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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고민만 느는 것 같네요
살면서 갈수록 생각해야 할 것도 많고 선택해야하는 순간도 많고 고민도 많아 지는 것 같습니다ㅠㅠ 그냥 공부만하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던 중고등학생때가 그립습니다!!
꼬북마케터
25년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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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스토리) 왕가의 가족사로 보는 조선초 역사
조선 왕조 초기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표면적인 교과서 서술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면모와 의외의 사실들이 숨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건국부터 세조까지’라는 단순한 왕위 계승의 흐름이지만, 속살을 보면 전주 이씨 가문의 집안 이야기이자, 정치와 전쟁, 야망과 이상이 맞부딪히는 서사입니다. 이성계는 고려 말 혼란 속에서 변방 출신 무장으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문은 완전히 미천한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전주 이씨라는 성은 이미 고려 전기부터 명문 가문에 속했고, 이성계의 조상들은 무관으로서 국경 방어에 큰 공을 세운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그 세력이 한양이나 개경 중심부가 아닌 북방의 함경도 쪽에 자리 잡았기에, ‘변방 무장’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죠. 이성계 자신도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불교와 유교 경전에 능통했고, 병법과 외교 감각을 겸비한 지도자였습니다. 흔히 ‘무인’으로만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정치 감각과 장기적 안목을 갖춘 지략가였다는 점이 의외입니다. 둘째 아들 정종(이방과)은 형 이성계와 함께 고려 말 전장을 누볐지만, 형제 중 유난히 온화하고 사람을 잘 다루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용맹했지만 권력욕이 크지 않았고, 형과 이방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재위는 짧았지만, 조선 건국기의 혼란을 잠시나마 누그러뜨린 숨은 공로자였습니다. 이방원, 즉 태종은 흔히 ‘냉혹한 권력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왕자의 난에서 형제와 정적을 제거한 일로 비정한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반전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그는 시와 글씨에 능했으며, 자식 교육에 매우 철저했습니다. 또한 세금 제도 개혁과 호패법 도입 등 백성을 통제하고 보호하는 제도를 확립했습니다. 단, 권력 장악 과정에서 보여준 과감함과 잔혹함이 그 공적을 덮은 셈입니다. 세종은 ‘성군’으로 너무도 유명하지만, 그 역시 의외의 면모가 있습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종종 국정을 대신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학문과 기술에 대한 열정은 유례가 없었고, 특히 천문학·음악·의학 분야까지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한명회와 김종서를 활용해 북방 방어선을 확장하는 등, 평화주의자라는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전략적인 군주였습니다. 문종은 세종의 장남으로, ‘엄친아’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문무를 겸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학문적 재능이 뛰어났고, 외교와 군사 훈련에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병약하여 재위 2년 만에 승하한 것이 그의 가장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도 법제 정비와 국가 의례 확립에 힘썼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단종은 흔히 ‘비운의 소년 왕’으로만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정치 감각이 예민했고, 자신을 지키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조의 압박 속에서도 신하들과 은밀히 연락하며 복위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렸고, 세력이 약해 끝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세조는 조선 초기 왕들 중에서도 유독 논란이 많은 인물입니다.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충신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계유정난으로 대표되는 그의 집권은 정치적 안정이라기보다 철저한 숙청과 공포 정치였습니다. 권력 유지를 위해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제거했고, 이는 조선 정치 문화에 깊은 불신의 씨앗을 남겼습니다. 법제 정비나 경국대전 편찬이 그의 업적이라 하지만, 그 바탕에는 피로 물든 왕위 찬탈이 있었습니다. 유교 국가에서 군주로서의 도덕성을 훼손한 그의 행적은, 후대에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조선 초기의 왕들은 각자 강점과 약점, 그리고 알려진 모습 뒤에 숨은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가족사가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드라마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조선 초기는 ‘전주 이씨 가문의 영광과 갈등’이라는 시선으로 보면 훨씬 생생하고, 왕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혈연과 권력, 이상과 현실이 얽힌 서사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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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리멤버 이용하시는 분들 나이대가 궁금합니다
타 커뮤니티 보다 예의바른 분이 많고 분위기도 좋은데 제 생각엔 연령대도 한 몫을 할 것 같아서.. 조심스레 투표 던져봅니다.
AoBart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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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지방경제를 되살리고 있는 맥도날드.jpg
오 몰랐는데 정말 좋은 취지의 기획이네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산지를 선정해서 활용한다는 것도 너무 좋고. 후기는 좋은데 시즈널이라 지금은 먹을 수 없는 버거들도 있다는 게 아쉽네요. 진작 알았으면 먹어봤을텐데. 드셔보신 분들 계신가요? 후기 궁금하네요!
@한국맥도날드(유)
본투비한량
쌍 따봉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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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시리즈3
학원강사가 가장 싫어하는 놈은? > > > > > > > > > > > > > > > > > >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놈.
허호행 | 보성군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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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주머니에 핸드폰 넣어다니는게 이상한가요?
30살 남자입니다. 비즈니스 캐쥬얼이라 적당히 양복비슷하게 생긴 바지를 입는데요. 친구하나가 누가 양복바지에 핸드폰을 넣고 다니냐고 뭐라하네요 열이면 열 다 바지주머니에 안넣는다고. 좀 튀어나오는게 그렇게 보기싫은건지.. 제가 잘못생각한건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제가 이상한걸까요?
금융의 협곡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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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입니다! 수행평가로 명함 관리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리멤버에서 불편한 점을 알고 싶습니다!
혹시 리멤버를 사용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으신가요? 혹시 있다면 적어주세요! 짧은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고딩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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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의 간식 한상차림
아빠가 탐낼 것 같은 간식 한상차림 엔요가 안어울려서 넘 합성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
밈밈무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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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因果應報)
글 들을 보다 보면 상대방의 일방적인 괴롭힘과 부정적인 상황들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 습니다. 그들은 태생이 악해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고 본인이 무슨 언행을 하는지 인지조차 못해 그것 때문에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재미나 우월감을 느껴 반복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 또한 이런 일들 때문에 정신과 상담도 1년 넘게 치료를 받은적이 있었으며 왜 저런 부정적인 것들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봐야 하나 그런 생각에 그 들과 소통도 해보고 속으로 저주 하기도 하고 때론 직접 부딪치기도 하며 나름 그들을 이해해보려는 노력과 파해 해보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 들은 보통의 사람들 즉 양지를 지향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행동,언행으로 본인이 원하던 원치않던 음지를 자처 한다는걸 아름아름 알게 된거 같습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행한 대로 그 대가를 받는다는 뜻 단지 악한 이들에게 당한 억울한 사람들에게 위로차 만들어진 언어라 치부하며 그들 에게서 온 고통과 아픔은 오롯이 당한 이들의 몫이라 생각했지만 조상님들의 삶속에서 쌓인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말이란걸 사건을 격게 됩니다. 저는 지금 직장에서 7년정도 근속중입니다 7년 동안 많은 부당한 일들을 당해왔지만 그중에 손가락에 꼽는 부당한일은 '밭'일 입니다 당연히 제 업무는 생산이지 밭일이 아닙니다 일하는 도중에 불려나가 밭일을 해봤고 퇴근후에도(기숙사 생활을 하며 기숙사 바로 앞에 밭이 있습니다) 불려나가 밭일을 했었고 나중엔 주말에도 불려나가 밭일을 했습니다 큰 규모에 밭은 아니였지만 작은 규모에 밭도 아니였기에 밭일은 기본 1시간은 넘겼습니다 7년이나 근속했기엔 이젠 "밭일을 자주 한건 아니 잖아?"라는 말도 무색합니다. 최근에 불경기로 회사가 많이 어려워 졌습니다 우리 회사뿐만아니라 이쪽 업계가 전부 어려워 졌습니다 불황전에 구두로 계약을 따놨던 건 수 들은 호황과 함께 나라가 버렸고 제게 부당하게 밭일을 시키시던 사장님은 본인이 아닌 친 아들이 구두 계약을 한 조합원 장의 밭에 가서 밭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와이프와 함께요. 처음엔 고소 했습니다 통쾌 했고요 "으휴 쯧쯧.. 그렇게 평소에좀 잘하지" 근데 좀 의아 했습니다 "왜?? 본인이 아니고 아들이지??" 조금 생각해보니 알것 같더군요 가끔 영화나 소설 같은걸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애들은 건들지 말아달라 애들만을 살려달라 어쩌면 본인보다 소중한 존재에게 본인이 한 악행이 다시 돌아간다라..... 꼬시다라는 생각은 없어지고 과거의 내가 했던 행동들이 떠오르며 무서워 지더군요 나도 혹시 밭일을 하게 된게 누군가에게 악행을 저질렀던게 아닐까? 하고 나의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악행을 저지른게 아닐까? 하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맞다고도 장담할수 없는 찝찝함 인과응보(因果應報) 행한 대로 그 대가를 받는다는 뜻
내가백수라니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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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려 조선은 결국 하나의 왕국이었다고?
한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조는 여러 차례 교체되었지만, 지배계급과 역사·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연속성을 유지하며 앞선 왕조의 기반을 이어가는 역사적 계승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먼저 삼국시대의 세 나라인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독자적인 정치 체계와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반도 내에서 긴 세월 동안 공존했습니다. 특히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이전의 고구려와 백제 문화 요소들을 흡수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정치체계와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고구려의 강력한 군사 체계와 백제의 문화적 예술 전통이 신라 문화 안에 녹아들어, 단순한 승리자가 아닌 전통의 계승자로서 역할을 수행한 점은 역사적 계승의 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고려가 건국되면서 왕조는 교체되었지만, 고려 사회의 지배계급 상당수는 신라 말기부터 형성된 호족 세력과 왕실 혈통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고려는 신라의 유교적 전통과 불교 문화 모두를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며, 특히 유교의 정치적 이상과 불교적 문화를 조화롭게 융합한 독자적 국가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과거 시험 제도를 도입해 신분 상승의 길을 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 호족과 왕실 연계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며 지배계급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조선 왕조가 출범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권문세족과 유력 호족 가문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새로운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고, 기존의 지배계급과의 협력을 통해 조선의 유교적 정치 질서를 세웠습니다. 양반 계층은 고려시대 사대부의 전통을 이어받아 문벌 중심의 정치와 사회를 주도했고,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아 교육과 관료 제도를 정비하며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이렇듯 왕조가 바뀌어도 권력의 주체와 사회적 계급은 큰 변화 없이 이어졌고, 역사와 문화 역시 이전 왕조의 유산 위에서 발전해왔습니다. 한 예로, 신라의 불교 미술 전통은 고려의 불교문화에 이어졌고, 조선에서는 이보다 더 엄격한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재해석되면서도 그 근간을 유지했습니다. 또한, 지방 세력과 중앙 권력이 상호 보완하며 유지된 점도 계승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삼국시대의 호족, 고려의 권문세족, 조선의 양반가문 모두 각 시대의 핵심 지배계급으로서 사회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토지와 관직을 대물림하며 세대 간 권력과 부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한국의 역사는 단절된 왕조들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왕조와 제도는 바뀌어도 지배계급과 문화적 기반은 계승되고 재구성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이 연속성은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전통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힘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역사와 문화의 뿌리 깊은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데 큰 의미를 갖습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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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머 5,000억 밸류 매각?!
https://naver.me/GcK48abd
카낙쿠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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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귀족가문이 있다는걸 아시나요?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귀족 가문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부유하거나 학문이 뛰어난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정치적·사회적 최상위 계층이었습니다. 1308년, 충선왕이 발표한 재상지종 15가문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가문들은 모두 권문세족이라 불렸습니다. 경주 김씨, 인천 이씨, 남양 홍씨, 언양 김씨, 해주 최씨, 파평 윤씨, 여흥 민씨, 청주 이씨, 횡성 조씨 등, 오늘날에도 귀에 익숙한 성씨들이 당시에는 나라의 중추를 이루는 집안이었습니다. 그 위상은 단순한 혈통을 넘어, 고려 정치의 핵심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왕실과 혼인하며 혈연으로 권력을 공고히 하고, 고위 관직을 대대로 차지하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이들 가문은 마치 높은 성벽 안에 있는 하나의 도시처럼, 외부인이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관직과 토지, 인재와 명예가 집안 안에서만 순환했고, 원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세력을 국제적으로 넓히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고려의 정치 지형은 몇몇 가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재상지종은 곧 국가의 심장부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가문들은 존재 자체로 하나의 정치 제도와 같았습니다.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는지가 곧 인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하던 시대였지요. 과거시험의 성적보다, 전장에서 세운 공보다, 가문의 이름이 더 큰 힘을 가졌습니다. 집안의 문패 하나가 관직의 임명장보다 강력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가문 상당수가 고려 멸망 후에도 조선으로 이어져 양반가로 자리매김하며 여전히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들의 영향력과 품격은 사라지지 않았고, 가문의 이름은 곧 사회적 신뢰와 권위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오늘날 재상지종 15가문을 다시 떠올려 보면, 그것은 단순한 족보의 목록이 아니라 고려 사회의 권력 구조를 압축해 담은 기록입니다. 한 시대의 정점에 선 가문들이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했는지, 그리고 혼인과 혈연이 정치의 핵심 도구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명단은 고려라는 나라의 심장 박동을 그대로 옮겨 놓은 역사적 초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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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실소-112] 싸움 중 코가 잘린 코끼리들을 뭐라고 할까?
넌센스 퀴즈 (아재 개그) === 코를 걸어 싸우는 코끼리들, 격렬한 싸움 중 코가 잘린 코끼리들을 뭐라고 할까? . .. ... .... ..... (^o^) .... ... .. . .. ... .... ..... (^ー^) .... ... .. . .. ... .... ..... (^∇^) .... ... .. . .. ... .... ..... o(^-^o)(o^-^)o .... ... .. . .. ... .... ..... ~(´∀`~) .... ... .. . -. 모범답안: 끼리끼리 -. 오답: 막상막하 === 피식했다면 댓글 고고! 신박한 기출변형이 있다면 댓글 고고! 좋아요 반사해드려요! ## 넌센스 퀴즈 더 보기: 커뮤니티에서 '가끔은 실소' 검색 =) 화장실에서, 식곤증에 좋아요 😂 === 우하하 🤣🤣🤣 웃음 가득한 하루 되세요!
싱싱한 회사원
억대연봉
은 따봉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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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가 3대나 와있는데...
아침부터 경찰차가 3대나와있는데 과학수사봉고, 세단, 형사과봉고... 살인사건인가??ㄷㄷㄷㄷㄷㄷ
오래가는그래핀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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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이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는 종종 허상이다. 진실은 감춰져 있고, 직관으로만 꿰뚫을 수 있는거 같습니다.. 직관은 경험과 통찰의 결합으로 들었는데... 반복되는 패턴과 흐름을 읽는 연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친절한엔큐씨
건전이
동 따봉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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