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 하는 여자 후배가 있다.
그녀는 회식 자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막상 회식 자리에 가면 적당히 잘 어울린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머릿속 가득하여 그 날 밤은 바로 잠들지 못하고 거실로 나와 어둠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새벽까지 뒤척인다고 한다.
그 느낌들이 싫어 저녁 자리는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잡지 않는다며, 함께 했던 회식 다음 날 나에게 넋두리를 한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 둘인 워킹맘은 회식같은 건 큰 맘 먹고 시간 내야하는 일이기도 하겠다만.
그녀의 논리는 이랬다. 직원 간 저녁 술자리나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라는 것은 알기 때문에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업무능력“이 아닌, “업무에 덧붙인 추가 활동”이라고. 더 날 것으로 말하면, 실력없는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활동해야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하면 좋긴 하지만,자신의 업무에서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게, 회사의 기준을 넘어서게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옵션은 아니라고.
그런데 어느 단계부터, 그녀의 업무는 혼자 시작해서 혼자 끝낼 수 없는 규모가 되어 있었다. 일을 위한 의사결정은 제 3자적 시각에서 사업의 합리적인 면만 고려하여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회사 곳곳의 이해관계 및 드러나 있지 않은 회사 측면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여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기도 했다. 게다가 결정의 기반이 되었던 내부의 정보와 상황은 한 번 정해졌다고 끝까지 유지되지 않기도 하고, 변경과 번복이 잦은 경우도 많았다.
그녀의 일은 프로젝트와 관련한 업무 스킬과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단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머리가 아팠다.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 출퇴근 길에는 각종 매체를 통한 업계동향, 시장조사와 인사이트 발굴을, 사무실에서 업무에만 집중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 일 했고, 사무실 밖에서는 시간을 내어 업무와 역량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외부 네트워킹에 힘을 쏟았는데, 결과와 평가는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점심을 거르고 일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 머리도 좋고 업무능력도 인정받으니, 이제부턴 ‘일’ 말고 ‘사람’에 집중해봐. 공부나 일은 무생물이어서, 네 안에서 자신을 잘 컨트롤하면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살아 팔딱이는 ‘사람’은 네 밖에서 너 자신과 남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 또 다른 지능이 필요할거야.”
“또 다른 지능?”
”너, MQ라고 들어봤어?”
“IQ, EQ는 들어봤는데, MQ는 또 뭐래요?”
“MQ는 Mind Quality라고 ‘마음지능’이라 부르지. IQ가 지성이라고 하면, MQ는 인성이라고 할 수 있어“
“인성은 뭐, 타고나는 것 아닌가요? MBTI처럼…”
“아니, 마음지능과 관련한 여러 연구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벽 교수님께서 책이나 여러 방송매체에서 많이 설명하셨어. 시간되면 한 번 찾아봐. 간단히만 설명하면,
마음은 ‘주고 받는 것’으로 타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단어인데, 마음이라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조율을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고, 이 능력은 반드시 쌓아야 하는 능력이며, 노력으로 좋아지게 할 수 있다는 거야.
실제로 전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들에서는 이 마음지능(인성지능)을 최고의 가치로 놓고 학생들을 뽑는다고 하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관계 조율 아닐까? 나는 이 관계조율을 할 수 있는 지능인 ‘마음지능(인성지능)‘이 얼마나 될까? 한 번 생각해 보고, 내 마음지능을 높일 수 있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해야할지 생각해 봐”
“아니, 회사에서 내가 한 일의 결과로 실력을 인정받아야 공정한 것 아닌가요? 인성이나 품성은 사실 성과물과는 관계가 없잖아요. 일을 못하면 뭐, 인성이라도 좋으면 도움은 되겠죠. 그런 것만으로 승진해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문제지”
”음, 그 말은 회사에서는 업무능력(IQ, 지성, 기술) 하위가 마음지능(MQ, 인성, 품성)이라는 거지? 레벨로 따지자면, 기술적으로 일 잘 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우위, 그 아래가 인성이라는 것? 과연 그럴까?
우리 회사에서 평가의 기준이 정말 그런 것 같아?“
사실, 우리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품성항목에 대해 많은 점수를 부여한다. ‘업무역량’ 이라는 평가의 기준도 모호하고, 혼자서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계 회사들처럼 KPI 에 대한 뚜렷한 성과물로 평가하는 구조도 아니기 때문에, 평가와 승진의 기준은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 회사마다 평가 기준은 상이하며, 인사부서에서 역량(인성, 리더십 등)항목 점수 부여 기준 역시 편향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는 한계점은 참고
“음, 그렇긴 하네요. 리더십도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어 원하는 방향의 성과물을 만들어내느냐이니, 그건 지성의 영역이 아닌 인성의 영역이겠네요. 그나저나, 그걸 어떻게 높이는데요?”
“음, 그건…“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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