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남이 제가 암 유전자를 물려줄까 봐 못 만나겠대요. 제게 진짜 하자가 있는 건가요?
너무 슬퍼서 글을 씁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분과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세 번째 데이트에서 술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술 기운도 올랐고, 좀 더 인연을 지속하고 싶어서 제가 먼저 만나보자고 운을 띄웠습니다.
근데 상대방이 갑자기 주저하더군요. 한참을 머뭇거리다 어렵게 하는 말이... 자기도 제가 참 맘에 드는 건 맞는데, 제가 건강검진 이야기를 하면서, 이전에 대장내시경에서 선종을 뗐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냥 놔뒀으면 암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내시경 덕분에 다행이었다, 이제 젊은 사람들도 대장암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대장내시경 꼭 받으시라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린다는 거예요.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인데, 자기는 아이를 꼭 갖고싶다. 근데 암 발생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를 아기한테 물려주는 건 안되지 않겠냐. 자기는 2세에게 건강한 유전자를 주고 싶기 때문에 주저된다고.
아니 이게 무슨...
흔한 선종 하나 뗀 게, 이 사람에게는 본인의 미래를 망칠 유전자 폭탄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아니 폴립이 한 번 나오면 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건 맞지만 그래도 실제로 암이 되었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건데...
30년 넘게 멀쩡히 살아온 제 인생 전체가 뭔가 하자 보고서로 평가 받는 기분이었어요.
너무 분하고 수치스러워서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가 없겠네요. 나는 이렇게 술도 마시면 안 되는 사람이었네. 건강해야 하니까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하고 일어서서 나왔는데, 집에 오는 길에 카톡이 왔어요. 나 가고 계속 생각해봤는데 역시 자기는 안 되겠다고. 이렇게 맛있는 술 한 잔 나누며 행복한 연애와 결혼생활을 하고 싶은데 암 걱정에 술도 못 마시는 건 역시 어렵겠다고????? 미안하지만 좋은 사람 만나라고 하네요.
이게 무슨...
너무 화나고 또 너무 슬퍼서 맥주 한 캔 더 사서 집에 들어와 마시고 잤습니다.
퇴근길에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어서 카톡을 보다가 너무 열받아서 적어봐요.
제가 진짜 하자가 있는 사람인 거예요? 진짜 그럴까요?
휴 너무 어려워요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