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국가 소유물이 아니다
최근 이른바 "삼전닉스"라 불리는 대규모 반도체 기업의 전라남도 유치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은 아름답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우리가 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기업 유치 소식이 전해지자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지역 간 갈등이었다. 같은 호남권인 전북에서는 "전남만 챙기고 우리는 무엇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충청권에서는 공장 가동에 필요한 용수 확보를 위해 대청댐 물을 활용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충청도의 물을 왜 가져가느냐?"는 반발이 이어졌다.
반도체 산업이라는 국가 전략 산업이 어느새 지역 정치의 이해 관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다. 물론 지역마다 기업을 유치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면 일자리가 생기고, 협력업체가 모이며, 인구가 증가하고,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 어느 지방 자치단체든 이러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기업은 정치적 상징물이 아니라 경제 주체이다. 공장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는 수익성과 생산성, 물류망, 인력 확보, 전력 공급, 용수, 협력업체와의 접근성 등 수많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하는 경영의 문제다.
정치적 요구나 지역 안배가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양의 전력과 초순수를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전력 공급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하루에도 수십만 톤에 달하는 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숙련된 연구 인력과 생산 인력, 수백 개 협력 기업이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단순히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입지를 결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논란을 보면 기업의 자율적 판단보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중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기업이 스스로 판단하여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손목 비틀기에 가까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제기된다.
상장 회사는 더욱 그렇다. 기업 경영진은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부의 요구보다, 주주 전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책임이 있다.
투자 결정이 경제성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면, 경영진은 주주들의 문제 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역 균형 발전은 분명 국가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균형 발전의 해법이 기업의 자유로운 투자 판단을 왜곡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기업을 특정 지역으로 억지로 보내는 것이 균형 발전이 아니라, 어느 지역에 투자하더라도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반 시설과 교육, 교통, 전력, 용수 등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균형 발전이다.
기업은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엔진은 힘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때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의 방향을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투자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역은 경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은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투자 환경의 경쟁이어야 한다. 정부 역시 기업을 정책의 도구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경제의 주체로 존중해야 한다.
기업은 국가 소유물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전리품도 아니다. 기업은 시장 속에서 경쟁하며 주주의 이익과 국가 경제의 성장이라는 두 축을 함께 책임지는 독립된 경제 주체이다.
정치가 이 원칙을 잊는 순간, 기업도 투자도, 결국 국가 경쟁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기업을 움직이려 하기보다 기업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산업 정책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