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정의, 불로 소득
최근 부동산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불로 소득"이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얻는 소득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표현은, 어느새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얻은 이익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부동산에서 발생한 자본 이익은 분류 소득이라 부르면서, 주식이나 채권, 펀드, 가상 자산에서 발생한 자본 이익은 왜 같은 기준을 바라보지 않는 것일까?
경제학에서 소득은 일반적으로 노동 소득과 자본 소득으로 구분된다. 노동을 제공하여 얻는 임금과 급여는 노동 소득이고, 자산을 보유하거나 투자하여 얻는 배당금, 이자, 임대료 시세 차익은 자본 소득에 속한다.
부동산과 주식은 투자 대상은 다르지만, 자본을 투입하여 수익을 얻는 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부동산에 대해서만 유독 "불로 소득"이라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
주식 투자로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을 얻은 사람은 "성공한 투자자"로 평가받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비슷한 규모의 이익을 얻은 사람은 "불로 소득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같은 자본 이익인데도 평가 기준은 전혀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부동산에는 주거 안정이라는 공공성이 존재한다.
집값 급등은 무주택자의 부담을 키우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책적 개입과 세금 부과는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적 규제의 필요성과 소득의 개념은 구분되어야 한다.
부동산을 보유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비용과 위험이 따른다. 취득세와 재산세, 종합 부동산세, 양도 소득세를 비롯해 유지•보수비, 금융 비용, 공실 위험, 경기 침체에 따른 가격 하락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한다.
주식 역시 기업 실적 악화와 시장 변동성으로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 두 자산 모두 투자에 따른 위험과 기회 비용을 안고 있으며, 단순히 가격이 상승했다는 이유만으로 한쪽만 불로 소득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택적 정의"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같은 경제 현상을 정치적 필요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정의하기 시작하면, 용어는 객관적 개념이 아니라 가치 판단의 도구가 된다.
불로 소득이라는 단어가 경제학적 개념이 아니라 특정 자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수사로 사용된다면, 건전한 정책 토론은 감정적 대립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자산은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다. 토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주식은 한때 도박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도 존재했다.
오늘날에는 인공지능 기업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얻는 것이 혁신 투자로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부동산에서 발생한 자본 이익만을 특별히 도덕적 문제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진정한 논의의 대상은 불로 소득이라는 낙인이 아니라 시장의 공정성과 기회의 형평성이다. 정보의 독점, 내부자 거래, 특혜 개발, 권력과 결탁한 투기, 독과점적 이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합법적인 권리를 통해 발생한 정상적인 자본 소득까지 일괄적으로 불로 소득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원리와도 충돌한다.
언어는 사고를 만든다. 특정 자산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불로 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사람들은 경제 현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감정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정책은 정확한 개념 위에서 설계되어야 하며, 용어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부동산도 주식도 모두 자본을 투자하고 위험을 부담하여 수익을 기대하는 경제 활동이다. 둘 중 하나만 불로 소득으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경제학적 정의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선택적 정의일 가능성이 크다.
공정한 사회는 동일한 원칙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할 때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불로 소득이라는 단어 역시 예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