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쉬는 스스로를 영국 프레쉬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라고 정의한다.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90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은 러쉬의 네 번째 해외 진출국이다. 러쉬가 어느 날 소셜미디어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사 웹사이트 공식 성명문을 통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왓츠앱, 틱톡이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활동을 중단한다”면서 그 이유를 밝혔다.
진정한 휴식을 지향하는 브랜드 정체성에 걸맞게 사이버 괴롭힘, 가짜 뉴스 문제를 일으키는 소셜미디어를 지켜볼 수 만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페이스북의 내부고발자가 미 의회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뉴스피드 알고리즘이 자극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조작한다는 의혹을 폭로한 이후였다.
물론 이전에도 소셜미디어 보이콧 움직임은 한시적으로 진행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발언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페이스북을 향해 코카-콜라를 비롯 전 세계 100여 개 브랜드가 페이스북 운영을 잠정 중단하거나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이른 바 페이스북 거부 선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러쉬의 소셜미디어 운영 중단은 다소 결이 다르다. 마치 부정 이슈에 휩싸인 브랜드를 불매한다는 단순한 선언 이상의 행동이다. 러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사람들에게 평온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러쉬가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독자와 연결되는 행위 자체가 고객들의 안온한 삶을 위협한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SNS의 폐해로 디지털 폭력, 외모 지상주의,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건강 문제의 가중, 사이버 괴롭힘, 가짜 뉴스, 극단주의를 꼽고 있다. 이런 위험성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SNS 그 자체가 우범지역의 뒷골목 같은 곳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러쉬라는 브랜드가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즉 고객을 이러한 위험 지역에서 만나자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러쉬의 생각이다. 물론 모든 소셜미디어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트위터와 카카오톡과 유튜브는 소통의 채널로 남겨두었다. 뉴스레터로 더 생생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고 전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브랜드 입장에서 소셜미디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의 공간으로 비친 시기도 있었다. 우리의 독자와 만나고 소통하고 브랜드를 확장하고 정확한 타겟팅으로 브랜드 스토리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SNS 채널 활동에 참여하는 브랜드가 늘어날수록 공간을 비집고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비용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피드에 올라가는 콘텐츠의 도달(Reach)을 높이기 위해서는 높은 대가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온 것이다. 더군다나 SNS에 올라온 콘텐츠는 휘발성이 강해서 짧은 수명 이후를 담보하지 않는다. 일회성으로 그치기 쉽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다시 브랜드 저널 같은 Owned Media를 구축하고 운영하려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브랜드의 영향력을 소셜미디어에 맡기지 않고 브랜드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브랜드가 미디어가 된다는 것은 브랜드 관점에서 독자 관점으로 방향을 우회하는 것과 같다. 브랜드 관점에만 함몰되다 보면 결국 해당 브랜드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콘텐츠를 확산하기 위해서 또 다시 SNS 광고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미디어가 된다는 것은 독자를 향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러쉬가 SNS를 중단하고도 팬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수십 년 동안 이어온 브랜드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독자와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브랜드가 가진 스토리가 있고 이를 전달할 독자만 있다면 툴(방식)과 채널(경로)은 특성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독자를 향한 진정성과 실천의지를 꾸준히 보여준다면 러쉬가 그동안 쌓아올린 로열티처럼 브랜드를 진정 사랑하는 독자들이 주변으로 몰려들 것이다. 러쉬의 SNS 중단과 색다른 방식의 소통 선언을 멀리서 응원하고 지지한다.
#생각의 발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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