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초년생은 물론 오랫동안 회사를 다닌 사람도 크게 착각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회사를 '합리적인' 또는 '합리적이어야 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직원의 눈에 회사라는 조직은 무척 불합리하고 강압적으로 느껴집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표준이 되는 회사 하나를 국가유형에 비유한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이라기 보단 강력한 독재국가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는 직원이 명령체계에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 합리성을 취하는 순간이 가끔 있습니다. A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B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본인이 볼 때는 C가 올바른 길이라고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묵묵히 B를 수행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갈등이 발생합니다.
개인에게 현명한 직장생활이란 회사조직의 불합리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본인에게 가장 득이 되는 태도는 "나는 C가 맞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윗분들이 B라고 했으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은가 하면, 놀랍게도 실제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회사가 당신보다 똑똑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불합리하고 꽉막힌 조직의 두뇌가 나를 능가합니다.
일견 불합리해 보여도 조직의 경험과 판단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기업가와 리더그룹의 판단에 좌지우지됩니다. 그것이 싫으면 본인이 창업해서 자신의 뜻을 펼치면 됩니다. (다만, 그 순간 스스로 또 다른 독재자가 된다는 점은 명심하세요)
조직의 판단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은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과 상황이 있는데, 그것을 일일이 직원들에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보안이 중요한 전략적 결정에서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사소한 업무의 규칙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 '미생'에 보면 오과장이 장그레에게 '폴더정리'를 시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장그래는 시킨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상사는 '밤새 삽질했냐'며 화를 냅니다. 나중에 장그래는 자신이 볼 때는 비효율적이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과 상황'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회사 일이란 대개 이런 식입니다. 직장 드라마처럼 뛰어난 직원 하나가 나타나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회사를 설득하며 변화시켜 나가는 사례는 참으로 드뭅니다.
그렇다고 직장에 반짝이는 직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스타직원도 조직의 결정을 바꾸는데 집중하기보다 조직이 본인에게 원하는 것을 놀랍도록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고 지시할 수 있는 자리에 빠르게 올라섭니다.
대부분의 샐러리맨은 주어진 지시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실행했는가로 능력이 판가름됩니다. 조직과 나의 생각차이를 성급하게 불만으로 확대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생각을 줄이고 실행에 집중하세요. '어쩌면 내가 틀렸을 지도 몰라'라고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의 스트레스도 줄이고 회사 내에서 빠르게 인정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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