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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연봉 2700만원→ 5000만원으로 올린 수기(?)
누군가에게는 대단하지 않거나 최선이 아니었던 선택이었겠지만 최소한 제 사정 안에서는 2년간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지난했던 중소기업 신입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회고하며 작성해봅니다. 인서울 중위권 졸업 후 오랜 수험생활을 했습니다. 하다보니 아직도 못 해냈으면 제 길이 아니겠지, 진정으로 성공하고 싶었으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진작 붙었겠지 싶어 더 늦기 전에 신입으로라도 들어가기 위해 수험생활을 접고 29세에 취준을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계속 공부를 했으면 하셨기 때문에 수험 기간에는 무한히 제공되던 지원이 끊기면서 평일에는 취준을, 주말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알바를 했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사기업 취업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펙도 없고 성적도 좋지 않았습니다. 회사 규모를 가리지 않고 약 100개의 기업에 지원했지만 전부 탈락했고, 한 중소기업에서 인생 처음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편도로 2시간 거리에 있던 회사였습니다. 제시받은 초봉은 2700이었고 고졸은 2600인데 대졸이라서 100이나 더 주신다더라고요. 그 자리를 거절하고 취준을 좀 더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저도 살아보지 않아서 전혀 모르지만 당시 연속되는 서류 탈락에 불안감이 컸고 당장 경제적 자립도 할 수 없는데 성공할 가능성까지 사라진 저는 집에서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입사를 확정했고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빠른 결정이었지만 그땐 좋은 회사에 가는 게 아예 목적에 없었고 단지 내 힘으로 시급제가 아닌 연봉제로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조금도 성숙하지 않은 기업문화와 수준 낮은 사생활에 대한 동료들의 웃음기 가득한 수다로 이어지는 일상을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상식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저는 거기서 다소 유별난 사람이었습니다. 포괄인데도 야근이 기본이고 야근하지 않으면 눈치주는 톡식한 근무 환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선택은 퇴사가 아니라, 일하던 카페에 아직 주말 알바를 못 구하셨으면 다시 일하고 싶다고 연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정말 바쁜 프랜차이즈였지만 새로 구하는 것보다 당장 아는 데서 빨리 일하고 싶었어요. 퇴사를 하고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 두렵고 그렇다고 이대로 살자니 지금의 처지가 비참하고 만족스럽지 않아서, 투잡을 해서 남들이랑 수익 총액만 얼추 비슷하면 스스로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루도 못 쉬고 평일은 6시에 일어나서, 야근하고 10시, 11시 넘어서 집에 오고 주말에는 하루에 10시간씩 일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30살이 다 되도록 부모님께서 공부를 지원해주실 정도면 못 사는 집은 아니긴 합니다. 그런 제가 갑자기 그렇게 사는 걸 보고 주변에서는 분명 저희 집안이 망한 줄 알았답니다. 아니면 도박 빚이라도 졌든지... 아무튼 모두가 저를 수상하게 여겼습니다. 애초에 그런 회사를 다니는 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과거도 미래도 싫어서 제 자신을 갈지 않으면 불안을 해결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기혐오가 극에 달했던 것도 같습니다. 혐오할 시간에 몸을 썼고요. 몸이 힘들고 잠 자기도 바쁘면 감히 딴 생각을 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얼마 되지 않아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고 의사로부터 서서 하는 일을 금지당하게 되었습니다. 원잡으로 돌아온 저는, 이 회사에서 에이스가 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습니다. 다만 에이스가 되어서, 남들이 이 연차에는 절대 쌓지 못할 커리어를 만들고 나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에 인정을 받고 더 많은 권한을 따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이 중소기업의 임원들은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성과를 내는 사람‘을 인정하는지 이 기업은 무엇을 성공이라 부르고 무엇을 실패라 부르는지 이 제안은 왜 반려당했고 왜 통과됐는지 미친듯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내 메신저, 사내 Nas폴더, 임원진 개개인의 SNS 등등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몇 년간의 데이터를 모두 수집하고 해석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권한과 역할을 넓히고 인정을 받으면서 약 1년 후 연봉이 30% 오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싫은 소리도 엄청 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인간관계는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몇 명의 원석 같은 소중한 좋은 동료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흐르며 회사는 거의 망해가고 투자 불발, 매출 하락, 연속되는 소송 등의 크고 작은 위기를 거치며 권고사직 및 연봉동결 등 월급이 안 밀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 배울 수 없고 역할을 넓힐 수 없게 되자 퇴사를 마음 먹었으나 큰 목표를 잃어버려 어디로 가야할지 제가 뭘 원하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좋은 기회를 제안 받아 유니콘 대기업들의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5년차~7년차를 채용하는 포지션들이었습니다. 서류를 넣으면 제 이력을 독특하게 생각해주셔서 한번쯤 면접까지는 불러주시고, 1차도 곧잘 합격하지만 최종 합격은 못 했습니다. 업계도 다르고 경력도 너무 적어서 완전 신입에 가깝지만 쌩주니어 포지션을 맡기기엔 너무 결이 달라 서로 만족하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당장 시니어로 쓰기엔 현실적으로 우려된다는 피드백도 들었어요. 다만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감동과 조언을 받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을 많이 겪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력서나 포트폴리오에 적힌 것, 아주 짧은 인터뷰만으로도 제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다 아시더라고요. 제 눈에는 너무나 대단하고 똑똑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누구보다 제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셔서 울컥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부모님도 친구도 애인도 전부 이해하지 못했던 제 이상한 선택들과 아무 의미 없어보이는 노력들을 온전히 이해받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비록 떨어졌지만 많은 응원을 받았고 벅차오르는 경험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도 그 과정 속 제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깊게 깨달았고 아직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더 성향에 맞겠거니 싶어서 눈을 조금 돌려봤고, 30%나 오른 제 직전연봉조차도 그 회사 신입보다도 낮은 편이라 당연히 후려치실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5천을 제시해주셔서 새로운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숨을 조금 고르고 지난 2년을 되돌아보니 대체 그때는 그걸 어떻게 했을까 나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여전히 스스로도 온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냥 생존하겠다는 일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머리도 조금 컸고 전만큼 불안하지도 않아서 그 초심을 되찾기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암흑기를 버티며 좌절과 혐오에 빠지기보단 나아가기를 선택한 제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엄청 깊어졌기 때문에, 어떤 과거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가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는데 그걸 추상적인 단어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혀서 경험했다는 것이 저를 더 성장하게 만듭니다. 그때는, 알바를 가면 머리를 많이 안 써도 돼서 좋았고 회사에 가면 땀 흘리지 않고 앉아서 시원하게 일해서 좋았어요. 그게 제 회복탄력성이었네요... 저처럼 암흑기의 신입, 중소기업에 낮은 연봉으로 일하시는 사회초년생 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커뮤니티에는 300충 200충 해대며 혐오와 자랑이 만연하고 잘 살고 잘 버는 사람도 너무 많아서 저도 슬픕니다. 그들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겠지만 신경 쓰지 마시고 본인의 오늘을 살아가세요. 그들이 조롱하는 그 200만원을 벌려고 몸이 부서지게 죽어라 일했던 저는 그런 게 하나도 웃기지 않거든요... 힘내세요 여러분...! 저도 앞으로 더 힘내서 더 큰 사람이 되어 볼게요
wuwawa
쌍 따봉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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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공포증 조언 부탁드립니다
제목대로 발표 공포등이 심합니다 최근 팀장이 되서 팀원일때는 안하던 발표할일이 계속 생기는데요 사실 이것때문에 팀장 제안도 계속 거절해 왔었네요 발표만 하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손떨고 목소리 떨리고 머리속까지 어느순간 텅 비어 버립니다 내가 무슨 소리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분위기상 대본을 들고 발표가 불가능 해서 열심히 연습해 가는데도 그러네요 청심환 먹어도 별 효과가 없더라고요 혹시 비슷한 경험 극복해 보신 선배님 계신가요?
이클립쓰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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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커서
결혼 못하겠습니다. 안정적인 직장도 아니고 안정적인 직무도 아닌 것같습니다. 어릴때 라면에 소면넣어 먹던게 머리에 스쳐지나갑니다. 아이언의 하남주공아파트를 들으며 저집애랑 놀지마라 라는 노랫말이 쉽지않다는 걸 되뇌이게 하네요.
현실은실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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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일만하고 자격증은 없는 저도 이직이 가능할까요?
안녕하세요 24살 보험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입니다. 19살말에 취업하여 5년정도 근무했네요ㅎㅎ 이직은 한번도 못해본 상황이고, 인센티브제라 기본급은 고정 인센포함 300정도 받는것같습니다 많이받으면 400~ 좀넘게 버는듯합니다. 지금 재직자 전형으로 서성한중경외시 중 한곳도 같이 재학중에 있습니다. 대학교까지 알려드리면 특정될것같아 말을 못하겠어서요ㅜ 자격증은 남들과 달리 3개정도밖에 없습니다. 컴활 병원코디네이터 전산회계운용사3급... 다 다른분야로 있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이직을 하고싶습니다ㅋㅋ..고객응대하는게 조금 지치기도하고요... 여러방면으로 생각해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것같아 생각이 많아집니다. 원래 벌던 돈정도는 받고싶고 학교때매 지금 회사에서 거리상 5시30분퇴근을 허락받고 다니고 있는데 이런부분도 새직장을 구하기 어려운듯한것같습니다.. 자격증을 더 따서 이직을 하는게 나을까요..? 지금으로도 충분히 이직할수있나 선배님들께 의견구합니다ㅜ 감사합니다.
빵야뿡야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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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안녕하세요 26살 직장인 입니다. 올해 오고싶었던 분야로 이직하게 되어 첫 연봉 2700->5000 까지 오르며 꾸준한 성장을 하였습니다. 저의 고민은 어떤 회사를 가도 저에게 ‘00씨는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빨리 이직 준비하세요“라는 말을 듣습니다. 사실 이번 회사도 1년 안되는 시간동안 빡세게 취준해서 힘들게 합격한 회사이고, 연봉도 만족하는데 주변에서 계속 더 좋은 기업을 갈 수 있다. 빨리 떠나라 이런 말을 합니다 무슨의미일까요…. 전 회사도 이번회사에서도 이런말을 계속 들으니까 궁금합니다
말하는호박고구마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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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납품 후에 「운영 기록」 요청 받아 보신 분 계신가요?
AI 서비스를 기업이나 기관에 납품 ·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AI 기본법이 시행된 뒤로 「이용자에게 AI 라고 고지했는지」 「생성물에 표시했는지」 「사람이 검토했는지」를 자료로 보여 달라는 요청이 생긴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실제로 발주처나 고객사에서 이런 요청을 받아 보신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받으셨다면 화면 캡처나 엑셀로 모아서 내셨는지, 따로 기록을 남기는 방식이 있으신지도요. 아직 그런 요청이 없다면 그것도 알려 주시면 감이 잡힐 것 같습니다.
엑스컨설팅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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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입양과 최저출생
일 이년도 아니고 50년 이상이면 고의로 방치하는 것 맞다. 그리고 아래 내용을 보면 알지만, 먹고 사는게 어려워 해외 입양을 보냈다기 보다는 1970년대부터는 미혼모들이 주 이유였던 것이다 - 책임없는 성적 행위와 피임을 안 한 결과이지 못 살아 보낸게 아니다 (다른 이야기이나 베트남에서도 악명 높지) 한국 정부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최저출생으로 생산인구 줄어 든다 하면서 여전히 해외로 입양 보내는 건 세계 3위? 이것도 최저출생이 이미 20년이상인데 그동안 뭐했나 “세상이 악한 사람들로 인해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 악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Attributed to Edmund Burke, including by John F Kennedy in a speech in 1961. Burke didn’t say it, and its earliest form was by John Stuart Mill, who said in 1867: “Bad men need nothing more to compass their ends, than that good men should look on and do nothing.” 1970년대엔 세계1위여도 그렇다 해도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심지어 2020년에도 세계3위 힌국은 여전히 콜롬비아, 우크라이나 수준의 후진국, 해외 입양 순위 (이러니 우크라이나가 한국을 만만히 봤구나) 그냥 시골 촌놈이 토지 수용되서 벼락 부자된 그런 수준이 한국 그런데 국뽕에 빠져서, 외국인들은 이런 한국인들 본성을 아니까 말이 좋아 K-팝이지, 공장에서 찍어내는 아이돌 그룹, 화장품 한국은 천민자본주의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냥 시골 졸부 국민성 국민 의식개혁이 우선이다 먹사니즘 중요하지 그런데 언제까지 박정희 새마을 운동 정신으로 사나, 이제는 정신적 가치 중시하는 문명선진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나? 먹사니즘 중요한데, 정신적 가치도 중요히 여기길 바란다 한국인들은 거의 모두 오디세이 키르케의 돼지들 - 오로지 물질만능주의 외모만능주의 정신적 가치’도‘ 중시하는 문명사회가 될 때도 되지 않았나 해외 입양 3위, 최고자살 1위, 최저출생 1위, 노인빈곤 1위, 소아 청소년 자살 1위 선진국은 커녕 최 후진국 같은데 ___ 한국은 국제사회복지서비스(ISS) 등의 통계 기준에 따라 세계 3위 수준의 해외 아동 송출국(국제입양 순위)으로 분류됩니다. 주요 내용 • 세계 순위: 2020년 국제사회복지서비스(ISS) 통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콜롬비아(1위), 우크라이나(2위)에 이어 세계 3위의 해외 입양아 송출국을 기록했습니다. 최근 연도별 집계에서도 상위권(약 3위~5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25년까지 대한민국의 연도별 해외 입양(국외 송출) 추이와 세계 순위 변화는 한국의 경제 성장 및 정부의 입양 정책 전환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 통계와 국제사회복지서비스(ISS)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시대별 주요 흐름과 구체적인 순위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970년대 ~ 1980년대: 해외 입양의 폭발적 급증과 정점 (세계 1위) 한국전쟁 직후에는 주로 전쟁고아나 혼혈 아동 중심이었으나,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혼모 아동의 비중이 늘어나며 해외 입양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이 시기 한국은 세계 최대 아동 송출국(세계 1위)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 1970년대: 연평균 약 4,800여 명이 해외로 입양되었습니다. 북한이 이를 두고 "아동을 판다"고 비난하자 박정희 정권에서 '해외입양 쿼터제(할당제)'를 일시 도입하기도 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 1980년대: 역사상 가장 많은 아동이 해외로 나간 시기로, 연평균 6,500명이 넘었습니다. * 최고 정점 (1985년): 총 8,837명이 해외로 입양되어 단일 연도 기준 사상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서구 언론들이 "아동 수출국"이라며 집중 비판하자 정부는 단계적 폐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2. 1990년대 ~ 2000년대: 정책적 감축과 순위 하락 (세계 3위 ~ 5위권) 경제 발전과 국제적 비판 여론에 따라 정부는 국내 입양 우선 정책을 펴고 해외 입양 규모를 서서히 줄였습니다. 이 시기 중국, 러시아 등이 주요 송출국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의 순위는 다소 내려갔습니다. * 1990년대: 연간 해외 입양 규모가 2,000명대로 감소했습니다. * 2007년: 제도적 규제(전년도 대비 10%씩 줄이는 쿼터제) 등의 영향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국내 입양 건수가 해외 입양 건수를 추월했습니다. 3. 2010년대 ~ 2025년: 규모 축소 속 순위 재상승 (세계 3위권) 입양특례법 개정(2012년 법원 허가제 도입)과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비준 준비 등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면서 총 입양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이 해외 입양을 전면 중단하거나 엄격히 제한하면서, 한국의 절대적인 송출 수는 줄었음에도 상대적인 세계 순위는 오히려 상위권(3위~5위)으로 다시 상승하는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 2011년: 해외 입양아 수가 1,000명 미만(916명)으로 처음 진입했습니다. * 2020년: ISS 통계 기준 232명을 송출하며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다시 세계 3위를 기록했습니다.
@청와대
Matrix
쌍 따봉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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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배워보고싶어요
대바늘 뜨개질을 처음부터 배워보고 싶은 초보자입니다. 목도리나 따뜻한 담요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요. 🧶 혹시 뜨개질을 가르쳐 주실 분이나 같이 카페에서 뜨개질하면서 취미를 공유하실 분 계실까요? 소규모로 편안하게 배우고 싶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채팅 부탁드려요! ~
llllsks
은 따봉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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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퇴사한 사람은 없다
퇴사 이유는 짧지만, 퇴사를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은 길다. 일이 많아도 함께 해결할 사람이 있으면 버틴다. 힘들어도 왜 하는 일인지 알면 납득한다. 그런데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책임지는 사람만 계속 책임지면 어느 순간 마음이 떠난다. 그때부터는 불평도 줄어든다. 괜찮아진 게 아니라, 기대를 접은 거다. “갑자기 퇴사하더라.” 남은 사람에게만 갑작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애드빌
금 따봉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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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제국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인가?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묻게 된다. 지금 우리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권력의 정점에 선 한 사람의 의중이 국가의 방향을 좌우하던 대한제국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는가? 물론 시대도 다르고 정치 체제도 다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이 흔들린다면, 우리는 그 불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분명히 선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대통령 역시 헌법과 법률의 통제를 받는 공직자일 뿐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의 정치 상황을 지켜보면 권력의 집중과 진영 논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불충으로 취급되고, 정치적 경쟁자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묘사된다면 민주주의 토대는 조금씩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이러한 우려가 반드시 반대 진영에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진영에 속하거나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사들 사이에서도 권력의 방향과 정치의 태도를 둘러싼 비판과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권력을 탄생시킨 세력조차 권력의 독주를 경계한다면, 정치권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야당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집권 세력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야당이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행보로 비판받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권력이 독주하는데 야당이 무기력하고, 여당이 내부의 비판마저 불편해 한다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 동시에 흔들리는 셈이다. 민생 현장의 불안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농지 전수 조사와 같은 정책은 그 취지가 무엇이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충분한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책의 정당성은 정부의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억울한 피해가 없는지 살피며, 잘못된 부분을 수정할 때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정치란 권력을 쥔 사람의 뜻을 관철하는 기술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조정하고, 권력의 한계를 인정하며, 국민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책임의 과정이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니라 합리적인 비판을 수용하는 용기이며, 여당에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권력을 바로잡는 양심이다. 야당에 필요한 것 역시 정권에 대한 반대 자체가 아니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이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차이는 단순히 시대와 국호에 있지 않다.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있다.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한다면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 반대로 권력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하고, 비판과 견제가 보장되며, 국민의 목소리와 정책에 반영된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정치인을 향한 맹목적인 찬양도, 상대 진영을 향한 무조건적인 저주도 아니다. 권력에는 엄격한 기준을, 정당에는 책임 있는 태도를, 정책에는 합리적인 검증을 요구하는 시민의식이다.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가 아니라 그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고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지금, 대한제국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통령 한 사람이나 어느 정당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지키려는 권력의 의지, 권력을 감시하는 정치의 책임, 그리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각성 속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공화국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깨어 있는 시민만이 대한민국을 대한민국답게 지켜낼 수 있다.
송면규
동 따봉
 | 송작가카페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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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터지고 살기 싫어요
결혼 예정 중에 서로 합의해서 애기를 가졌어요. 지금 임신 초기고요. 각자 살고 있다가 집을 지금 합치기 전이에요 제가 남친네 근처로 이사 와서 차로 5분 거리에 사는데 최근에 너무 서운하게 해서 좀 싸웠어요. 제가 놀러가있는데 혼자 게임하고 그래서요. 제가 남친 집에 가면 할 게 없고 제 물건도 없으니까 임신 초기고 시간 좀 같이 보내자고 하면 절대 안와요... 같이 보내자는게 걍 누워서 각자 핸드폰 보는 정도지 얘기를 하자 그런게 아니에요. 핸드폰으로 같이 유튜브를 보든가요 근데 거실 나가서 혼자 소파에서 티비보고 안들어와요 (제가 거실에 같이 있을 공간이 애매해요) 임신 후에도 거실에서 술마신다고 안들어와요 (원래 둘이 술 자주 마시다가 남친이 마시면 나도 마시고 싶으니까 둘이 좀 같이 참아달라 하다가 연휴니까 내가 마시라고 했거든요) 그저께는 웹툰보다 1시에 잤다면서 카톡하나 안남기고 잤더라고요. 제가 자기전에 잔다고 톡하나만 남겨달라고 부탁했는데도요. 어제 일어나서 제가 회사에 신청해서 연극 당첨돼서 보러갔어요. 약속시간도 남친이 착각해서 30분 늦게 오고 겨우 시작시간 2분 전에 갔어요. 가는 길에도 엘리베이터 타는데 사람들이랑 부대끼기 싫다고 줄 따로 서는거예요... 교통약자 라인에 같이 가도되는지 몰랐다고 하던데...하... 그래서 제가 뒤에사람보라고 하니까 뒤에 가족모두 영아 안고 교통약자 줄 서있는 거 보곤 깨닫더라고요. 연극 겨우 보고 마음 풀어야지 하고 최대한 기분 풀어서 밥먹고 가야겠다 했어요 극장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엘베에 사람 많았으면 무리해서 타자고 안했을 거에요 근데 막 쑤셔 타는 상황 아니었는데 옆에서 사라지고 없는거예요 엘베 내려서 둘러봐도 없구요. 스쳐지나가면서 자기는 계단으로 갈거니까 저한테 엘베타고 오라고 말을 했대요.. 통나무 같고 너무 답답해요 저도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조용히 있는 거 좋아하는데 해도 너무 하네요.
아이엠샘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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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상사때문에 멍청해지는 것 같아요
부사장님께서 실 근무자들, 상태 현황도 모르면서 지시하는 업무들이나 물어보시는것들이 업무 진행에 방해되고 지연되는데 그걸 모르세요 소형 회사라 그런가 사장님과 결혼하셔서 부사장 되신건데, 물론 당연히 기존 업무들이야 잘 아시지만, 새롭게 진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 준비허래서 하고있었는데 갑자기 뜬금없는걸 알아보라해서 일에 지연이 되고, 길어지는 내용인데 길어지면 뭐라하세요. 답답합니다 다른 회사 이직할 마음 있는데 면접에서 제가 부사장 언행을 따라하더라구요? 정확한 주어가 없고 두루뭉실하게 말하는 버릇이요... 안좋은것까지 몸애 익혀질 것 같은데 그냥 대책없이 퇴사해서 좀 쉬다 해도 될까요
세상을구할강아지
은 따봉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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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만큼 가난해지는 청춘들
월급날 아침, 서준은 눈을 뜨기도 전에 습관처럼 휴대전화부터 집어 들었다. 오전 6시 32분. 은행 앱 화면에는 반가운 숫자가 떠 있었다. 2,870,000원. 세후 월급이었다. ​서준은 잠시 그 숫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한 달 동안 온몸을 던져 번 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제 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통장에서 빠져나가기도 전에 이미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숫자에 불과했다. ​월세 75만 원, 관리비와 공과금 15만 원, 통신비, 교통비, 보험료, 학자금 대출 상환금. 여기에 지난달 카드값과 각종 구독료까지 더하고 나면 월급의 절반 이상은 구경만 하고 사라질 판이었다. ​서준은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휴대전화를 맥없이 내려놓았다. 월급날은 기쁜 날이 아니었다. 아주 잠시 부자가 되었다가, 가장 빠른 속도로 다시 가난해지는 날이었다. ​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오늘만큼은 정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출근을 포기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월급이 적다고 회사를 관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통장이 비어갈수록 월세는 꼬박꼬박 돌아왔고, 월세를 내기 위해서라도 그는 다시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가난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게으를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서준이 다니는 회사는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중견기업’으로 소개되는 곳이었다. 회사가 망할 가능성은 적었지만, 그렇다고 직원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질 가능성도 희박해 보였다. ​입사할 때 선배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처음 몇 년만 버텨봐. 연봉도 오르고, 돈도 좀 모이고, 제법 살 만해져.”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5년쯤 지나면 통장에 최소 3천만 원쯤은 모여 있을 줄 알았다. 결혼 자금도 차곡차곡 모으고, 작더라도 전세 보증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입사 3년 차인 지금, 보증금을 모두 끌어모아 손에 쥐고 있는 돈은 고작 1,200만 원이 전부였다. ​연봉은 해마다 조금씩 올랐다. 문제는 물가가 연봉 상승률을 비웃듯 저만치 앞서 달아난다는 점이었다. 월급이 오르면 형편이 조금 나아질 줄 알았으나, 늘어난 수입은 귀신같이 늘어난 생활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삶에 남은 것이라고는 회사 명함 한 장, 뻐근해진 목 통증, 그리고 조금씩 줄어드는 학자금 대출 잔액뿐이었다. ​가끔은 자신이 인생을 어디서부터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남들처럼 공부했고, 남들처럼 취업했으며, 남들처럼 성실하게 매일 출근했다. 지각 한번 없이 맡은 일은 어떻게든 끝까지 해냈다. 그런데도 왜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는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사를 향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동료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밥 먹으러 갈 사람?” “가자. 오늘은 내가 쏠게!” “네가 쏘긴 뭘 쏘냐. 만 원짜리 국밥 먹고 또 카드 할부로 갚으려고?” ​사무실에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서준도 어색하게 웃는 척하며 가방을 챙겼다. 하지만 동료들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 사이, 그는 슬그머니 방향을 틀어 계단으로 향했다. ​오늘 그의 점심 메뉴는 편의점이었다. 삼각김밥 하나, 컵라면 하나. 합계 3,800원. ​전자레인지 안에서 컵라면이 돌아가는 동안, 서준은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회사 앞 국밥을 먹으면 10,000원, 편의점에서 해결하면 3,800원. 하루에 6,200원을 아끼면 한 달이면 12만 원 남짓을 절약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커피 몇 잔 값에 불과하겠지만, 서준에게는 한 달 통신비와 교통비를 내고도 남는 거금이었다. 밥 한 끼를 먹으면서도 일일이 돈을 아꼈는지 따져봐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그때 동료 민호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 여기 있었냐?” 민호는 서준의 앞에 놓인 컵라면을 보며 혀를 차더니 말을 건넸다. “야, 회사 앞 국밥도 이제 만 원이야. 진짜 먹고사는 게 일이다, 일.” “그러게 말이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밥값만 사장님처럼 고고하게 오른다.” 민호가 맞장구를 치며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냈다. 그러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나 이번 달부터 진짜 커피 끊는다.” “네가? 하루에 세 잔씩 마시던 애가?” “그러니까 말이야. 한 잔에 5천 원씩 잡아도 하루 1만 5천 원이야. 한 달이면 30만 원 가깝다고. 이제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려고.” “잘 생각했네. 커피 도구는 사 놨고?” 민호가 순간 머뭇거리더니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응.. 텀블러도 하나 샀어.” “얼마 줬는데?” “18만 원.” 서준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야, 커피를 끊은 게 아니라 커피 사업에 투자한 거 아니냐?”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민호가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힘이 빠진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냥.. 그 순간에는 나 자신한테 그 정도 선물은 해주고 싶었어.” ​서준의 웃음이 순간 싹 거두어졌다. 민호는 멋쩍게 웃으며 라면을 집어 들었다. 방금 한 말이 별것 아니라는 듯 덤덤히 다른 화제로 넘어갔지만, 서준의 귓가에는 그 말이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았다. ​‘나 자신한테 그 정도 선물은 해주고 싶었어.’ ​돈을 아끼겠다고 커피를 끊으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한 달 식비에 맞먹는 텀블러를 사는 그 마음. 어쩌면 그건 철없는 낭비가 아니라, 이 팍팍한 삶을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고 간절한 몸부림일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서준도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세일 상품을 몇 번이고 비교하다가 결국 필요치도 않은 물건을 사기도 했고, 야근으로 지친 날이면 배달 앱을 열었다. 턱없이 비싼 배달비가 아까운 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편안해지고 싶어 결제 버튼을 누르곤 했다. ​돈을 아끼는 일에는 손익계산이 환했지만, 제 마음 하나 위로하는 일에는 이토록 서툴렀다. 가난이란 단순히 통장 잔고가 비어 있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작은 기쁨 하나조차 허락하지 못한 채 자책감에 시달리는 상태에 더 가까웠다. ​서준에게 있어 돈은 연애에서도 늘 무거운 걸림돌이었다. 2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 수진과의 대화는 언제부터인가 늘 비슷한 궤도를 맴돌았다. ​“우리도 이제 결혼 생각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해야지..” “그런데.. 집은 어떻게 하지?” ​서준은 끝내 대답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수진 역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른 아침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주말이면 남들처럼 근사한 곳에서 영화를 보고 맛집을 찾고 싶었지만, 데이트 비용이 부담스러워 늘 무료 전시회나 공원 산책길을 검색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런 소소한 데이트도 좋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만으로는 도무지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이 명확해졌다. 전세 보증금은 자고 일어나면 올랐고, 대출을 받자니 매달 돌아올 원리금 상환이 숨을 막히게 했다. 결혼식 비용부터 가전제품, 신혼 생활비까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수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 가끔 너무 무서워. 우리가 이렇게 지독하게 노력하는데도.. 계속 제자리일까 봐.” ​서준은 괜찮다고, 조금만 더 버티면 나아질 거라고 수진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제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말을 차마 뱉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수진이 먼저 이별을 고했다. “서로에게 너무 무거운 숙제가 되지 않도록.. 잠시 놓아주는 게 맞는 것 같아.” ​서준은 그녀를 잡지 못했다. 사랑은 둘이 함께 따뜻한 밥을 먹게 해줄 수는 있었지만 그 밥값을 대신 내주지는 못했고, 손을 잡고 미래를 꿈꿀 수는 있었지만 당장 머물 방 한 칸의 보증금을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수진이 떠난 뒤, 서준은 퇴근 후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배달 앱과 은행 앱이 번갈아 떠올랐지만 어느 쪽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 ​회사 상황 역시 녹록지 않았다. 그토록 고대하던 승진 명단에서 그의 이름은 깔끔하게 빠져 있었다. 팀장은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이 "내년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라는 상투적인 말로 상황을 무마했다. ​서준은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믿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자격증 교재를 펼치고 인터넷 강의를 켰다. 졸음이 쏟아져도 눈꺼풀을 올려가며 견뎌냈다. 지금의 월급과 위치에 안주한다면 평생 이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달 뒤, 서준은 마침내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한 회사로 이직하는 데 성공했다. 연봉이 400만 원 올랐다. ​친구들은 부러움 섞인 축하를 건넸다. “야~ 이제 숨 좀 쉬고 살겠네!” ​서준도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만큼은 정말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새 회사에서 첫 월급을 받은 날,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월급은 늘었지만 출퇴근 거리가 멀어져 교통비가 눈덩이처럼 늘었다. 야근이 일상화되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타거나 배달 음식을 시키는 횟수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버는 돈이 늘어나자 예전 같으면 참았을 지출에도 점차 무뎌져, 고생한 자신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손쉽게 돈을 썼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통장을 확인했을 때 잔고는 이전 회사에 다닐 때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서준은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조용히 한 줄을 적어 내려갔다. ​‘사람은 딱 제 월급만큼 가난해지는구나.’ ​그는 한참 동안 화면 속 문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봉이 오르면 삶에 여유가 생길 거라 믿었지만, '더 많이 버는 것'과 '더 여유로워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늘어난 월급은 귀신같이 그에 맞춘 소비와 형편을 불러왔고, 통장 잔액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서준은 4년 동안 쓰던 전자레인지를 중고 거래 앱에 3만 원으로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낡아빠진 운동화에 오래된 가방을 멘 스물세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전자레인지 문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으며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이거 오래 쓰신 건가요?” “한 4년 정도 썼어요. 그래도 작동은 아주 잘돼요. 내부도 깨끗하게 닦아두었으니 바로 쓰셔도 됩니다.” ​서준이 직접 전원을 넣어 작동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자,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내 건넸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3만 원.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 며칠 간의 교통비로 쓰기에 딱 좋은 돈이었다. 거래 완료 버튼을 누르고 돌아온 며칠 뒤, 그 청년에게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혹시 제품에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약속 장소로 나갔다. 청년은 낡은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작은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형님, 이거 받으세요. 전자레인지 값이에요.” “무슨 소리예요? 돈은 그날 다 받았잖아요.” “사실.. 그날 제가 가진 돈 전부가 딱 3만 원이었어요. 편의점 알바를 해서 겨우 모은 돈이었거든요. 집에 몸이 안 좋은 어머니가 계시는데, 제가 일 나갔을 때 식은 밥을 드시는 게 마음에 걸려서 꼭 사드리고 싶었어요.” ​청년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다른 중고 거래 때는 다들 돈만 받으면 돌아서기 바빴는데, 형님은 안쪽까지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아주시고 사용법도 친절하게 알려주셨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너무 감사했어요. 돈을 더 드리려는 게 아니라, 나중에 저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도움을 주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그래요.” ​서준이 한사코 봉투를 밀어 넣으려 하자, 청년은 난처한 듯 웃으며 뜻밖의 고백을 했다. ​“사실 저, 요즘 면접에서 계속 떨어져서 자괴감만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형님이 '물건이 오래되고 좀 긁혔어도 제 기능만 잘하면 충분히 가치 있다. 사람도 꼭 새것처럼 완벽할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참 큰 위로가 됐어요. 면접에 떨어진다고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덕분에 용기 내서 이력서를 다시 썼어요.” ​서준은 봉투를 쥔 채 한참 동안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자신은 늘 제 삶에서 부족한 통장 잔고, 없는 내 집, 지연되는 승진, 불확실한 미래만을 세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자신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정직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존경스러운 어른이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제 삶을 타인의 온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통장 잔액은 초라했지만, 결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는 아니었다. ​며칠 뒤, 서준의 휴대전화 화면에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떠올랐다. ​수진. ​〈헤어지고 나서야 알게 됐어.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너무 겁이 났던 거라는 걸. 내가 먼저 놓아주면 둘 다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건 우리가 함께 버텨낼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기해버린 거였어.〉 ​서준은 문장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그동안 그는 수진이 떠난 이유가 오직 ‘돈’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자책했었다. 하지만 수진 역시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봐 똑같이 두려웠던 것뿐이었다. 서준은 천천히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여전히 돈 걱정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그런데 이제는 알아. 우리가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뒤에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럼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좋아. 대신 비싼 데는 안 된다.〉 〈걱정 마. 나도 통장 잔고가 나를 걱정하는 처지니까.〉 ​두 사람은 회사 근처의 자그마한 분식집에서 만났다. 떡볶이 한 접시와 김밥 두 줄, 어묵 몇 개. 대단할 것 없는 소박한 식사였지만, 서로의 눈을 맞추며 참 오랜만에 마음 깊이 웃을 수 있었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산더미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행복’을 먼 미래로 미룰 필요는 없었다. 그 무거운 문제들을 해결하려 애쓰다 잠시 서로를 놓쳤을 뿐, 모든 것이 해결될 때까지 사랑을 유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 안은 여느 때처럼 피곤에 지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무거운 사정을 짊어진 채 같은 칸에 타고 있었지만, 저마다 다른 무게의 삶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서준은 손잡이에 의지한 채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이 행복의 자격 조건을 너무 가혹하게 설정해두고 살았다는 것을. 집을 마련하고 돈을 더 벌어 안정을 찾은 뒤에야 비로소 웃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 조건들은 끝없는 굴레와 같았다. ​물론 돈은 아주 중요하다. 돈이 없으면 기회가 줄어들고 사랑만으로 월세를 낼 수도 없다. 다만, 돈이 조금 부족하다고해서 내 삶 전체를 '실패'로 단정 지을 필요는 없었다. 비싼 해외여행 대신 소소한 동네 산책을 즐기고, 분식집에서 웃으며 저녁을 먹고, 오래된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은 초라한 궁색함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 안에서 삶을 존엄하게 지켜내는 아름다운 방식이었다. ​지잉~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청년 도윤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형님! 저 취업했습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드디어 해냈어요. 형님이 해주신 말씀 마음에 품고 다시 도전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꼭 제가 밥 사겠습니다^^〉 ​서준은 화면을 바라보며 답장을 보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밥은 네가 사되, 절대 비싼 데는 안 된다. 나도 월급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실종되는 사람이니까.〉 ​도윤에게서 웃는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서준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가만히 꼽아보았다. ​성실히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나누어 먹는 동료 민호, 다시 손을 꼭 잡아준 수진, 그리고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일어서 준 청년 도윤. ​이것들이 당장 가난을 없애주지는 못할 것이다. 다음 달에도 어김없이 월세는 나갈 것이고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이 삶의 존엄과 행복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도록 방치할 필요는 없었다. 월급이 적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까지 초라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지하철이 목적지 역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서준도 그 묵묵한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실었다. ​회사에 도착해 책상에 앉아 키보드 위에 조용히 손을 올렸다. 거창한 부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일의 나에게 오늘 하루를 죄책감으로 남겨주지 않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다정한 온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서준은 여전히 통장 잔고만큼이나 쓸쓸하고 가난한 청춘이었다. 하지만 미래가 짙은 안개 속에 싸여 있어도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가난이라는 것이 가진 돈이 적다는 뜻일 수는 있어도, 내가 가진 삶의 가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차가운 세상을 버텨내는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귀하고 값비싼 선물은,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 작고 다정한 온기라는 사실을. 고전학자이자 시인인 앤 카슨(Anne Carson)의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녀는 시와 소설, 에세이의 경계를 허물며 대담하고 독창적인 문학적 영토를 일궈왔습니다.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에서 보여주듯, 신화 속 괴물마저 현대인의 깊은 상처를 대변하는 인물로 재탄생시키는 그녀의 통찰은 실로 경이롭습니다. ​"고전 전통과 유쾌하게 대화하며 현대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 스웨덴 한림원 ​시대를 통찰해 온 거장에게 바치는 가장 빛나는 찬사입니다. 76세의 나이에 마침내 결실을 이루며 늦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희망을 안겨준 그녀에게 깊은 경의와 축하를 보냅니다. 책 한 권을 곁에 두시거나 짧은 리뷰 한 줄의 따뜻한 관심은 제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알라딘 https://aladin.kr/p/ZSOSu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13513772 yes24 https://m.yes24.com/goods/detail/195786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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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만작가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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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게임' 세대 있나요?
너무 힘들었던 신입시절. 혹독하고 무서웠던 상사들에게 왕좌의 게임 일부를 USB에 담아 투척해 전염시켰고, 매 회차 방영된 다음날 많은 이야를 나누며 친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생 최고의 미드였고, 아직도 오프닝을 들을 때면 전율하게되는 그 작품... 한번들어보시라~~ https://youtu.be/dZvP3WSrTFg?si=0UsfAtrtwcE80Apz
gigrydh
억대연봉
쌍 따봉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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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커리어라고 할수있을지.. 고민입니다
1년 8개월동안 인사일을 하고 4년전에 퇴사 후 3년간 개인사업자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건바이건 프리랜서분들과 일하고있습니다 회사 경영이 안좋아져서 다시 인사쪽으로 생각하고있는데 제가 일했던 부분은 채용,계약서,인건비분석,연차,노무관리,입퇴사자,입출금관리,인사기획,복리후생관리,법정의무교육 이렇게 담담해서 하고있었어요 페이롤을 해보지 않아서 이부분도 고민이고, 나이가 이제 30중반을 바라보고있는데, 괜찮을까요? 현실적으로 취업이 안될까봐 걱정이고, 커리어 다시 쌓을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2년제 전문대 졸업인데 조언 부탁드립니다 ㅠ..
열심히잘하자아자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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