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와 노조의 나라] 젠슨 황이 한국에서 사업했다면 살아 남았을까
한국인들은 젠슨 황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열광한다. 한국에 방문하면 웬만한 연예인 이상으로 관심을 받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강연을 듣고, 그의 발언을 인용하며, 엔비디아의 성공을 부러워한다.
그 열광하는 사람들 중에는 직장인들도 많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만약 그 사람들이 1990년대 초반 엔비디아에 입사했다면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지금의 엔비디아 직원들은 엄청난 부를 얻었다. 스톡옵션으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엔비디아가 오늘날의 기업이 되기까지는 3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젠슨 황은 결코 편안한 경영자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워크홀릭이라고 인정한다. 직원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다정한 리더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는 높은 기준을 요구하며, 때로는 매우 강한 압박을 준다. 엔비디아 내부에는 오랫동안 “우리 회사는 늘 파산 30일 전 상태에 있다(Our company is thirty days from going out of business)“라는 말이 비공식 사훈처럼 존재했다.
그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수많은 위기를 겪었고,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집중과 헌신을 요구받았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엔비디아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묘한 모순이 보인다.
사람들은 젠슨 황을 존경한다. 하지만 정작 초기 엔비디아에 입사했다면 “갑질 경영”, “과도한 업무”, “워라밸 침해”라는 비판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를 떠났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노동부에 신고했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사를 비난했을 것이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는 중요하다. 불법행위나 착취는 당연히 막아야 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기업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지나치게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다.
사업주는 노동자를 착취하려 하고, 노동자는 사업주를 속이려 한다는 전제가 사회 곳곳에 깔려 있다. 노동법 역시 상당 부분 이러한 불신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과 혁신기업의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창업자는 대기업 총수가 아니다. 월급을 주기 위해 자신의 급여를 포기하고, 담보대출을 받고, 실패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직원은 월급이 밀리면 회사를 떠날 수 있지만, 창업자는 회사를 떠날 수 없다. 회사가 망하면 자신의 재산과 인생이 함께 무너진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창업자보다 임직원을 더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기업가 정신을 말하면서도 기업가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한다.
혁신을 이야기하면서도 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희생은 인정하지 않는다.
벤처 생태계를 이야기하면서도 벤처 창업자가 요구하는 유연성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는 세계적인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
엔비디아가 미국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실패한 창업자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고, 성공하면 엄청난 보상을 허용하는 사회다. 젠슨 황 역시 대만 출신 이민자다. 그의 성공은 특정 민족의 우월함 때문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엔비디아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토양이다.
기업가를 존중하기보다 의심하고,
성공을 축하하기보다 질투하며,
실패를 배움으로 보기보다 낙인으로 만들고,
사업주와 근로자를 협력 관계가 아니라 적대 관계로 보는 문화.
그리고 그 위에 쌓여 있는 과도한 규제와 관료주의.
이런 환경에서는 젠슨 황이 와도 엔비디아를 만들기 어렵다.
우리는 젠슨 황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과연 젠슨 황이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젠슨 황이 나타나기도 전에 지치고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