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결핍이 보입니다.
제 집착은 예전에 옷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키도 작고 외모도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옷으로라도 커버를 하려고요.
다행이 미술 쪽 공부를 했으니
감각이 기본 남자들 평균 이상을 했고
잘 챙겨입는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패셔니스타 이런 건 절대 아니고요.
결혼 전에는 주말 취미가 혼자서
쇼핑몰을 돌며 옷을 구경하고 사는 거였습니다.
청바지 하나 사려고 대여섯개의 매장을
돌곤 했죠. 사실 보통 남자들은 꿈도
못 꿀 일이죠. 일반적인 체형이 아닌데
내 몸에 딱 맞고 질도 좋은 옷을 찾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한참 꾸밀 나이에는
자기 전에 다음날 입을 옷을
세팅해 놓기도 했어요.
그렇게 옷을 잘 입고 싶어서
나를 돋보이게 하는 옷을 찾고 싶어서
꽤나 많은 돈과 에너지와
시간을 썼습니다.
그러고 보니 40년 교직생활동안
거울 앞에서 수백개의 넥타이를 고르시던
아버지께서도 그런 신체적 열세를
넥타이 디자인으로 커버하고
표현하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결혼하고서는 옷에 대한 집착이 많이 사라졌어요.
이성에게 딱히 잘 보일 일도 없고
대외 활동도 많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습니다.
결혼을 계기로 저의 결핍이 사라진거죠.
더구나 일인 회사 오너인지라
미팅이 없을 때는 막 입고 다닐 때가 많죠.
약간의 결핍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요.
그래도 예전에 옷을 수없이 입어보고 내게 맞춰보고
사봤던 경험은 아직까지 제 자산이 됐습니다.
별 고민없이 내게 잘 어울리는 색상과 소재와
브랜드의 옷을 고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결핍, 집착 이런 단어가
인생에서 별 소득없는 수사로만 느껴지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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