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
여행과 관련하여 작가가 겪은 9가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가 방문한 여행지 소개가 아닌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 작가가 얻은 에피소드, 인생의 통찰 등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총 9개의 에피소드가 나오느데 첫번째 에피소드가 매우 재미납니다. 그 내용을 공유합니다.
2005년 12월의 어느 날. 나는 상하이 푸동공항 티켓 카운터에서 서울로 가는 편도 항공권을 사고 있었다. 경험이 많은 여행자는 공항에서 항공권을, 더더군다나 편도는 사지 않는다.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추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푸동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동중국해 상공을 지나 어둠이 깔린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으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숙소에 도착한거야?"
"아니, 여기 인천공항이야."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놀란 것도 당연했다. 아침에 출국한 남편이 저녁에 귀국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한 달 여정이었다.
"안 간 거야?"
"아니 가긴 했는데......"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아니, 그게 말이야. 나, 추방됐어."
(중략)
내가 푸동공항에서 추방당한 것은 둥북아시아의 미묘한 국제 정서 때문이 아니었다. 국경을 넘는 여행자가 해야 할 너무도 기본적인 준비를 하지 않아기 때문이었다. 입국심사대에 줄을 서서 주변을 살펴보니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다른 한국인들은 모두 여권과 함께 흰 종이를 한 장씩 손에 들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실례지만 그 하얀 종이는 뭔가요?"
"이거요? 비자인데요."
"아니, 중국도 비자가 필요해요?"
" 필요할걸요? 저희는 단체로 다 받았어요."
"중국하고 우리나라가 교류가 얼마나 많은데 비자가 필요해요?"
"그러게요. 근데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중략, 결국 김영하 작가는 한국으로 비자가 없어 추방 당함)
남편이 추방을 당해 밤에 돌아오는 초유의 사태를 당하자 아내는 잠시 평정심을 잃었다. 나는, 비자 받아 다시 가면 된다, 중국 비자 금방 나온다더라며 설득했지만 아내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자기를 추방한 나라에 왜 다시 가? 이참에 그냥 집에 틀어박혀 아무데도 나가지 말고 소설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그러면 상하이에 간 거나 진배없다고 했다.
(중략)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장편소설이라는 게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작가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정말로 집필에 전념한다면 그가 실제로 어디에서 쓰고 있는 가는 거의 중요치 않으며, 때로는 아예 잊어버리게 된다. 나는 주인공을 따라 때로는 평양의 거리, 서울 낙원상가와 코엑스 지하를 헤매느라 상하이 푸동지구에 있는 지, 서울의 내 집 골방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작가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그 토끼굴 속으로 뛰어들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주인공의 운명을 뒤흔드는 격심한 시련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어 현실의 여행자보다 훨씬 드라마틱 하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2021.02.15 | 조회수 136
해외영업인
닉네임으로 등록
등록
전체 댓글 0
등록순최신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