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글
전체보기
글쓰기
회원님, 지금 회사에서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새글피드
전화 인터뷰 왜케 떨려요?
물론 경력지원이다보니 준비 많이 못한건 사실인데 일하다가 갑자기 전화와서 나가서 받는데 뜬금 자기소개 하라고 하시는데 ‘그냥 저는 밝고 착하고 사람들과 잘지내고 일은 이거이거이거 해와서 여기에 잘 적응해서 성과낼 수 있습니다!’ 등으로 가볍게 하면 되는데 그냥 중언부언 웅얼웅얼 몬말인지도 모른 말해서 그때부터 머리가 하얘짐 ㅋㅋㅋㅋ 연습했다 생각하고 좀 평소에 깊게 생각해두고 외우려고 하면 안되겠음
웅렁니
2일 전
조회수
270
좋아요
0
댓글
3
농심 삼양 본사의 수출담당자를 간절히 찾습니다. 또는 밴더로 호주 수출 가능하신분을 찾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베트남에서 킴베오커피를 운영하는 김석환대표 입니다. 호주에서 식료품 대형창고와 유통을 하고있는 베트남 출신 지인이 한국 라면을 200만 베트남 호주 마트에 납품을 원하여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본사의 영업팀도 좋치만 수출 밴더도 상관없습니다. 언제든지 카톡 이메일 환영합니다. CAFEK4U [email protected]
VN 김석환대표
2일 전
조회수
347
좋아요
2
댓글
2
인사담당자님들 서류합격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제목 그대로입니다. 최근에 회사 하나 지원했는데 토요일에 이력서 열람 알람이 오더니 2분뒤에 서류합격했다고 면접 일정 안내가 왔습니다. 이렇게까지 빠른 경우도 있나요?
라꾼쿵
2일 전
조회수
314
좋아요
2
댓글
6
etf가 너무 무서워요
작년 12월에 가입해서 isa, irp, 퇴직연금 나눠서 etf 몇개 담아놨어요 초보라서 주식 한 종목만 담기는 무서워서요ㅠㅠ 투자 성향도 검사해보니까 원금보존형이라 안정형이고,,어쨌든 어차피 예금에 묶일 돈 연평균 4~5%정도 오르길 바라면서 세가지에 똑같은 etf 넣어놨는데 벌써 천만원이 올랐어요. 기분은 좋은데 이러다 하루아침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무서워요 전쟁났을 때 수직하락 하는거 보고 아 몰라 묻어놔 없다고 생각해 하고 냅뒀는데 요새 매일매일 올라서 천만원정도 올랐더라구요.. 전체 투자액이 4천만원 조금 안되는데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한데 그냥 그렇다구요... 비틱질인가 이거 그냥 저는 투자 초보라서 너무 무서워요..
우우웅으응
2일 전
조회수
1,835
좋아요
11
댓글
7
이직한지 5일만에 연봉 더 높이 주는 곳 합격 연락 왔는데
이직하자마자 이직 하셨다고 하시니 연봉 200 더 올려주신다 연락 오셨고 날짜 다 맞춰 준다고 하셨어요. 동종 업계라 고민이 됩니다… 결정을 요번주까지 내리고 싶습니다. 워라밸은 그 회사가 더 좋은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빡센 환경에서 성과를 올릴 수 있고 고민이 됩니다 ㅠㅠ
yachae
2일 전
조회수
2,274
좋아요
10
댓글
25
리멤버 포지션 제안
안녕하세요. 좀 전에 스카우터 통해서 포지션 제안 받았는데, 리멤버도 사람인이나 잡코리아처럼 무작위로 포지션 제안 뿌리는 거라고 봐도 무방한가요? 찾아보니까 해당 공고가 공식적으로 오픈되어있진 않습니다.
에욱
2일 전
조회수
1,104
좋아요
3
댓글
7
무거운 부탁.. 뼈에 남는 기억..
* 참 생각이 많아지는 내용입니다.. 우리 집 위층에는 거의 아흔이 다 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두 분은 늘 둘 뿐이었다. 누가 찾아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나갈 때도 둘. 들어올 때도 둘이었다. 어느 날, 그분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 집, 사시겠어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나는 이미 집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집을 또 사야 하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주신다면 3,300만 원만 받겠습니다.”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었다. 65㎡ 정도 시세로 따지면 최소 8,700만 원은 넘는 집이었다. 내 첫 생각은 이거였다. 뭔가 이상하다.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직접 쓴 계약서였다. 글씨가 너무 반듯했다. 그 나이에 쓴 글씨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건은 세 가지 뿐이었다. 첫째, 3,300만 원을 한 번에 지급한다. 둘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살 수 있게 한다. 셋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집 안의 모든 것은 나에게 넘긴다. 나는 두 분을 집 안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품속에서 작은 철제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등기 관련 서류, 주민등록증 사본, 그리고 사망진단서 세 장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은 아들의 것이었다. 서른두 살, 간암. 한 장은 딸의 것이었다. 스물아홉 살, 교통사고 마지막 한 장은 유일한 손자의 것이었다. 일곱 살, 백혈병. 사망한 해는 각각 2008년, 2011년, 2014년이었다. 종이 모서리는 전부 닳아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형편을 알아봤다고 했다. 대출도 없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사람도 괜찮아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은 집값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조금 쉬어 있었다. “우리 장례 보증금입니다.” 두 분의 연금은 합쳐서 한 달에 약 136만원, 생활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무섭다고 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는데, 집 안에서 썩어가고, 냄새가 나고 나서야 발견될까 봐. 할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3,300만 원을 받고 서류를 갖고 있으면, 그때부터 책임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 주고, 화장해 주고, 제일 싼 납골 자리 하나 잡아서 같이 넣어주면 됩니다. 남는 돈은 다 가져가세요. 우리가 당신을 고용하는 겁니다.” 나는 목이 꽉 막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없이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안에는 세 묶음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두 분이 늘 먹는 약 목록과 건강보험 관련 서류. 두 번째는 장례식장 기본 상품 가격표. 가장 싼 193만원 짜리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세 번째는 통장 사본 이었다. 잔액은 2,240만 원 조금 넘게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비밀번호는 뒤에 적어놨어요. 병원비가 부족하면 여기서 쓰세요. 남으면 그 3,300만 원까지 전부 가져가세요. 공증도 하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못 잤다. 머릿속에는 그 집 베란다에 걸려 있던 낡은 옷 두 벌이 계속 떠올랐다. 너무 많이 빨아서 색이 바랜 옷이었다. 그리고 매일 오후 네 시마다 위층에서 아주 작게 들리던 옛 노래 방송 소리도 떠올랐다. 사흘 뒤, 나는 현금 3,300만 원을 준비했다. 두 분과 함께 공증을 받으러 갔다. 계약서에는 내가 한 줄을 더 넣었다. 나는 매주 최소 한 번, 위층에 올라가 두 분을 확인한다. 할아버지는 서명할 때 손을 심하게 떨었다. 지장을 찍고 나서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눈빛은,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겨우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위층에 올라갔다. 딱 30분 정도 앉아 있었다. 두 분은 말이 많지 않았다. 나는 전구를 갈아주고, 수도꼭지를 고쳐주고, 문고리를 봐드렸다. 할머니는 가끔 직접 말린 무말랭이를 작은 봉지에 담아 내 손에 쥐여줬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곱 달 뒤, 어느 화요일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아침에 장을 보고 돌아오다 계단 복도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올라갔을 때, 할머니는 혼자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이미 차가워진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 아주 조용했다. 나를 보더니 한마디만 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나는 두 분이 표시해 둔 가장 싼 장례 상품으로 장례식장에 연락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할아버지 베개 밑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3년 11월 5일. 아래층 이웃이 와서 부엌 수도꼭지를 고쳐줬다.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내가 담근 반찬이 맛있다고 했다. 오늘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친 지 214일째 되는 날이다. 돈은 헛쓰지 않았다. 사람도 잘못 보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화장한 지 37일째 되는 날 세상을 떠났다. 잠든 채로 갔다. 할머니 쪽 침대 협탁을 정리하다가 나는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지난 일곱 달 동안 내가 가져갔던 과일과 과자 포장지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들을 전부 깨끗이 씻어놨다. 반듯하게 눌러놨다.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가장 아래에는 새 통장 하나가 있었다. 열어보니, 내가 처음 드렸던 3,300만 원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예금주는 내 이름이었다. 나는 두 분을 한 쌍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납골묘에 모셨다. 가장 싼 곳은 고르지 않았다. 비석에는 이름과 태어난 해, 떠난 해만 새겼다. 그 집을 정리하던 날, 햇빛이 좋았다. 낡은 가구들은 버리지 않았다. 텅 빈 거실에 서 있는데,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두 분이 3,300만원과 빈집 하나로 사 간 것은 내 돈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수십 년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두 분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내려앉을 그 기억이었다. 이것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비싼 부탁일 것이다.
공인PM김성일
쌍 따봉
2일 전
조회수
2,066
좋아요
257
댓글
16
뒤늦게 성생활에 눈 떠서 일상생활이 불가하네요..
혼전순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안 하고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 하고 나서 처음에 안 되어서 애를 많이 먹었음 서로 기다리면서 여러번 시도한 끝에 이제 제대로 하기 시작했는데 매일 출근해서 생각나고 죽겠네요..;; 일도 안되고,;; 애 벌써 가지면 못하니까 아쉬울 정도...;;; 당황스럽네요 진짜
키키마녀배달뷰
쌍 따봉
2일 전
조회수
3,375
좋아요
17
댓글
18
30대 중반에 자동차 품질
전문대 나와서 여태 생산직, 설계 하다가 34살에 자동차 품질 입사해서 36살이 됐습니다 제 생각으로 36살이면 취업 시장에서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타 분야 또는 타 부서로 이직하신 경험이 많으실까요?? 다른분들 의견 궁금합니다
열심히사는중임
2일 전
조회수
294
좋아요
1
댓글
2
27살 순자산 50억 글삭 엔딩
세금 관련해서 궁금해서 질문했는데 대답도 못 듣고 글삭 해버렸네요…
도람푸우
억대연봉
2일 전
조회수
1,480
좋아요
5
댓글
8
병원 닥트를 공사했어요
하나질문좀 할려고합니다 저는 대구에서 닥트를 공사를 하는사람입니다 공조 닥트를 계약을하고 공사를 하는도중에 전기실이랑 기계실에 혼기 닥트공사를 해달라고 해서 저는 계약을 하고 해야하는것 아닌가 해서 물어보니공사가 급하니 먼저 작넙 하고 돈은 서로 마추면 됀다고해서 공사를 했데 지금은 저한테 공사를 시킨적없다라고말합니다 이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할까요 저한테 공사를 시킨곳은 대구에 설비업체입니다(동신이란 없체) 제가법으로 하드라도시간과 비용이너무 들고요 벌서3년째입니다 돈을 바들수 있는방법 없나요
오춘택
2일 전
조회수
98
좋아요
0
댓글
6
서울 어제 새벽에 번개쳤나요?
상봉쪽 거주하고 있는데 어제 밤에 무슨 대포 터지듯 '쾅' 하는 소리에 깼습니다. 창 밖을 보니 고요히 비만 내리고 있더라구요. 번개가 친거라면 그냥 지나가겠고 진짜 큰 사고가 났음 엠뷸 소리 들리겠지 라는 생각으로 다시 잠을 청했는데 혹시 저랑 같은 소리 들으신 분 있으신가요? 아님 그냥 스트레스 땜에 그런건가..;;;
인라이븐
2일 전
조회수
437
좋아요
5
댓글
6
권고사직 ㅇㅅㅇ
안녕하세요 회사를 다니다가 몇칠전에 권고사직을 받아 하루만에 백수가 되어버린 직장인입니다. 대처할 방안이있는지 여러뷴들의 의견 요청드립니다. 하루 면담하자면서 면담을 하였고 권거사직을 당부받았고 바로 내일 퇴사하라고 지시를하길래 전 세번이나 다음날 퇴사를 거절하고 한딜뒤, 일주일 , 차주에하겠다고하지만 계속된 인사팀 압박에 할꺼있어요? 왜요? 이런질문에 그냐우알있다고 했습니다 인사팀 사직서에 싸인을 얼마나 급하게받을려고했는지 통화를 그당일에 12번이나하더균요 짜증내서 받지도읺았습니다 위 회사 취업규칙에 연차수당 , 실업급여, 퇴직금은 지급하지만 확인해본바 위 회사 취업규칙에는 3개월 이상된직원은 하루만에 해고를 할수없디고써있더군요 30일내 기간을 줘야하며 안줄시에 30일치의 급여를 지급해야한다고써있네요 위로금도 안준 회사 노동부에 신고할예정입니다 퇴사 압박으로 사직서에 싸인하려했던게 충분할까요 녹음본에 통화기록 다가지고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회사 취업 규칙도 가지고있습니다. 지료를 다 제출하면 받아낼수있을까요?
루데
2일 전
조회수
1,582
좋아요
7
댓글
14
친오빠가 애있는 베트남 여자와 혼인신고한대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글이 긴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친오빠는 36살이고 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객관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아닙니다. 키 178에 평범한 외모고, 친구와 요식업 동업 중인데 지금 전국에 매장도 여러 개 운영하고 있어 제 지인한테 몇번 소개시켜달라는 말도 들었어요.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제가 국제결혼 자체에 편견이 있는지, 흔히 유튜브에 나오는 “나이 어린 동남아 여자와 결혼하는 외로운 남자” 같은 케이스는 아니라는 점을 설명드립니다. 며칠 전 엄마한테 연락이 와서 오빠 관련 얘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사업 문제인가 했는데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오빠가 2년 정도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베트남 사람이고, 자기보다 2살 어리며, 20대 초반에 한국에 들어와서 현재는 불법체류 상태다, 그런데 최근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해요. 여기까지는 부모님도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정도로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자분에게 5살 아이가 있다고 .. 엄마가 그 얘기를 하면서 많이 우셨어요. 저도 처음엔 현실감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너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합니다. 오빠 말로는, 그 여자분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 결혼까지 생각했다고 해요. 아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부분이 걸려서 2년 동안 아이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불법체류 문제가 걸려서 5월 말쯤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됐고, 변호사까지 써서 아이와 함께 체류할 방법을 찾아봤지만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그냥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생각했는데, 이번 임신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여자분은 첫째 아이 임신 당시 남자가 떠났고 혼자 출산해서 5년 동안 키웠다고 해요. 지금은 타지역 친한 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본인은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를 보러 간다고 합니다. (아이와 같이 올라왔으면 되는데 왜 따로 사는지 이해가 되진 않아서, 이 부분은 만나서 물어보려고해요.) 오빠는 원래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상대가 딩크를 원해서 결국 헤어졌습니다. 오빠는 아이를 꼭 원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 그 전 여자친구가 한 번 임신했었는데 본인은 부모님이 이혼한 트라우마가 있고 어릴때 기억이 안좋아서 낳기 싫다며 중절했다고 하더라고요. 오빠한테는 그게 큰 상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배 속에 아이가 있는데 베트남으로 돌려보내면 첫째 아이 버린 남자랑 내가 뭐가 다르냐”고 하면서, 혼인신고를 하면 결혼비자가 나오니까 그걸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사실상 이미 결심은 끝난 것 같아요. 첫째 아이도 데려와 같이 키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게되면 이건 당연하다고 가족 모두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남의 아이를 키운다는게 생각보다 더 어렵고 힘든일이니 걱정이 앞서고, 한 아이의 인생이 같이 오는거니 깊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근데 오빠는 아직도 첫째 아이를 안만나봤다는데 이 부분도 이해가 안가요 .. 지금 배 속의 애한테만 너무 초점이 맞춰진 것 같습니다 ..) 부모님은 지금 여자분을 직접 보면 허락한다는 걸로 오해할까봐 현재는 안 만나겠다는 입장이고, 저는 일단 저희 셋이 만나서 얘기라도 해보자고 했습니다. 산부인과도 같이 가보려고요. 여자분 혼자 산부인과 가서 사진으로만 오빠한테 보내줬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혹시 모르니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가 오빠한테 쓴소리 들었지만 결국 알겠다고 하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긴 합니다. 얘기 하는 내내 오빠가 여자분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게 느껴졌어요. 솔직히 저는 엄마 입장도 이해되고, 여자분 입장도 동시에 이해됩니다. 저도 지금 8개월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엄마 입장에서는 왜 내 아들 발목을 잡는건지, 왜 임신한걸 말한건지, 그냥 지우고 베트남 들어가면 안되는건지 ..여러 생각이 들고 그 여자분이 너무 미워서 혹시 결혼한다 하더라도 관계회복에 아주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여자분 입장에서는 아이를 둔 엄마 입장으로써, 홀로 출산을 감행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점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5년동안 한국에서 아이를 키웠는데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교육 및 생활환경 차이가 크다보니 저같아도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여자로써 제 옆에 있는 사람을 놓고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첫째 애도 같이 키울 생각을 해주고, 의도가 되었든 아니든 출국 한달전에 임신이 되었고, 진심으로 본인을 아껴주는 사람이 마침 옆에 있으니 이것도 이분의 복인가 싶기도 하구요 .. 제 오빠가 이렇게까지 책임감 강하고 편견 없는 사람인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모든 마음들을 공감하다가도 저는 결국 우리 가족편이니 그럼 우리 부모님은 ? 오빠는 ? 왜 힘들고 어려운길을 선택하는건지 마음이 아픕니다. 이미 오빠 마음은 정해진 것 같긴 한데… 이게 맞는 건지,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어서 글 남겨봅니다.
밤밤밤밤밤이다
2일 전
조회수
1,611
좋아요
19
댓글
9
대표전화 : 02-556-4202
06235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134, 5,6,9층
(역삼동, 포스코타워 역삼) (대표자:최재호, 송기홍)
사업자등록번호 : 211-88-81111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2016-서울강남-03104호
| 직업정보제공사업 신고번호: 서울강남 제2019-11호
|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2020-3220237-14-5-00003
Copyright Remember & Compan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