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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예술가
#말 작가는 원래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있을만한 사실을 가상에서 그려내어 읽고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예술가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반전의 묘미가 그렇다. 예비 며느리가 싫었다. 그 며느리 될 혜진 역시 시어머니를 두려워한다. 자신을 미워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저 혼수에 필요한 것 없는데 꼭 주시려면 저에게 사랑을 주세요" 그 한 마디에 시어머니는 마음(사랑)을 주고 만다. 어쩌면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예쁜 말을 했을까?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가 내 표정을 보더니 "와 감동이다. 당신 지금 TV 대사 그 말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말의 힘이다. 그 말 장난은 작가가 허구로 쓴 것이다. "현재가 괜찮아 보이더라. 삼일 내내 장례식에 찾아와 지키고" 그 말을 하니 "가족이란 함께 있어주는 것이잖아" 라고 답한다. 그래서 시청자가 가장 마음에 들게 시나리오를 쓴다. 작가는 글과 말로 표현하는 예술가다. #작가 #거짓말 #허구 #드라마 #혼수
반가운사람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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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썰. (3부)
다행히 많이 응원해준 덕분에 2부도 썰전 본선에 진출하게 되어 3부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음.^^ ■ 2부링크 : https://app.rmbr.in/pun7KWteVrb 다들 감사해요, 3부 바로 시작할게요. ------------------------------------------------------------------------- "잠깐.. 지금 이건 사실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두가지의 문제인데?. " 나는 다시 리더들을 카페로 불러모았음. "나도 이번에 회사를 같이 관두겠다고 이야기할거야." "그리고 내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딜을 할거야" 생각해보니 이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두가지의 문제였음. 이제껏 나는 이문제를 '우리부서 인원의 30% 감축'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보고 있었지만 새로운 사고로 생각하게된 이 사건의 두가지의 문제는 이랬음. 1. 회장님의 지시는 구조조정을 30% 하라고 CEO에게 지시하셨다. 2. 회장님의 지시를 받은 CEO님은 각 부서별 30%감축을 계획하셨다. . . . 애초에 이번 구조조정은 똑같이 30% 감축될 필요없이 회사가 30%가 감축되면 되는일이었던 거임. 즉, 다른 부서에서 30%이상 감축된다면.. 우리부서는 그보다 덜 감축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더이상 다른생각은 할수 없었음. . . "지금 나한테 필요한건, 나의 이 '퇴사'라는 무기가 스노우불처럼 크게 불려져서 '회사의리스크'정도로 느껴질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게 성공할 수 있으려면, 방법을 찾아야만 했음. 그리고 내가 찾은 방법은 CEO에게 나와 우리 부서의 중요성을 회사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전달 하여 CEO의 계획을 바꾸는 일이었음. 그러기위해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건 COO를 만나는 일이었음. 우리부서의 구조조정이 COO가 계획중인 사업상에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전달하고 COO의 의견이 CEO에게 전달되게 하는 일이었음. . . 현재 COO는 회사의 영업총괄자 였고 신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계셨지만 아직은 이렇다할 성과가 나온게 없는 상태였음. 그래서 COO님은 회사가 기본적으로 발생시키는 수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게 가장 중요한 상황이었고, 나에게 현재사업을 100% 위임해두신 상태였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퇴사'를 한다고 하면, 현재사업 대체자가 없는 COO님은 고민하시는 계획들에 차질이 생길것임. 나의 키맨은 지금 COO였음. 그러면 나의 '퇴사' 그리고 우리부서의 구조조정은 '회사계획의 리스크' 라는 미래계획의 더 중요한 문제상황으로 이야기 될것이고 CEO님은 적어도 나를 회사에 잔존시키기 위해 큰 범위의 딜을 요구할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있는 묘수는 없었음. 그냥 이게 조직원들과 내가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음. 이 주제를 이야기 하기위해 난 1주일간 우리부서 그리고 구조조정 대상자가 부재시 회사가 계획하고 있는 일에 얼마나 문제가 될수 있는지 논리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집중했음. . . . 그리고 약 1주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COO님에게 티타임을 신청했음. COO님과 티타임을 가지며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최대한 겸손하게 나와 우리부서가 이번 구조조정이후 COO님이 준비하는 계획에서 차질이 생길수 있는 부분을 구조조정대상자의 현재 역할범위와 성과데이터로 정리해서 이야기했음. 그리고 한가지 말을 덧붙였음. "그리고 구조조정이 된다면 제가 남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일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도 퇴사하겠습니다." COO님은 이번 구조조정이 자신에게도 얼마나 곤란한 상황인지 그리고 준비하던 여러가지 계획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시며 이 계획들을 어떻게든 실현시키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셨음. . . 그로부터 약 3일뒤 CEO님의 비서로 부터 연락이 왔음. . . "CEO님께서 혹시 내일 오후2시에 면담 가능하신지 스케줄 문의 주셨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COO님이 CEO님에게 우리부서 부재시 리스크 그리고 나의 퇴사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눈 뒤 만들어진 면담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음. 그리고 다음날 약속된 시간 CEO님 업무실 앞에 도착함.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나는 그렇게 내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위해 CEO님과 마주하게 되었음. ---- 3부끝 ------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거의 끝나가네요. 많은 분들이 기다려주셔서 주말에 가족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노트북을 켜서 적어내려가보았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용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를 꾸욱~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 ■4부링크 : https://app.rmbr.in/xEuw1xDXW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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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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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있듯, 직장연도 있을까요?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입사 후 빠르게 제 역할을 하면서 부서내 상사, 선배들에게 인정 받고 새 직장에 잘 정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생활은 순조로웠고 일도 즐거웠습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제가 정규직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죠. 그 회사는 여러 고용형태가 있었는데, 정규직, 계약직, 보조금 계약직이 있었습니다. 공채를 거쳐 입사한 정규직은 승진할 수 있지만, 3~5년 마다 부서이동을 해야 했고, 제가 있던 부서 특성상 부서 내에 정규직은 2~3명 뿐이었습니다. 계약직은 수시채용으로 특정 부서에서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부서이동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고 계약직 2년 후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서 호봉도 오르고 고용안정성이 생기지만, 승진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죠. 마지막으로 저의 고용형태였던 보조금 계약직. 국책사업의 보조금으로 채용하여 급여를 지급하기때문에 사업기간동안에만 고용된 것으로 사업기간이 종료되면 고용계약이 해제되는 고용형태 입니다. 그외에도 출산대체 계약직도 있었네요. 그 당시에는 암묵적으로 정규직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서 분위기에 따라 정규직 시험을 볼 생각은 못했고,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는 계약직으로 재채용되어야 했죠. 계약직 자리가 날 때마다 보조금 계약직이나 출산대체 계약직 직원들에게 채용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기회는 입사 순서대로 주어져서 저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자주 자리가 나지않았습니다. 재직하는 동안 제게 3번의 기회가 왔습니다. 첫번째 기회는 입사하고 얼마 뒤에 있었지만, 다른 팀에 있던 1주일 입사 선배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이건 제 기회가 아니었다 생각했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 두번째 기회는 첫번째 기회를 차지했던 선배가 이직하며 생긴 자리였습니다. 부서행정을 담당하시던 분이 제 순서라고 했지만, 얼마 뒤 출산대체계약이 끝나는 선배의 순서라고 정정했습니다. 세번째 기회는 무기계약직 심사에서 떨어진 선배가 퇴사하면서 생겼습니다. 이제는 정말 제 순서라서 보조금 계약직으로써는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채용일에 맞춰 미리 제출해두고, 계약직으로 재입사하는 것이었죠. 이 와중에 행정절차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통상적으로 1주일이었던 서류접수기간은 저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2일로 단축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때 일이 너무 바빠서 채용공고를 제때 확인하지 못했고, 봤다고 해도 전 직장에 경력증명서를 떼러 갈 시간도 없었죠. 그렇게 서류접수기간에 지원을 하지 못하면서 계약직 입사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설상가상 제 사직서는 이미 수리되어 퇴사를 돌이킬 수도 없었죠. 그렇게 계약직 면접이 있던 날, 제가 퇴사한 보조금 계약직 자리에 제가 다시 면접을 보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계약직으로 입사해야했던 날 보조금 계약직으로 재입사를 했죠. 3번째 기회를 놓치면서 제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채용공고를 늦게 확인한 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류제출기간 단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행정직원을 원망했습니다. 그 후 1달 뒤 4번째 기회가 왔습니다. 제가 재입사할 때 계약직으로 입사한 그 분이 바로 퇴사하면서 제게 기회가 온거죠. 하지만 저는 계약직 재입사를 포기했습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이 직장과 나는 연이 아니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운명이었던 거라고 정신승리를 해버린 뒤였죠. 깐깐하기로 유명하셨던 상사분께서 제 능력을 인정해주시며 이직에 대해 용기를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여기 계실 분이 아닙니다. 더 높은 곳 가서도 인정받으실 분입니다. 가서 능력을 맘껏 펼치세요." 누누히 해주시던 말씀이었지만 그냥 칭찬으로만 듣던 그 말씀이, 이 상황에서 들으니 큰 용기가 됐습니다. 계약직 재입사 포기 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이직준비를 했습니다. 이미 한차례 재입사하며 연차가 리셋돼서 한달한달 생기는 연차를 모아 필요한 교육도 듣고, 퇴근 후에는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찾아보고 이력서를 썼지만 좀 처럼 면접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직 준비 2달만에 처음으로 합격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업계지만 제 포지션은 달라져서 계약상 갑으로서 전 직장을 대하게 됐습니다. 고용불안정을 극복하기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직했었지만, 지금까지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좀 더 잘 되려고 이런 시련을 지나왔던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정말 인생 살면서 겪어본 제일 큰 마음고생이라 힘들었는데, 지나고보니 귀여울 정도로 작은 시련이었던 것 같아요. 직장연이라는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곳과 저는 연이 아니었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네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 중, 지금 어떤 시련을 겪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더 잘되려고 시련이 온거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극복하실거예요. 화이팅입니다!
엉뚱한꼰대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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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제안서 제출 실패 썰
그저 중소기업 상사가 프로젝트 제안서를 작성하고 내가 받아서 제출을 하면 되는 날이었다 오전 10시 마감인 프로젝트 제안 상사는 무슨 대학교 과제하는마냥 하루전날 회사에서 밤까지 새며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무려 9시 56분에 나에게 카톡으로 제안서를 줬다 심지어 완성본이 아닌 목차 수정, 회사 직인 안찍힘 그외 실적증명 및 재직증명서 미첨부…… 나는 당연히 10시까지 제출을 못했고 상사는 나한테 왜 제출 못했냐며,,,,^^할많하않 이번일로 나는 입사한지 한달반이 되었지만 퇴사를 결심 앞으로도 이렇게 일을 한다면 어떤일이 펼쳐질지 너무 뻔히 보이기 때문에 차라리 빠르게 퇴사해서 다른일을 알아보는게 나은거 같다…. 어디다 화풀이라도 하고싶어서 처음으로 올린다
지유지구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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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일곱 회사 겸직 썰🕚
일곱마리 토끼를 잡아 봤습니다. 시작은, 육아 였습니다. https://youtu.be/qTxNBFHOA7w 2011년, 해외취업을 몇 일 앞둔 어느날. “임신했어요” 아내의 한마디. 분명히 즐거워 해야 하는 일 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계획에 없던 일 이라서 시간이 멈춘 듯, 이 공간에서 없어지고 싶었습니다. 다시 자동차 밴더사에 취업을 하고 매일 저녁이 음주 였지요. 태교가 아빠의 음주 취침 이었을 만큼. 아이가 태어나던 날, 저는 태어나서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렸답니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한거야?” 8개월 동안 제가 보인 가장의 모습은 제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로 못난 행동이었습니다. 자동차 개발 다 해봤다며 항공기 제조업체에 가서 근무하다가 비행기 만드는 기술을 직접 익히겠노라 해외 취업과 박사학위 코스도 준비했는데 수년간 준비해 온 것이 물거품이 됐다며 자책하고 질책하고 있었거든요. “아~ 다시 자동차 회사를 가야 하다니…” 이틀 후, 회사에 출근을 하여 사직서를 제출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내 아이를 돌보리라” 이런 마음이 통했을까요, 회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재택근무 를 발령 내렸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제가 설계엔지니어로 데이터로 말하는 업무를 하였고 고객사의 대응은 이메일 또는 통화로 충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육아가 시작 되었죠. 처음에는 가사와 업무가 중첩되었지만 갓난아가의 취침 시간이 곧 업무 시간이 되며 균형을 찾았습니다. 심지어 6개월 후 최우수사원 상을 받았죠. 파격적인 대우에 열심히 하여서 관리하던 업무의 매출이 6배 성장 했으니까요. 업무는 익숙해졌습니다. 이 업체는 이후 7년동안 겸직을 했습니다. 육아가 익숙해지는 만큼 업무도 수월해졌습니다. 당시 제조문화 확산, 메이커문화 등등 태동기 였는데 저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고 한가지 일이 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고 지내던 기업에서 알바를 주며 세가지 일을 하게되었으며 둘째가 생겼을 무렵에는 새벽 분유를 먹이는 시간에 아이를 안고 설계를 할 수 있을 만큼 네가지 일이 익숙해져서 박근혜 시절 1회 창업공모전에서 우승하며 제조사업도 시작하게 되어 다섯가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수년 전 고사 한 유아전동차 업체에서 연구소장 제의를 하여 여섯가지 일을 하게 되었고 학생들과 호주 종단 랠리를 준비하면서 일곱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최적화 가 되어서 오히려 짧은 시간에 빠른 판단을 하는 연습이 지속되며 익숙해졌습니다. 대기업 PT 와 정부 기관장 오찬에도 오른손에는 첫째, 가슴에는 둘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한동안의 휴식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다 싫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2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던 때도 있습니다. 너무 빠르면 일찍 도착하여 고독하게 되더군요.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빠로써 내 아이가 자라는 모든 순간들을 담을 수 있기에 행복했습니다. https://youtu.be/w73PrmjTVfE 많은 분들이 시도하지 않고 지례 겁을 먹으며 걱정을 합니다. 사람은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는 만큼 더 하게 된다는 것이죠. 지금은 다시 일을 늘려서 4가지를 겸업 중 입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노는 것은 언제나 아빠의 즐거움 입니다. https://youtu.be/uPR_G1xcBbk 이제는 어느덧 많이 자라서 아빠가 벌어오는 돈이 함께하는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지만 먼 훗날 눈을 감을 때, 가장 즐거웠던 12년 이었다고 자부 할 듯 합니다. “하면 되는 겁니다”
움직이는모든것
쌍 따봉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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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재택근무를 기술지원하게 된 썰
코로나19확산으로 인해 많은분들이 재택근무를 경험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희회사 또한 VPN을 통해 재택근무를 진행하였고 VPN을 운영하던 저에게 문의도 많이 오고 기술지원을 빈번하게 해드리며 바쁜기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른아침 출근시간대에 재택근무 VPN에 제대로 동작하지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VPN설정이나 사내 재택신청시스템등을 확인하였으나 문제가 없었고 임직원분들의 PC에 설치가 되어있어야하는 인증서가 잘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였으나 잘모르시더라구요. 그럼에도 이미 재택근무를 하셨던 내역은 있으셨구요.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사용중인 컴퓨터를 원격으로 접속하여 조치를 해드리고 정상접속되는것을 확인하였는데 조금지나서 컴퓨터를 재부팅하니 접속이 안된다고 하시는겁니다. 제가 운영하던 VPN에서는 설정상 특이사항이 없다보니 개인PC에 혹시 특별한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있는지 여쭤보니 그때서야.. "오늘 호텔에 와서 방에 있는 컴퓨터로 접속을 해보다보니 어떤프로그램이 있는지 잘모르겠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요즘 '워케이션'이라는 용어도 있지만 코로나19확산을 방지하기위해 재택근무를 시행 중임에도 재택근무기간에 호텔에서 사내시스템접속을 하시는게 맞나도 싶고 호텔컴퓨터를 저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하루였습니다. 재택근무를 지원하면서 재택근무를 사용해도 될지 저에게 물어보시는분, 어떤준비를 해야되는지 설치해달라고 사무실로 개인노트북을 가져오시는분, 아이가 병원진료가 있어서 재택근무를 사용하시겠다고 저에게 당일 연락하시는분. 다양한분들이 계셨지만 이런분은 처음이었네요. 참고로 저는 OA지원담당, 인사담당이 아닌 정보보안담당입니다. 재택근무시스템을 운영하시면서 다른분들은 어떠한 경우가 있으셨을까요?
Jamie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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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생 노가다꾼, 공기업 연구원 되다🐘
옛날에? 지금 현실 입니다! 요즘 시도도 하지 않고 안된다고들 하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인생을 개척하는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저와 함께~ 93년생 제자를 이끌고 있는 썰 입니다. 2005년 프로젝트 했던 공기관의 매니저가한 학교 관계자가 저를 꼭 만나야 한다며 연락처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20여명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2006년 부터 설계부터 복합소재 성형 및 차량의 운동 특성 등을 이론-실기 병행. 저는 사비를 털어서 솔라카를 제작해줍니다. (학교와 일하면 뭐라도 있을 줄 알고. ㅎㅎ) 그 과정에서 거침없이 배우며 진행하던 한 학생. 어려운 형편에도 학업을 계속 하겠다며 낮에는 공사 현장에서 매일을 보내며 야간 전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편입 한 4년제 야간과정 학생 이었습니다. 저는 이 학생을 위해서라도 수업을 야간에 진행 했고 제작은 주말을 이용했지요. 우리의 결과물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https://youtu.be/6iSIB4xa9UA 실패의 명확한 이유는 학생들이 지시에 따르지 않아서 였습니다. (멘토의 명확한 지시에 불응) 제 출원금과 지자체 및 일부 기업의 지원이 물거품이 되었었습니다. 모두가 좌절하는 상황 이었죠. 저도“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었다” 하며 모두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이듬해 마지막 학기의 마무리를 몇일 남긴 유난히 추운 겨울 어느날, “대표님,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하며 간절한 울림이 전해졌습니다. “왜? 니가 잘났다고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니 인생이다. 개처럼 그렇게 짖으며 살아” “대표님, 제가 아이가 생겼습니다” 무너졌죠. 변두리 4년제 야간과정 학생을 받아 줄 한국의 기업은 지방 구석의 작은 곳 뿐, 임금도 뻔하니까요. 애 키우기 빠듯하죠. “대학원에 가라!” “대표님~ 제가 무슨 대학원 입니까~ 학비도 토익 성적도 없어요” “방법이 있다!” 실험실을 운영하는 교수의 경우 연구학생에게 월급을 지급 하거든요. 물론 아직도 차명계좌 만들어서 횡령하는 일부 교수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정년을 앞둔 유명 교수는 학비와 월급을 풍족하게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연륜 만큼 인맥도 좋지요. 아는 교수 몇명을 추려서 실험실 사정을 알아보니 한 곳이 중소기업 정도의 임금을 지급하며 마침 카본으로 자동차을 제작하는 경험이 필요한 곳이며 대학원 지원기간도 남아 있기에 “이 교수한테 여기 이메일로 구구절절 뽑아 달라고 해라” 93년생 노가다꾼 애기아빠는 석사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숙제를 던졌습니다. “토익 800 넘겨서 성적서 보내라!”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대표님 토익 850 넘겼습니다~” 이윽고 “대표님 저 현대차 및 공기업에 전부 합격 했습니다” 제가 토익을 숙제로 던진 이유는 대기업 취업을 시키기 위한 것 이었고 학생은 2년 동안 매달 토익을 보며 삶을 바꾸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93년생 노가다꾼 야간대생 애 아빠는 국가출원 공기업의 정규직 연구원으로 3년차 근무 중 입니다. 명절이 되면 매번 수십만원짜리 세트를 이름 세글자 새겨서 보내 줍니다. 최근 세대별 특성으로 인하여 조언을 무시하고 선배를 배척하는 상황이 점입가경 입니다. 어렵다고요? 방법이 있는데 듣지 않는 것 이지요. (그런데요~ 저런데요~ 약속이 있어서~) 모른다고요? 묻지도 않고 대답을 구하고 있잖아요. (아~, 저~, 그~…. 뭐? 말을 하라규~) 위 내용의 제자는 어제도 제게 문자를 하며 조언을 구합니다. 그리고 바로 실천을 합니다. 즉각적이죠. 이 즉각적은 실행은 본인의 것이 됩니다. 한학기 등록금 4백만원과 생활비를 위해서 공사장에서 용접을 하던 학생. “대표님은 제 은인 이십니다” 학생은 말 합니다. 저를 만나고 예수도 버렸다는 친구 입니다. 삶의 경험 이라는게 엄청난 기회를 줍니다. 그 때를 겪으면 그 때를 더 잘 보내는 방법도 고찰하게 되니 더 잘 안내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것은 가족 입니다. 우리들은 가까운 사람 일 수록 무시를 하지만 정작 나를 가장 잘 알고 아끼는 것이 #가족 입니다. 그리고 배울 수 있는 것을 잘 아는 사람에게 자존심 같은 것 생각도 말고 무릅꿇고 입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면 잘 성공 합니다. 월 2백 벌던 학생은 지금 월 6백을 받습니다. 몇 일 전, 날아오른 전투기의 핵심 연구원. 신형 쌍발 제트기 같이 창공을 가르고 있지요. 노력 없이 불평 만 하고 있나요? 누군가는 노력하여 매번 성공을 합니다. 선배의 조언을 깊이 따르며~ 수백건의 엔지니어링 컨설팅을 하면서 매번 겪는 안타까움이 바로 “알려줘도 하지 않으며 안된다고 하는 것” 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기라도 하면서 불평을 하면 이해라도 되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그러더라” “유명 박사가 그러더라”하며 만날 수도 없는 엉뚱한 이들의 간접적인 방향성으로 미래를 맡깁니다. 결과도 유튜브 같지요. “해보면 된다” 전세계 전인류 공통 입니다.
움직이는모든것
쌍 따봉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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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에서 역마살 가득한 직장생활을 한 썰🎠
안녕하세요. 역마살이란 사주를 보면 들을 수 있는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되는 액운' 입니다. 실제 사주를 보면 저는 '역마살'이 없거니와 전 직장에서 10년 가까이 근속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역마살 가득한 직장생활' 을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썰을 풀겠습니다. (실제로는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며 썰을 풀예정이었는데 아직 기회가 없었네요!) 저는 S그룹에서 IT관련 업무를 10년가까이 수행하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주업무는 그룹사들의 데이터센터 내 IT인프라를 운영하였습니다. 10년이라는 기간이 길다면 길고 많은 선배님들에 비하면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하루하루 해내다 보니 차곡차곡 쌓였던 기간이라 생각됩니다. 첫 출근은 삼성동의 어느 높고도 큰 빌딩의 사무실로 하였지만 어느새 저는 강동구 상일동의 어느 그룹사 신축건물 공사장으로 매일같이 꼭두새벽부터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은 강서구 였답니다. 삼성동의 어느 높고도 큰 빌딩의 사무실에 있는 자리를 놔두고 서울의 끝과 끝을 매일 왕복하며 저는 건설현장에서 작업자분들과 아침체조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웠으나 '사회생활은 늘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거지' 라고 제스스로를 위로하며 1년간 신축건물에 IT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여 잘마쳤습니다. 행운이라면 그곳에서 일하며 회사생활의 의지가 되는 내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시절만 해도 그것이 역마살 가득한 직장생활의 시작인 줄은 알 수 없었습니다. 사무실로 복귀한지 얼마되지않아서 사무실이 다른지역으로 이전을 하게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사무실도 4곳을 전전하였던 것 같습니다. 첫 사무실 이전을 진행할 무렵, 저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속에서 또다른 그룹사 의료법인의 사업장에 파견되어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의료법인 사업장에 계셨던 분들은 모두 잘 대해주셨지만 1년간 근무하는동안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또다른 어려움이 가득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니 현재와 같은 코로나상황의 어려움을 그시절에 미리 체험했었네요.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될지 전혀 예상치 못했었지만 말이지요. 의료법인에서 복귀하여 한동안 또다시 새로운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잠깐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얼마 후 쿠웨이트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해외여행은 종종다녔지만 중동지역을 방문하게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중동지역에서도 쿠웨이트라는 나라는 다시 또 방문할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하였지만 너무나 더웠던 현장에서의 근무는 쾌적하진 않았습니다. 국내에 복귀한 이후 데이터센터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IT업무를 수행하였으나 제가 속해있던 부서에서 저만큼 외부로 다녔어야하는 경우는 보지 못하였네요. 당시에는 너무나 힘든시간들이었지만 지금 저에게는 다양한 경험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직장생활에서 힘든일이 있으신 분들도 나중에는 지금시간이 추억이 될것이라고 위안을 삼으시면서 이겨내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이런기회에 저의 오래전 사소한 추억이지만 역마살 가득한 직장생활 이야기도 해볼수 있어서 좋네요. 다른 기회에 IT회사 근무경험을 '인사이트' 글로도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정희
인플루언서
기술감독 |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티비에스 인프라운영팀 / 방송기술본부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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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업은 한국에 돈 받으러 옵니다👁
창업하고 돈 때문에 힘드시죠? 나라에서 돈 받고 시작 할 수 있답니다. 단, 외국인 이어야 해요. 외국 기업이어야 합니다. 2007년 입니다. 친구가 부탁을 합니다. “사람 좀 구해줘” “내가 하고 싶은데~” 하고 합류했죠. 신났습니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수퍼카들을 만지고 타 볼 수 있었으니까요. (향후 제품 개발에 큰 도움이 됨) 제 업무는 법무인증 이었지만 일본인 대표의 은행 업무 보조 기사 역할을 여러번 하면서 알게 되었죠. 해외에 본사를 둔 기업이 한국에 지사를 설립 할 경우 한국 정부에서 보증을 하여 대출을 하는데 1% 이하의 초저금리.(0.2% 금리도 봤다) 이 회사는 50억원 넘는 채무를 남기고 대표의 잠적으로 정부가 전부를 감당 했습니다. 수퍼카를 한국 정부 보증으로 구매하고 어느날 갑자기 일본으로 빼더니 감감무소식. 일본인 대표의 레이싱걸 풍문도 유명했죠. 한국에서 팔겠다는 수퍼카를 사기위해 한국 정부에서 보증을 받아서 대출하여 수입한 수퍼카를 전시하겠다며 일본에서 판매 했습니다. 일본인 대표는 단 한푼 안쓰고 백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갖고 날랐어요. 하여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돈을 준 경우와 같습니다. ㅎㅎ 그 일본놈은 차 팔고 세금을 일본 정부에 냈을터이니~ 이런 경우는 아직도 여전합니다. 지독하죠. 일본계 화학회사들이 알고 쳐들어 온겁니다. 한국의 값 싼 전기로 생산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것을 배출하며 깨끗하게 닦아서 일본에서 팔지요. 그래서 창업하는 이들에게 1. 외국에 본사를 두고(미국이건 일본이던) 2. 본사에 매출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3. 한국에 지사를 내기 전 정부 지원을 받으라고 조언 합니다. 심지어 외국인은 4대보험도 안냅니다. 월급 받으면 소득세 떼고 다 월급 이지요. 공장 근로자의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중국인 보다 수입이 적을 것이 현실. 지엠의 철수가 수익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공짜에 가깝게 쓰다가 계약이 만료되어 철수 한 것을 대부분은 모릅니다. 이렇듯 꿈에서나 그리던 대형 부지를 외국 업체는 손쉽게 무상으로 지원 받습니다. 게다가 인건비는 지지체에서 지원하며 전기세가 싸다고 들어오는 일본 기업들이 지금도 계속 우리의 세금으로 움직이지요. 최근 전기세가 너무 싸다고 하는데, 외국 업체들에게 특혜를 안두면 단 한 해 만으로도 흑자를 발생 시킬 수 있습니다. 외국계 화학공장의 설비가 모두 전기도둑.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한국에서 시작하여 외국으로 진출이 아닌, 외국에서 시작하여 한국의 값싼 세제 혜택을 누려야 하는 겁니다. 한국에 많은 외국인들이 어떤 세금도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국민연금도 의료보험도 내지 않고 영어학원 현금 알바로 소득세도 내지 않죠. 기업도 그렇습니다. 미군정 시대에 만들어진 법. 외국인을 위한 한국의 법 이지요. 한국을 외국인으로 살면 참 좋습니다. 이런 법을 잘 알면 거져 먹는게 사업 이죠. 외국계 기업의 복지는 우리가 낸 세금. “너희 나라에서 준거야”가 내재 된겁니다. 그러니 외국계 기업에 근무 중 이라면 월급 이라도 어떻게든 더 받아서 세금 더 많이 내십시오. 그래야 근무하는 외국 기업이 혜택을 더 받으니까요~ 최근 조용히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대기업들 부서 일부를 인수하고 있답니다. 제가 들은 얘기는 “사업을 없애려고” 이네요. 한국은 여전히 식민지 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애국하기 위해서 외국에 돈 받으러 갑니다.
움직이는모든것
쌍 따봉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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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로봇🦿
개발 어디까지 해봤니? (자뻑 심한 글) 2015년 하늘은 높고 날씨는 맑았습니다. 한적한 전원주택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중, 미친듯이 셀폰 진동이 울립니다. “도와주세요” 7년 전, 잠시 함께 근무하던 동료의 전화. 그는 수퍼카 정비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람보르기니를 타는 고객이 태권V 를 만들자고 스카웃 제의를 했다며 도와 달라는 겁니다. (날 스카웃 해야 하는데~ ㅎㅎ) 1년 동안 공장공간 부터 설비 및 재료까지 거의 모든 세팅을 무상으로 도왔습니다. (아바타) 공장에 설비가 채워지고 재료가 준비 된 후,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지금부터는 인건비 처리를 해줘야 합니다” 했더니, 사람이 변했다, 이제와서 이러기냐 등등 사기꾼을 만들기에 연락을 끊었습니다. (1년동안 노력은 사라졌죠)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설비 업체 대표님께서 도와 달랍니다. (핵심 설비도 내가 소개 했으니) “뭐가 안된데요?” “성형을 못하겠대!” 3년 만에 양진호 회장을 만났고 “너는 뭐 별 것 있겠냐” 하는 듯한 태도에 “하루면 된다” 했더니, “너 미친거니? 교수 5명도 못했는데” 하더군요. “미친듯이 하면 됩니다” 했죠. #하루만에전부해결 #원샷올킬 설계 - 해석 - 카본 성형용 몰드제작 - 카본 성형 - 과정 교육 다음날 공장에 가서 사무실 안쓰는 PC로 4시간 만에 설계 마치고 두시간 해석, 툴짜고 공장동의 남아도는 철판도 직접 커팅하여 용접은 도움을 좀 받아 카본 적층 하면서 부터 예쁘게 구워 나오는 모든 것을 하루 밤새어 이튿날 보여줬죠. 2톤이 넘는 상부 구조물(팔, 제어부 등)을 어떤 재료로 하여도 버틸 수 없었지만 카본 복합소재 중 특별한 강도를 가진 재료를 사용하여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해줬습니다. 제가 하루 만에 탑승부를 제작 해줬으니 팔도 달고 다리도 달아서 움직이게 된 겁니다. 물론 모터도 중요하고 제어도 그러한데,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드웨어 모터가 움직일 수 있는 하중 구조를 만들어 줬으니 제어도 하게 된 겁니다. 설계도 내가 하는 것 보니 별 것 아니게 된 것이고 시작도 못하고 있던 진행 이지요. 사람이 탑승하고 사람이 움직이는 사람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물. MS 와 애플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오로시 만질 수 있는 것에서 기인 합니다. 최근 20년 간 기계과에서 코딩을 가르치며 하드웨어의 중요성이 간과 되고 있습니다. (최근 자율차 및 로봇공학 마찬가지) 기계과 교수가 기계를 모르는 한국의 현실. 그렇다고 기계과 교수가 코딩을 잘하는 것도 아닌 실정. 그러니 박사고 나발이고 “안된다, 못한다” ㅎㅎㅎ 자격지심 없고요. 그냥 그 교수들이 불쌍 합니다. (짜증나면 보여주든가?) 심지어 제어 개발자가 하드웨어 기업을 이끌죠. 뭘 아냐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나? 그들이 보는 바로 앞에서 혼자서 전부 해 보여줬습니다. (그 때 배운 것으로 창업 한 업체 다수) 당시에 제게 너무 많은 돈을 줬다며 수근거리는 분위기 였는데 제가 그 회사에 1억원 상당의 재료를 주었답니다.(한국에서 못 구하는 방산물자) 지금 저는 이 로봇들을 제 손으로 정리 중 입니다. 시작부터 저로부터 마무리 까지도 책임지고 있는 외부 개발자 이지요. 내가 모터 만들었으니 가능하다 내가 설계를 했으니 가능하다 내가 제어를 했기에 가능하다고 떠듭니다. 모터는 찾으면 되고 설계자는 남아돌며 제어는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플랫폼. 이것들을 맘놓고 달고 놀 수있는 대상물이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이죠. 떠들던 이들은 지금은 뭘 하고 있니? 자신있게 말합니다. “내가 있기에 가능했다!” “너희가 쓰던 그 장비들도 내가 다시 다 팔아줬다!” 그리고, #양진호 가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겁니다. 논란이 있지만 안타까운 것은 주체의 진행 포기 입니다. 대표의 부적절한 행동과 제품의 연구개발 진행은 별도여야 하는데 검사와 국세청이 사업을 못하게 하여 모든 진행을 멈추게 된 것이죠. “이런 회사는 없어져야 한다?” 이정도 횡령배임은 대기업에 비하면 티끌에 가깝습니다. 삼성전자 화성 캠퍼스에서 죽은 노동자가 수십명에 달합니다. 수백명 일 수도~ 경부고속도로 공사 중 돌아가신 분들이 백여명 이지요. 미래을 위해서 가치있는 것을 해야 하거늘 단지 내가 못하면 너도 못해야 한다는 한국 특유의 못된 발상이 정말 아쉽습니다. 뭐든 만들 수 있는 겁니다.(경험을 통하여)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들 때문에 안되는 것. 될 수 있도록 해본이들을 활용하면 되는 겁니다. 수입해서 유통 만 할 생각에 만 빠져서 적당히 돈 만 벌고 빠지자고 생각 하나요? 정말 멋진 일을 해보는건 어떻습니까? 개발. 뭐 까지 해봤니? 제 자뻑의 이유는, 자뻑 이라도 있어야 썰이라도 푼다. 썰 이라도 풀어야 살 만하다. 썰 풀 수 있게 최선을 다해라! https://youtu.be/yYUBCsbtCcw
움직이는모든것
쌍 따봉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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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썰. (2부)
1부가 좋아요를 10개 받은 덕분에 썰전 본선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음. ■ 1부링크 : https://app.rmbr.in/63fhh8AYUrb 다들 감사하고, 2부로 바로 시작하겠음. --------------------------------------------------------------------------- "다들 진정하고 내말좀 들어봐." 진정을 한건지 못한건지 나는 그냥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음.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에 대해 절대 비밀이라고 했고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것 자체가 회사에서 볼때는 난 자격박탈의 문제가 될수도 있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 비밀이야." 다들 숨죽인채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음. 하지만 모두 그 구조조정 대상 중 자신이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음. 모두 알겠지만 임원회의에서 오가는 이야기들 중 조직원들에게 전달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것들이 있음. 이건 분명 리더의 중요한 역할중 하나임. 그리고 회사입장에서 보면 회사의 중요한 비밀을 누설하는 자격박탈감의 임원이겠지만, 난 우리 조직원들이 훨씬 더 소중했음. 내가 임원으로 승진하던때 이제는 거리감이 느껴질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부서 리더들에게 회식자리에서 이야기했었음. "덕분에 내가 승진을 한거야. 그렇다고 내가 뭐가 달라지는건 아니야. 나는 전과 똑같고 앞으로 임원회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이야기할게" 그리고 지금 이 카페에 모여있는 나의 사람들. 이제 갓 아이가 태어난 1팀리더,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하는 딸을 가진 2팀리더,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있는 3팀리더 우리 조직원들이 어떤 삶을 꿈꾸면서 이회사에서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사람은 나였음. 난 이사람들의 삶이 단 1이라도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음. 그리고 그순간 내가 할 수 있는건, 나중에 회사에서 통보받기전 이들이 빠르게 다른길을 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이야기를 하고 함께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음. 나는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음. "지금 이 자리에도 구조조정 대상이 있어." 그때부터 자리는 엄청 술렁이기 시작했음. "누구인지가 중요하지는 않아 우리가 알아야 할건 결국 나중엔 우리 모두 대상이 될 수 있다는거야. 우선 오늘 여기 있는 모두 각자 이력서를 업데이트 하자.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자" 가족같던 우리에게 이건 특정인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었음. 그렇게 그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모두 일은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것을 알고있었고 서로 평소와 다름 없이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어색한 공기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음. 이후 나는 1주일 동안 매일 생각에 잠겨있었음. 우리 조직원들은 이 시간동안 구조조정 인사통보시 가장 현명한 협상방법, 가장 좋은 이직처 등을 각자 알아서 찾아보고 있었음. 적어도 준비할 수 있는 조금의 시간은 미리 당겨왔지만, 각자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수 있었음. 나는 1주일간 매일 집에와서 혼자 술을마시고 생각에 잠겨 속상해서 혼자 울기도하고 힘든 시간과 싸우고 있었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 왜냐하면 우리 부서가 회사의 모든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는데 왜 공평하게 30%가 감축이 되어야 하는건지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나서 참을수가 없었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는 했지만 회장님의 지시 그리고 그걸 수행해야 하는 CEO가 계획한 것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리 없잖겠음? 그때 와이프가 옆에와서 나한테 무슨일인지 물어봄.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모두 이야기를 했음. 그러자 와이프가 하는말이, "오빠, 그냥 오빠가 관둔다고 해버려." "응? 관둔다고 하라고?" "응. 관둔다고 해. 어차피 오빠는 감축대상 아니라고 해서 오빠 맘이 편하지 않잖아. 그냥 관둔다고 해." 자영업을 하는 와이프는 항상 입버릇처럼, 돈은 내가 벌테니 힘들땐 언제든지 쉬라고 했었음. 하지만 이날은 평소 내가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와닿았음. 난 와이프의 이 한 마디에, 갑자기 용기가 막 샘솟기 시작했음. 다들 알겠지만 관둔다고 생각하면 그다음부터는 정신이 아주 맑아짐. 그래서 나도 이번 구조조정에서 회사를 관두겠다고 다짐하게 됨. "그래. 나도 회사를 관두겠어."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을때, 마구마구 샘솟은 용기는 내 사고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 놓았음. 머리가 맑아지니 현재 상황을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완전히 이성적인 사고로 전환이 되었음. 그러다보니 지금 여기에서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음. "잠깐.. 지금 이건 사실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두가지의 문제인데?. " 갑자기 신내림이라도 받은것처럼 복잡했던 머리속이 선명하고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음. ---- 2부끝 ------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용이 좋으셨다면 좋아요를 꾸욱~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2부도 썰전 본선에 올라간후 3부로 찾아뵙겠습니다!! ------------------------------------- ■3부링크: https://app.rmbr.in/xnImPsHXW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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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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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정의선을 감동 시켜라. 🕺🏼
마케팅은 짜고 치는 결과물 이다. 2006년 추운 겨울, 매일 자진 철야를 하며 한국 최초의 스포츠카 개발이 막바지 였습니다. (혼자 만 도면 덮고 설계실 쪽잠) 현대자동차 과장 이라는 이가 공장에 와서 컨셉카의 범퍼를 구두발로 걷어 차면서 “이게 차야? 이걸 누가 사?” 하더니 사장실을 다녀 간 후로 갑자기 저를 호출 합니다. 그리고는 “자네 만 3개월 고생하면 50명 월급 나온다” 합니다. (이미 1년 동안 고생 중인것을 대표는 모름) 당시 27세. 자동차 설계 경력 3년차. 뭐든 시키면 하던 시절. 3개월을 밤새어 #그랜드카니발하이리무진 탄생했습니다.(하루 한시간 정도 만 잠) 단 한명의 설계자와 세명의 현장 조립자. (그게 되겠냐며 기존 공장장은 외면) 이게 되데요. (컨셉 그대로 양산 납품) 설계부터 제작까지 딱 3개월 만에 완성 후 작전에 돌입 했습니다. 타깃은 정의선 목적지는 양재동 마케팅 직원은 사전에 제공 받은 정의선의 집 주소와 이용 차량 및 출발 시간 등을 기준으로 새벽에 공장을 출발 했습니다. 우리는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학부모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죠. 사장이 설계실에 왔습니다. “됐다! 자네가 해냈어!” 정의선은 출시 된 지 몇 일 안된 카니발에 하이리무진 개조 된 것을 보고 직원을 시켜서 정차를 시켰고 양재동 사옥 주차장에 주차 후에 차량 개조 업체 등 정보를 듣고서 “입찰 자격을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몇 달 후, 우리는 밀린 월급을 받기 시작 했죠. 그동안 6개월 넘게 채불 상황에서도 한국 최초로 스포츠카를 만들어 보겠다고 철야를 계속하고 있었거든요. 스피라 범퍼를 걷어차던 현대차 직원은 성품에서 드러나 듯 소문난 만년 과장-> 부장 승진을 해보겠다며 찾아 온 것 이었죠. 이 배경에는 모터쇼의 사건이 있었는데 우리 부스에 정의선이 찾아 와서는 대표에게 “어려운 일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했었고 이 상황을 만년 과장이 이용 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이슈는 충분히 완숙된 준비 입니다. 쇼를 하려면 단원을 연습 시켜야 하는거죠. 대표는 우리가 만든 스피라를 한번도 운전하지 않았습니다. 스피라는 연습이었던 겁니다. 스피라로 젊고 의욕있는 인력들을 손쉽게 끌여들여서 연습이 충분히 되었을 때, 카니발을 만들어서 매출을 만든 것이죠. (당시 서울권 공대생들의 입사 연락 쇄도) 어릴적 역전에는 차력사들이 약을 팔았습니다. 약이라고 해봐야 사카린 물 이었죠. 그 약을 팔려고 차력으로 사람들을 끌여들였던 겁니다. 스피라로 회사를 알리고 사람을 끌여들여 파는 물건은 대기업 납품 이었던 것이죠. 시스템을 보여주고 부품을 납품. 부품을 납품 하려면 시스템을 보여줘야 하는 겁니다. 퇴사 할 무렵 되돌아 보니 프로토자동차 에서는 버전별로 카니발을 컨버젼을 했었는데 납품 할 품질이 못됐죠. (설계도 도면도 없이 손으로 하던 한계) 고육지책인지 계책인지 스피라를 만들면서 올라간 제작 수준으로 그랜드카니발하이리무진의 완성도가 나온 겁니다. 이 외에도 30여 차례의 흡사한 경험이 있죠. 저는 컨설팅을 하면서 대표들에게 “기대 이상을 보여줘라”고 조언 합니다. 컨셉단계에서 더욱 더. 사람을 끌여들여 영향을 미치려면 사장이 미치고 직원들도 미쳐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카니발을 기아차에 납품하기까지 10년. 충분한 준비와 자격 및 기술이 필요 한 겁니다. 최근 스타트업들이 학력 및 대기업 경력 만으로 제품 제작 경험 없이 투자를 요구 합니다. 심지어 기술이 없어도 네트워크로 가능하다며 수천억원을 횡령 하고 파산해서 털고는 또 다른 투자자를 모집 하기도 합니다. 그곳의 개발자들은 개발을 해 본 적 없는 자리 만 채우고 있는 인력이 대부분 이더군요. 당연히 제품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곳 근무자는 이직해서 문제야기) 1년, 2년, 3년. 이정도 기다렸으면 됐다며 이제는 매출을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10년을 필요로 합니다. 뭐든 말이죠. 사기를 치던 돈을 돌리던 하려면 재주 부리는 놈이 있어야 하고 재주 부리는 놈이 재주를 부리게 하려면 서커스장 이라도 갖혀놓고 연습을 충분히 해야 관객을 유치 할 수 있는 겁니다. 단순히 3개월 작전으로 성공 한 듯 한 이면에는 10년간의 적자에서도 사채까지 쓰면서 유지 해 온 대표 부부가 있었습니다. (자본금 = 체력) 무엇보다도 대상(정의선)의 눈을 매료시켜 상품(그랜드카니발하이리무진)을 선택 하게 한 것을 “어우러진 아름다움” 입니다. (사람도 제품도 예뻐야 쳐다본다) 대기업 대표가 주행 중 인 차를 정차시키는 노력을 하게 할 만큼의 매력적인 상품을 준비 하여야 하는 것이죠. 10년의 디자인 경험이 시간을 거스르는 설계자(나)를 만나는 적절한 시기 였던 겁니다. (기술 = 체력 = 밤샘) 마케팅은 전부 다 준비되어 있어야 가능 한 것이더군요. (제품도 없는데 영업은 왜 뽑니? 들) 이후에도 최초의 전기차, 최초의 유아전동차 등등 개발 총책임자로 아이템을 이끌며 느낀것은 매출은 모든 것이 준비되면 당연히 발생하다는 겁니다. 심지어 투자자들이 돈 싸들고 찾아 오더군요. 물론 투자로 가속을 할 수는 있겠지만 투자자들의 눈을 가리기 위하여 투자자들을 위한 제품을 준비하다보면 진정한 제품은 멀어지는 겁니다. (it 기업들) 저는 그러한 경험 후, 잠수함 설계, 선박 설계, 거대로봇(메소드2)제작, 인공위성 개발 원전설계 등등 한국에서 가능한 모든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꿈을 팔려면 경험을 해야 하니까요. 모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기계, 전시되는 것 만으로도 예술품 같은 가치의 기계를 만들기 위하여. #나스스로상품이되자 현대차 만년 과장이 걷어 찼던 차는 제 주차장에 보관중 입니다. 또 다른 납품을 위해서… https://youtu.be/GwotmlCAHEY
움직이는모든것
쌍 따봉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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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스..그리고 그녀..
안녕하세요 직장생활 15년차 평범한 가장입니다 제가 신입때 있었던 일 좀 적을까 합니다 2005년 2월 졸업후 3월 바로 취업해서 국내영업 파트에서 직장생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6개월쯤... 어느날 ...아침에 출근했는데... 제 책상에음료수가 놓여있는겁니다 아침에주스 다음날에는 녹차베지밀.. 다음날에도 음료수가 .. 일주일동안 하루도 빠지지않고 음료수가 있었습니다 내용을 고참대리님 한테 이야기 했더니~~ 고참대리 왈...누가 더 좋아하나보네 니가 직접확인해봐! 즉!!평소보다 한시간정도 일찍출근해서 범인?이누구인지 확인하라는 것이였 습니다 다음날 바로 실행에 옮겼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부장님 자리(파티션이있어서 숨기좋음)에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드디어 사무실문이 열리고...발자국소리가 들리고 음료수 올려놓는 소리가 들리고~~ 빼꼼히~~몰래 범인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한숨이 나왔습니다 왜!??? 거기에는....그당시 개그프로 유명했던 행님아~~김신×같은 분이 있었습니다... (회사특성상 라인에 여성근무자들이 많았습니더) 저의 기대와 상상이 확무너지는 순간이였습니다 저는 김아중같은 분이있을거라는..환상을 하고있었기에... 그날 이내용을 고참대리한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말아야 했습니다) 얼마후 회사에 이상한소문이 돌기시작했습니다 영업부 신입사원이 고백여를 찿다니... 영업부 신입사원이 고백여를 버렸다니... 나쁜남자로 낙인 찍혀서 한 2년동안은 꼬리표 달고 다녔습니다 참고로...고참대리 와이프가 그여성 파트 반장이였습니다 쓰고 나니까 재미없네요 이상입니다
강철중위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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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한테 타 회사 구인구직 공고 보낸 썰
제곧내 아직 회사 입사한지 2달...?도 안됐을 시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쌩 신입이고 2달이니까 아직 수습 기간이었을때 ㅎㅎ 회사 규모가 작아서 대표님과 1:1로 연락 주고 받을 일이 많은데 카톡으로 무슨 구인구직을 보고 너무 블랙의 향기가 ㅎㅎㅎ 솔솔 풍기는게 웃겨서 친구에게 보내려던걸 열려있던 대표님 창에 붙여넣었습니다 정말 식겁을 했지만 다행히 지웠고, 그 후로는 대화 끝나면 창을 아예 닫아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안보신 줄 알았는데 한 달 후에 수습 끝나고 어디 좋은 공고 떠도 가지 마세요 라고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울었습니다 대표님 저 그런거 아니예요 ㅠ
닉네임그만정해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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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하다 특종한 썰
때는 2019년, 버닝썬이다 조국 사태다 뭐다 대한민국이 시끄럽던 시절.. A사건에서 특종한 썰을 풀겠습니다.. (신상이 특정될 수 있으므로 사건 명칭은 익명으로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당시 저희 회사뿐 아니라 모든 언론사가 해당 사건에서 특종을 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기도 해서 핵심 요인들마다 기자 수십명이 따라붙는 건 기본이고, 관련 변호사들에게까지 기자들이 붙었죠. 저도 해당 사건 취재팀에 속한 기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어느 사건이 쉽겠습니까만.. ㅠㅠ 이 사건 취재는 정말 유독 안 풀렸습니다. 핵심 인물들은 완전히 입을 다물었고, 수사기관들에서도 뭐 하나 흘러나오는 게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특종들은 매일 매일 쏟아졌습니다. 저희가 아니라 다른 회사들에서요. ㅋㅋㅋ 데스크에선 날마다 불호령이 떨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뭐라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팀원 모두에게 점점 심해졌습니다. 제가 따라붙던 건 주로 변호사들이었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라 5명 정도의 변호사들을 관리했는데 뭐 하나 잘 풀린 게 없었습니다. 잡상인 취급에 문전박대는 당연하고, 아예 쳐다도 안 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손님인 척 태연하게 들어갔다가 쫓겨난 적도 있고.. 정신 없이 쏘다녀야 하니 매 끼니 굶는 건 다반사고, 하염 없이 대기하다 자정 훌쩍 넘겨서 집에 가거나 아예 모텔이나 여인숙에서 자기도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되는 게 진짜 1도 없으니 죽을 맛이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그중 정보를 좀 흘리는 변호사를 알게 됐습니다. 저한테 흘린 건 아니고 ㅋㅋㅋ 그날도 어김 없이 인사차 들렀다가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습니다. 문 밖에서 면담 대기하는데 앞서 면담 중인 다른 기자가 "진짜 진짜 감사해요"하는 소리를 듣게 된 겁니다. 제 면담 차례가 왔습니다. 이렇게 변호사들한테 뻗쳐대던 게 어언 한달쯤 됐었는데 저도 억하심정이 생겨 대뜸 이렇게 얘기했어요. "변호사님, 서운하게 왜~~ 제가 변호사님이랑 그래도 이렇게 미운 정 고운 정 든 게 그래도 한달이 넘는데~ 갑자기 나타난 새 기자한테만 기사거리 주시고 너무 하시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아니, 기자님이 저한테 뭐라고 알려줘요 ㅋㅋㅋ 쟤는 내가 알고 지냈던 대학 후배예요 ㅋㅋ" 뭐 순간 할말이 없더라고요.. 억하심정에 별 대꾸도 못하고 나왔습니다. '하.. 이렇게 인맥도 학맥도 지연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계속 이런다고 뭐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현타'가 왔습니다. 그래도 뭐 어떡합니까? 뾰족한 다른 수가 없으니 계속 삐댔습니다.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더 독하게 마음을 먹었죠. 더 냉랭하게 대할수록 더 생글 웃고, 얼굴에 철판을 더욱 더 깔아 달라붙었습니다. 나중엔 가벼운 티타임도 안 받아주고 출입도 안 시켜주더군요. 아무도 없을 때 무단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냥 로비에 들어가서 손님처럼 대기하고 앉아있었어요.) 그 변호사가 돌아와서 격분하더군요. “야 너 경찰에 진짜 신고한다?” 원래 존댓말은 계속 써줬는데 그때부턴 반말로 상대하더군요. 이후론 로비에도 못 들어오게 비서든 변호사든 자리를 비울 땐 외부 문을 아예 잠가버리더군요. 상황이 그렇게 되니, 좀 서글펐습니다. 용 쓴다고 쓰는데 뭐 하나 건지는 건 아무 것도 없고. 근데 여전히 다른 매체들에선 특종이 빵빵 터지고.. ‘난 대체 뭘한 걸까 그간. 이 개고생을 뭐하려고 한 건가. 난 왜 이렇게 무능한가..’ 그 로비에서 쫓겨난 날, 새벽 2시까지 변호사를 기다렸습니다. 동료들이랑 금요일이라고 모처럼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더군요. 숙취에 도움 되라고 헛깨수 6병 정도를 사서 주려고 했는데, 뵙기가 쉽지 않더군요. 미안하기도 하고 뭔가 제 자신도 비참하고.. 그래서 건물 밖에서만 서성대다가 사무실 문고리에 비닐봉지를 걸어두고 나갔습니다. 문자 한통과 함께요. "변호사님 매일 매일 괴롭혀드려 죄송합니다.. 제 사명과 인간적 죄송함이 부딪혀서 참 괴롭네요.. 변호사님이 절 박대하거나 그래도 변호사님이 밉지 않습니다.. 변호사님도 그래두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날, 여전히 같은 일상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사무실로 갔고, 그날은 그 변호사님이 다른 재판들을 도느라 하루종일 멍하니 대기하며 허탕만 쳤습니다. 그날 밤, 여자친구가 저를 보러 왔고 그 변호사 사무실 건물 앞 도로 연석에서 여자친구가 사온 삼각 김밥을 함께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연석 앞으로 누군가 내리더군요. "야 ㅋㅋㅋ... 왜 불금 저녁에 이러고 있어! 이놈아 뭐가 궁금한데?!!" 저랑 여자친구 둘이서 궁상 맞게 있는 모습을 보자, 한달 넘게 닫혀 있던 그 변호사의 마음도 입도 열렸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너덧개의 특종을 하게 됐고 나중엔 상도 받게 됐습니다. 이후로 법률적인 문제가 있을 때 종종 무료로 상담도 받았구요 ㅎㅎ 지금은 기자로서 그때 같은 열정도 에너지도 없습니다. ㅋㅋ 다만 그때 왜 그렇게 미친듯 매달리고 쏟아부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그때가 가끔 그립습니다. :)
근로자1번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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