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커리어와 커리어 밖의 삶에서 긴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1n년 전 연봉 2,400만 원의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시작해 6번의 이직을 거치며 참 치열하게 인센 포함 2.5억 까지 연봉을 올렸습니다.
20대 전체와 30대의 대부분을 커리어만 보고 달려왔고, 이 길을 당연히 계속 걸어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회사를 다니며 두 번의 유산과 수술을 겪으며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워낙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종이라 사무실에 앉아 있을 틈도 없는 일이다 보니, 지친 몸과 마음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저에게도 회사에도 맞는 일인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더욱이 레이오프가 빈번한 외국계 기업 특성상 임신 휴직과 수술 병가로 드문드문 공백이 있었던 저로서는, 냉정한 상대평가나 고용 불안정성 때문에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곁에서 제 고충을 지켜본 남편도 이제는 퇴사하고 임신과 육아에만 전념하며 몸을 돌보라고 권유해 주었습니다.
남편의 지지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쉬고 있는 지금 내가 이렇게 쉬어도 되는 건가 싶은 미안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불쑥 들기도 합니다.
그동안 리멤버나 블라인드에서 동료 직장인들과 고민을 나누며 위안을 얻곤 했는데, 막상 이곳을 떠나려니 제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듭니다.
현재는 감사하게도 세 번째 임신 중이고 육아휴직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제가 팀에서 나이순으로 막내인데, 다른 동료분들은 아무도 결혼이나 육아를 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저 굳이 몰라도 되는 짐을 지워주는 것 같아 미안함이 더 큽니다.
현재 몇년간 팀이 채용 동결 상황이라 제가 나간다고 해서 새로운 인원이 충원될 수 있는 구조도 아니지만, 휴직 중에도 제가 하나의 헤드카운트로 세어지기 때문에 팀의 몫이 줄어 들지도 않습니다.
작년부터 고생 중인 동료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사실 일의 특성 상 출산을 하고도 바로 복귀해서 한사람의 몫을 할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결국 이번 주 중으로 마음을 정리해 이번 달 말에 퇴사 의사를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마냥 손을 놓고 있기는 마음이 편치 않아 몇몇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복직하고 싶을 때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삶을 꾸려가는 데 힘이 될 것 같아 조금씩 해보려 합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커리어와 보상을 내려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제 곁에 찾아온 아이와 저 자신의 회복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고생한 저 자신에게 잠시 멈춤을 허락하고, 새로운 앞날을 준비해 보려 합니다.
어디 말할 곳도 없어서 괜히 게시판에 주저리 주저리 써봤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