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을 보면서 솔직히 믿기지 않을만큼 놀랐다. 우리가 수영을 이렇게 잘하는 줄 전혀 몰랐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종목에 따라 늘 금메달을 따는 선수들, 따지 못하는 선수들...무엇이 이 차이를 가져오는 것일까?
2. 수영을 예로 들면, 과연 박태환 선수가 불과 몇년전에 금메달을 여러개 따지 못했다면 지금의 결과가 있었을까? 100% 확답은 못하지만 다른 종목들로 생각의 범위를 넓혀보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야구(MLB)의 박찬호, 골프 (LPGA)의 박세리, 축구(PL)의 박지성,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바둑의 이창호 등 이들은 불모지를 처음으로 혼자서 개척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들이 Frontier로서 실력을 갈고 닦고 피땀 흘렸기 때문에 이런 성과들이 나타난 것이다.
3. 이들이 바로 후세대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새로운 스타, 새로운 종목을 알게 되었다. 불가능할 것 같던 스포츠 마켓이 부모들 사이에서 "새로운 인생 커리어"로 열리면서 자녀들에게 비전 제시와 과감한 투자를 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4. 한번 고지를 점령한 이가 나타나면 이들의 명성과 투지와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전수되고 제2, 제3의 계승자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이런 승계 시스템이 정착한 종목이 양궁, 쇼트트랙, 바둑, 해외야구, 해외축구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계승자들은 선구자들에게 많이 고마워해야 한다. 자기가 잘나서 그런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과 역사 그리고 투자시스템 이런 것들이 한데 뭉쳐 스타들을 계속 배출해 내는 것이다. 이번 수영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 걸로 알고 있다.
5. 지금 이시간에도 아직 우리가 아무도 관심이 없던 그래서 전혀 홍보도 안되고 투자도 거의 없는 종목들에서 피땀을 흘리며 묵묵히 최초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Frontier들이 있을 것이다. 인구수 측면에서도 저변이 약하고 투자도 적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거의 기적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는 엘리트 스포츠주의 라고 비난하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그 이유는 바로 비인기 종목에서의 선구자들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세리, 김연아와 박태환이다. 이들이 나타나기전 우리나라에서 골프나 피겨나 수영선수로 자녀를 키우는게 기회비용이 너무나 큰 결정이라 생각했을 것은 자명하다.
6.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저변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야구를 잘하는 이유는 4,200개가 넘는 고등학교 야구팀 때문이다. 중국이 탁구를 잘하는 이유는 중국 국기이기도 하면서 탁구인구가 5천만명 이상이고 수많은 클럽시스템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처럼 엘리트 중심 육성정책이 아니라 생활체육으로 자연스럽게 저변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늘 아쉽고(저변 확대가 인위적으로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늘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이렇게 Frontier들이 많이 나타날수록 우리 저변도 어느 정도는 확대될 것이다. 거기에 국가가 조금만 힘을 보태면 충분히 "성공적인 승계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7. 대한민국은 위대한 국가다. 오랜 식민지배와 전쟁을 치르고도 단시간내에 경제부흥을 이룬 민족이다. 이것은 몇몇 정치 지도자가 이루어낸 업적이 아니다. "지리적 환경(총균쇠의 논리에 의하면), 우월한 민족성, 특유의 성실성" 이런 것들이 에너지가 되어 이루어낸 성과다. 이런 조상들이 롤모델이 되어 현세대를 이끌어 왔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8.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아직 과학, 의학, 문학, 경제분야 노벨상이 없다. 일본이 노벨수상자(특히 과학분야)를 많이 배출한 이유는 기초과학에의 투자가 많고 원천 기술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공계가 강한 국립대학이 전국에 고르게 분포돼 있는데 이것은 큰 경쟁력이다. 또한 독자적 충원 체계를 갖춘 복수의 연구 클러스터가 핵심이라고 한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 나오려면 장기간에 걸쳐 꾸준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한데 특정 세밀한 전문 분야 전공자들 다수가 모여서 한가지 주제를 놓고 장기간에 걸쳐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하는 구조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9. 이렇듯 롤모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포츠 뿐 아니라 경제, 정치, 과학, 교육, 문화, 예술 각 분야에서 Frontier들이 화수분처럼 넘쳐나오게 만들려는 시도들을 하나의 국가적 숙명이나 미션처럼 여겨야 하고 민간과 정부 그리고 학계가 혼연일체가 되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투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10. 지금 우리는 기적을 이루고 있는 한 남자의 여정을 보고 있다. 바로 손흥민이다. 대한민국 스포츠 전체 역사상 가장 말도 안되는 일을 이뤄내고 있다. 어쩌면 스포츠를 넘어 모든 분야를 망라해도 이보다 위대한 인물이 있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왜냐하면 아시아인이 그것도 체격이 상대적으로 왜소한 선수가 축구수준이 제일 높다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고의 월드 클래스 선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기록적으로 유럽진출후 약 200골을 넣었고 득점왕도 했고 푸스카스상도 탔기 때문이다. 손흥민의 성공뒤에는 역시나 아버지의 헌신과 지도가 있었고 엄청난 훈련량이 있다는걸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축구를 시작하는 모든 유소년들은 그런 손흥민의 성장과정을 교범으로 벤치마킹을 할 것이고 분명히 제 2, 제3의 손흥민이 또 나오게 될 것이다.
11.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분명 우리는 한번도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세계 최고의 자리에 근접해 가고 있다. K-Pop, K-Movie, K-Drama를 생각해보자. 문화적으로 변방국가에 불과했던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 국민들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증거이자 출발점이다. 이것이 롤모델이 되어 다른 분야에서도 월드 베스트 국가로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다.
~ 가을초입에서 뜻밖의 단상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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