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배 나온 아저씨를 보며, 제 얘기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신입 때의 열정 같은 거, 지금의 나에게 남아있긴 한 걸까요.
어제 원배틀 어나더 애프터를 봤습니다. 3시간이 쏜살같다는 평이 많던데, 정말이더군요. 역시 폴 토마토 앤더슨. 개봉하자마자 보고싶던 영화였는데 일에 치여서 이제야 겨우 봤는데, 놓쳤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습니다. 보는 내내 세 사람이 자꾸 마음에 치였는데요.
첫 번째 사람은, 제가 '되고 싶었던' 나입니다.
영화 속 퍼비디아는 흑인 여성이지만, 언제나 남자의 몫이라 생각했던 정의를 향한 광기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더 큰 꿈을 위해 아이를 버리고, 자신의 자유를 위해 동료를 배신합니다. 그녀를 보면서 '엄마는 저러면 안 돼', '여자는 저러면 안 돼'라는 내 안의 수많은 편견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습니다. 저런 광기가 없으면, 이 혐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과연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까. 신입 시절, 세상을 바꾸겠다며 뜨거웠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제가 '되어버린' 나입니다.
영화 속 디카프리오, 밥 퍼거슨이 그랬습니다. 한때는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던 빛나던 청년. 하지만 지금은 배 나오고, 세상 풍파에 찌들어, 마약과 술같은 순간의 쾌락에 기대어 살아가는 아저씨. 그의 찌질하고 예민한 모습에서, 어느새 현실과 타협하며 수많은 어쩔 수 없는 선택들로 지금의 내가 되어버린 제 모습을 봤습니다. 물론 배 나온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마지막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고 싶은' 나입니다.
모든 게 끝나고, 영웅의 시대는 저문 줄 알았는데... 잿더미 속에서 찌질한 아빠의 의지를 이어받을지도 모르는 어린 딸 윌라의 눈빛. 지금은 흐려졌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것들. 우리가 지금 회사에서 하는 소심한 저항, 지켜내려는 작은 양심들이,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3시간 내내 저에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고. 그리고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세상에 지쳤다면, 내가 점점 싫어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면,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당신도 당신 안의 세 사람과 마주하게 될 겁니다.
사진은... 디카프리오한테 절대 악감정 없고, 개쩌는 미남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복근은 있네요... 전 복근도 없지만 만약 복근이 있었다면 그렇게 젊었다면 저도 개쩌는 미남이었을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