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을 스펙으로 급 나누는 남자친구가 소름 끼쳐요...
연애 6개월 차, 슬슬 결혼을 생각하던 남자친구에게 정이 다 떨어지는 일이 생겨서 조언을 구하고자 글을 씁니다.
남자친구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만큼 똑똑하고 현실 감각도 뛰어나서 제가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랬었습니다. 어제까지는요.
어제 남자친구를 제 10년 지기 친구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해주는 자리를 가졌어요. 다들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서로 고생하는 거 봐오며 끈끈하게 지내온 가족 같은 친구들입니다.
처음엔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더라고요. 남자친구가 제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는데, 마치 면접관처럼 이것저것 캐묻는 느낌이었습니다.
"A씨는 어디 다닌다고 하셨죠? 회사는 어떤가요? 연봉은 만족하실만 한가요?"
"B씨는 공무원이라고 하셨죠? 아, 9급이요? 그래도 안정적이긴 하겠네요. 근데 월급이 뻔해서 좀 답답하긴 하시겠네요."
"C씨는 ㅇㅇ(대기업) 다니신다면서요.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겠네."
이런 식이요. 친구들은 웃어넘겼지만 저는 가시방석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나쁘지 않았어서 좋게 생각하자 하고 어째어째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근데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자친구가 충격적인 말을 하더군요.
저더러 친구 정리를 해야겠다는 거예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더니, 더 가관인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C 빼고는 네 인생에 별로 도움 안 될 친구들이라고, A 다니는 회사는 딱 봐도 미래가 없고, B는 평생 그 월급 받으면서 살 텐데... 나중에 너랑 나 결혼하고 잘 살면 뭐하냐. 옆에서 그런 친구들이 발목 잡거나 자격지심 느낄 게 뻔하다고.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냐고, 초년생부터 서로 으쌰으쌰해서 지금까지 돈독한 사이고, 여러모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 친구들인지 아냐고.
그랬더니 남자친구는 절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감정적으로 구니까 세상 살기 힘든 거야. 사람은 가장 큰 자산이야. 가능성 있는 인맥에 투자해야지. 현실을 알려주는 거야.
라고요.
현실적이고 똑똑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재단할 줄은 몰랐어요.
저한테 한없이 다정했던 사람이 제 소중한 친구들을 오직 직업, 연봉, 회사의 가치 같은 스펙으로만 판단하고 정리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걸 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우정을 인맥 투자로 생각하는 가치관이 너무나도 낯설고 무서웠습니다.
그럼 저는 왜 만나는 걸까요? 제가 어떤 가치를 그에게 주는 걸까요. 그것도 무섭고요.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니 앞으로 이 사람과 인생을 함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이게 진짜 똑똑하고 현실적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