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때가 있다. 엑셀 작업을 단순 반복해야 될 때도 그렇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1장짜리 보고서를 만들 때도 그렇다. 특히 후자의 경우 머리속으로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보고서 내용을 끊임없이 수정하다 보면 지끈지끈 두통이 밀려온다. 화장실도 가지 않은 체 한 두시간 의자에만 앉아 손가락만 움직이는 작업을 계속한다. 하지만 머릿속은 수많은 예상 질문에 답을 하며 분주히 움직인다. 육체는 멀쩡한데 머리만 아픈 불균형의 상황이다.
이런 경우 일부러 나는 몸 쓰는 일을 찾아 나선다. 사무실 가습기에 물을 채우는 일이 그 중 하나다. 우리 사무실에는 가습기가 2개 있다. 크지 않은 사무실이지만 그래도 10명 이상 앉아 있는 사무실이다 보니 가습기가 조금 크다. 먼저 가습기에서 비어있는 물통을 꺼낸다. 그리고 씽크대가 있는 탕비실로 향한다. 물을 가득 채우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한 통에 1분 정도가 지나면 통 끝까지 찰랑찰랑 물이 찬다. 남아있는 한 통까지 마저 물을 채우고 나면 꽤 무게가 나간다. 하나씩 부여잡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가습기를 다시 작동시키면 ‘가습기 물채우기 미션’이 종료된다.
나는 머리 속이 복잡할 때마다 이 미션을 수행한다. 잠깐이지만 아무생각 없이 단순 육체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되고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걸 ‘머리와 몸의 균형맞추기’라고 생각한다. 머리와 몸 중 한 쪽만 주구장창 가동시키면 꼭 부작용이 발생하니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가습기 물채우기가 나에겐 그런 행동이다.
가습기를 창고에 다시 넣어야 하는 3월이 다가오고 있다. ‘가습기 물채우기 미션’이 불가능한 봄날이 올텐데, 아직 봄날의 ‘머리와 몸의 균형맞추기’ 루틴은 찾지 못했다. 엉망이 된 문서고를 조금씩 정리해볼까, 탕비실 커피머신을 청소해볼까 고민이다. 이런 고민을 하다보니 다시 머리가 아프다. 그러면 다시 ‘머리와 몸의 균형맞추기’를 시작한다. 괜히 가습기 통을 다시 꺼내 물을 채워 놓는다. 그리고 나면 봄날의 루틴이 불현듯 떠오르지 않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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