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고 어렴풋이 알게 된 것들
20대땐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하고 일도 제일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비록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화려한 직장에 다닌 것도 아니었지만, ‘사실 난 저력 있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믿음을 꽤 오래 붙들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에고가 거의 만땅으로 차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 삶을 설명하고, 내 사상을 설교하고, 내 목적을 설계도처럼 펼쳐 보이는 데 많은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게 의미 있는 일이고, 또 당연히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한계를 또렷하게 봤습니다.
회사에서, 관계에서, 일상 곳곳에서 “아, 나는 무조건 잘 되는 쪽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머리로만 알던 좌절이 아니라, 가슴 한가운데로 쿡 박혀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신과 약도 먹어보고, 여자친구와 헤어질 마음도 여러 번 먹어보고, ‘여기서 더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고 밤마다 스스로에게 묻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꽤 위험한 생각들을 가볍지 않게 오래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를 대충이라도 버티다 보니, 이상하게도 30대 중반쯤부터 삶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도했다기보다는 반쯤 강제로, 내려놓을 건 그냥 내려놓고 살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이전만큼은 신경 쓸 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내가 꼭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구나’ 하는 걸 서서히 인정하게 됐고, 이상하게도 바로 그 지점부터 일들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키우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내 인생의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 주제였을 텐데, 이제는 아내의 하루가 어떤지, 아이가 오늘은 왜 이렇게 자주 웃는지, 울 때는 몸을 어떻게 비트는지 같은 것들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가족과 함께 밥 먹고, 장난치고, 밤에 같이 누워 있는 시간이 이제는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내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가족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방향을 찾기 위해 사는 느낌입니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할 때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들으려고 애쓰고, 아이의 바디랭귀지에서 “지금 불편한 건지, 졸린 건지, 그냥 심심한 건지”를 맞춰 보면서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세상이 나를 알아줬으면 했고, 이제는 내가 내 사람들을 좀 더 잘 알아주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살다 보니, 삶은 계속 변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해졌습니다. 인생은 한없이 나쁘기만 한 시기도, 한없이 좋기만 한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끝났다고 느꼈던 순간에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예상 못했던 숨구멍이 생겼고,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을 때에도 어느 날 갑자기 바닥이 열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에 있든 굳이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는 걸 압니다. 잘될 때는 영원할 것처럼 들떠 있지 않으려고 하고, 힘들 때는 이것 역시 영원히 가지는 않으리라는 걸 기억하려고 합니다.
20대에는 ‘나는 특별하다’고 믿었고, 30대에는 ‘나는 별거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면, 지금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서 있는 중입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그렇다고 완전히 하찮은 존재도 아닌, 그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요.
아마 앞으로도 인생에는 여러 번의 변곡점이 찾아올 것입니다. 또 다운될 수도 있고, 또 기지개를 켤 수도 있겠죠. 다만 이제는 압니다. 어느 쪽에 있든, 그 순간의 나를 지나쳐 가게 만들 힘이 내 안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견뎌 줄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덜 호들갑 떨면서, 그래도 꽤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