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때 사수에게 받은 USB, 이제 제가 사수가 되어 다시 꺼내봅니다.
머리가 복잡해서 잠시 책상 정리를 했습니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낡은 USB 하나가 나오더군요. 16기가 USB. 요즘은 쓰지도 않는 작은 용량이지만, 저한테는 세상 어떤 외장하드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10여년 전, 막 입사한 신입사원일 때였습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무실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철렁하던 시절이었죠. 그때 제 사수였던 분은 저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렇잖아도 어려운데 무뚝뚝하고 말수도 적은 분이었습니다.
뭐 때문인지 확실히 생각은 안 나는데 USB가 필요했습니다. 아마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옮기고 하는 등의 심부름을 했어야 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근데 USB가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일 아닌데 그때는 정말 큰일이 난 것처럼 좌불안석이 되어서 고민하다가 사수분께 혹시 USB를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자동차 키가 달려있던 열쇠고리에서 주섬주섬 USB를 빼시더군요. 그리고 제게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이제 네 거다. 여기에 네 역사를 잘 담아봐라."
오글거리지만 오글거리는 말을 오글거리지 않게 하실 수 있는 분이었어요. 덕분에 한동안 그 USB에 내 역사를 담아보려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 USB 안에는 이제는 열어볼 일도 없는 옛날의 서툰 보고서들이 가득합니다. 작동을 하는지 조차 모르겠고, 지금 쓰는 노트북에는 이 USB 포트도 없지만 저는 이 USB를 버릴 수가 없네요.
오늘은 마침 우리 팀에 입사한 신입 사원이 첫 보고서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USB가 생각이 난 것 같아요. 저도 이따 그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낡은 USB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해봅니다.
회사를 다닌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좋은 선배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네요. 그때 그 선배님은 뭐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별거 아닌 한마디가 평생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 선배님 덕분에 배웠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