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 휴젤, 보령
NG
안녕하세요. 어바웃파마 편집자 Jay 입니다. 7여년 전 다국적제약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해당회사의 Korea Head 와 면접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면접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성격의 것이었는데요, 그 대표님은 면접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며 본인 얘기만 주구장창 하셨고, 정작 지원자인 저는 듣기만 했던 것 입니다. 결과적으로 합격은 하였지만, 주객이 전도된 듯 했던 그 면접에서 대표님이 하셨던 말씀 중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Jay씨 30대와 40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40대부터는 결과로만 얘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제가 30대 후반대라 그 말씀이 크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만, 요즘은 참 탁견이었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NG 없는 연기를 one take 로 해내야 하는 것, 그것이 40대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역량입니다. 심지어 그것은 default 값 입니다.
#1. 유한양행
이번 주는 유한양행의 소식이 많네요. 유한양행이 골다공증 개량신약 '라보니디정' 의 품목허가를 획득했다고 합니다. 라보니디정은 골다공증치료 성분인 랄록시펜과 비타민D 의 복합제 입니다. 랄록시펜과 비타민D 의 조합은 이미 있던 것이지만, 라보니디정은 랄록시펜의 가용화를 통해 용량을 줄여 효과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부작용의 가능성을 줄인 말 그대로의 개량신약입니다.
유한 정도의 회사에 있어 라보니디정과 같은 개량신약의 출시는 사실 큰 뉴스 거리는 아닙니다. 다만, 최근에 자체개발 신제품을 쏟아내는 유한양행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전략은 눈여겨 볼만 한 것 입니다. 유한은 사실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코프로모션 및 라이센싱 제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회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매출은 증가하였지만, 영업이익률은 매우 낮은 편에 속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4년전 유한이 조용한 투자를 한 곳이 있는데, 바로 제제개발 전문회사 애드파마 입니다. 유한의 투자를 받은 애드파마는 현재 10여개가 넘는 개량신약의 파이프라인을 가동하고 있으며, 이번 라보니디정의 사례와 같이 탄탄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당시 유한의 투자가 30억원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그 out put 은 이미 본전을 뽑고도 남음이 있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애드파마가 자회사로 편입되었지만,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해 주었다는 것 입니다. 보장된 자율성이 있었기에, 조직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창출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비 바칼의 책 Loon Shots 에서 언급한 성공한 기업의 창의성 유지 시스템이 떠오르는 대목 입니다. 개량신약은 한미약품이 그 대명사였습니다만, 이제 유한도 눈여겨 볼 때라고 생각됩니다.
#2. 보령제약
십수년 전 보령제약이 ARB 신약 카나브를 출시한다고 했을 때, 저는 솔직하게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한국 회사가 신약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드물었고, 특히 고혈압과 같은 major market에서 노는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참으로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카나브는 대성공이었죠.
그런 카나브의 특허가 곧 만료(2023년)된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시간이 빨리 간다고 인식하게 되는 요즘인데, 벌써 특허 만료라니 보령 경영진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습니다. 그리고 소위 포스트 카나브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여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카나브 복합제 등의 개발을 통해 독점권의 확장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놓긴 하였습니다만, 장강은 결국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카나브를 잇는 후속 신약 개발에 대한 투자가 미흡했다는 것 입니다. 너무 카나브 욹어먹기에 치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 치고는 해외 license out 실적은 미비하였습니다. 글로벌 ARB 시장은 이미 성숙 단계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쉬운 대목입니다. 보령의 숨겨 놓은 한방이 있길 기대해 봅니다.
#3. 휴젤
보톡스 전문회사 휴젤 인수전이 점점 달아 오르는 것 같습니다. 대주주인 베인캐피탈이 매각 의사를 밝힌 이후로 인수 전에 참전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인캐피탈의 보유 지분 규모는 1.3조원 대이며 매각 가격대는 2조원은 넘을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이제 조단위는 우스운 금액 단위가 되는 것 같네요.
휴젤은 보톡스와 필러를 주축으로 한 에스테틱 사업을 핵심으로 합니다. 매출액은 2100억대, 영업이익은 70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테틱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부를 가진 신세계 등이 주요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는 분위기 입니다. 한국콜마의 CJ 헬스케어 인수 대금이 1.3조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저는 2조원 대는 over pay라고 생각합니다만, 카나브의 예처럼 제 예상은 잘 빗나가니까요.
신약 개발 만큼이나 생소 했던 것이 한국 제약회사의 M&A 였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의 일 입니다. 해외에서는 바이오벤처의 인수는 거의 매일 일어나는 일이며, 다국적 제약사끼리의 메가딜도 2-3년에 한번씩은 일어나곤 합니다만, 오너 중심 경영의 한국 제약 산업에서는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최근의 M&A 움직임들은 오너쉽의 세대교체에 따른 관점의 유연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더딘 듯 해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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