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코끼리에 대한 기록인‘象記’를 통해 다음과 같은 차이를 사유한다.
사람들은 “뿔이 있는 놈에게는 이빨을 주지 않았다.”고 말한 다. 나는 감히 묻는다.
“이빨을 준 건 누구인가?” 사람들은 이렇게 답하리라. “하늘이 주었지.”
다시 묻는다.
“하늘이 이빨을 준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그게 바로 이치입니다. 짐승들은 손이 없으므로 반드시 그 주둥이를 구부려 땅에 대고 먹을 것을 구하지요. 그러므로 학 의 정강이가 높으면 부득이 목이 길어야만 합니다. 그래도 여 전히 간혹 땅에 닿지 못할까 염려하여 부리를 길게 만들었습 니다. 만일 닭의 다리를 학과 같게 하였다면 뜨락에서 굶어 죽 었을 겁니다.”
나는 크게 웃으면서 다시 말하리라.
“그대들이 말하는 이치란 것은 소·말·닭·개에게나 맞을 뿐이다. 하늘이 이빨을 준 것이 반드시 구부려서 사물을 씹도록 한 것이라면, 지금 저 코끼리는 쓸데없는 어금니를 만들어 준 탓 에 땅으로 고개를 숙이면 어금니가 먼저 닿는다. 이른바 사물 을 씹는 것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코가 있기 때문이지.”
“긴 어금니를 주고서 코를 핑계로 댈 양이면, 차라리 어금니 를 없애고 코를 짧게 하는 게 낫지 않은가?”
그러면 더 이상 우기지 못하고 슬며시 무릎을 꿇고 만다.
연암의‘코끼리 철학’<象記>는 이렇게 탄생되었다고 한다. 연암이 <象記>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지극히 단순하다. 우주 의 변화는 실로 무상한 것이어서 하나의 단일한 척도로 수렴 되지 않는다는 것. 닭이나 개를 보고 산출된 가치는 닭이나 개 에게만 적용될 뿐, 그것을 용이나 고래에게까지 적용하려고 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연암의‘코끼리 철학’을 얼마전 독후감을 강요했던 우리 조직에 적용해 생각해 봤다. 직원들에게 매월 책을 한권씩 읽고 독후감을 써내라는 미션이 떨어졌을 당시, 많은 직원들이 일도 바빠 죽겠는 데 언제 책 읽고 독후감까지 쓰냐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일부 직원들은 이 미션을 반기고 좋아하며 본인의 필력을 기꺼이 뽐내기도 했다. 일부 직원들은 상급직원들 눈치 보지 않고 책을 꺼내볼 수 있다며 좋아하기도 했고, 일부 팀장급 직원은 분명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본인 할 일은 안하고 눈치 없 이 책을 꺼내본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우리 도시의 도서 인프라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도서관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각 도서관 및 동 주민센터에 소 장된 책의 수가 대폭 늘었으며, 공공도서관의 특색있는 서비스 운영, 도서대출 상호 대차 서비스 등.. 하루종일 책에 빠져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놈이 있고 개인적으로도 관련과를 졸업해서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비전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은 매우 즐겁고 흐뭇하다.
하지만‘책 읽는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과 ‘책 읽는 직원’들을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적용 되는 기본적인 전제는‘독서행위는 그 사람의 삶이 풍요로워지 고 대리경험을 통한 다양한 지식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있 는 행동이기 때문에 직원들로 하여금 강요해서라도 독서를 하 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사고방식이다. 온당한 생각이 다. 나 스스로도 우리 아들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직원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 이다. 그들은 모두 적게는 25년에서 많게는 60년까지 본인들 이 책임지면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왔다. 그것도 50만에 이르는 시민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엄격한 도덕성과 훌륭한 교 양을 갖추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들 중에는 평소 1년에 책 한권 읽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고, 글 한 줄 안 써본 사 람도 많이 있으리라. 인터넷을 뒤져서 독후감을 다운받아 내 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마저도 못하는 이들은 타인에게 부 탁해서 작성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독후감 미션이 일종의‘동일성의 폭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동일성의 폭력’이란 단 하나의 기준이 옳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그르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그럴 때 그 기준은 그저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모든 가치들을 압도하는 초월직 지위를 획득한다.‘책을 많이 읽는 것이 善’이 라는 우리들 文人들의 기준은 천성적으로 책을 읽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이미‘동일성의 폭력’으로 자행되기 시작했다고 생각 한다.
독서가 갖는 장점은 많이 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감수성을 자극해 일상적인 삶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풍요롭 게 만들어 주고, 규정과 법률에 의거해 업무를 처리하느라 경 직될 수 밖에 없는 우리 들에게 스펙타클한 모험과 일탈, 동경 하는 생활을 경험하게 해주며, 전 세계의 수많은 지성들이 쌓 아온 빛나는 지식을 선사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장점들은 단지 독서만이 갖고 있는 것 만은 아니다. 잘 만든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굳어버린 마음을 스르륵 녹여 감수성을 자극할 수도 있고, 신문이나 인터넷의 바다에 헤엄치면서 수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다. 독서를 통해 독후감을 강제하는 것도 좋지만 독서를 통해 추구하는 바를 자유롭게 습득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일정부분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연암은 늘 차이를 중시했다. 고정되고 단일한 틀로 환원되지 않는 차이! 그것이야말로 코끼리를 통해 우주의 비의를 탐구 한 <象記>가 연암철학의 정수인 까닭이다.
‘象記’를 통해 생각한‘차이의 사유’
2021.02.14 | 조회수 145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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