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힘들어도 해야지!"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대개 꼰대스럽다는 인상을 주죠. 왜 그럴까요? 글쎄요. 혼자 끙끙 앓는 걸 보고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훈수만 두던 그 선배나 쓰잘머리도 없는 일로 야근을 종용하던 그 부장님에게서 이 말을 들어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종종 위대한 혁신을 이끈 기업가의 입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도 그들이 제시한 방향성에 대해 실무진이 반발하거나 의구심을 제기했을 때 이런 취지로 대응하기도 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힘들어도 해야지!"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가 했다니까 이 말이 좀 다르게 들리더군요. 단순히 이 뛰어난 기업가들의 후광 때문이었을까요? (뭐든 사과 로고만 붙이면 비싸지니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저는 꼰대가 말하는 힘든 일과 혁신가가 말하는 힘든 일이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힘듦에 대한 다른 관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2]
힘든 일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힘든 일은 괴로워서 힘이 들고, 또 어떤 힘든 일은 어려워서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괴로운 일은 비용을 짊어지우는 일입니다. 그 비용은 물론 돈일 수도, 시간일 수도, 체력일 수도,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밤 12시까지 야근 수당도 없이 일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이걸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냥 하면 됩니다. 하지만 괴롭습니다. 그리고 이게 장기간 반복되면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됩니다. 이때 사람들은 번아웃 증후군을 겪기도 하고, 끝내 퇴사를 결심하게 되기도 하죠.
하지만 어려운 일은 어떻게든 해내는 것 자체가 까다로운 일입니다. 재활용할 수 있는 로켓을 만든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이에 필요한 기술과 자원을 충분히 준비해두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야근을 해도 그냥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은 많은 기업들에겐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애초에 할 수가 없으니 딱히 이런 일로 고통받을 것도 없겠죠.
운동에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괴로운 동작은 어떻게든 되긴 됩니다. 많이 반복하면 고통스러울 뿐이죠. 하지만 어려운 동작은 아예 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그 어려운 동작은 영영 해낼 수 없겠죠? 그 난이도를 낮추는 다양한 기법과 장비를 활용해서 연습을 해야죠.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그 동작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옵니다.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정말 엄청난 성과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안된 기법과 장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3]
힘들어도 그냥 하라는 말이 얼마나 괴롭든 그냥 하라는 의미라면 어떨까요? 상대방이 얼마나 괴로울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이 꼰대적 태도는 회사를 건강하게 경영하려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더 많은 비용을 감당하도록 하는 조직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심지어 이 말에 담긴 기대는 부하 직원이 더 많은 비용을 퍼붓는 것 그 자체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에 따른 산출물보다는 얼마나 괴로워했는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견뎠다는 데에 주목하는 거죠. 견디기 힘든 걸 견디는 게 미덕인 겁니다. 그러니 이 말을 듣고 죽어라 일을 해도 그 결과는 형편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한계 효용이란 체감하는 법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어려운 일을 혹은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건 단순히 더 많이, 더 자주, 더 오래 하는 것으론 안 됩니다. 같은 짓을 무수히 반복한다고 다른 결과가 나오진 않으니까요. 전혀 다른 방식을 고안하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든, 유능한 전문가를 기용하든 해야 하죠. 이걸 성공하면 혁신이 나옵니다.
그래서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 주문은 부담스러울 순 있어도 부하 직원들을 자괴감에 빠뜨리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일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했다는 성취감은 일을 계속해서 하게 만드는 주된 원동력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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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괴로운 일과 어려운 일이 항상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괴로우면서도 어려운 일들이 많죠. 스페이스X와 애플 직원들이 혁신적 제품을 만들면서 전혀 괴롭지 않았겠습니까?
중요한 건 힘든 일이 다 같이 힘든 게 아님을 깨닫고 우리 조직에서 "힘들다"는 건 정확히 어떤 힘듦인지 파악하고 그걸 좀 더 건강한 힘듦(?)으로 바꿔 가는 노력일 겁니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을 괴로워하며 하도록 만들 것인지? 아니면 크게 괴로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도록 해줄 것인지? 핵심은 여기에 있죠.
그래서 전 이뤄냈을 때 혁신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려운 과제를 부여하면서도 그걸 괴로워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기업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장님 미팅이 끝나도록 기다리느라 새벽까지 사무실에 남거나, 인사이트도 없는 보고서를 수십 장 찍어내거나, 입장 차이만 확인할 뿐인 자리를 협상이랍시고 수 차례 반복하거나, 매출이 낮다고 전화를 피하는 고객사에 콜드콜을 수십 번 걸거나, 채용이 잘 안된다고 똑같은 채용 설명회를 이곳저곳에서 진행하는 일은 괴롭기만 할 뿐입니다. 이걸 누가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어렵지 않더라도 업무 효능감도 없는 이 괴로운 일을 계속하면 지치게 마련이죠.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직원이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게 해야 할 겁니다. 때에 따라 괴로울 일은 있겠죠. 야근이 없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하지만 그 괴로움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사표를 던질 때까지 시쳇말로 사람을 갈아버리는 경우는 없어야 하죠.
그런 동시에 위대한 기업은 직원을 첨예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혁신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크든 작든 기존의 방식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을 다시 진단하고 해결책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죠. 같은 접근을 반복하게 만드는 업무로 현자 타임에 빠지게 할 것이 아니라요.
당신의 조직은 어떤가요? 어렵지만 중요한 문제를 치열하게 해결해나가고 있나요? 아니면 시답잖은 일로 괴로워하고 있나요?
👨💼 이동경 | Agency Account Strategist @ Google
⚠️ 이 글은 작성자 개인이 작성한 것입니다. 작성자는 이 글을 통해 그 어떤 조직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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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해야 된다는 말들에 대하여
2022.04.15 | 조회수 7,962
이동경 (Dong-Ky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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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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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힘들어도 해야지... 남자들의 어깨에 얹어져 있는 무게가 느껴지는 말이죠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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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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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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