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악마를 보았다.
3-3. 술을 권하며 의장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로 기분도 칙칙하고 해서 막걸릿집으로 들어간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가 20가지 정도 나오니 식사 겸 술자리로는 막걸리가 최고다. 속이 타는지 비서실장은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막걸리 두 잔을 연거푸 마신다. 김 국장은 안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평소 위염 증상이 있는 김 국장은 안주가 나온 후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한다. 오늘따라 오징어 입 볶음이 특히 당긴다. 잘근잘근 싶다가 오징어 뼈만 뱉어버리면 속이다 후련해진다. 30분 정도 지나자 둘 다 얼굴이 잘 읽은 토마토처럼 달아오른다. 머리카락만 빼면 영락없이 앞뒤가 똑같은 토마토다.
“의장님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정도면 화가 풀리겠죠.”
“그러면 좋겠는데, 저도 이유를 몰라 답답해 죽겠어요.”
“조금 전에 화장실에서 오래 계시던데 혹시 연락해보셨나요?”
“아니요. 의장님과는 통화하지 못했고, 수행하던 직원한테 당시 상황을 알아봤어요.”
“아, 그랬군요. 그 직원은 뭐라던가요?”
“자기도 떨어져 있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의장님은 조문 후 상주인 그 자치단체 의장님과 잠시 대화를 나눴대요. 둘 간 대화라 그 내용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하네요.”
이때 처음 알았다. 의장은 그곳 자치단체 의장 남편상이기 때문에 참석한 게 분명하다. 평소 코로나로 인해 직원 상갓집에는 참석하지 않던 의장 행보에 대한 의문점이 이제야 풀렸다. 비서실장 말로는 두 분 의장끼리 친분이 있어 참석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렇지!’
김 국장은 오징어 입을 질겅질겅 씹으며 혼잣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두 분간 대화 후 의장님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잠시 식탁에 앉았다가 식사도 하지 않고 그냥 출발하자고 했대요. 분명 두 분간 이뤄진 대화 때문인 게 분명한데 그걸 들은 사람이 없으니 더 답답하기만 합니다.”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네요. 그렇지만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뇌 쪽 혈관 문제로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비서실장은 막걸리를 계속 들이켠다. 김 국장은 그런 비서실장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오늘은 함께 흠뻑 취하기로 작정하고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시킨다. 오늘은 조금 취해서 집에 들어가고 싶다. 이때 비서실장은 홍 과장에 대한 속내를 처음으로 말한다.
“국장님. 홍 과장을 잘 살펴보세요. 말도 조금은 가려서 하시고요.”
“저도 다른 과장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는데 아직도 그런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저한테는 무지 잘하거든요. 그리고 평소 허튼짓도 하지 않았어요.”
“의장님과 홍 과장은 한 몸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의장님은 귀도 얇고 의심도 많은 사람입니다. 약간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으로 보여요.”
“음모론요? 저는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요?”
“일단 의장님은 그 누구 말도 믿지 않아요. 가끔 본인이 출장 가면 의장실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누가 자주 왔다 가는지 등의 동향을 꼭 파악하는 분입니다. 지난번에는 본인을 잘 따르던 직원에게 복도에서 툭 하고 말을 던진 적도 있어요. ‘너 요즘 내 욕하고 다닌다면서!’라고 말이죠.”
“저는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어요. 저도 조심해야겠네요. 그런데 홍 과장과 의장은 어떤 사이죠?”
“의장님이 의장직에 도전했을 때 홍 과장이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의회 직원 중에서 오직 그 사람 말만 믿는 것 같아요. 겉으로는 홍 과장이 순진한 사람 같지만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의회 직원이 의장 선거 과정에서 특정인을 도우면 법령 위반 아닙니까?”
“그렇긴 하죠. 그렇지만 일부 정치적인 공무원은 선거 과정에서 줄을 서곤 하죠.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잖아요.”
“실장님 말씀, 이해가 가네요. 그래서 의장님과 홍 과장 독대가 많았던 거군요.”
“네, 특히 인사 문제와 같은 내밀한 부분은 저도 배석하지 못하고 두 분 독대로 일이 결정됩니다.”
이제야 다른 사람들이 홍 과장에 대해 했던 말이 이해된다. 홍 과장은 소위 공무원 중에서도 대표적인 잡식동물임이 분명하다. 곁으로는 순진한 양의 탈을 쓰고 속으로는 의장과 한통속이 되어 사실상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김 국장은 순한 양의 얼굴로 다가왔던 홍 과장의 속내를 몰랐던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술기운이 더해지니 몸이 더욱 뜨거워진다.
비서실장은 조금 취했는지 평소보다 말이 많다.
“국장님. 성 과장 잘 아시죠?”
“물론 잘 알죠. 바른말 하기로 유명하신 분 아닙니까. 집행부 시절부터 잘 알던 분이죠. 옳고 그름이 분명하신 분이라 저도 그분 말은 대충 듣지 않아요.”
“성 과장도 고생이 많아요. 어떤 보고를 올리든 의장님이 자꾸 트집을 잡으며 괴롭히고 있어요. 아마 성 과장도 요즘 몹시 괴로울 겁니다.”
“바른 소리가 원래 귀에 거슬리잖아요. 저도 나이를 먹다 보니 달콤한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좋기는 하던데요. 물론 그러면 안 되겠지만요. 관리자가 되면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둬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홍 과장도 항상 저에게 달콤한 소리만 했던 사람이네요.”
이런 말을 하며 김 국장은 자신을 되돌아본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김 국장도 그런 부류의 사람에 속해있었다. 그런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진다.
“국장님은 그래도 직원들 애로사항에 대해 잘 들어주잖아요.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 노력하시는 모습도 잘 알고 있어요.”
“그렇긴 하지만 실장님 말씀을 들으니 저도 반성이 많이 되네요.”
“더 중요한 것은 홍 과장이 의장님께 사실만 보고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성 과장이 고생하는 것도 다 홍 과장 덕분입니다. 의장님께 자꾸 왜곡된 보고를 해요. 성 과장이 하는 일에 대해 색안경을 끼도록 홍 과장이 자꾸 부추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의장님이 성 과장을 더 미워하고 있죠.”
“홍 과장은 대체 왜 그런답니까?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뭔가 이득이 있는 건가요?”
“원래 홍 과장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성 과장 밑에서 팀장으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홍 과장은 너무도 조용한 사람이라 존재감이 전혀 없었죠. 그런데 과장이 되자마자 돌변했어요. 더군다나 의장님 취임 이후로 더 변해버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홍 과장은 절대 권력을 가진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 그리고 자신이 받는 신임을 남과 나누려고 하지도 않아요. 오직 자기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의장님과 가까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해요. 비서실장인 저마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의장님은 오로지 홍 과장 얘기만 100% 믿어요. 다른 사람 말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듣는다고 보면 됩니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직은 신뢰를 바탕으로 굴러가야 발전하거늘 한 사람이 모든 신뢰를 독차지하고 다른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다니. 의회 사무국장으로 부임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김 국장은 답답한 마음에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시킨다.
막걸리 두 잔을 가득 채운 후 연신 털어 넣는다. 머리가 조금 아프다.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늘 두통이 오곤 해서 오늘은 자제하려 했지만 잘 안된다. 비서실장은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고 있는데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고여있다.
비서실장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분명 비서실장 성정상 평소 바른말을 했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를 모시고 있는 비서실장에게 그렇게 쌍욕을 하다니 이건 아니다.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참는다. 두 명이 주전자 세 개를 다 비운다. 머리끝까지 취기가 올라온다. 오랜만에 복잡한 얘기를 들으며 막걸리를 마시다 보니 벌써 10시가 다 되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하늘도 땅도 전봇대도 빙빙 돌고 김 국장도 빙빙 돈다.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