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에서 처음 만난 여성분과 대화 3시간, 그녀의 논리 구조에 대하여 (feat. NASA)
혼자 책을 읽고 있던 중, 옆 테이블 여성분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 동네 사냐, 자기도 이 동네 산다, 어디 어디 가봤냐, 그래도 스벅이 제일 편하더라 몇 마디 나누더니 '거기 앉아도 돼요?' 하고는 제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제 앞에 앉으시더군요. (이 지점에서 대략 짐작은 했습니다.) 대화는 평범한 스몰톡에서 시작해 어쩌다 종교 이야기로 흘러갔고, 역시나 신천지임을 확인했습니다. 어쩐지. 여자가 나한테 먼저 말을 걸 리가 없는데.
보통은 귀찮아서 피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궁금하더라고요. 대체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기에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걸까. 어차피 여기는 퍼블릭 스페이스니까 큰 문제 없겠다 싶어서 대화를 계속 이어가다 보니 이분이 전개하는 논리의 흐름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일종의 관찰 개념으로 계속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3시간 가량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 체계적인 방어 스크립트
제가 논리적 비약을 지적할 때마다, 그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근데 A에서 B로 이어지는 과정에 조금 비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그건 ~~해야 하지 않아요? 하면 그건 C라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거나, C는 D라는 증거로 이미 확인된 거다 뭐 이런 식인 거죠. 이때 제시되는 증거들은 또 다른 성경 구절이나, 외부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주장들이었습니다. 마치 잘 훈련된 AI챗봇처럼 일관된 대응 매뉴얼이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2. 친구의 합류와 필살기
제가 질문을 이어가자, '잠시만요. 친구가 근처에 왔다는데, 관심을 가져서요. 같이 얘기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여기로 불러도 될까요?' 하는 거예요. 뭐 한명이나 두명이나 상관이 없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여성분이 한 분 더 오셨는데요. 그 분은 더 확신에 찬 모습으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이때 들었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나사의 잃어버린 하루 이야기였습니다.
3. 과학이 증명한 멈춘 태양
(전 성경을 전혀 모르지만) 그들이 말하는 성경 속 기적을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 묻자, 친구분은 이 이야기를 과학적 증거라며 설명했습니다.
여호수아?가 태양을 하루 멈추게 했었는데, NASA 과학자들이 인공위성 궤도 계산 중 과거 천체 데이터에서 정확히 24시간이 빈 것을 발견했고, 한 크리스천 직원의 도움으로 성경 기록과 대조해 24시간을 모두 채워 넣었다. 결국 NASA가 성경의 역사성을 인정했다는 거라고... 뭐 그리니치 천문대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라고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었습니다. 전래동화같잖아요! 꿀잼!
이 분이 이야기하는 동안, 이걸 뭐라고 해야 재밌게 반박할 수 있을까? 싶어서 구글링을 했더니 '이건 1900년대 초부터 회자되던 도시 전설이며, NASA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부인한 내용'이라고 되어 있길래 그렇게 물었더니 음모론이라더군요. '외부에서 검증된 과학적 팩트'라고 침을 튀기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쯤에서 제 흥미는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기기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좀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더 해주셨으면 했는데, 클라이막스를 지나버리니 별 거 없더라고요.
4. 3시간 관찰 후기
3시간 동안 대화하며 느낀 것은, 이분들이 그들만의 매우 견고하게 닫힌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명백한 비약일지라도, 그분들의 세계관 안에서는 그것이 과학적 증거이자 예언의 성취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 거죠.
물론 나중에는 계속 우기기만 하시니 조금 지치고 짜증이 나서, 이제 슬슬 나갈까요? 하고 나오긴 했는데. 궁금증 풀었으니 이제 다시는 이들과 대화를 섞진 않으려고요 ㅎㅎ
옳고 그름을 떠나 체계적인 구조와 대응 방식이 꽤 흥미로웠던 기억입니다. 물론 최근의 일은 아니고, 몇 년 전 일인데 어제 길에서 오랜만에 신천지 전도인들을 만났더니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혹시 비슷한 경험 있으신 분 계신지, 또 요즘의 전도 방식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낯선 여자가 먼저 말을 걸면 의심부터 해보십시오.
낯선 여자는, 특히 예쁜 여자는, 특히나 커피숍에서, 당신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