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하고 있는 친구의 마니또가 됐습니다. 마음을 들키면 안 되는데...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저희 회사의 마니또 이벤트. 어제 마니또 추첨을 했는데, 제 손에 들린 쪽지를 펼쳐보고 숨을 멈췄습니다. 제가 마음에 두고 있는 동료의 이름이 적혀 있었거든요.
그 친구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제 마음 안 들키려고 지난 시간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괜히 퉁명스럽게 대하고, 퇴근길에 마주치게 되면 들를 곳이 있다고 중간에 빠지고... 혹시라도 제 마음 눈치챌까 봐 늘 경계 상태였죠.
그런데 갑자기 마니또라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그 친구에게 잘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겁니다. 선물을 고르고, 따뜻한 메모를 남기고, 마음껏 친절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그 친구를 챙겨줄 수 있는 기회가요.
겨우 잠재웠던 마음 속 파도가 요동치는 기분입니다. 매일 아침 그 친구 자리에 무슨 선물을 놓을지, 메모는 뭐라고 쓸 지, 어떻게 안 들키게 잘해줄지, 나중에 결과가 공개됐을 때 그 친구 반응이 어떨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신없이 설레기 시작했어요.
그 친구가 뭘 좋아하는지 저는 너무 잘 알아요. 아침마다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겨울에 손이 유독 차가워서 핫팩을 항상 챙기는지, 단 거 싫다면서도 슈크림 붕어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은 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까지...
그래서 마니또 선물을 고르는데 너무 신이 나는 거예요. 딱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고르면서, 이러다 제 마음이 함께 들켜버릴까 봐 두렵습니다. 제가 너무나 정확하게 취향을 저격하는 바람에, 그 친구가 '이거 혹시 날 좋아하는 사람이 마니또 된 거 아니야?' 라고 눈치챌까 봐요.
애써 닫아뒀던 감정의 문을 마니또 이벤트 때문에 활짝 열게 생겼습니다. 남친이 있는 사람에게 주체하지 못할 이 마음을 쏟아붓고 나면, 12월이 끝났을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마음을 애써 외면했던 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마음 안 들키고 상냥하게만 잘해줄 수 있을까요? 신나면서도 불안하고, 설레면서도 이 강한 설렘 때문에 현타가 옵니다. 소용돌이치는 이 마음을 혼자 어찌할 수가 없어 여기에, 익명의 힘을 빌려 글을 써봅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실현되면 안 되기 때문에 '연애' 카테고리 대신 '자유주제' 카테고리에 올려봅니다. 나는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