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원하든 원치않든,
서로 마주앉아 '면담'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아마 회식자리나 분기별 평가 면담 같은 어쩔수 없이 마주하는 상황이 예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필수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곳에는 단지 서로 역할이 바뀐 스피커와 리스너가 존재할 뿐이니까요.
'면담'은 우리 머리속에 '문제해결' or '해답을주는시간' 이라는 프레임으로 자리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면담'을 '문제해결' 이라는 프레임이 아닌 '대화'라는 프레임으로 생각해 보면, 스피커와 리스너 그 사이 어딘가 가능성 있는 길이 조금은 보이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평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때 '충고나 조언,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자주 하게 됩니다.이를 줄여 '충조평판'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충조평판'은 어떠한 상황에서 그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입니다.
대화에서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팩트라고 생각하겠지만, 대화에서 진짜 팩트는 그 사람의 감정이지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마. 너한테도 좋을 게 하나도 없어." - 충조
"그럴수록 네가 더 열심히 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지." - 충조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어봐." - 충조
"네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어" - 평판
"직장 다 거기서 거기야. 머 다른 직장은 나은 줄아니?" - 충조평판
가볍게 이야기한 주제에도 끊임없이 충조평판의 잣대를 들이밀며 다그칩니다.
왜 그럴까요?
충조평판이 도움이 될 거라 믿어서기라기보다 상황만 인식했기에 그 이상의 언어를 찾지 못해서입니다.
잃어버린 언어의 단서를 찾기위해 사건이 풀리지 않을때 현장을 다시 찾는 수사관처럼 내 언어가 끊어진 대화의 벼랑으로 돌아가 봅니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 줘야 하는가?
아마 이순간에 충조평판을 한다면 그는 뿅! 하면서 바로 벼랑 아래로 뛰어내릴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건 내말이 아니라 상대의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해줄 말이 별로 필요치 않습니다.
상대의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상대에게 물어줘야 합니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상대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충조평판을 할만큼 상대의 상태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질문에 대답이 없어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상대에게는 내 상황을 공감하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핵심이니까요.
아무리 고된 직장이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한 사람'이 있으면 직장 생활은 즐겁다고 합니다.
올해는 면담 보다는 대화를, 충조평판 보다는 그에게 그 '한 사람' 이 되길 바라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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