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일삼는 임원, 일할 의욕이 사라지네요
별다른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최근에 점점 허탈한 일들이 많아져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심정으로 글 올려봅니다.
Background.
저는 따로 보직은 없지만, 모 그룹의 모 임원 직속으로 꾸려진 소규모 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CEO Staff 같은 느낌이지만, 스타트업은 아니고 꽤 큰 중견 그룹 지주사에 소속된 팀입니다.
같이 일하는 임원은 몇년 전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입니다. 주로 오너 일가에 직보를 하고 있지만, 제가 입사하기 전 연이어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며 신뢰를 잃었다는 평이 많습니다. (제가 입사하기 전 일이라, 저도 주변 팀원들에게 주워들은 수준입니다)
그런 임원과 일하며 최근 겪었던 일화들입니다.
1. 직원에게 직접 거짓말
가장 잦은 거짓말은 "메일을 읽었다", "보고서를 확인했다", "이미 위에 보고드렸다" 류입니다. 실제로는 제 보고서를 읽지 않았는데도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해당 임원은 놀랍게도 컴맹에 가깝고 (최근 LLM 결제수단을 등록하지 못해 제게 문의한 적도 있습니다), 그룹웨어에서 전자메일을 보냈을 경우 수신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종종 본인이 전혀 읽지 않은 메일에 첨부한 보고서를 읽었다고, 심지어 이미 서면/대면 보고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인데요.
처음에는 수신확인 기능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모종의 경로로 메일이나 첨부파일을 읽어들였을 때는 수신확인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수신확인 안된 보고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가 언급할 때마다 알아듣지 못하거나 얼버무리더군요. 해당 메일의 첨부파일을 읽지 않았다면 보고도 못했을텐데...
전후 상황을 보면 크게 두 가지 경우에 대해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1-1. 가볍게 "XX를 알아보라"라고 했다가 도중에 검토 지시가 철회된 경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지시가 철회된 사실을 제게 전달해주지 않아 며칠 더 헛고생을 했지만, 그냥 저도 공부한 셈 치면 됩니다. 굳이 보고했다고 거짓말 하는게 짜치긴 하지만...
1-2. 오너 일가가 민감해할만한 사안인 경우: 이게 진짜 큰 문제인데, 임원이 보고를 무서워합니다. 이런 건은 결국 보고가 되긴 되어야 하는데, 적시보다 훨씬 늦게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제게는 "이미 보고를 했고, 피드백을 기다리는 중이다"라고 변명하는 것입니다. 적다 보니 또 현타가 오는데... 당장 눈앞에 데드라인이 닥쳐서 답변을 받아오셔야 한다고 제가 수십차례 촉구를 해야 비로소 메일이 수신처리됩니다. 매번 마일스톤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니, 전체 일정은 엄청나게 지연되고요. 매번 마일스톤마다 어떻게 어떻게 처리하지만, 두달 걸릴 일이 반년 걸리고, 결국은 법적인 문제가 발생될 소지도 생겼습니다.
저는 담당자로서 적시 보고하고 내부적인 독촉도 수차례 했다는 근거만 파일링해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2. 직원에게 거짓말 종용
몇년 전, 저희 옆팀이 통째로 공중분해 되면서 팀 R&R 중 하나가 저희 팀으로 인계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 입사 전, 임원 입사 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네요)
최근, 해당 R&R에 관련된 레거시 업무 처리가 필요해졌던 일이 있습니다. 부탁한 직원은 전 옆팀 근무자로, 직접 업무를 처리하고 싶어도 업무 권한이 모호해진 상황이니 임원께 말씀드려 저희 팀에서 처리해야 할 듯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단 제가 마음대로 업무를 받을 수는 없으니, 임원에게 상황을 설명드리고 업무 처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임원의 반응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2-1. 그건 보직자 사이에서 협의가 되어야 하는 일이지, 일개 팀원의 설명을 듣고 나에게 이야기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뭐 여기까지는 충분히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필요하시다면 그쪽 임원 통해서 다시 공식 요청을 달라고 전달하겠다 말씀드렸죠.
2-2. 그게 아니라, 나는 이 일은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 전혀 듣지 못한 것으로 하고 싶다. 요청은 뭉개라.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하는지 계속 묻거든 보고드리는 걸 까먹었다고 계속 얘기해라: ?????
귀를 의심했지만 계속 그렇게 얘기하길래, 요청 주신 직원께는 물밑 협의해서 그런 사유로 부끄럽게도 저희 팀에서는 진행이 어렵고 어떻게든 알아서 하셔야겠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얘기하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Outro.
위에서 적은게 대표적인 사례들이고, 그 외의 크고 작은 거짓말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직접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게 그 정도이니, 제게 들키지 않은 거짓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이런 점 때문에 이 사람이 위의 신뢰를 잃었다고 하는건가 싶다가도, 묘하게 잘리지는 않고 계속해서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도 위에서 보기엔 나름의 역할이 있으니 자리를 유지하고 있겠습니다만, 저 같은 일개 직원에게 봉황의 큰 뜻은 잘 와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오늘도 지난주 내내 공들여 쓴 보고서를 위에 보고드렸다고 거짓말하길래 답답해서 적어보았습니다. 헛수고를 하는 정도 외에 당장 직접적인 피해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많은 돈 받고 회사의 실질적인 개선에는 별다른 기여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근로의욕이 점점 낮아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