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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다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그러니까 내나이가 스물셋, 넷되던 그 시기는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사람의 인생이 백년이라고 치면, 백년동안에 만날 나쁜 인간들을 1년이라는시간안에 한꺼번에 몰아쳐 만났다고 할까. 사기, 이간질, 배신, 구설수. 등등. 사람들의 관계에 치여 쓴맛을 참 여러번 봤다. 결국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람들과 치고받고 싸워서에 경찰서도 들락거렸고. 예술을 전공하였으나 정서가 불안해지자 작품활동이 전혀 되지 않았다. 늦어지는 졸업 탓에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성화시고. 그쯤되니 그냥 사람이란 대상이 모두 두려워졌다. 길가다 마주치는 고양이나 참새를 빼놓고 마주치는 인간은 다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길을 걷다 아파트가 보이면 떨어져 죽는 생각을 하고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내가 치어서 죽는 상상을 했다. 자려고 누우면 잠도 잘 안 오고. 어쩌다 잠이 들면 꿈을 계속 꾸었는데 그 꿈도 매우 현실적이어서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심했던 것 같다. 그런 날들이 꽤 여러달 반복되었을 무렵. 지인을 만나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점집 골목을 지나치게 되었다. 지인은 평상시에 그런 쪽(무속신앙)에 관심이 많은터라 점을 보자고 했다. 그 당시 지인은 꽤 오래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이었다. 매사에 의욕이 없는 나는, 점은 너 혼자 봐라 나는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그냥 있겠다고 했다. 점집은 옛날 일본식 상가 건물을 그대로 고쳐 쓰고 있었다. 그곳은 역전 앞, 점집 골목으로 대부분은 점집들의 형태가 비슷비슷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신당이 보였는데, 주인이 없었다. 날이 아닌가 싶어서 그냥 나오자고 했는데 지인은 한사코 기다리자고 했다. 주인도 없는 신당에서 무려 30분이 넘게 기다렸다. 더는 기다리기 지루하고 또 우울한 마음이 도져서 먼저 가겠노라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지인은 망설였으나 기다린 시간이 아쉬웠는지 꼭 점을 보고 가겠다는 거다. 알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점집을 나서서 한 30미터 걸었을까. 저기 먼 곳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정갈하게 쪽진 머리를 한 중년 아줌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차림새가 평범한 차림새가 아니라서 아- 저 아줌마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 하는 느낌이 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성큼성큼 걸어 지나치려는 순간 중년여인이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왜, 조금만 더 기다리지 벌써 기어 나왔노." 팔목을 잡고 왔던 길로 다시 끌고 가는 것이다. 사실, 끌려가는 동안에 이 아줌마가 도를 아십니까나, 다단계같은 귀찮은 사람이 아닐까 머리가 복잡했으나 왔던 점집으로 밀어넣길래 이건 뭔가 싶었다. 그 당시에는 가정용 씨씨티비가 흔한 것도 아니어서 꽤 놀랬다. "아주머니, 혹시 다른 곳에서 씨씨티비로 보고 계셨어요?" 지인이 여러차레 물어봤으나 썩은 미소를 날리며 "내 장바구니 안보이나. 장보다 쌔빠지게 뛰어온 거 안보이나. 늦었으면 못볼 뻔 했네" 실제로 아줌마가 내려놓은 장바구니 안에는 대파며 사과며 뭐가 많았다. 지인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기분이 업되어서 연애가 어쩌고 결혼이 어쩌고 쫑알댔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조용히 향에 불을 켜더니 "오늘은 너 말고 니 뒤에 가시내 이야기나 듣자" 며 나를 가리켰다. 그러더니 작은 소반같은 걸 내 앞에 끌어다놓고 마주 앉았다. 나는 아무 의욕이 없었다. 예를 들자면. 길을 걷다가 아무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 내 뺨을 찰지게 때리고 지나가도 아- 내가 한대 맞았구나- 하고 다시 갈길 걸어가는 마네킹처럼. 그때 내 상태가 그랬다. 좀처럼 무슨 대답을 해야할 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옆에서 지인이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옆구리를 찔러도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아줌마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리 죽고싶나." 경상도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이 지역은 전라도), 지인이 뭐라고요? 되물었더니 "아니~ 이 처자는 살고싶은 마음이 개미 눈꼽만큼도 없잖아. 친구아니야?" 지인 역시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내가 죽을만큼 괴로워 했을거란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지극히 외강내유형인지라 고민이 생겨도 내색을 안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쟁이 아줌마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나서 나는 오열했다. "내가 기도드리러 산에 갈때가 됐거든. 그래서 산에 갈 채비하느라고 한참 시장에서 장보고 있었는데. 아 느그 할머니가 살쾡이 같은 눈을 하고 날 보는기라. 사과를 하나 집어들면 사과 옆에서 째리보고 곶감을 집어 들면 곶감 옆에서 째리보고. 얼른 가라고 등 떠밀어서 진짜 가랭이 찢어지게 뛰왔다. 너거 할머니가 니 걱정 많~이 한다" ....... 그땐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이 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어렸을때부터 할머니품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이가 각별했다. 너무 연로하신탓에 자연사로 돌아가셨기에 사람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두고 호상이다고 위로하였으나 사람의 죽음을 두고 잘 죽었다 논하는 것이 나는 분했다. 하지만 슬픔은 그때뿐이었고, 나는 나대로 대학생활을 하느라 할머니를 잃은 슬픔은 곧 잊고 살았었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이 삐질삐질 밀려나왔다. 처음에는 뭔가 서러워서 흑흑거렸는데 나중에는 감당이 안될만큼 꺽꺽거리며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는데 주변인은 나의 힘듬을 알아주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몰라주는 나의 힘듬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알고 계신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더더욱 서러웠다. "그래가지고 내가 쌔빠지게 걸어왔는데, 할매가 니 뒤따라서 걷고 있데. 니 뒤에서 울면서 따라걷는거야. 그래서 내가 너를 알아봤지. 허리는 구부정해가지고 .. 허리 ㄱ자로 굽은 거 느그 할매 맞제?" 점쟁이 아줌마는 허리를 구부리며 지팡이짚는 흉내를 냈다. 우리 할머니가 맞았다. 우리 할머니는 나이 오십에 산에 땔감 주우러 갔다가 산비탈에서 구른 후에 점점 허리가 굽었다고 했다. 점쟁이 아줌마는 내 손을 감싸 쥐면서 "힘든 때는 누구나 온다. 보니까 너는 마음이 다른 누구보다 더 여리고 깨끗하네. 순진하니까 상처도 잘 받는거야. 할머니가 니 걱정되서 잠을 못잔다하잖아. 힘들 땐 죽을 생각부터 할 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이겨먹을 생각을 해야 산다." 시간이 너무 지난이야기라, 기억을 더듬어 쓴것이지만 아줌마는 아무튼 저렇게 이야기를 하며 나를 달랬다. 나는 할머니가 너무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서 정말 할머니가 보이냐고 할머니는 왜 천국에 가지않고 눈에 보이는 거냐고 물어봤다. 왜냐면 우리집안은 사돈에 팔촌까지 크리스챤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회 권사님까지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사는 지내본 적도 없고 절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데... 유일하게 나혼자만 불교인지라 집안에서 상또라이 취급을 받는 때도 있었는데. 교회식으로 말하자면 애진즉 천당가셔서 영면하셔야 할 분이 왜...? 점집 아줌마는 썩소를 지으시며 "나중에 죽으면 느그 할매한테 물어 본나" 하셨다. 아무튼 할머니가 손녀걱정에 죽어서도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복채를 드리려고 지인에게 눈치껏 얼마냐 물었더니 점집 아줌마는 됐다고, 다음에 둘이서 다시 놀러오라고 복채 받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러니까 나는 생전 처음 점보는 곳에 가서 처음부터 끝가지 울기만 하다 나온거다. 너무 울어서 지인의 부축을 받다시피 해서 나왔다. 어떤 믿음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변했다. 할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시 복학했고. 옆에서 누가 뭐라하든 정신승리로 버텨냈다.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알바를 두탕씩 뛰었으며 일이 끝나면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호프집이나 까페에서 꼭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갔고 나중에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게 싫어서 그 지인과 살림을 합쳐 함께 살았다. 그러면서 나는 예전의 김푼수로 다시 돌아갔다. 가끔 그날의 그 점집이 생각나서, 오년 후엔가? 남자친구와 함께 찾아갔는데 그 거리가 싹 재개발이 되어서 새 건물이 들어서고 그 점집 역시 없어져있더라. 그 아줌마가 무속인이든, 뭐든간에 힘들어하는 어린 아가씨에게 시간을 투자해서 힘내라 응원해주어서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다. ----- 요즘 힘들어하시는 분 많으신 것 같아서 위로가 될 글인 것 같아서 퍼왔습니다... 모두 화이팅!
솜사탕퐁신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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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주의) 진짜 무서운 가위 이야기
본인 가위 엄청 자주 눌리는 편 근데 직업이 간호사라 수면시간 불규칙 + 스트레스로 최근에 가위 눌리는 빈도가 더 늘긴 했었음 근데 가위 눌려도 딱히 귀신을 보거나 그랬던 경험은 없었음 그냥 귀에 이명이 들리고 몸을 못 움직이고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정도만 경험했었거든 거기다 손가락부터 힘을 빡! 주면 가위에 금방 풀려서 사실 가위에 오래 눌려본 적도 없었음 근데 저번주에 코로나에 걸렸음 크게 아프진 않았는데 편도가 엄청 많이 부어서 침 삼킬 때마다 목이 엄청 아프고 나중에는 삼킴하면 귀까지 아플정도로 목이 엉망이었음.. 그래서 물도 못 마시고 침도 못 삼키고 그냥 누워만 있는데 잠에 들기도 힘들더라 침 삼킬때마다 잠에서 깨니까.. 그러다 겨우 잠들었는데 그때 가위에 눌려버림 평소에는 크게 고생없이 가위에서 깨는데 그날은 진짜 온몸이 통나무가 된 느낌으로 뻣뻣하게 굳어서 깨어지지가 않더라 귀에는 주전자 끓는듯한 이명소리랑 심장 막 빨리 뛰고 하는데 처음으로 귀신으로 생각되는 뭔가가 보임 뭔가가 내 옆에 서 있었음 관에 누운것처럼 정자세로 눕고 고개도 바로 된 상태로 자고 있었어서 얼굴은 안 보이는데 눈의 흰자로만 보이기에는 흰 원피스 입은 여자였음 여중생인지 여고생인지 뭔가 성인이 덜 된 느낌이더라 처음으로 바짝 쫄아서 몸도 못 가누고 있는데 나를 그렇게 몇분동안 가만히 쳐다보더라 사실 체감상으로는 몇분이었는데 30초도 안된 것 같기도? 그러다가 갑자기 손에 든 하얀 베개같은 걸 치켜 들더니 내 얼굴을 퍽 때리더라 그러면서 가위에서 풀려났음 당연히 꿈에서 맞은 거니까 아프진 않았는데 그 뭐라고 해야하지... 뭔가에 얼굴을 쳐맞았을 때의 놀람 + 기분더러움 그 느낌만은 생생하더라 별 거지같은 꿈을 다 꿨네 하면서 다시 자려고 누웠음 또 침 삼킬때마다 너무 아파서 진짜 겨우 겨우 잠들었는데 또 가위에 눌리고 걔가 나타남 마찬가지로 옆에서 쳐다보다가 베개로 내 얼굴을 내려침 또 xxxx 하면서 깨가지고 겨우 잠들었는데 또 또 또 이번에도 가위 눌리면서 걔가 옆에 서있더라 근데 더 열받는건 얘가 마치 나 놀리는것처럼 베개로 때리는 척하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다시 얼굴 내려침 마치 평타 캔슬 하듯이 페이크를 섞어서 때릴듯 말듯 하다가 때리더니 존나 쳐웃더라 사실 웃었는진 잘 모르겠음 웃는 소리도 안나고 얼굴도 안보이니까 근데 쳐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음 이때부터 진짜 존나 열받았었음 안그래도 잠들기도 힘든데 개같은걸로 자꾸 가위눌리고 개같은 걸로 잠에서 깨고 하니까 이번에도 나타나면 진짜 죽여버린단 생각으로 겨우 다시 잠에 듦 마찬가지로 또 가위에 눌렸음 이쯤되니까 빡이 돌아서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하는데 마찬가지로 가위에 눌리고 어김없이 옆에 서있더라 이번에도 때릴듯 말듯 베개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마치 미드 부쉬에 박힌 핑와 막타를 쳐먹으려고하는 탑이랑 미드처럼 평캔을 오지게 하더라 존나 리븐 개고수인 ㄴ처럼 존나 청기백기 개고수인 ㄴ처럼 그러다 진짜 날 때리려고 맘 먹었는지 베개를 높게 쳐들었는데 그때 기적처럼 가위가 딱 풀림 내가 잉어처럼 퍼덕거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니까 그 ㄴ이 화들짝 놀라면서 내 방에서 도도도 달려서 도망치더라 진짜 존나 개빡이쳐서 나도 그대로 내 방에서 나간다음 그 개같은 귀신ㄴ 죽일 생각으로 바로 주방에 가서 식칼 큰 거 하나 뽑은 다음 그 귀신ㄴ 어디있는지 둘러봄 거실 쇼파에 이불 덮어쓰고 숨어있는게 보이더라 그대로 걸어가서 그 ㄴ이 베개로 나를 쳤던 것처럼 나도 칼 이빠이 치켜들어서 찍으려고 했음 근데 당연히 귀신은 없었고 쇼파에는 우리엄마가 누워서 자고 있더라 새벽 네시 반 나는 조현병이 왜 무서운건지 알았음 ------- 오랜만에 소름이 오도도도해서 퍼왔어요
솜사탕퐁신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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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이야기 하나 보시겠어요?
1. 엄마의 증조할머니는 신내림 받은 무당이셨다고 한다. 대대로 이어진 신은 아니었기에 그리 영험하진 않았고 그덕인지 보통 신력이 딸에게 내려간다던 속설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손들은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덕에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엄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귀신이 수시로 보이거나 신이 깃들진 않았지만 죽음의 냄새를 잘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은 엄마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였다. 성격이 모질기로 유명했던 할머니는 그 성격탓인지 병치레도 길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노인의 몸을 닦아주려 세숫대아에 물을 받아 방으로 향하던 엄마는 낡은 문 앞에 선 기이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깡마른 몸을 하고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사람의 형체를 한 그것은 온 몸이 짙은 회색빛이었다. 알몸으로 할머니의 방문 앞에 서서 비적비적 움직이더니 이내 문을 향해 큰 절을 했다. 그리고 엄마가 세숫대아를 떨어트린 것이 먼저인지 방 안에서 곡소리가 난 것이 먼저인지... 그리 오래 앓아 누웠던 엄마의 할머니는 그것의 절을 받고 그대로 숨이 넘어가셨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머지않아 또 찾아왔다. 할머니의 성격을 이어받은 엄마의 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는 성격이 별나기로 유명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암에 걸려 오랜 기간 병치레를 하고 계셨다. 그리 성격이 유별나시면서도 둘째딸인 엄마는 귀애했던 외할아버지였기에 나를 낳은지 얼마 안된 몸으로 엄마는 옆에서 오래 병수발을 하셨다. 죽을 쑤어 외할아버지의 방으로 향하던 엄마는 또 그것과 마주쳤다. 엄마는 죽그릇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몸에 비해 큰 머리에 새까만 눈동자. 그것은 엄마를 보고도 아무런 동요없이 천천히 큰절을 하기 시작했다. 절을 하지 못하게 말려야 하는데 엄마는 발도,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외할아버지의 머리가 뉘인 방향으로 절을 했고 그와 동시에 방에서는 외삼촌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도 이야기한다. 그것이 아마 저승사자가 아니었을까 한다고. 혹은 오랜 병치레를 견디지 못한 자식들이 만들어낸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 뒤 엄마는 한 번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이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졌다. 그 2년을 못버텨 내심 '어서 가셨으면'하는 마음이 그것을 불러낸 것만 같다고. 2. 엄마는 꿈을 꾸면 불안해했다. 잠귀가 예민해 수면제가 없이는 3시간 이상 푹 자지 못했던 엄마는 이따금 깊은 잠에 빠질 때면 무서운 꿈을 꾸곤 했다. 엄마가 약없이 푹 자는 다음날은 외출을 막는 엄마와 실갱이를 벌여야 했다. 하루는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 계속 불안해했다. 그러나 나나 아빠를 붙잡지는 않았기에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외출을 했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흰 봉투 두 개를 들고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아빠의 말에 엄마는 "**이 신랑이 갔어. 그런데 제 아버지 죽었단 소리에 급히 오던 딸도 교통사고가 나서 가버렸어. 부주를 두 개 해야할 것같아서."라고 하곤 아빠와 급히 장례식장으로 향하셨다. 엄마는 다음날 나를 붙잡고 한숨처럼 이야기를 토하셨다. 꿈에서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주저 앉아서 울고 있더란다. 바닥을 치고 가슴을 치며 울기에 엄마는 왜그러냐고 달래주려 다가갔는데 친구 앞에 두 개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무덤 두 개 사이에서 가슴을 쥐어 뜯으며 우는 친구를 본 엄마는 그대로 꿈에서 깼고 친구에게 바로 전화할까 싶었지만 괜한소리를 해서 기분을 상하게 할까 참았다고 한다. 친구분의 남편은 오랜시간 투병중이었고 그리 위중치 않은 병이었기에 개꿈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셨단다. 그러나 곧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고 갑자기 전날 밤 상태가 나빠져 남편이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위로를 건내고 신랑이 오는 대로 함께 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친구에게 또 전화가 왔고 엄마는 덜컥 심장이 내려 앉는 것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전화를 받음과 동시에 짐승처럼 울부짖는 친구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딸이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오다가 사고가 나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같이 타고 있던 친구들은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는데 딸만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하루사이에 남편과 딸을 잃은 엄마의 친구는 울음도 메말라버렸고 엄마는 그렇게 한동안 친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 뒤 엄마는 이따금 집안 어르신들의 꿈을 꾸곤 했고 그런 뒤에는 어김없이 어른신들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하루는 엄마의 시어머니, 즉 나의 할머니가 꿈에 나오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누가 들어도 혀를 찰 만큼 고약한 시어머니였다.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겪은 엄마는 아빠에게 '시어머니 모시고 살자고 하면 이혼이야.'라고 못박을 만큼 할머니를 싫어했다. 할머니 또한 엄마를 싫어했다. 며느리 중 유일하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맏며느리는 언제나 눈엣 가시였다. 그래서 고부관계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명절을 제외하고는 왕래가 없었다. 할머니가 아프다는 사실도 엄마와 나는 모르고 있었다. 장남인 아버지는 자신의 부인과 딸이 최대한 어머니와 만나지 않게 애썼다. 그래서 우리에게 할머니의 병세를 알리지 않았다. 엄마는 꿈에서 기나긴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강 건너에서 돌아가신 시어른들이 보였다고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시고모할머니와 시할머니, 시할아버지와 돌아가신 시아버지까지. 그분들은 꽃밭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그리고 엄마의 옆에는 할머니가 서 계셨다. 할머니는 곱게 한복을 입고 강 건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내 강을 향해 발을 내딛었고 강 저편을 향해 가는 할머니를 엄마는 그저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할머니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엄마는 그래도 곧 가실 텐데 얼굴을 보여드리라고 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용서할 만큼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엄마의 제안을 끝내 거절했고 엄마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김치를 담고 고구마를 쪄서 병원으로 가셨다. 그리고 다녀오셔선 몇날 몇일 한숨만 쉬셨다. "그 할마시가 나한테 사과를 다 하더라." 엄마는 멍하니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셨다. 엄마 손에는 할머니가 엄마 환갑 때 주신 붉은 복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환갑에는 부모가 자식 용돈 챙겨주는거라며 주셨던 복주머니. 엄마는 그 복주머니를 만지작거리시더니 또 깊은 한숨을 쉬셨다. "할마시 못난 자기 아들이랑 사느라 고생했다고 미안하다더라. 갈 때가 진짜 되긴 됐는갑다. 못된 할마시." 그리고 엄마가 꿈을 꾸고 정확히 일주일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집으로 돌아가셔도 된다고 한 그 바로 다음날 아침 그대로 일어나지 않으셨다. 87세,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다들 오래 울지 않았다. 엄마는 전혀 울지 않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서럽게 우셨다. 노친네 미워하는 마음 풀지도 못하게 하고 갔다고 서럽게 우셨다. 3. 나는 취미로 타로카드 공부를 했다. 그저 고등학교 축제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재미삼아 시작한 것이었다. 엄청난 양의 카드를 다 외우는 것은 입시를 앞둔 나에겐 귀찮은 일이었고 제대로 다 외지도 못한 상태로 동아리 부스에 앉아 손님을 받아야 했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큰 것을 바라고 타로카드를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들 학업이나 연애 등을 가볍게 물어봤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중얼거리고 나는 복채랍시고 1,000원씩을 받았다. 그러다 한 여자가 타로를 보러 왔고 특이하게 건강에 대해서 물어왔다. 대충 카드를 뽑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심장에 병이 있네요. 선천적이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명은 긴 편이니까." 여자는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나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입이 자의식을 가진 마냥 제 멋대로 술술 움직여 나온 말이었다. 알음알음 소문이 났는지 애들이 쉬는 시간에 찾아와 타로를 봐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용돈이 궁했던 나이었기에 나는 신이 나서 과자 하나, 음료수 하나를 받고 타로를 봐주곤 했다. 그러다 얼마 뒤 엄마랑 함께 집 근처에 사시던 무당 할머니댁에 놀러를 갔다. 신력을 거의 잃으시고 무당일은 하지 않고 힘든 사람이 찾아오면 아는 용한 무당들을 소개해주곤 하던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날 보면 늘 연신 팔이며 머리를 쓸어주곤 하셨다. 늘 인자하게 웃는 얼굴이셨다. 그러나 그날은 날 보더니 표정이 차갑게 굳으시곤 우리 엄마를 향해 화를 내셨다. "사주팔이까지 하며 내가 조심히 키우랬는데, 애한테 왜 잡귀가 들게 냅두노." 엄마는 무당 팔자에 아빠는 중이 될 팔자인데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나를 낳았기에 나는 원래 타고난 명이 짧거나 불우할 팔자라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엄마에게 내 사주를 팔라고 했다. 내 사주를 다른 부모 밑으로 넣어 귀신들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피를 받아 신들이 탐내기 쉬운 먹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엄한 얼굴로 나에게 신신당부하셨다. "니 계속 그런 무당 흉내 내고 다니면 잡귀 붙는다. 앞으로 그런 짓거리 하지 마라. 절대 하지 마래이." 나는 그 뒤 타로카드를 버리고 절대 남의 점을 봐주는 일따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나에게 다시 한 번 당부하셨다. '절대 귀신 불러들이지 말그라.' 4. 우리 외할머니는 참 어른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노친네라고 하대하던 아버지도 '너희 외할머니는 참말로 어르신이다.' 라고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 하곤 했다. 외할머니는 남에게 화내는 법을 몰랐다. 성격 유별난 시어머니와 남편에게도 단 한 번 원망하는 말 없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살아오신 분이셨다. 자식과 사위, 며느리, 손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 잘못으로 외할머니가 크게 다치신 적이 있는데 놀라서 우는 나를 향해 할머니는 "괜찮다. 놀라지 말그라." 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흐르는 피 대신 내 눈물을 먼저 닦아주셨던 분이셨다. 그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농활중이었다. 10일간 농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중이었기에 엄격한 규율 아래 휴대폰을 보는 것은 정해진 시간을 제하고는 금지되어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던 나는 갑자기 열이 오르고 속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밤부터 시작된 고통은 아침까지 이어졌고 선배들은 내 상태를 보더니 일을 가지 말고 숙소에서 자고 있으라고 했다. 진통제와 감기약을 먹고 바닥에 누워있던 나는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장이 뛰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빨리 휴대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모아둔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안다면 크게 혼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휴대폰을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켜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 뜯었다. 그리고 폰이 켜짐과 동시에 연달아 진동이 계속 울렸다. 부재중 전화 37통 문자 25개. 모두 엄마로부터 온 것이었다. 「어디고 할머니 위독하시다. 전화 해라」 「할머니 돌아가셨다.」 「전화 좀 해라.」 연달아 온 문자를 본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선배들이 오빠에게 전화를 해 가까스로 짐을 꾸리고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입관하기 5분 전 도착해 다행히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사람이 많아서 생각할 틈도 없었다. 울다가 쓰러진 엄마를 돌보랴 손님들 맞이하랴, 맏손녀인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았고 모든 손님이 다 사라진 새벽 1시, 그제야 바쁜 것이 슬픔을 잊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 보내는 자리에 자식들은 씻어서도 편히 자서도 안된다고 하던가, 이모, 외삼촌들은 이불도 덮지 않고 찬 바닥에 웅크려 눈만 감고 계셨다. 나는 문득 다시 슬픔이 떠올라 창가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엄마와 막내이모도 잠이 오지 않는지 내 옆으로 오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한 번 보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거기엔 외할머니가 계셨다. 내가 할머니를 다치게 했을 때 피보다 먼저 내 눈물을 닦아주시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창으로 장례식장 안의 자식들과 손녀들을 휘 한 번 둘러보시고는 걱정스런 표정을 하셨다. 나는 엄마가 알면 더 슬퍼할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이고 엄마, 편히 가시오. 자식 걱정은 말고." 엄마가 갑자기 울면서 말을 했다. 막내 이모도 이내 가슴을 치며 울었다. 엄마는 창밖을 보며 바닥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울었다. 저승가는 길까지 자식들 걱정이나 하고 왜 그러냐며 서럽게도 우셨다. 엄마랑 막내이모도 나와 함께 창밖에서 우리를 보던 할머니를 본 것이다. 하관하던 날, 아침부터 모진 비가 거세게 내렸다. 친척 어르신들은 이러다 하관 못하겠다고 근심스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셨다. 엄마는 내내 창밖을 보며 울고 계셨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선산에 도착함과 동시에 날이 거짓말처럼 갰다. 비가 모두 그치고 햇빛이 나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 평소 성품대로 자손들 힘이 들까 울음을 그쳐주셨다며 참 인정 많은 어르신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연의 일치라고는 하지만 나에겐 따스한 할머니의 성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일화였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자신은 다시 태어나면 고운 아가씨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시다고 했다. 얼굴이 그리 곱지 않으셨던지라 큰 행사나 바깥 나들이에 외할아버지는 부인인 외할머니 대신 우리 엄마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래서 고운 아가씨로 태어나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싶다 하셨다. 우리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고운 아가씨로 태어나면 더 좋은 신랑 찾아가야지 왜 그 고약한 아버지랑 다시 결혼하냐며 타박을 하셨다. 그래도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랑 다시 결혼하고 싶다 하셨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 엄마 꿈에 외할머니는 고운 한복을 입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외할아버지 뒤를 그렇게 따라가고 있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났을까, 엄마나 이모들 꿈에는 이따금 등장하던 외할머니가 내 꿈에는 뵈는 일이 없었다. 어린시절 할머니 품에서 컸던지라 내심 섭섭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아파트 입구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늘 곱다고 이 한복만 입으라고 칭찬했던 외할머니의 옥색 한복이 보였다. 고운 한복에 미용실에서 싼 돈을 주고 풀리지 않게 볶은 하얀 머리. 동그랗고 좁은 어깨까지. 틀림없이 우리 할머니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너무 반가워 대뜸 "할매!"하고 불렀다. 오후 6시, 여름의 시작이라 해가 제대로 지지도 않은 밝은 날이었다. 천천히 돌아보는 얼굴이 틀림없이 우리 외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한 번 그리고 우리집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 뒤 엄마는 큰 수술을 했다. 다행히 생명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큰 수술이었기에 엄마도 나도 아빠도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문득 외할머니가 그리 걱정되는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손녀에게 부디 당신의 딸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저승에서도 자식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계실 것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출처 : 우리가족 소소한 이야기 (디미토리) ----- 입추를 보내고 날이 좀 선선해졌지만 그래도 오늘같은 날 보면 좋을 이야기 가져왔습니다
솜사탕퐁신
25년 08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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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평생 20대에 머물러있는거같다
사람의 마음은 참 오래도록, 어느 순간 멈춰버린 듯한 채 살아갑니다. 그 시점은 유난히 감각이 예민하고, 세상이 처음으로 뜨겁게 다가왔던 시절, 바로 20대입니다. 몸은 분명 나이를 먹고, 주름도 생기고 체력도 줄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은 여전히 그때 좋아하던 음악을 들으며 똑같이 설레고, 그때 보던 영화를 다시 틀어놓으면 익숙한 대사에 미소 지으며 빠져듭니다. 20대에 좋아하던 노래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그 시절 내 감정의 배경음이었고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을 감싸는 공기였습니다. 심지어 그 가수를 지금도 좋아하고, 그 무대 영상을 유튜브에서 또 찾아보곤 하지요. 그때 좋아하던 연예인은, 지금 봐도 여전히 ‘내 이상형’ 같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사람의 미소에는 첫사랑 같은 감정이 녹아 있습니다. 그 시절 감성이란, 참 독특합니다. 어설픈 듯 진지했고, 말 한마디에 울컥했고, 누군가의 손길 하나에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던 시절. 사랑이란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던 시기. 이상형은 사실 구체적인 조건이 아니라 느낌 하나로 정의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길을 걷다 마주친 누군가의 눈빛만으로 하루 종일 멍해지기도 했지요. 그렇게 내 마음은 계속해서 시간을 따라가고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 시절 어디쯤에 자리를 깔고 눌러앉아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 그때 빠져들던 감성, 그때 꿈꾸던 사랑의 모양이 지금도 내 감정의 기본값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여전히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떤 대화에선 괜히 진심이 튀어나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드러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처럼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조건보다 설렘을 먼저 보고, 계산보다 감정을 믿고 싶고, 여전히 그때처럼 누군가를 뜨겁게 만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마음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시절을 끝내 떠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대라는 시공간에 머물러 계속 나를 구성하고, 내 선택과 내 감정의 기준이 되어주고, 때로는 나를 붙잡고, 때로는 나를 또다시 시작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마음은 평생 20대 어딘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건 유약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이 너무 뜨겁고 찬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그때처럼 살고 싶고, 그때처럼 사랑하고 싶은 겁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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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 면접이 사라지는 이유를 들으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최근 압박 면접이 점점 사라지는 배경에 대해 들었는데, 생각보다 이유가 단순하지 않더군요. 예전에는 압박 면접이 지원자의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을 확인하는 방법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상적인 사고와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질문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며 ‘상대가 왜 이런 태도를 보일까’부터 고민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 결과, 즉각적인 공격적 대응보다는 상황 자체를 완화하려는 반응이 나온다고 하죠. 반면, 이입 능력이 부족하거나 경쟁을 게임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거침없이 맞대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유형이 조직 내에 많아질수록, 협업보다는 각자도생 분위기가 강해지고, 회사 자원 활용도 개인 위주로 변하게 된다고 하네요. 결국 압박 면접은 지원자의 대처 능력을 본다기보다, 면접관이 원하는 특정 성향을 걸러내는 장치였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공정성이나 실제 직무 적합성과는 무관하게, 조직 문화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압박 면접이 줄어드는 건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라, 기업들이 협력 중심의 문화로 전환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민수아빠1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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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필요 없다"…노안 교정 안약, 곧 나온다
노안을 개선해주는 점안액이 곧 나온다고 합니다 선배님들!!!! 저도 이제 슬슬 노안이 올 때가 돼서 걱정중이었는데 큰 부작용은 없다지만 작은 부작용이 뭔지도 궁금하네요 ㅎㅎㅎㅎ 눈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노안을 개선해 주는 안약이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곧 제품으로 출시된다고 과학전문매체 뉴아틀라스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92/0002385249?sid=001 이 안약은 렌즈(LENX) 테라퓨릭스의 비즈(VIZZ)라는 제품으로, 성인 노안을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아세클리딘 성분의 점안제다. 하루 한 번 눈에 넣으면 최대 10시간 동안 근거리 시야 흐림을 완화해 준다. 비즈는 아세클리딘을 사용해 눈의 동공을 부드럽게 수축시켜 동공이 2mm 미만으로 줄어들면서 가까운 거리를 보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점안액은 눈의 초점 근육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먼 거리의 시야가 흐려지거나 근시가 발생하지 않는다. 렌즈 테라퓨릭스의 에프 쉬멜페닝크 사장 겸 최고 경영자(CEO)는 "미국에서 근거리 시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는 1억 2천800만 명의 성인을 위한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노안 완화 점안액이 개발됐으나 눈썹 무거움이나 유리체 망막 문제 등의 부작용을 유발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아세클리딘 기반 점안제는 큰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FDA 승인에는 3상 임상시험 결과가 근거로 작용했다. CLARITY 1과 2에서 총 466명을 대상으로 42일간 하루 1회 점안한 결과, 투약 30분 이내에 시력 개선이 시작돼 최대 10시간까지 유지됐다. CLARITY 3에서는 6개월간 장기 투여 시 안전성을 확인했다.
비가내리고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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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한눈에 보는 입추 매직
절기는 역시 과학인가 봅니다 ㅋㅋㅋㅋ 출근길이 이렇게 선선하다니
그레그레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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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절대로 워렌 버핏과 경쟁하지마라
워렌 버핏과 경쟁하려는 생각은 멋지고 도전적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워렌 버핏이라는 이름 뒤에는 단순한 행운이나 운용기술 이상의 엄청난 노력과 전략 그리고 시간을 초월한 꾸준함이 숨어 있습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매년 평균 20퍼센트 이상의 수익률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철저한 분석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투자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 개인 투자자들이 이와 같은 성과를 매년 꾸준히 내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먼저 시장은 언제나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오늘 잘 나가던 주식이 내일 갑자기 폭락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경제 위기나 글로벌 변수들이 투자 환경을 한순간에 뒤바꿔 놓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매년 20퍼센트 이상이라는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려면 단순한 행운뿐 아니라 뛰어난 투자 감각과 빠른 판단력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수익률을 극대화하려고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사용하거나 위험한 투자처에 과도하게 자금을 몰아넣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큰 이익을 볼 수 있지만 한 번의 실패가 자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양날의 검을 다루는 것은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반면 워렌 버핏 자신도 시장의 평균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는 평균 수익률만 꾸준히 따라가도 평범한 투자자로서는 성공한 것이라는 뜻을 여러 번 표현했습니다. 이는 결국 꾸준함과 위험 관리가 개인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단기적으로 20퍼센트 넘는 수익률에 집착하기보다는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따라가며 꾸준히 자금을 추가 투자하고 자산 배분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는 포트폴리오 관리가 더욱 현명한 전략입니다. 이런 전략은 마라톤과도 같습니다. 폭발적인 속도로 단숨에 달리려 하기보다는 꾸준한 페이스로 지치지 않고 달려 결국 완주하는 것이 더 확실한 승리법이죠. 워렌 버핏과 경쟁하는 대신 내 페이스를 지키고 내 원칙에 따라 자산을 천천히 키워나가는 데 집중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훨씬 안정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투자의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투자는 숫자 이상의 삶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지나친 욕심과 조급함은 오히려 독이 되고 인내와 계획 그리고 현실적인 기대치가 진짜 부를 만드는 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말하고 싶습니다. 워렌 버핏과 경쟁하지 말고 당신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십시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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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실소-111] 물고기의 반댓말은?
넌센스 퀴즈 (아재 개그) === 물고기의 반댓말은? . .. ... .... ..... (^o^) .... ... .. . .. ... .... ..... (^ー^) .... ... .. . .. ... .... ..... (^∇^) .... ... .. . .. ... .... ..... o(^-^o)(o^-^)o .... ... .. . .. ... .... ..... ~(´∀`~) .... ... .. . -. 모범답안: 불고기 === 피식했다면 댓글 고고! 신박한 기출변형이 있다면 댓글 고고! 좋아요 반사해드려요! ## 넌센스 퀴즈 더 보기: 커뮤니티에서 '가끔은 실소' 검색 =) 화장실에서, 식곤증에 좋아요 😂 === 우하하 🤣🤣🤣 웃음 가득한 하루 되세요!
싱싱한 회사원
억대연봉
동 따봉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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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흙수저 모여라
다들 잘 살고 계심? 처음으로 글 써봅니다 소득구간 때문에 혜택은 하나도 못받고 세금은 꽤나 내고 청약은 저소득 금수저를 위한 제도같고 스타텁에세 열심히 갈아넣어서 소득이 올라가니 나라가 다 가져가는 기분
koomz
억대연봉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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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같이 할 사람이 없네요
요즘 퇴근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루 일과 끝내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딱~ 하고 싶은데…" 직무 특성상 늘 밤 11시쯤 혼자 퇴근하다보니, 친구, 전·현 직장 동료랑도 평일 저녁에 술 한잔 나눌 일이 거의 없어요. (20대 후반 미혼입니닷..) 오후에 출근해서 체력적으로 피곤하진 않은데, 그 시간대에 열려있는 고깃집이나 술집에 혼자 들어가기엔 망설여지고 괜히 그냥 집으로 돌아오게 되네요. 일 마치고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그 소소한 즐거움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혹시 비슷한 생활 리듬 가진 분들 계신가요? 퇴근 시간이 늦어서 술상대가 없는 분들 계시면 어디서라도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ㅎㅎ..
바닐리치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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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의 선택에 대하여
짝짓기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의 선택은 단순히 조건이 좋은 사람을 고르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조건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사람과 프로그램 안에서 실제 커플이 되는 것은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분명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단순한 일반인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이미지를 일정 부분 관리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건만 좋은 사람’과 억지 커플이 되는 건, 프로그램 밖의 자신의 삶이나 대중적인 이미지에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죠. 게다가 프로그램이라는 환경 자체가 한정된 무대에서 예쁜 그림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말은 곧, 출연자들은 커플이 되는 것 자체보다 방송 안에서 보여지는 스토리와 케미, 그림, 분위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연애 가능성’보다는 외형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시청자들에게 설레는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조합을 택하고 싶어지는 욕구가 커지는 것입니다. 이건 단순히 허영이 아니라, 방송이라는 무대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를 신경 쓰는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출연자 입장에서는 조건 좋은 사람과 진지한 관계로 이어지는 리얼리티를 만드는 것보다는, 외적으로 끌리는 사람과 함께 예쁜 그림과 감정선을 그려내는 서사를 만드는 데 더 큰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프로그램 내에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 결과, 출연자 간 실제 커플 성사 가능성은 낮아지고, 그보다는 비주얼적인 케미, 카메라에 잘 담기는 감정선, 시청자의 설렘 유도가 우선이 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결국 짝짓기 프로그램의 본질은 연애 리얼리티가 아니라, 로맨스 연극에 가까운 셋업이 되어가는 셈이죠. 즉, 조건보다는 끌림, 현실보다는 장면, 진심보다는 ‘연출 가능한 감정선’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공간. 그게 요즘 짝짓기 예능의 진짜 성격일지 모릅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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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눈삼이라지만 그냥 알려줘요 이거 어떤식으로 쓰심?
명함 공유용? 이직용? 아니면 블라인드 대타용?
안녕늒네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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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 봐드립니다
댓글 달면 프로필에 색깔 나오잖아요 쩜 찍어보세요. 재미로 보시길 복채는 좋아요로 주세요 🟡노랑 - 80점. 업무가 잘 풀리고 이직 등 좋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초록 - 30점. 조심하세요.. 뒤로넘어져도 코깨지는 날입니다 💧파랑 - 75점. 사랑과 우정운이 최고입니다. 🌸핑크 - 78점. 금전운이 찾아옵니다. 🔵남색 - 55점. 포기하지 마세요. 꾸준함이 나중에 빛을 발할 겁니다. 🟣보라 - 스페셜 !! 100000점. 복권이라도 사보는게 어떨까요? 특별한 행운이 찾아옵니다.
마군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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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안 아프시던 아빠..
감기한번 안걸리시던 아부지께서 해외 출장가시더니 열감기가 나셨다고.. 같이 따라가신 엄마가 영상통화로 보여주셔서 알게 됐는데 아프신 모습 보니까 괜히 눈물이 나네요 강철같은 아부지, 평생 안 아프실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아파도 내색을 안하셔서 여태껏 몰랐던 것 같아요 휴 ㅠㅠ 퇴근길 지하철에서 웬 눈물이 주책이네요
교육이조아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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