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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 일 관련 고민이나 업계 이슈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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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차례대행 하는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 추석때 개인적으로나 집안내부적으로 이슈도 있는데 추석에 차례를 갑자기 안지낼순 없고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은데, 알아보니까 차례대행하는 서비스가 있더라구요 전문성도 있어보이고 챙기는 것도 의미있고 집안에 한 번 말씀드려볼까 하는데 어르신들이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조회수가 엄청 많아졌네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추가로 좀 덧붙여 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음식준비로 늘 부담이 있어왔는데 부모님은 차례는 꼭 챙기고 싶어하셔서 이런방식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요즘 음식 사서도 한다지만 그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고.. 맡기고 그만인게 아니라 직접 가볼수도 있는거라서, 부모님 모시고 가보려고 한거거든요. 여건이 안되면 온라인도 있구요 모든 집이 제사를 바로 없앨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홈페이지 보면 취지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냥 비난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당황스럽기도하네요 ;;
차밀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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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항상 등이 아파요. 이런경험 해보신 분들 계신가요..?
얼마전부터 자다가 등이 아파서 깹니다... 이런 경험 있으시분들 계신가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ㅠㅠ 단순 운동부족일까요..?
스마트한노력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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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작은 회사로 시작해서 대기업 이직 후 현재 수습이 종료된 직장인 입니다 이직 후 수습 기간동안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여 정규직 전환이 안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 전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여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팀원들에게 미안함 마음이 계속 누적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메일을 볼때마다 글자가 안읽혀서 숨이 막히고 글 쓰는 행동에 심각한 어려움을 느껴서 현재는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행위도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니고 싶은 이유는 현재 회사의 업무 퀼리티가 추후 저의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회사를 다녀서 지금 상황을 극복하고 싶지만...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저의 몸이 망가지고 있는것을 체감하면서 다니는게 맞는건지 아닌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파닥몬같은아구몬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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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스토리) 근대 일본의 설계자 료마를 아십니까?
사카모토 료마는 1836년 일본 도사번(현재의 고치현)에서 비교적 하급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검술을 익혔고, 청년 시절에는 에도(지금의 도쿄)로 올라가 무술을 연마하면서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하지만 단순한 무사로 살아가기보다는, 당시 격동의 일본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막부 말기로, 일본은 개항 이후 서구 열강의 압력과 내부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막부 체제는 점점 힘을 잃고 있었고, 각 지역 번과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일본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료마는 전통적인 무사 신분의 틀을 깨고, 일본 전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혁신가로 변모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이른바 ‘사쓰마와 조슈의 동맹’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원래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서로 대립하는 세력이었지만, 료마는 일본이 근본적으로 개혁되려면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그는 양쪽을 설득하여 동맹을 성사시켰고, 이것이 훗날 막부 타도의 결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료마는 ‘해원대(海援隊)’라는 조직을 만들어 무역과 정치 활동을 병행하며 근대화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단순히 정치 권력의 쟁취가 아니라, 일본이 근대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역, 산업, 해운을 포함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사상가이자 실천가였음을 보여줍니다. 사카모토 료마가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막부 타도의 동맹을 성사시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는 일본 사회가 전통적 신분제와 봉건 체제에 갇혀 있을 때, 한 세대 앞선 사고를 보여주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첫째, 그는 국가를 ‘번(藩)’이라는 지역 단위가 아니라 ‘일본 전체’라는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무라이들은 자신이 속한 번의 이익에만 충실했지만, 료마는 이미 일본을 근대적 ‘국민국가’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도사번 출신의 하급 무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쓰마번과 조슈번 같은 강력한 세력을 설득하여 연합시켰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치적 교섭을 넘어, 일본이 하나의 통합된 국가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둘째, 그는 무사로서 칼만 휘두른 것이 아니라 경제적, 제도적 기반을 고민했습니다. 해원대의 창설은 단순히 무역 활동을 넘어 일본이 세계와 교류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근대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일본판 ‘기업가형 혁신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아직 ‘근대 경제’라는 개념조차 낯설었는데, 그는 이미 해운과 상업을 국가의 힘으로 연결시키려 했습니다. 셋째, 그는 구체적인 개혁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료마가 남긴 ‘선중팔책(船中八策)’은 일본의 근대 국가 체제를 구상한 문건으로, 거기에는 의회 설립, 신분제 철폐, 근대적 군제 개편, 국제무역 확대 등 훗날 메이지 유신 정부가 실제로 실행한 핵심 정책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행동가가 아니라,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한 사상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적 면모가 일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권위와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계층과 교류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그의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낡은 질서에 맞서는 청년 혁명가’이자 ‘유머와 인간미로 무장한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이런 점에서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로, 제도적으로는 아직 불완전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근대 일본’을 살아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지금도 일본에서 자유, 혁신, 청년 정신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근대화에 대한 료마의 상징성은 때때로 과장되기도 합니다. 근대 일본은 그가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혼란과 불평등 속에서 성장했고, 료마 혼자서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의 공적은 ‘선도적 구상과 정치적 연합 촉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막부 타도와 번 연합의 성과는 여러 사람과 사건들의 복합적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비전과 실행력, 그리고 시대를 앞선 사고는 이후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료마의 개인적 삶 또한 당시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는 가난한 하급 무사로 태어나 신분적 제약과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유로운 인간관계를 추구했고, 권위와 격식을 거부하며 다양한 계층과 교류했습니다. 이러한 성격 덕분에 그는 새로운 정치적 연합을 만들고,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검술 능력은 단순히 무사로서의 명성을 넘어, 정치적 협상에서도 상대방에게 신뢰와 무게를 부여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의 검술은 기술적 숙련만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력과 위기 관리 능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너무 짧았습니다. 1867년, 메이지 유신이 막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그는 교토에서 암살당합니다. 범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나이 33세.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화의 길을 앞서 보여주던 젊은 지도자의 안타까운 최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카모토 료마는 여전히 일본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무사 계급 사회의 틀을 깨고, 일본을 하나의 근대 국가로 재편하려는 큰 그림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의 장점은 혁신적인 사상, 뛰어난 조정 능력,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이었고,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체계적인 조직 기반이 약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료마의 삶과 활동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가 단순히 봉건적 질서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변화를 꿈꾸고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의 행동은 근대 일본의 토대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무사 출신으로서 검술의 달인이었지만, 동시에 경제, 외교, 정치의 감각을 갖춘 전략가였던 것입니다. 결국 사카모토 료마는 검술과 무사적 능력을 기반으로 한 개인적 용맹, 시대를 앞서간 국제적 시각과 정치적 통찰, 그리고 구체적인 개혁 구상을 결합함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전설이나 낭만적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당대 일본 사회 속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혁신과 용기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사카모토 료마는 메이지 유신의 ‘숨은 설계자’이자, 일본 근대화의 꿈을 미리 꾼 혁신가였습니다. 그의 짧지만 강렬한 생애는 오늘날에도 많은 일본인들에게 자유와 개혁의 상징으로 회자됩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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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스토리) 로마최초황제가 되는 건 너무 힘들어
아우구스투스, 본명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기원전 63년 로마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소도시 벨레트라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원로원 귀족 가문이 아니라 기사 계급 출신이었고, 혈통적으로는 전형적인 로마의 지방 유력자 가문에 가까웠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중상층 집안의 아들’ 정도였던 셈이지요. 그러나 그의 어머니 아티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였기에, 옥타비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카이사르와 일정한 친연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 미묘한 혈연적 인연이 훗날 그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꾸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옥타비우스는 건강이 좋지 않아 전장에서 활약하기보다는 행정과 정치에서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배움에 열심이었고, 남들 앞에서 차분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지도자였던 카이사르는 옥타비우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후계자로 삼아 양자로 입적합니다. 이 순간부터 한 소도시 출신 청년의 삶은 로마 제국 전체를 바꾸는 궤도로 들어서게 됩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했을 때, 로마는 피로 얼룩진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원로원 귀족들과 카이사르파, 군대와 민중이 모두 분열되어 있었고, 공화정의 권위는 이미 무너져 있었습니다. 이 혼돈의 시기에 갓 스무 살을 넘긴 옥타비우스는 놀라운 결단을 내립니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들고 나와 자신이 양자이자 정당한 후계자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경험도, 군사력도 없던 청년이었지만, 그는 민중과 군대를 설득하며 차근차근 세력을 모았습니다. 그의 권력 장악 과정은 냉혹한 정치적 수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카이사르 암살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손잡고 제2차 삼두정치를 수립합니다. 하지만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격파한 후, 옥타비우스는 점차 안토니우스와 대립했고, 마침내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연합한 안토니우스를 무너뜨렸습니다. 이 승리로 그는 사실상 로마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고, 기원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받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가 권력을 잡은 뒤 보여준 정치적 지혜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는 독재자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공화정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모든 실권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황제가 아닌 ‘프린켑스(시민들 중 첫째)’라고 불렀고, 원로원과 귀족들의 체면을 살려주며 동반자로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군대의 충성은 철저히 본인에게 귀속시켰습니다. 로마 시민들에게는 bread and circuses, 즉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며 생활의 안정을 보장했고, 행정 개혁과 세제 정비로 제국의 재정을 튼튼히 다졌습니다. 그의 개혁은 실로 제정 로마의 기초를 다진 것이었습니다. 직업 군제를 도입해 국경 방위를 안정시켰고, 도로와 항구를 건설해 로마를 지중해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나는 로마를 벽돌의 도시로 물려받았으나, 대리석의 도시로 남겼다’라는 그의 말처럼, 건축과 도시 정비에 심혈을 기울여 제국의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치세는 팍스 로마나라 불리는 평화의 시대를 열었고, 이후 200년 가까이 로마는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아우구스투스는 이중적이었습니다. 그는 냉정할 정도로 계산적이었고, 필요하다면 가장 가까운 동맹조차 희생시켰습니다. 안토니우스와의 결별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또한 말년에는 후계자 문제를 두고 가족 내에서 잦은 갈등을 겪었으며, 결국 이상적인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했으며, 정치적 승리 뒤에는 항상 신중함과 절제가 따라붙었습니다. 이런 면모 덕분에 그는 폭군이 아닌 안정된 건국자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삶을 그려보면, 한 소도시 출신의 청년이 혼란한 시대를 헤쳐나가 로마 제국의 설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놀랍습니다. 그는 권력의 본질을 꿰뚫었고, 무력을 넘어 제도를 장악해야 진정한 지배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인간적인 갈등과 한계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제정 로마는 서양 문명의 기초가 되었고, 그 체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500년 넘게 유지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단순한 황제가 아니라 역사의 ‘시스템 창조자’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권력이란 단순히 힘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와 한 개인의 능력, 그리고 냉혹한 현실 감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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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전세계 챗gpt 사용량 2위인 이유 (슬픔 주의)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게 문제죠 역시... 일하면서 쓰다가 결국에는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서 개인으로도 결제해서 삶의 효율까지 높이게 되는 아아 효율의 민족...!
그레그레
금 따봉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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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니까 무서운 얘기
고등학생때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새벽늦게까지 친구들이랑 문자하느라 항상 엄마가 혼내서 내방에 불끄고 몰래 휴대폰하고 있었어요 방문앞에 누가 서있길래 당연히 엄마인줄알고 "아~ 알았다~ 휴대폰 그만하고 잘게~" 이랬는데 대답이 없는거야 엄마가 화났나 싶어서 "아~ 끈다니깐~ 화났나?" 이래도 대답 없어서 휴대폰 불빛을 휙 비췄지 그러니깐 서있던 사람이 후다다닥 안방쪽으로 도망가는거야 아.. 엄마 ㅋ 나랑 장난치는건가 싶어서 (안방 가기전에 화장실이 있어) 내가 그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ㅋ 엄마 무조건 잡아야지 생각에 ... 화장실 불도 안켜고 화장실 욕조부터 막 찾았는데도 없는거야 그래서 안방으로 갔지 안방이 가니깐 엄마랑 아빠랑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길래 아 ㅋ 엄마 또 자는 척 하네 하고 이불을 휙 재치니깐 진짜 자고 있더라고... 거기다가 문앞에 서있던 사람이 입었던 잠옷이랑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자고 있는거야.... 와 씨 그때부터 너무 소름 돋아서 그날 불켜고 잤어... 그리고, 그 형체가 입었던 잠옷은 칠부 프릴 하얀색 바지잠옷이었어
커멘드키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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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장 선배 축의금
이제 곧 전직장 선배가 결혼을 하는데 좀 많이 친해요 각자 다름 회사에 있지만 연락도 자주하고 청첩장도 만나서 받았어요 이런경우엔 축의금을 얼마나 해야할까요...??
베르흐스트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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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허리를 다쳤는데 헬스트레이너가 병원에 가지 말랍니다
캐리어를 들고 옮기다가 허리가 나갔습니다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병원에 가야 하나 싶어 PT 받고 있는 트레이너쌤께 물어봤더니, 절대 병원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어보니, 병원에 가면 걷지도 못하게 하고 누워만 있으라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허리를 더 약하게 만든다면서 오히려 고중량을 치면 낫는다고 내일 헬스장 나오라고 합니다. 전화로도 절대 병원가지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이거 맞나요? 트레이너가 보내준 사진도 함께 첨부합니다 (삭제 예정) 책이랑 자료 내용은 허리 다쳤을 때 물리치료 말고 운동해야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린가 싶은데 제가 이상한것인지 혼란스러워서 투표 올려봅니다
알흐ㅜ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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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니 파전이 땡기네요... 맛집 알려주실 분!
어제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까 자동반사처럼 해물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네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ㅠㅠ 오늘 퇴근하고 친구랑 가볍게 한잔할 예정인데 혹시 강남쪽에 파전 맛있게 하는 집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파전이 아니더라도 비오는 날 갈만한 맛집(국물요리나 튀김 등등)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리멤버의 집단 지성이 필요합니다 ㅠㅠ 꼭 강남이 아니어도 서울권이면 킵해두고 꼭 가보겠습니다!!! 미리 추천 감사드립니다!
토순이친구
은 따봉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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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지기 친구를 위로해줄 방법
제게는 15년지기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가 최근에 권고사직을 당하고 (한 직군을 통으로 권고사직...) 취준 중인데 요즘 시장이 워낙 어려운지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우울해져있어요 생일이 비슷해서 항상 동반 생일파티를 했었는데 이번에 친구를 위해서 특별한 생일파티를 해주고 싶어요 친구는 운전도 잘해서 강릉 속초로 많이 데리고 다녀줬고 요리도 잘해서 가끔 홈파티도 열어주고 글도 잘 써서 기깔나는 감동적인 편지도 써줬었는데 저는 운전도 요리도 못하고 글도 잘 못쓰네요 ㅠ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뷔페를 예약하는게 좋을까요?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들께 추천받습니다
루룰루랄라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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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불편한게 있으세요?
제목 그대로 불편한게 있으신분들 댓글좀 달아주세요 그 불편함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합니다 어떤 주제여도 좋습니다 세상에 불만들을 들어 보고자 합니다 예를들어 -신발을 신을때 앉아서 손가락으로 뒷금치를 잡아야 되는게 불편해요 -소고기 먹어야 하는데 질겨서 이에 자꾸 끼어서 불편해요
건강최고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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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때 사수에게 받은 USB, 이제 제가 사수가 되어 다시 꺼내봅니다.
머리가 복잡해서 잠시 책상 정리를 했습니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낡은 USB 하나가 나오더군요. 16기가 USB. 요즘은 쓰지도 않는 작은 용량이지만, 저한테는 세상 어떤 외장하드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10여년 전, 막 입사한 신입사원일 때였습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무실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철렁하던 시절이었죠. 그때 제 사수였던 분은 저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렇잖아도 어려운데 무뚝뚝하고 말수도 적은 분이었습니다. 뭐 때문인지 확실히 생각은 안 나는데 USB가 필요했습니다. 아마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옮기고 하는 등의 심부름을 했어야 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근데 USB가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일 아닌데 그때는 정말 큰일이 난 것처럼 좌불안석이 되어서 고민하다가 사수분께 혹시 USB를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자동차 키가 달려있던 열쇠고리에서 주섬주섬 USB를 빼시더군요. 그리고 제게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이제 네 거다. 여기에 네 역사를 잘 담아봐라." 오글거리지만 오글거리는 말을 오글거리지 않게 하실 수 있는 분이었어요. 덕분에 한동안 그 USB에 내 역사를 담아보려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 USB 안에는 이제는 열어볼 일도 없는 옛날의 서툰 보고서들이 가득합니다. 작동을 하는지 조차 모르겠고, 지금 쓰는 노트북에는 이 USB 포트도 없지만 저는 이 USB를 버릴 수가 없네요. 오늘은 마침 우리 팀에 입사한 신입 사원이 첫 보고서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USB가 생각이 난 것 같아요. 저도 이따 그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낡은 USB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해봅니다. 회사를 다닌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좋은 선배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네요. 그때 그 선배님은 뭐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별거 아닌 한마디가 평생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 선배님 덕분에 배웠으니까요.
PPP카추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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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생일자입니다.
저는 어머니 태몽에서 큰 거북이 돌섬이였다고 해요. 거북이는 물과 관련된 영수라 그런지 물이 친숙해서 이렇게 제 생일에 비가 많이 오는 거 같다고 어머니께 문자를 보고 웃음이 피어올랐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공부를 잘하셨어요. 친가, 외가댁에 방문하면 책꽂이에 자랑스럽게 상장이 가득 꽂혀 있었거든요. 하지만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큰 헌신을 하시느라 학업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없는 살림에 저에게 유학의 길을 열어주셨고, 아버지는 묵묵히 큰 빚을 감당하셨으며, 어머니는 생활비가 없어 카드깡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희생이 얼마나 값지고 무거운 것이었는지 가슴 깊이 느낍니다.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보면 문득 제 삶도 물처럼 흘러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거세게 부딪치고, 때로는 고요히 스며들며, 결국은 길을 찾아 나아가는 물처럼 말이죠. 부모님의 헌신은 제 삶에 바다였고, 그 안에서 저는 저만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불안한 시절을 만나기도 했지만, 지금 이렇게 안정된 일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님 덕분입니다. 오늘은 저희 부모님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꼭 칼퇴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로스파일럿
억대연봉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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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나누기를 귀신같이 잘하는 커피회사.jpg
어젯밤에 올린 유머글 망해서 또 도전합니다아 근데 진짜 귀신같이 선을 잘 지켜서 대다나다 전 실제로 300원짜리를 제일 좋아하는데 여러분은요?
@동서식품(주)
만두좋아아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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