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까진 아니라도 이젠 증오하지 않는다.
멀리 사는 친구를 보러 시외버스를 타고 올라가는길, 중간 정차한 역이 하필 내 전 직장이 있던 동네다. 갑자기 전 직장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 사수는 틈만 보이면 갈궈대곤 했었다. 뭘 모르던 그 때는 내가 부족한 줄만 알았지만, 이유를 만들어 괴롭히는걸 겪곤, 그 곳을 떠날 결심을 하고, 이직했다.
이직할 때 그 사수에게 아무것도 고하지 않았다. 어디로 이직하는지, 왜 이직하는지. 뭘 듣든 바뀔 인간 부류는 아니라서. 떠난 직후엔 그가 증오스러워 참척을 당하길 빈 적도, 어떻게 앙갚음을 할지 고민한 적도 무수했다.
하지만 이직한 곳에서 배우며 부대끼며 2년 정도 지나니, 이젠 그가 증오스럽지 않다. 그 또한 나와 똑같이 비참한 회사와 가정의 부품임을 알기에, 그가 가르쳐 준 것의 7할이 엉터리지만 반면교사도 교사기에.
나는 그 사수보다 젊고, 이직한 곳에선 그 사수보다도 더 받는다. 그 보다 누릴 시간도 많고, 누릴 것도 많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수보다 훨씬 잘 살 것이다. 그걸 이젠 알기에,
용서까진 아니라도 이젠 증오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