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바쁜 와중에 굳이 쓸모 없는 일을 해야할 때가 있다.
오래된 조직일수록 실무자 입장에서는 의미도 없고 실체도 없지만 윗 사람들은 명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런 조직에 적응이 된 부류는 그런 일들을 묵묵히 그러나 자신의 영혼은 1g도 섞지 않고 처리해내지만 아직 조직 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한 신참이거나 일하나에 자존심을 거는 부류는 본인 스스로 이 일을 해야하는 이유를 알때까지 싫은 내색을 해 상사의 미움을 사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어떠한 일을 수명받고 나서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왜'라는 질문을 당돌함, 일하기 싫다는 것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사가 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다 워라밸, 직장인 가성비(월급 받는것 이상으로 개인의 노고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마음)를 따지는 시대이므로 업무를 지시함에 있어 리더가 한번쯤 더 고민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이하는 어느 MZ세대 실무자의 이야기다.
「 오늘도 팀장이 쓸데 없는 일을 시켰다. 두어시간을 곱씹어보았지만 도무지 해야할 필요를 찾지 못한 나는 팀장에게 그 일을 꼭 해야 하는지 물었다.
솔직히 투자 대비 효율이 나지 않는, 심지어 광팔이용으로 내세우기에도 너무 격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 시간에 해야 할 다른 중요한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내 질문에 팀장은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해 당황스러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릴 뿐이었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나서 그는 그냥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이가 없지만 결국 그 일은 해야 할 업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가끔 조직장이 된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요즘 애들은 왜 일을 시키면 이유까지 조곤조곤 설명해야 하는지 점점 살기 불편해지고 있다는 푸념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나도 같이 늙어가는 후배인지라 본인 생각에 동의할 거라 믿고 하는 말이겠지만
앞에서는 적당히 웃어넘겨도 마음 속으로는 그를 무능한 조직장으로 재분류한다.
상사가 시키는 일을 의심 없이 그리고 당연히 해왔던 시절을 살아왔던 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이 생소하다. 고생한 며느리가 모진 시어머니가 된다는 속설처럼 내가 그렇게 살아왔으니 나의 팀원도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믿을뿐이다.
하지만 그 당시 환경이나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지금과 다르듯 일의 성격이나 프로세스 역시 그들 시절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이 일을 왜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최소한의 대답 없이 해내기에는 너무나 수고롭고 심지어 괴로운 업무가 상당히 많은 것이다.
설령 운이 좋아 본인이 지시한 일을 팀원들이 잠자코 해낸다 하더라도 리더는 일의 목표와 이유에 대해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만약 스스로 답을 찾기 어려운 일이라면 회사 차원에서도 그다지 효용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히 그 가치는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고 그간의 노고가 헛고생임을 알게된 후에는 리더에 대한 부서원들의 반감과 불신이 늘어갈 것이다.
일의 이유가 단지 'CEO가 좋아할 것 같아서..' 뿐일지라도 왜 좋아할 것 같은지에 대한 논리는 몇 가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라는 이유 외에 찾을 구실이 없는 일이라면 팀원의 노력을 구할 것이 아니라 혼자서 하면 된다.
인재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귀한 자원을 개인 취향 때문에 사유화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회사에 와서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도 루팡이지만 의미없이 남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도 루팡이다.
팀원에게 업무를 지시함에 있어 '왜'를 제시할 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 리더(조직장,선임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질이며 역할임을 인정하자.
오히려 왜냐고 묻지 않는 팀원을 의심하라.
고민 따위는 하지 않고 일하는 척이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운이 나쁘게 '왜'를 설명하지 못하는 상사와 일을 하고 있다면 본인 스스로라도 '왜'를 찾아내기 바란다. '왜'를 생각하고 해낸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아웃풋은 완전히 다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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