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의 진로상담
나는 제이켠이라는 이름의 래퍼로서 20년을 살아왔다.
흔히들 ‘래퍼’라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프리스타일로 살고, 돈도 왕창 벌고 헤프게 쓰며, 대답하기 싫은 톡은 무시하고.
(써놓고 보니 엉망이군요.)
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 어떤 래퍼는 저축과 재테크를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고, 어떤 래퍼는 성실히 답장도 잘하는(?) 그런 친구도 있다.
나는 후자 쪽에 속했다.
이따금 작사 강의나 개인 레슨을 하곤 했는데, 수강생들이 지불한 돈과 시간을 아깝게 하지 말자는 주의로 최선을 다해 임했다. 가르친다는 행위는 곧 그들이 골인 지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함께 뛰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 친구가 기억난다. 중학생에서 막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는 시기의 친구였는데, 심지어 그의 아버님과 식사 자리를 갖기도 했다.
“우리 애가 가능성이 있나요?”
아버님이 여쭤보셨다. 아주 점잖으신 분이었는데, 내가 입장 바꿔 생각해 보아도 아들이 갑자기 래퍼를 하겠다고 때를 쓰면 곤란할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제는 랩으로 대학을 갈 수도 있는 세상이라(놀랍지만 사실이다) 많은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친구에게 막연히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싶었다.
래퍼의 진로 상담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는 광경이지 않나. 아무튼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고, 결국 수업을 듣기로 했다. 단, 열심히 하는 취미 정도의 선에서 하는 것으로.
사실 많은 것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취미라는 것은 본래 그것이 잘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다. 잘되면 그런 대로 기쁘고, 안 되면 해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지 못했다. ‘열심히 하는 취미’가 아니라 모든 것을 바쳐버린 수준이 되었다. 내 삶의 기조가 그랬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항상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때 “이걸 더 해볼걸…” 하고 후회할 것인가?
나는 후회하지 않을 만큼 음악을 해왔고, 그건 무모할 정도였다. 예를 들어 100만 원을 곡 만드는 데 쓰면 10%도 되돌아오지 않는, 그런 마이너스의 사업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수입이 없어져 취업을 하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내 삶에서 아주 운이 좋은 부분이라 생각한다.
자, 지금의 나는 후회하는가?
나는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다. 단, ‘열심히 하는 취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할 것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 이루고자 하는 것이 나를 삼켜버리지 못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대단한 거라고.
이제 인생을 ‘열심히 하는 취미’ 정도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이렇게 써놓은 김에 오늘은 성수동이나 어슬렁거려봐야겠군요.
사진은.. 지나치게 자유분방했던(?) 머리의 나와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