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당선인의 첫번째 행보는
터를 잡는 것 입니다.
우리들 인생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터를 잡는 과정을 반복하니 당연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관상을 보러 다녔던 사람이니
지관도 찾았을 겁니다.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 자리 부터 풍문이 많았습니다.
고려 때 부터 기록이 그렇습니다.
평창동 부자들이 내려보기 위해서
악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워낙 불난리와 물난리가 많았던 곳 이기도 합니다.
세종으로 전부 이전 하려던 이유도
그러했을 겁니다.
누가 어디로 가든 말든 이젠 정치 잊고
나 만 신경 쓰자가 되었었는데요,
터 이야기가 시끌벅적 합니다.
용산은 외세의 근거지 였습니다.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
청도 왜도 미군도 자리잡았던 곳이죠.
곧 기세등등한 자리 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외세가 호령하는 자리.
그들 모두 용산에서 승리 했습니다.
정치색과 별개로
용산으로 자리를 뜰면
자주국방이 되어 이제는 외세에 영향력을 펼치길 기대해봅니다.
(어쩌면 전쟁이 날 수도~)
그런데요, 세종실록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자리가 어디든 관여치 안으니~”
세종이 여러 지관을 불러서 얘기는 듣되
무시했다고 하네요.
방패는 창과 가깝습니다.
날까로운 것을 갖고 놀면 피를 보게 됩니다.
모두의 공원이 될 예정 이었는데
이제 일반인들은 갈 수 없는 곳이 되겠네요~
종로 집 값이 비교적 관망세 였었는데
폭등하기 전에 사둬야 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