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23년 02월 25일 | 조회수 5,749
스테르담

주말이 짧다고 느껴지는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월화수목금 토일 정말 짧다. 말 그대로 짧다. 주말은 일주일 중 이틀뿐이니까. 아마도 주말이 유독 더 짧다고 느끼는 건 아쉬움과 후회, 미련과 한순간이라는 단어가 팥빵의 팥처럼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직장인의 주말이라면 더 그렇다. 방학이 있던 학생 시절 땐,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모호했다. 몇일인지, 무슨 요일인지를 TV 프로그램을 보며 깨달았다. 주말 예능이나 월화 드라마는 그것을 구분하는 손쉬운 잣대였다. 금요일 밤이 그리 신나지도, 일요일 밤이 무척 두렵지도 않았다. 직장인은 다르다. 주말만 보고 나아간다. 주말이라는 달콤한 그 시간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월화수목금금금을 사는 우리네 직장인이라고 하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이 주는 이름 그 자체의 청량감은 설령 주말에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더라도 유효하다. 재밌는 건, 금요일은 평일인데 기분이 좋고 일요일은 주말인데 마음이 무겁다는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직장인은 '지금'이 아니라 '내일'을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내일'은 미래다. 그리고 불확실하다. 불확실함은 직장인인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불확실한 내일, 또 어떤 시련이 닥쳐올까 나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아닌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자화상. 나는 직장인으로서 수많은 주말을 보내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주말을 연습했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주말을 잘 보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금요일 기분 좋은 퇴근을 하며 세운 수많은 계획들은, 대개 주말에 실행되지 않는다. 영화, 운동, 글쓰기, 공부, 미래를 위한 준비 등. 정말이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 그것들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날아와, 나를 그토록 괴롭힌다. "이래 가지고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지금 네 경쟁 상대는 아마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걸?" "낮잠이나 자면서, 회사에서 고위 임원이 되어 보겠다고? 꿈 깨셔!" 나는 어느 날, 짓눌린 어깨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리곤 화들짝 했다. 아파 죽겠다며 소리를 치고 있었는데,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그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을 온전하게 보내지 못하고, 일어나지 않은 무엇에 골몰한 것이다. 그것은 사고였다. 스스로를 지나가는 자동차에 밀쳐 넣는 것과 다름없었다. 미필적 고의로 말이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지 마음먹었다. 그래서 금요일 밤에는 주말에 하고 싶은 리스트를 적었다. 1. 낮잠 자기 2. 영화보기 3. 아무 생각 안 하고 누워있기 4. 맛있는 것 먹기 5. 가족과 아무거나하고 놀기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고 나면, 하나씩 선을 그어 지워나갔다. 무언가를 이루고 리스트에서 지워나가는 과정은 쾌감을 준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리스트에서 지워나가기 어려운 목표들로만 그것을 채우고 스스로를 괴롭혔던 것이다. 낮잠을 자도 자도 모자란 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직장인은 정말 그 이상으로 힘든 것이다. '지금' 내가 낮잠을 달게 맛보고 일어났다면, '지금' 내가 재밌는 영화 한 편을 보고 큰 여운을 느꼈다면, '지금' 내가 멍 때리며 무언가를 자유로이 그릴 수 있다면, '지금' 내가 맛있는 음식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거창한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반드시 내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줄이기로 했다. 솔직히,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나는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목표 이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욕심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무언가 때문에 '지금'을 놓치지 않기로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일요일 저녁이다. 두렵다고 생각했던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다. 생각해보니, '월요일'이 불쌍하다. 그저 요일 중 하나일 뿐인데, 사람들은 '병'이란 이름을 붙여 그것을 힐난한다. 다시, 주말은 정말 짧다. 그러니, 더 온전히 보내야 한다. 원래 소중한 건 짧거나 모자란 것이다. 아니면, 짧거나 모자라 더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지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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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 따봉
    고다르
    23년 02월 27일
    20대 이후 목표도 계획도 없이 30년을 살았습니다. 원래 계획은 있었으나... 나이 60까지 3개월 단위로 계획을 세웠던 친구가 군대도 가기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고, 발인까지 다녀와 제일 먼저 인생계획.hwp를 삭제했죠. 이후 떠돌며 머흘며 30년 살았는데 큰 일 없더군요.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처럼 계획이 없으니 노심초사 할 일도, 힘들것도, 후회도 뭣도 없는 안온한 인생이었네요. 앞으로 뭔 일이 터져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든 되겠지란 긍정만 있네요. 물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하루하루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네요. 그러니 뭔가가 되어 있기는 합니다.
    20대 이후 목표도 계획도 없이 30년을 살았습니다. 원래 계획은 있었으나... 나이 60까지 3개월 단위로 계획을 세웠던 친구가 군대도 가기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고, 발인까지 다녀와 제일 먼저 인생계획.hwp를 삭제했죠. 이후 떠돌며 머흘며 30년 살았는데 큰 일 없더군요.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처럼 계획이 없으니 노심초사 할 일도, 힘들것도, 후회도 뭣도 없는 안온한 인생이었네요. 앞으로 뭔 일이 터져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든 되겠지란 긍정만 있네요. 물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하루하루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네요. 그러니 뭔가가 되어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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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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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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