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 이별한 전남친이 우리 회사에 지원했어요.
그리고 제가 면접관이에요.
저는 현재 서른입니다. 거의 초창기에 합류한 쟈그마한 스타트업이 감사하게도 작년에 투자를 좀 받으면서 덩치도 키우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운 좋게 나이 대비 빨리 팀장을 달게 됐어요.
회사가 커지다 보니 팀원을 더 채용하게 됐는데(지금은 한명 ㅎㅎ), 대표님이 저를 많이 믿어주셔서 채용 공고 작성부터 서류 검토, 실무 면접까지 제가 다 전담하고 있어요. 제가 실무 면접까지 보고 나면 대표님이 최종 면접을 보시는 시스템이고요.
팀원을 직접 뽑는 건 처음이라 서류 하나하나 정말 꼼꼼하게 읽고 있었거든요. 근데 좀 전에 이력서를 열자마자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름부터 익숙해서 설마 설마 했는데 이력서에 있는 사진, 그리고 출신 학교랑 과까지... 몇 년 전 안 좋게 헤어졌던 전남친이더라고요.
헤어질 당시에 저는 인턴으로 중견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길어지는 취준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상태였어요.
어쨌든 제가 돈을 버니까 데이트 비용도 제가 더 내려고 하고, 자소서도 같이 챙겨봐주기도 하던 어느날 갑자기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제 연락처, 카톡, 인스타 다 차단해버리고는 잠수 이별을 당했었거든요.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 이렇게 이력서로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지금 제 고민은 이겁니다.
객관적으로 스펙은 괜찮습니다. 냉정하게 저희 팀에 핏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요. 대표님이 강조하던 전공도 맞고요. 이전부터 대표님이 앞으로 뽑을 팀원들은 이 전공으로 뽑자고 말씀하셨을 때부터 이 친구가 생각나긴 했었는데 약간 예지력이 있었던 걸까요...ㅎ 그러므로 실무자로서만 보면 면접은 한 번 봐야 할 수준이에요.
근데 제가 면접관이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남아있냐고 물으신다면 이제는 아무 감정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또 실제로 만나면 어떨지 모르잖아요. 만에 하나 면접을 서로 ㅎㅎ 잘 본다고 해도... 뽑게 되면 제 직속 팀원입니다. 매일 제 얼굴을 보며 제 지시를 받아야 하고, 제가 인사고과를 담당해야 합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할까요?
사적인 감정 배제하고 일만 생각해서 면접장에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나중에라도 껄끄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서류부터 컷하는 게 맞을까요?
대표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해볼까도 생각해봤는데 이런 걸로 고민한다고 실망하실까봐 차마 그러지 못하고 여기에 계신 선배님들께 여쭤봅니다.
또 한편으로는 면접 불러서 당황하는 얼굴을 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또 너무 유치한가 싶기도 하고ㅎㅎ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네요. 선배님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