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자랑거리
자랑거리
참여자 3,443,309
 · 
글쓰기
회원님, 일 관련 고민이나 업계 이슈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최신글
결혼을 위한 이직
내년 6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입니다 당산에서 직장을 다니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기 위해 시화공단에 있는 곳으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집도 중간 부근에 구했어요 ㅎㅎ 이렇게 올라오니 결혼을 위한 준비가 일사천리더라구요 결혼을 위한 이동 이게 제일 잘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집가고싶다앗
25년 12월 20일
조회수
168
좋아요
4
댓글
0
구직중에 도보배달
구직활동을 하면서 계속 취업이 되지 않았는데 그런 상태에서 배달을 도보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보 배달이 가능한게 큰 도로에 음식점이 많이 있고 그 뒤로 주택가라 가능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미흡했지만 친절하게 고객에게 배달하고 오르막길도 오르면서 살도 빠지고 있습니다. 해오면서 체력도 좋아지고 얼굴이 밝아지고 돈도 벌면서 재취업에 대한 준비를 자연스레 하는거 같습니다. 취업준비하시는분들 포기하지 마시고 화이팅 하세요~~^^
kdaeye
25년 12월 20일
조회수
212
좋아요
7
댓글
2
올한해 끝까지 버틴거
올한해 너무 힘들었는데도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버텨서 벌써한해를 마무리하네여
e wz
25년 12월 20일
조회수
103
좋아요
3
댓글
0
회사를 다니며,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올해 제가 저 자신에게 가장 잘한 일은 회사에 다니며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일이었습니다. 아침에는 늘 출근을 했고, 퇴근 후에는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야간 수업과 주말 세미나, 끝이 보이지 않는 논문이 일상의 일부였습니다. 회사 일만으로도 벅찬 날이 많았고, 체력과 시간이 늘 부족했습니다. “이걸 끝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미 선택한 길이었고, 중간에 내려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맡은 역할을 다하려 애썼고, 학교에서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버텼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를 쌓아 결국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올해 저는 거창한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하나의 목표를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과 시간들이 올해의 저를 가장 뿌듯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족건강이요
25년 12월 20일
조회수
405
좋아요
22
댓글
6
가장 잘 한일은
이직입니다.
고니77
25년 12월 20일
조회수
93
좋아요
2
댓글
0
2025년, 솔직히 말하면 버틴 해였습니다
2025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잘 해냈다기보단, 버텼다”에 가깝습니다. 올해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생각보다 긴 공백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불안했고, 아침에 눈 뜨는 게 부담스러운 날도 많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한 날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이력서를 몇 번이고 고쳐봤고, 헬스장에 등록해서 며칠은 정말 열심히 가다가 또 빠지기도 했습니다. AI 공부도 시작했지만, 이해 안 되는 날에는 그냥 노트북을 덮었습니다. 그럼에도 며칠 뒤 다시 켰다는 게 올해의 저에겐 꽤 큰 일이었습니다.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점만큼은 스스로 인정해 주고 싶습니다. 2025년은 아직 결과가 없는 해입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계속 다시 시작했습니다. 올해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거면 충분히 잘했다.”
호크미사일
25년 12월 19일
조회수
1,880
좋아요
156
댓글
11
배달 앱 VIP였던 제가, 6개월 동안 도시락 싼 걸 자랑하고 싶어요!
올 한 해 제가 가장 잘한 일은 거창한 프로젝트 성공이 아니라 제 식습관과 통장을 지켜낸 일이라 부끄럽지만 자랑해 봅니다. 사실 저는 회사 점심시간마다 배달 앱을 습관처럼 켜던 사람이었습니다. 동료들과 마라탕, 햄버거, 찜닭... 매일 시켜 먹다 보니 배달비 포함해서 점심값으로만 하루에 15,000원~20,000원은 우습게 나가더라고요....ㄷㄷ 월급날 카드 명세서를 보는데 식비 항목을 보고 충격받아서 그날 바로 배달 앱을 삭제했습니다....ㅠㅠ 그리고 다음 날부터 생존형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는데요! 솔직히 바쁜 아침에 그걸 어떻게 싸냐 싶었지만... 막상 해보니 별거 없더라고요. 그냥 전날 먹다 남은 제육볶음, 냉동 볶음밥, 계란후라이, 김. 이렇게만 쌉니다. 준비 시간 10분 컷으로 하고요...ㅋㅋㅋ 주말에 닭가슴살이나 야채 볶음 같은 건 미리 왕창 만들어두고 소분해 둡니다. 이렇게 6개월을 보낸 결과... 1) 한 달에 식비만 30~40만 원 가까이 세이브됐습니다. 이 돈으로 소소하게 적금 하나 시작했습니다. 2) 자극적이고 짠 배달 음식 대신 집밥을 먹으니, 오후 업무 시간에 식곤증도 덜하고 속 더부룩한 것도 줄었고요! 3) 배달 기다리고 치우는 시간이 없어서 남는 시간에 산책하거나 낮잠 잘 여유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돈 아끼려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를 대접하는 느낌이 좋아서 계속하게 되네요. 남들이 보기엔 고작 도시락 하나지만 소비의 주도권을 제가 다시 가져왔달까요 ㅎㅎ 올해 가장 잘한 일 같습니다. 오늘도 탕비실에서 도시락 까드신 동지 여러분, 모두 존경합니다! 도시락은 영 비주얼이 별로라 없습니다....ㅋㅋㅋㅋㅋ 내년에도 우리 건강하고 알뜰하게 버텨봐요! 화이팅!
밍강
은 따봉
25년 12월 20일
조회수
166
좋아요
7
댓글
3
실명.. 아직은 안돼...
출근길 오른쪽 눈이 흐릿하게 보였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창문에는 빗물이 줄줄 흘렀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다. 피곤하면 눈이 침침해질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뿌연 시야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안과를 찾았고, 의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병명을 알려주었다. "큰 병원으로 가시죠." 그리고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할거라 했다. 그때 ‘아, 이제 한쪽 눈이 천천히 어두워지는구나’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른쪽 눈의 세계는 점점 희미해졌다. 처음에는 흐려지다가, 이제는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물체가 겹쳐 보이고, 빛이 번져 보이더니 이제는 그저 얕은 어둠뿐이다. 얕은 어둠을 통해서 아직 볼 수있다. 하지만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는 ‘보는 것’에서 ‘보지 못하는 것’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아직 보이기에 그리울 것이 많고, 곧 보이지 않게 될 것들을 떠올리면 두려움도 밀려온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붙잡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지방에서 일한다. 월요일 아침이면 차를 몰고 일터로 떠난다. 목요일 저녁이 되면 다시 집으로 향한다. 이른 새벽부터 운전을 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로등 불빛이 반쯤 흐려져 보이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번져서 크게 퍼진다. 오른쪽 눈이 흐려진 후로는 야간 운전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가는 것만 생각하며 운전한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며 방향을 잡고, 속도를 조절하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불안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여전히 핸들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 목요일 밤,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고, 아내는 거실에서 날 기다린다. 피곤한 얼굴로 집에 들어서면 아내는 묻는다. "운전은 괜찮았어? 피곤하지 않아?" 나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오른쪽 공간을 의식하며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했는지, 밤길이 점점 더 낯설고 조심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내는 그런 나를 위해 눈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도시락을 만든다. 블루베리, 당근, 연어, 견과류가 가득 담긴 반찬들을 정성스럽게 4일치 만들어 차에 넣어준다. “눈에 좋은 음식이래. 점심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 나는 그런 아내의 세심한 배려에 더는 불평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절망을 이겨내야만 했다. 그냥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백 미터도 힘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뛰었다. 몸이 지칠 때까지, 머릿속이 하얘질 때까지.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이제는 20킬로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그렇게 올해 하프마라톤에 도전했고 완주 매달을 목에 걸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뛰어요?” 나는 대답한다. “살아야 하니까.” 나는 아직 보인다. 하지만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멈추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두 세계를 함께 살아가며, 나는 끝까지 버텨낼 것이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가족과 함께,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이건 어이 없네
25년 12월 19일
조회수
2,155
좋아요
97
댓글
6
무급휴직, 육아휴가 그리고 이직
다른 분들에 비해 특별히 더 어려웠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가 조금 들어 어렵게 아이를 얻은 시기에 공교롭게도 회사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며 무급휴직을 권고받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출산 이후 1년간 육아휴직을 선택했습니다. 무급휴직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마 쉽게 결심하지 못했을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육아휴직 수당을 아이를 위한 비용에 보태며 지냈고, 그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이 끝난 뒤에도 회사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약 3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이직을 준비한 끝에 올해가 가기 전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 다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이를 만난 것, 그리고 육아휴직 동안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쉽지 않았던 한 해를 버텨내고 새로운 회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기에, 올해 크리스마스만큼은 아이에게 마음 편히 선물을 건넬 수 있다는 점이 스스로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흔들릴 때가 있겠지만, 계속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보려 합니다.
Jamie
25년 12월 19일
조회수
420
좋아요
8
댓글
0
아빠가 아기와 함께한 1년
22개월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올해를 돌아보면 육아휴직을 하며 아기와 함께한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작년 말, 아내의 복직을 앞두고 아기가 장염과 폐렴으로 두 번이나 입원을 했습니다. 맞벌이는 아직 무리라는 판단이 섰지만, 아직 남자 육아휴직이 낯선 회사 분위기 탓에 주변의 만류와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 상황에서는 육아휴직이 필요하고, 보편적인 아빠의 육아휴직이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그 선택 덕분에 제 2025년은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들로 채워졌습니다. ​벚꽃이 흩날리던 봄, 신발만 신으면 주저앉던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연습시켰고, 뜨거운 여름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푸쉬카를 밀며 동네를 산책했습니다. 가을에는 단풍길과 낙엽길을 뛰어다녔고, 겨울에는 눈을 만져보며 놀았었네요. ​제주도와 강릉 가족여행, 둘이서 본가에서의 일주일 살기까지.. 아이는 훗날 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제 기억 속에는 평생 남을 아름다운 순간들입니다. 걷지도 못하더니 이제는 놀이터 미끄럼틀을 거침없이 오르고, 저와 함께 시소와 그네를 타며 즐거워하는 아이와 매일 편의점에 들러 1+1 비타주스를 나눠 마시던 소소한 행복도 잊지 못할것입니다. 인간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직접 주양육자가 되어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아이가 아파 장기간 어린이집을 못 갈 때 막막함과 육아의 힘듦을 느꼈고, 끝없는 집안일을 메인으로 경험하며 아내의 마음도, 부모님의 마음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책도 많이 읽어주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종알종알 말도 잘하고 웃음이 많은 아이를 볼 때마다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이제 곧 복직을 앞두고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용기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응원해준 직장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특히 퇴근후 피곤할 텐데도 집안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하는 아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사파이어블루
25년 12월 18일
조회수
1,930
좋아요
187
댓글
16
나에게 아기가 태어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작년부터 시도한 임신과정 중 쓰라린 아픔을 두 번 견뎌냈다. 자연임신이 아닌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의 두 과정을 진행하며 너무나 허탈하고 생명을 가진다는게 이렇게 어려운 과정인줄 몰랐다. 하지만 드디어 세 번째 시도만에 가지게 되었다. 나는 남편으로서 시험관 임신을 준비하는 와이프를 보며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아침 저녁으로 주기적으로 약을 넣어야 되고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자기 손으로 자기 배에 주사 놓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누가 돈준다해도 못할 짓을 아기를 갖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최선을 다하는 우리에게는 결국 아기를 갖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여자가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중간에 입양도 괜찮으니 제의했지만 와이프는 그래도 우리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기를 갖고 싶다는 의지를 존중하여 우리 둘은 정말 죽을동살동하여 노력했다. 드디어 임테기에 두 줄이 나왔고 초음파를 하러갔을 때 처음으로 심장소리를 들었다. 나의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생명체에서 심장소리가 들리는게 너무 신기하면서 뭔가 마음이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몇 주 후 계속 초음파 관찰하며 심장 박동 수가 정상 범위에 있음을 지속 확인하고 니프티 검사를 통해서 유전적 이슈가 없고 성별은 공주님임을 확인한 순간 너무 기뻤다. 우리 둘은 딸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신하고도 출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다. 3개월차 때 쯤, 갑자기 새벽 3시에 와이프가 하혈을 하면서 핏덩이들이 쏟아졌고 와이프는 울었다. 우리 둘은 유산인줄 알았고 급히 산부인과 응급실을 가서 유산은 아니고 자궁 내 양수가 새서 나온 걸 알았다. 그 날부로 와이프는 아무 미동없이 침대에 그대로 누워서 일주일을 보냈고 퇴원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우리 둘은 밖에서 모임을 갖고 집에 왔는데 밤에 또 하혈을 하였다. 또 응급실에 달려갔고 마찬가지 증상이 나타났다. 이번엔 10일을 입원했다. 와이프가 너무나 고생을 많이해서 안쓰러웠지만 와이프는 아기를 반드시 건강하게 출산하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잘 버텼다. 그리고 또 약 두 달 뒤쯤에 와이프가 낮에 무거운걸 들은 탓이었는지 또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고 또 입원했다. 다행히 임신 중기 쯤이라 3박 4일만에 끝났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과정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우리 아기의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함을 알기에 끝까지 노력했다. 마침내 수술일정이 정해졌고 11월 19일 오후 1시 2분에 우리 공주님이 태어났다. 와이프는 봉합 수술을 진행하였고 나는 신생아실에가서 커튼을 치고 간호사님이 나와서 안고 있는 아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정말 너무나 눈물이 많이 나왔다. 아기가 너무 작고 가여웠고 엄마 배 안에서 오랫동안 잘 버텨줘서 고마움이 느껴졌으며 여러가지 감정이 들면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와이프가 수술실을 베드에 누운채로 나왔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다. 많이 울었냐는 질문에 본인도 아기를 보자마자 눈물이 너무 많이 쏟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나랑 말하는 중에도 베개가 젖을 정도로 계속 눈물이 나와 감정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이로써 우리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끝났다. 현재 우리는 30일된 아기를 밤새가며 잘 키우고 있다. 아기를 키워보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매일 느끼고 있다. 2025년 우리 부부 둘에게 너무 고생했고 행복한 결실을 맞이하게 돼서 너무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고대노망신화
은 따봉
25년 12월 18일
조회수
2,183
좋아요
202
댓글
23
25톤 덤프에 치인 아내가 돌아왔어요
꽃샘추위가 남아있던 ‘25년 4월. 팀 점심식사 후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아이폰으로 자동차 충돌 감지 긴급문자가 난생 처음 왔습니다. 발생지역은 외곽순환고속도로. 아내에게 여러번 전화를 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119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분 차가 25톤 덤프트럭과 충돌했고 차량에서 자동으로 신고접수돼서 구조 후 병원 이송 중입니다”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렸습니다. 서울에서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눈물이 흘렀고 기도 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초등학생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이게 무슨 문자예요?” 진정시키려고 아이 이모를 집으로 보냈습니다. 수습하지 못한 현장에 먼저 들렀습니다. 얼마 타지 않은 소형 SUV는 폐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차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모습이어도 좋으니 제발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면회금지된 병원 응급실 밖 대기실에 있는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윽고 들어오라는 의료진의 손짓. 온몸이 멍투성이였지만 아내는 침대에 누은 채로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맨 처음 119 전화받았을 땐 어쩔 수 없이 마지막까지도 생각했는데, 정말 천만다행이고 감사 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폐차 전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을 보니 나들목 옹벽이 그녀를 살렸습니다. 25톤 덤프트럭이 운전석 쪽으로 밀고 들어오자 차가 오른쪽으로 밀리다가 트럭과 옹벽 사이에 끼면서 조수석 쪽이 완파됐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몰던 차는 옹벽과의 마찰력으로 속도가 줄어 뒤집힘, 튕겨져 나감, 트럭 밑으로 깔리는 일 없이 트럭 운전자의 사고 인지시점에 기적적으로 멈출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집 근처 큰 병원으로 옮겨 한달 가량 입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외상은 크지 않아 보였으나 근육과 신경 등 사고 후유증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트라우마, 즉 심리적 외상이 심각했습니다. 밤에 잠들기 어렵고 낮에는 작은 변화에도 눈물 흘릴 때가 많았습니다. 아내는 휴직을 넘어 퇴사를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어떻게든 처자식 먹여 살려 볼테니 그러라 했습니다. 아침, 저녁 출퇴근길 병원에 들르려 노력했고, 제가 대신해서 진행한 대인, 대물 보상 협의는 상대방 과실 100 vs 아내 과실 0 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제 인생 가장 큰 교통사고로 제 인생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을 뻔 했던 날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느덧 연말연시입니다. 아내는 ‘엄마’의 책임감으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차는 지인의 도움으로 2년 된 중형 SUV를 중고구매하였습니다. 주중에는 통원 치료, 주말에는 재활 운동을 하고 있는 아내는 회복에 힘쓰고 있고 저와 딸아이는 사랑하는 아내와 엄마를 응원하고 챙기려 애쓰는 중입니다. 아내가 운전대를 잡지 못해 제가 가족 전담 운전기사가 되었고 ‘운전노동으로 허리디스크가 도진다’고 엄살을 부려 보지만, 사실 행복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기도를 들어주셔서, 아내가 내 곁으로 돌아와줘서, 딸아이와 가정이 무너지지 않아서요. 그리고 요리를 잘 하던 아내의 부재가 걱정된다며 집으로 백화점 한우 미역국을 보내주신 분, 밥 먹으라고 밑반찬을 한보따리 싸주신 분, 불안해할 아이를 저녁에 돌봐주겠다는 분, 출고된 지 2년 밖에 안 된 크고 튼튼한 중고차를 소개해주신 분. 모든 것이 사랑이고 은혜였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25년 성탄절. 값비싼 호텔이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는 대신, 제가 받은 온기를 조금이나마 나누러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반지하에 사시는 어르신 찾아뵙고 왔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전기담요와 함께 손잡아드리고 기도해드리고 왔습니다. 안전운전 당부드립니다. 가족에게 안부연락도 자주 하시고요. 겪어보니 긴급 연락처를 설정해두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급한 연락,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놓치고 평생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가족과 주위를 돌아보는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시기 바랍니다.
레떼아모르
25년 12월 18일
조회수
51,136
좋아요
1,612
댓글
158
사랑하는 우리 딸 에게
사랑하는
@(주)영진금형
사랑하는진우
25년 12월 18일
조회수
540
좋아요
2
댓글
2
내년엔 올해보다 나아지길
'불혹'은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는데, 충분이 어른인줄 알았던 나는 아직도 한참 성장 중인 것같습니다. 저는 올해 저의 부족한 점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한 해에요. 그 과정은 정말이지 에너지 소모가 크고 힘든 과정이었어요. 두 아이에게 화내는 엄마가 되지 않기로 노력한 점 내 욕심을 아이에게 투여하여 과도하게 공부 압박 하지 않도록 노력한 점 그럼에도 해야할 몫 (학교 숙제)은 할 수 있도록 잔소리가 아닌 행동으로 훈육한 점 아이가 잘하지 못하면 계속 혼내는게 아니라 어떤 부분이 어려운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한 점 부부사이가 안좋을 지라도 아이를 위해서 빠르게 화해한 점 남편이 아무리 못난 짓을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점 이혼 소송 취하하고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더 먼저 고려한 점 아이들에게 엄마아빠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얻은 부분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한 점 고부갈등과 남편의 돈, 술 문제로 인한 생긴 나의 홧병은 그대로지만 바뀌기 싫은 사람 개과천선 시키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한 점 집에서 화를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걸으면서 마음 가라 앉힌 점 그래도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으면 해가 뜰때까지 자전거를 타며 해소한 점 그때 스트레스 분출이 느껴져서 남편도 끌고 나가서 건강하게 함께 살자고 으샤으샤 한 점 남편은 비록 선물, 상품권 등등으로 나 몰래 마통을 만들었지만 마통 없애준 점 그럼에도 잘못한 점 하나 인지 못하고 적반하장님 남편으로 인해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비록 회사에서 불쑥불쑥 욱욱 콧잔등이 욱신하고 시려오지만, 하품하는 척하고 일에 집중하려고 무진장 무진장 애쓴 점 그러는 과정에서 이직 2년차 직장에서 적응 잘해서 인정 받은 점 근속기간 미달인데 경력 인정 받아 성과급 받은 점 기존에 하던일 보다 중책맡아 잘 해낸 점 마치고 집에가서 배달 안시키고 건강한 밥 해먹이려고 노력한 점 주말마다 가족들 제철음식으로 특식해 먹인 것 나도 칭찬 받고 싶은데 아무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지 않고, 많은 일 겪어 힘들겠다고 위로 안해줘서 서러울때 책보며 위안삼은 점 부모님 모시고 처음으로 해외여행 예약한 점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 안좋은 점 보여도 불평이 아니라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며 반면교사 삼은 점 이렇게 노력해도 실패하고 못난 모습 보이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하며 또 노력한 점 내년엔 아이 돌봄도 없어지고, 둘째는 초등학교 입학해서 올해보다 더 힘든 한해가 될거 같지만 올해 진짜 뼈를 깎는 심정으로 노력했고, 고생의 역치가 올라서 내년엔 더 잘해낼 거라 믿어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형벌이 있는것 같아요. 잘 살아 보려고 산 정상까지 무거운 돌을 올려놓으면 또 다시 굴러떨어져서 다시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는 기분으로 올해를 살았지만, 모든 문제의 해결은 내 안에 있다는 믿음으로 내년에도 잘 살아내 보려고 합니다. 사실은 위로 받고 싶었어요. 리멤버 글 핑계 대고 주저리주저리 써봅니다. 모든 직장인들 화이팅. 모든 워킹맘들 화이팅. 자신만의 고민이 있는 분들도 내년엔 모두 해소가 될 수 있길.
noomeeya
25년 12월 18일
조회수
214
좋아요
22
댓글
3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한 해
올해 제게 가장 큰 수확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지만 가장 잊기 쉬운 가족의 소중함을 오롯이 느낀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는 회사로 나가야 하는 직장인이었고 그중 5년은 배우자로, 1년 반가량은 가장이 되어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축복 같은 아이가 제게 와준 이후로 재밌고 있지 못할 추억이 남았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제 삶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삼재인가 싶을 정도로 내 맘대로 안 되는 커리어에 스트레스와 회의감이 있었고 그러다 보면 가족에게 볼멘소리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인내 해준 가족과 출근과 퇴근할 때 현관문을 열면 늘 웃으며 배웅하고 맞이하던 그 작은 생명체가 제 삶을 지탱해 주는 매개였습니다. 많은 육아 선배님들이 제가 가장이 되기 전 스치듯 말해주었던 이야기들은 돌이켜보니 하나도 빠짐없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망적이거나 진짜 내려놓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금 일어서게 만드는 동기부여는 단언컨대 가족보다 강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절절히 느낀 올 한 해는 제게 앞으로 무엇을 하든 이겨내고 헤쳐나갈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해낼 겁니다. 이 생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미소를 보는 게 제게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일이기에. 이 글을 읽으실 여러분 모두 올 한 해 고생 많으셨고 저 같은 경험을 하고 계신 분이 아니더라도 부모님 형제 등 가족을 통해 얻는 고마움과 소중함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빛나고 가치 있게 할 사람은 회사의 상사가 아니라 집안의 가족임을 한 번 더 느끼는 연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1more
25년 12월 17일
조회수
320
좋아요
16
댓글
1
대표전화 : 02-556-4202
06235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134, 5,6,9층
(역삼동, 포스코타워 역삼) (대표자:최재호, 송기홍)
사업자등록번호 : 211-88-81111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2016-서울강남-03104호
| 직업정보제공사업 신고번호: 서울강남 제2019-11호
|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2020-3220237-14-5-00003
|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F1200020240004
Copyright Remember & Compan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