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없는 리더가 관리자이면 조직은 어떻게 되는가
최근 공석이던 우리팀 팀장 자리에 새로운 팀장이 외부에서 영입 되어 왔다. 팀장도 없었고, 선임급 과장도 자기 사업한다고 나가 버린 와중에 회사는 계속 성장하고 성수기까지 겹쳐 팀원들 사기는 바닥을 기는 상황이었다. 몇 번이나 못하겠다, 이건 물리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업무량이다, 사고난다 등의 건의를 계속했고, 취업난이라는데 신기하게도 신입이 잘 구해지지 않아(나름 초봉을 괜찮게 주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우연히 업계 경력 10년정도 된다는 타 회사 과장급 인원을 팀장으로 영입해 온 것이다.
회사는 이 외에도 신입을 계속 보충해 주겠노라 약속했고 우리 팀원들은 10년 경력의 팀장이 새로 왔으니 이제 한시름 놓았거니 생각했다. 이를 채용한 사장의 생각이나 우리의 바램이나 10년 경력이라니 일반 사원 2, 3인분 업무를 쳐주면서 리더쉽을 발휘하여 조직원들의 사기도 끌어 올려주길 당연히 기대했다.
오자마자 회식 자리가 있었고 내 동기였던 여직원 한명이 간당간당 한 상황이었기에 열심히 회사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우리가 필요한 조치가 무엇이며, 아무튼 팀장이 필요하리라 생각되는 정보들은 최대한 제공을 해 주었다. 사실 그 때부터 느낌이 쌔했다. 본인은 사람 보는 눈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이 리더나 중간관리자 따위의 재목은, 특히 내가 모시고 싶은 사람이가 하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어쨌건 우리에겐 더이상의 희망이 없었으니 내 할 도리와 최선을 다 한다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일주일만에 새로온 팀장은 ERP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기존의 ERP가 무엇이 문제이며, 자신이 있던 예전 회사와 비교 해 가며 ERP 교체의 필요성에 대해 연신 열변을 토했다. 그 전 회사가 업계에서 가장 큰 회사(공교롭게도 우리 오너가 목표로 하고 있던)였기에 자본 집약형 신생기업인 우리 회사에 딱히 반박할 만한 사람은 없었고, 그의 주장에 무게가 실려가고 있었다.
결국 입사한지 한달이 채 안되어 ERP를 바꾸기로 했다. '업계에서 가장 큰' 곳에 계셨던 분이 오셔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개선과제로 ERP교체를 자신만만하게 내던지니 임원들도 '그래 한 번 해봐라'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이 자가 컴맹이라는 것이다. 엑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자가 자기 기준에 맞추어 여럿 ERP 업체들과 미팅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거기에 참석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줄 ERP회사는 당연히 맞춤 정장이 비싸듯 억대의 비용이 필요했고, 결국 옆그레이드 아닌가 싶은 기존 보급형 ERP들만 살펴보다 하나를 택한다. 딱 봐도 윈도우95를 연상케 하는 프로그램 디자인의 ERP를.
그렇게 그는 한 달을 업무파악 대신 ERP관련 통화들만 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무실 직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슬슬 감이 오기 시작한다. 굳이 통화를 길게 끌며 바쁜척, 통화 하지 않는 동안은 인터넷 서핑. 관리자라는 명목하에 말 그대로 기존 팀원들을 관리만 하려 했고 건의 했던 업무조정은 없었다.
결국 간당간당 하던 여직원은 이직을 한다. 부랴부랴 많은 것이 달라질거다 조금만 기다려라 설득을 해 보지만 공수표라는 것을 이미 파악한 상태. 일 잘하는 그 여직원을 아꼈던 사장이 내가 다 안타까울 정도로 잡아 보았지만 이미 마음은 돌아섰고, 그런 사장의 노력을 비웃듯 뒤에서 그는 '갈 거면 가라.' 하며 코웃음을 쳤다.
또 다른 회식자리, 퇴사가 결정된 여직원은 불참하고 그는 술이 몇 잔 들어가니 여직원에 대한 험담을 또 늘어놓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과장이 그래도 고생, 고생 하다 나가는 사람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안된다고 말 해 보지만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고집 부르는 모습. 세상에 능력도 없고 인성도 부족한 인원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내 팀장으로
그로부터 여러 일들이 있었고 나도 결국 사표를 던졌다. 당연히 사장은 나를 불러다 놓고 맥이 빠지는 소리로 너까지 이러면 어떡하냐고 하소연 하며 돈이나 직무변경 등을 제시하며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애를 쓴다. 참 내 거기에 마지막으로 흔들렸지만 바로 그 다음 영업일, 팀장은 그놈의 ERP 교체를 위해 팀원들에게 야근을 얘기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업 특성상 업무 시간에 정말 죽어라 바쁘고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우는데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가 야근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업무 능력이며, 사기 관리며, 내 참 존경스럽게 바라보며 모셨던 옛 상사가 그리워졌다. 사회에 이렇게도 인물 된 자가 없습니다. 그만둔 여직원이나 본인이나 객관적으로 봐도 두고 쓰기에 진궁, 고순쯤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걸 두고 쓰는 자가 여포도 아니요 엄백호라니 통탄스러울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