니니까...그래도 여튼 오늘도 그저그런 하루가 될 것 같긴하지만 최대한 힘내보려고요.. 요즘 흥미로운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체중도 조금 늘긴해서 매일매일 점심마다 런닝을 빡세게 하다가 근래에 헬스장에서 물에 차있는듯한 긴장감과 쓰러질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이후로 다시 운동도 쉬고 있습니다. 이럴때마다 제 자신이 너무 무가치하고 무기력하고 힘들고 좋지 않은 생각에 계속 사로 잡힙니다. 일도 잘 안잡히고요. 이럴때 어떻게 이겨내는지 나만의 극복의 방법이 있다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멘탈이 약하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냐 등 비아냥은 좀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자신이 많이 나약해진 상태라 힘내보려고 쓰는 글이지 비난받으려 쓰는글은 아니니까요 긴 잡도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죽고싶기도해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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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5년 차, 할 사람이 없어서 이것저것 다 했는데요
안녕하세요, 중소기업 다니고 있는 5년 차 직장인입니다. 저희 회사는 대기업처럼 직무가 깔끔하게 나눠져 있지 않습니다. "할 사람이 없으면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전형적인 중소기업 현장입니다. 어쩌다 보니 기획팀에 들어와서 사업 공고 분석부터 개발, 현장 작업, 서버 관리까지 온갖 일을 손으로 부딪히며 해오게 되었네요. 처음엔 피하지 않고 일단 파고들어 만드는 재미로 해왔는데, 어쩌다 보니 주도하는 사업 금액만 5억 원을 넘어가더라고요. 혼자서 기획부터 개발, 서버 관리, 책임까지 다 안고 가려니 솔직히 요즘 들어 부담감과 무게감이 꽤 크게 듭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혼자 구르며 했던 일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사업계획서 분석 및 개발 내용 직접 작성 -정부 지원 사업이나 R&D 공고 나오면 기술 항목 분석 및 타당성 검토 -사업계획서에 들어가는 개발 세부 내용, 시스템 아키텍처, 기술 명세서 통째로 직접 작성 (어쩌다 보니 총 6억 넘는 과제들 기획부터 실증까지 챙기는 중) 2. 공장 현장에서 구르기 (OT/IoT) -기름때 묻는 공장 현장 가서 센서 달고 MQTT 설정해서 DB(PostgreSQL, InfluxDB)로 전력 데이터 끌어오기 -CNC 장비 붙잡고 OPC UA 통신으로 가공 데이터 수집 파이프라인 만들기 3. 시스템 기획부터 풀스택 개발까지 -FEMS, MES, 3D 디지털 트윈 화면 뼈대 잡고 DB 아키텍처 설계하기 -React, Python(FastAPI), Java(Spring Boot)로 프론트/백엔드 풀스택 구축 -AI(LSTM) 스터디해서 전력 수요 예측 모델 시스템에 붙이기 4. 서버 및 인프라 유지보수 -Linux 서버 터지면 Docker, Nginx 붙잡고 배포하고 인프라 관리하기 5. 규제 대응 및 학술 성과 -탄소배출 계수나 CBAM 같은 규제 문서 구글링해서 웹 시스템 계산 로직으로 녹여내기 -ISO 인증 준비 및 유지보수, 현장 실증 데이터 기반 학술 논문 작성까지 진행 중 남들은 한 우물만 깊게 파서 전문가가 된다는데, 저는 기획서 작성부터 필드 엔지니어링, 풀스택 개발, 서버 관리까지 영혼까지 끌어모아 총괄로 일하고 있네요. 문득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그리고 이런 '중소기업형 야생 멀티플레이어(Tech PM / 전산기획)'는 이직 시장에서 어느 정도 연봉이나 포지션으로 평가받는지 선배님들의 솔직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다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늦린이회사생활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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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후손 재벌
한국은 아직도 일본 속국 정도 일본 식민지 할 거면 그냥 미국의 한 주로 편입이 더 좋은 것 아닌가, 그러면 전국민 미국 국민되고, 원정출산 안 가도 되고, 국어가 영어가 되서 언어 해결,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가서 취직을 하던가 사업을 할 수 있고, 맥도날드에서 뜨거운 커피에 피부 화상 입으면 소송으로 큰 금액 배상 받고. 더 이상 쿠데타 걱정 안 해도 되고, 북한으로부터 침공 걱정 안 해도 되고 글 제목을 구굴 (자동 완성) 검색어를 넣으니 다음과 같은 답변 (구글에 따져라) 이러니 동해를 일본해라 국제사회에서 하지. 국제사회가 볼때는 아직도 일본 식민지라 할 수 있지. 프랑스 등은 철저하게 나치 박멸 그리고 세습 재벌에 충성하는 한국인들 = 북한 세습 충성 인민들 서구나 중국 일본이 한국을 절대로 선진국으로 인정 안 하는 이유 - 시골 땅 수용된 갑자기 부자된 정도로 취급 그리고 20년이상 최저출생 최고자살 연금고갈 예정인데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을 보고 문명국이 아니라 야만국으로 여김 (그들도 다 잘 한 건 아니나 독립 후 나치 처벌은 한국 보다 훨씬 세게 했으니 그런 주장 가능) 따지려면 구글에 해라, 구글엔 겁 나서 말도 못 하면서 ___ ‘친일파 후손 재벌’ (출처: 구글) 친일파 후손과 관련된 재벌 및 대기업은 일제강점기 당시 축적한 자본과 해방 이후의 혼맥(결혼)을 통해 현재까지 강력한 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친일파 후손 소유 기업 및 자산 삼양그룹: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김연수의 후손들이 대대로 경영권을 승계했습니다. 김연수의 후손 12명이 대표 및 임원을 지내며 상장 기업 중 친일파 후손이 가장 많이 포진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원INC (그랜드힐튼 서울): 조선 왕족 출신이자 일제 후작 작위를 받았던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회장이 경영권을 꿰찼습니다. 그랜드힐튼 서울호텔이 위치한 서울 홍은동 부지가 바로 이해승이 남긴 친일 재산 기반입니다.대기업 재벌가와의 혼맥(婚脈) 연결친일파 가문들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재벌가와 중첩된 결혼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확장했습니다. 삼성그룹과 동아일보 가문: 친일파 김성수의 손자(김재열)와 친일파 김신석의 외증손녀이자 삼성그룹의 차녀인 이서현이 결혼하며 대표적인 재벌가-친일파 후손 간의 혼맥을 형성했습니다. 35개 가문의 결속: 과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파 가계도를 분석한 결과, 무려 35개 친일 가문이 서로 복잡한 혼맥으로 얽혀 권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친일 재산 환수의 현실적 한계정부는 친일재산귀속법을 통해 이들의 토지와 자산 환수를 추진해 왔으나 법적 허점과 소송으로 인해 환수율은 매우 미미합니다.후손들이 제3자에게 자산을 미리 매각하거나, 법원 경매를 통해 자기 조상의 땅을 합법적으로 되사는 방식으로 재산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완용의 증손자는 상속받은 서울 땅을 30억 원에 매각한 뒤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도 했습니다.대중 인식조사에서도 국민의 약 48%가 '재벌과 고위공무원 등 기득권층에 친일파 후손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친일 청산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습니다 ____ 오마이뉴스 혼인으로 힘 키운 친일 후손 "기득권층과 깊게 연결" <뉴스타파> 뿌리 깊은 친일, '친일파 후손 어디서 뭐하고 살까' 좇았다 유성애(findhope) 등록 2015.08.11 18:44수정 2015.08.11 18:44 일본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흘렀다. 당시 일본에 동조했던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뉴스타파>가 '해방 70주년' 기획보도로 그들을 추적했다. <뉴스타파>가 조사한 친일파 후손은 현재 1177명. 이들의 직업군을 살펴보면, 기업 대표와 임원이 전체의 약 30%(376명)를 차지했고, 이어 대학교수(191명)·의사(41명)·언론인(46명) 순으로 많았다. 친일 후손 중 346명은 아예 한국 국적을 포기하기도 했다. 친일 후손들 삶의 궤적을 좇는 <뉴스타파> 기획보도 2부 '뿌리 깊은 친일'편이 지난 10일 오후 방송됐다. 취재진이 8개월간 조사한 친일파 후손들이 과거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직종에 진출했는지 등이 담겨 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차리석(임시정부 국무위원) 장남 차영조씨 등 독립운동가 후손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해 가난에 시달리는 동안, 친일 후손들은 선조의 부를 바탕으로 권세를 누렸다. 조사 결과 전체의 1/3에 해당하는 381명이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불리는 명문대 출신이었다. 서울대 출신 친일 후손은 전체 중 22.8%(268명)에 달했다. 친일 후손 중에는 유학파도 많았다. 친일 후손들은 미국(204명), 일본(52명), 독일(14명) 등 주로 세계 패권 국가들로 유학을 갔다. "일본은 어진 나라라 천하무적"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 친일파 이명세, 그의 손녀인 이인호 현 KBS 이사장도 친일 후손의 한 사례로 등장했다. 이 이사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제 미국 유학 시절 때 우리 국민 개인당 소득이 50~60불이었는데, 제가 다닌 학교 1년 학비와 기숙사비가 2000불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내선일체'를 주장한 친일파 서상훈(중추원 참의 33년 연임)의 후손은 세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냈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발행인이던 친일파 방태영의 후손도 모두 미국 시민권자였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들 후손들에게 '선친의 유산이 성공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이들은 "전혀(아니다), 나는 학교 시험도 다 내가 보고 들어갔다"라는 등 대부분 자수성가를 주장했다. 친일 후손 중에는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도 346명에 달했다(직업·신원이 확인된 1177명 이외 사람도 포함). 국적포기자의 수는 친일파 명단이 발표되고 친일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했던 2000년대에 특히 많이 늘어났다. 또한, 이들은 국적을 포기하면서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게 됐다. 친일 후손에 '권리는 누리고, 의무는 외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재용 등 친일파 후손 중 기업인은 376명... 결혼으로 가세 확장 일본강점기 '중추원'은 식민지배기구이자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였다. 이곳은 당시 친일 인사들의 집합소로 알려졌다. 중추원 참의는 친일파들이 할 수 있는 최고 직책 중 하나였다. 이들은 현재 어떤 분야에 진출했을까. 친일파 후손 중 가장 비율이 높은 직업은 기업인이다. 1177명 중 기업인은 376명으로, 상장기업 대표 임원 주주가 36.1%에 달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친일파 김신석(중추원 참의)의 외증손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있다. 김신석은 친일단체였던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여자들을 정신대(일본군 위안부)에 안심하고 보내라"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장 기업 가운데 친일파 후손이 가장 많은 기업은 삼양 계열사다. 가족 기업인 삼양에서 친일파 김연수의 후손 열두 명이 대표나 임원을 지냈다. 김연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초대회장으로, 일제 당시 국방헌금 수십만 원을 내면서 "일억일심으로 황국 목적 달성에 매진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인 또한 구용서 초대 한국은행 총재 등 62명에 달했다. 친일 후손들은 결혼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기도 했다. 과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발표했던 친일파 1006명의 가계도를 <뉴스타파>가 분석한 결과, 무려 35개 가문이 혼맥(婚脈)으로 얽혀 있었다. 친일파 김성수의 손자인 김재열(동아일보 김병관 회장 차남)과 친일파 김신석의 외증손녀 이서현(삼성그룹 차녀)도 이 사례에 속한다. 친일 집안이 아니더라도 대기업 재벌가와 혼맥을 통해 권세를 굳힌 경우도 있다. 친일파 현준호는 아들 현영원을 당시 재계 실력자였던 김용주의 딸 김문희와 결혼시켰다. 김문희는 김무성 현 새누리당 대표의 누나다. 현영원-김문희의 딸 현정은은 현대가 5남인 고 정몽헌 회장과 결혼했다. 정치인과 공직자, 법조인, 언론인 등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을 움직이는 파워엘리트 그룹도 총 163명으로 전체 친일 후손 중 약 14%를 차지했다. 친일 후손은 정치인(31명), 법조인(30명), 공직자(55명) 등 다양했지만 이중 홍석현 전 미국 대사, 이인호 전 핀란드·러시아 대사 등 외교관이 9명으로 특히 많았다. '제4의 권력'으로 불리는 언론사에 근무하는 친일파 후손 또한 <조선일보> 9명, <중앙일보> 8명, <동아일보> 8명, KBS 6명 등이었다. 이른바 '조·중·동'과 KBS가 전체의 2/3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인 김신석의 외손자다. <조선일보> 방일영 전 회장·방상훈 사장은 친일파 방응모의 후손,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김재호 사장 또한 친일파 김성수의 후손이다. 이준식 전 친일재산조사위 상임위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대다수 친일파는 계속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살아남았고 그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자녀 교육이 가능했다, 그게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라면서 "혼맥을 통해 얽히고설킨 관계를 보면, 다소 과장해 말할 때 지금 현재 한국사회 이른바 기득권층 중 친일파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진단했다. <뉴스타파>의 송원근 PD와 박중석·심인보 기자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의도 아래 이번 4부작 '친일과 망각'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내레이션 박혜진). 자칫 '연좌제'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문제인 만큼, 지난 7월 전문가 회의를 거쳐 친일 후손 명단의 공개 범위를 정하기도 했다. 1·2부에 이어 3부는 오는 12일 방송된다. 여기서는 친일 후손들이 어디에 살고 있고, 그간 친일 재산은 얼마나 환수됐는지 다룰 예정이다.
@광복회
Matrix
금 따봉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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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 공무원 생존기 15화
적는 자가 살아 남는다
팅커베르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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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생 현장직 이직해야할까요??.
22년2월까지 포스코 기계정비로 6년 근무 22년2월부터 메이저석화사 5년근무중 석화 시황이 박살나서 미래가 안보임 5년동안 21년도 원징 포스코 연봉 아래수준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들어갈때 석화가 좋을거같아 2년경력까지 깍고왔는데 연봉이 이리 낮으니 근로의욕저하 되고 승진도 경력을깍고오니 밀리고..누적되서.. 참으로 답답합니다. 대신 철강보다야 일은편합니다. 이제 나이도 30대중반이라 다시 직장움기기도 쉽지않은데.. 이리 살아가야하나 싶어요.. 외벌이 4인가족인데.. 갑갑하네요.
메가점프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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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첵 연락받았는데
몇년간 같은 팀이었지만 그렇게 교류있는 사이도 아니었고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조금 좋지 않은 사이였는데요. 퇴사후에는 정말 단 한번도 서로 연락도 안한지라 이런식으로 이름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 항목 말씀하시면서 같이 일한 선임자로서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냐 물어봤는데... 그냥 제 딴에는 객관적인 사실 확인 가능한 것 위주로 답변했습니다. 보통 레퍼첵 지목은 지원자가 하지 않나요? 그 친구가 직접 저를 지목했을거라는게 믿기지가 않네요.
유일왕
쌍 따봉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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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간 이직 고민
직무전환하고 새 직장에서 일한지 두 달됐습니다. 첫 달까지는 업무도 어려움이 없었고 나름 열심히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중간 피드백 겸 팀장과 면담을 하는데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들었습니다. (야근을 많이 안해서 그런지 열정이 부족해보인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같이 일 못한다는 얘기까지 들은 상태라 미리 이직 준비를 해야한다는 시그널인건지.. 만약 해야한다면 지금 직장 내용도 이력서 포함해서 적어야하는건지 면접가서는 뭐라고 설명할지 막막하네요 선배님들 도움을 주세요!!
얼그레잉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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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 커리어 학회 경험 유무
이제 곧 취준을 앞둔 ib 지망생입니다 제가 궁금한점은 학회가 취업에 치명적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인생 선배님들 고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리겡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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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울라불라캡숑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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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 없이 맨땅에 헤딩
사수 없이 이곳 저곳 기웃대며 일하는 방법을 배운지 어언 5년차입니다. 누군가는 이미 시니어의 직급을 달고 있는 연차긴 하지만 저는 아직도 배울 게 많네요. 업계에 적응했다가도 가끔 낯선 용어나 몰랐던 개념들을 알게 될때도 있구요 ㅎㅎ 대신 독립성은 무지하게 길러졌습니다. 알아서 찾아보고 프로세스를 만들고 시행착오를 거쳐 나만의, 우리팀의 방식을 만드는 것. 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경험은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일했을까,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을까 궁금해지긴 합니다. 사수가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왕왕12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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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친일파 하는것들
지금시국에 뭐가중요한지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못하는 것들. 과거엔 일본이 적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이 가장 위협적인 적이다. 친일친일 할때가아니라 친중을 경계해야하는거다. 모자란 중생들아. 친일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중공을 경계하자는거다. 나라가 야금야금 먹히는게 니들눈엔 안보이니?
아이보리왕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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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 이직
안녕하세요! 저는 29이고, 현재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 중인데 사실 이것도 전공은 아니긴 해요. 3년 정도 일 했고, 어렸을때부터 방송&연예 쪽에 관심이 많이 있었는데 더 늦으면 도전 시도조차 못해볼 것 같아서 도전해보려고 알아보는 중입니다. 제가 이직 원하는 직무는 공연기획&운영인데 요즘 보니까 부트캠프, 콘서트 알바 이런거 많던데 도움이 될까요? 부트캠프는 사실 돈도 많이 들고 고민이 많이 되네요ㅠ 주변에 관련 산업 계열 사람도 없고, 정보가 한정적이라 어떤거부터 시작해야할지 ㅠㅠ 아시는 정보들 있으면 도와주세요ㅠ!!
카스라이트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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