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미래, 열정보다 중요한 시스템
열정의 시작보다 중요한 것 : 당장 눈에는 커 보이지만 미래는 없다!
지속 가능한 협동조합의 조건
처음 뜻이 맞는 이들이 모여 영리법인인 일반협동조합을 창립했던 몇년전이 기억난다.
'함께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뜨거운 열정과 선한 의지만으로 우리는 뭉쳤고, 마침내 사업의 첫 발을 내디뎠었다. 창업을 위한 기획과 사업전반의 준비, 역할분담, 아이디어를 짜내고 서로를 격려하던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대기업 부럽지 않은 단단한 공동체였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진짜 시험대는 실패가 아닌 이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찾아왔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계약이 이루어 지며, 이익이라는 냉혹한 현실의 차이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며 개개인의 영업력과 역량의 격차로 인해 매출 기여도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겉으로는 '협동'을 외쳤지만, 가시적인 숫자의 차이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만과 균열이 싹트고야 말았다. "왜 내가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데, 결실은 똑같이 나누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신뢰를 갉아먹었고, 결국 우리는 열정의 불꽃을 피워 올린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뼈아픈 해체라는 결말을 맞이해야 했다.
이 쓰라린 실패의 경험은 저에게 협동조합이라는 유토피아적 이상 뒤에 숨겨진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게 해 준 값진 교훈이 되었다. 흔히 협동조합의 위기는 자금이 부족하거나 사업 아이템이 고갈되었을 때 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진짜 위기는 ‘서로의 마음이 평등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에 찾아온다. 초기 창립의 감정적 열정을 넘어, 끝까지 완주하는 지속 가능한 협동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복기하고 보완해야 할 성찰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감정의 신뢰를 넘어선 '시스템의 신뢰' 구축
우리는 흔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온정주의에 갇혀, 정작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곤 한다. 돈과 기여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동료를 의심하는 것처럼 여겼던 태도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온다.
협동조합이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선의와 열정이라는 유한한 감정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투명한 기여도 측정과 합리적 보상 규칙은 비영리법인이나 협동조합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영업력 차이와 매출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정교한 규칙이 선행되어야 서로의 불만을 없앨 수 있었다. 기여도가 높은 조합원에게는 정당한 인센티브나 조직 내적 보상이 돌아가게 하고, 기여도가 일시적으로 낮은 조합원에게는 이를 만회할 기회나 다른 형태의 역할(내실 경영, 리스크 관리 등)을 부여하는 시스템이 작동했어야 했다. 무조건적인 ‘N분의 1’ 배분은 협동이 아니라, 오히려 역량 있는 동료의 이탈을 부추기는 역차별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할 필요성이 있었다.
2. '동질성'의 환상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마음가짐
창립 초기에는 모두가 똑같은 마음, 똑같은 능력으로 달리고 있다고 착각하며 시작을 준비해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전방에서 매출을 이끄는 '공격수'의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후방에서 조직의 뼈대를 세우고 행정을 처리하는 '수비수'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모든 조직의 핵심이다.
보이지 않는 헌신의 가치 존중은 당장 눈에 보이는 매출 숫자가 적다고 해서 그 조합원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눈에 보이는 영업력 뒤에는 조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고충과 행정적 헌신이 분명히 존재한다. 매출을 일으키는 조합원은 동료들이 든든하게 배후를 지켜주기에 마음껏 뛸 수 있음을 감사해하고, 내근 조합원은 전방에서 거친 거절을 당해가며 매출을 조달해 오는 동료의 고독함을 이해하여 주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이나 '나태함'으로 치부하지 않고, 서로의 역량을 상호보완적인 자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야 조합은 성공한다.
3. '나'의 이익이 아닌 '우리'의 생존을 위한 대국적 시야
사업 개시 후 1년 안팎은 조직의 체력이 가장 취약한 시기다. 이 시기에 발생하는 이윤은 개인이 취할 전리품이 아니라, 조직이 자립하기 위해 축적해야 할 '생존 자금'으로 여겨야 한다.
갈등을 대하는 태도의 성숙은 단기적인 매출 격차에 연연해 "왜 내가 더 손해를 봐야 하는가"라는 이기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 공동체의 침몰은 시작된다. 내가 조금 더 뛰더라도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이롭다는 대국적인 시야, 그리고 내가 지치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 다음에는 저 동료가 나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굳건한 연대 의식이 협동의 본질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등을 돌리거나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의 한계와 고충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끊임없이 조율해 나가는 끈기가 있어야만 협동조합은 비로소 ‘지속 가능성’이라는 날개를 달 수 있다.
협심(協心)의 근원 : 감정의 열정을 넘어선 '시스템의 신뢰'
협동조합이 끝까지 가기 위해 가장 먼저 보완해야 할 점은, 서로의 '선의'와 '열정'에만 의존하던 초기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열정은 유한하며, 이익 앞에서는 누구나 흔들릴 수 있다.
기여도에 대한 유연하고 정교한 설계로 비영리법인 혹은 협동조합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역량 차이와 매출 기여도를 인정하는 합리적인 보상 체계나 역할 분담 시스템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N분의 1'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성과를 투명하게 조율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을 때 비로소 시기 질투 없는 협동이 가능해진다.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력은 갖춘 조합은 영업력이 뛰어난 조합원이 있다면, 묵묵히 내실을 다지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조합원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눈에 보이는 매출뿐만 아니라 조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고충과 헌신을 서로 알아주는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할 것이다.
끝까지 달리기 위한 마음가짐 : '나'의 성공이 아닌 '우리'의 생존
협동조합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마음가짐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에 모두 담겨 있다.
단기적인 매출 차이에 연연해 동료를 탓하기 시작하면 배는 결국 침몰하고 만다. 내가 조금 더 뛰더라도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이롭다는 대국적인 시야, 그리고 내가 지쳤을 때 동료가 나를 이끌어 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협동의 본질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솔직하게 한계를 고백하고 조율해 나가는 끈기가 성공을 담보한다.
글을 마치며 : 새로운 출발을 앞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지나간 아픔은 깊었지만, 저는 여전히 협동조합이 가진 연대의 힘과 그 가치를 믿는다. 비록 한 번의 멈춤이 있었을지언정, 그 실패의 자양분 위에서 피어날 새로운 협동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성숙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손을 잡고 협동의 길을 걷고 있거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모든 협동조합의 조합원 여러분께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부디 초기 창립의 뜨거웠던 첫 마음을 잃지 않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지혜를 더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방주를 만들어 가시길 바란다.
이윤의 유혹과 현실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어서, 마침내 끝까지 완주하여 진정한 성공의 결실을 맺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