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협상 시기여서 그런지, 요즘 커뮤니티에 연봉 이야기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저도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싶은 직장인이자, 담당 부서 동료 분들의 연봉을 정해야 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제가 매 년 이맘 때 연봉으로 고민하는 지인이나 동료들과 하던 이야기를 여기서 같이 해 보면 어떨까 싶어 편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 글처럼 대단한 인사이트는 없지만, 소소한 재미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진짜로 연봉 많이 올리는 힌트를 얻으실 수도 있고요. 조금 길어도, 내용은 가벼우니 재미로 보시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11년 동안 다섯 번의 이직을 했고, 지금은 여섯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세 번의 이직은 최근 2년 사이에 있었고요. 이 때 연봉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이 경험들을 통해 연봉은 일을 열심히 한다고, 또는 일 잘 했다고 올라가는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좀 더 진작 깨달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죠 어휴...
2010년, 제 초봉은 2천 만원대 후반이었습니다. 게임 업계가 성장하던 시기에 운 좋게 큰 게임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고, 열정적인 분들과 일 하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사 4년, 자회사 4년을 합쳐 8년을 다녀도 연봉이 5천을 넘지 못하다 보니, 일이 아무리 재미있고 회사를 좋아해도 두 아이를 키우는 외벌이 가장으로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언젠가부터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고, 가족을 잘 챙길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자존감도 많이 상했었습니다.
다행히 게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지인 중 좋은 스타트업에 자리 잡은 분이 계셨고, 빠르게 성장하다보니 일손이 부족하다며 감사하게도 이직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이직도 성공할 수 있었는데요. 놀랍게도 8년을 헌신한 게임회사가 저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연봉을 이 스타트업이 제공해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전에 다니던 게임 회사보다 규모도, 이익도 훨씬 작은 스타트업이 이런 처우를 제공할 수 있다는게 엄청난 충격이었는데요, 하지만 이 스타트업을 다니며 훨씬 더 높은 연봉으로 이직 제안을 많이 받게 되면서 '연봉이 올라간다'는게 어떤건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이야기 하자면, 제가 다닌 스타트업이 당시에 커머스로 주목을 받았었는데, 덕분에 이 회사처럼 커머스 마케팅을 하고 싶어하던 곳에서 저에게 이직 제안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이직 시장에 나오는 마케터가 별로 없다 보니 이직을 제안하는 회사들보다 제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고, 채용에 경쟁이 발생하다보니 기존 연봉 수준과 상관없이 높은 처우를 희망해도 수용해 주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시장 상황이나 회사의 성장세를 위해 좋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급히 필요한데, 실제로 현재 회사의 인지도나 네임밸류로는 원하는 수준의 인재 채용이 어려운 경우, 그럼에도 회사가 현금을 투입할 여력이 되는 곳들은 정말 파격적인 제안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투자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요즘 이런 곳이 많아진 것 같아요.) 이 커머스 스타트업 이후에는 온라인 클래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다닌 적도 있었는데, 그 회사가 업계에서 좋은 위치였던 덕분에 다른 유사 업종의 회사들에게도 이런 연락을 많이 받곤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좋은 조건으로 불러주는 곳 잘 골라 잘 지내면 되겠지만, 8년간 올라간 연봉보다 2년간 올라간 연봉이 훨씬 많다보니 그 원리와 이유가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오퍼를 주셨던 회사들을 분석하며 그 이유를 고민해 보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깨달았던 건 '연봉은 회사가 올려주는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나'라는 공급은 하나다 보니, 나를 원하는 수요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내 가격인 '연봉'이 올라갈 수 있었는데요. 여기서 핵심은, 그런 상황과 조건을 '회사'가 인정해 주길 기다리는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의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인가' 였습니다.
여러 회사가 탐 낼 정도의 경험과 실력을 쌓는 것, 그리고 그 실력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나를 원하게 하는 것. 그게 내 가치인 '연봉'이 올라가는 방법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굉장히 어렵고 오래 걸려서 알게 된거죠. 어휴...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거래가 발생하는게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원칙인데, 경제학을 전공하고도 그런 생각 없이 '열심히 했으니까, 매출 잘 나왔으니까 평가 잘 주시겠지? 연봉도 알아서 잘 올려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며 10년 가까이 일 했다는게 스스로 참 아둔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어휴 어휴 어휴...
물론 연봉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그래봤자 월급쟁이라 전세를 벗어날 만큼 많이 버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진짜 큰 돈을 벌고 싶다면 취업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게 맞는 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다니며 일을 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받는게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좋더라고요.
그래서 연봉 때문에 이직을 고민하는 지인들에게는 당장 500만원, 1,000만원 올리는 이직보다, 채용 시장에서 원하는 경험과 실력을 얻을 이직을 권해 드리는 편 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게 더 큰 이익이 된다는걸 겪어 왔으니까요. 저도 이것 때문에 연봉을 줄이며 이직한 경우가 있었고, 지금도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멋진 척, 다 아는 척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제가 했던 다섯 번의 이직은 모두, 같이 일 했던 적 있는 지인들을 통해서 였습니다. 동종업계나 경쟁사로 이직하는게 내키지 않기도 했고, 겁도 많고 쓸데없는 걱정도 많은 편이라 실제로 이렇게 오퍼 받은 곳으로 이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믈론 아까운 곳도 있었죠. 어휴...
하지만 이렇게 저를 원하는 곳에서 제시하는 연봉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내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업무를 통해, 어떤 가치를 가지는 사람인지 구체화 할 수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어떤건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성장 가능성이 큰 곳에서 좋은 분들과 함께, 제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혹시 지금 연봉에 만족 하시나요?
저는 지금 연봉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채우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걸 사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대게'라는 말은 함부로 꺼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가격이 무슨...어휴...
그리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좋은 조건에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 만큼 나름대로 성과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올 해는 정말 정신없이 바쁠 것 같고, 그 만큼 기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연봉에 만족하진 않습니다. 두 배, 세 배, 열 배 더 받고 싶습니다. 내 집 마련도 하고 싶고, 포르쉐도 타고 싶고, 아내 생일에 명품도 사주고 아이들이랑 주말마다 대게도 먹고 싶거든요. 하지만 마케팅 리더로서 아직 그 만큼의 성과를 만들어 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우당탕탕하며 뭐라도 만들어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고, 다른 곳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사람이 된다면, 그 때 한 번 더 욕심 부려 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욕심을 조금 더 부린다면, 저를 포함해 구성원들의 이런 개인적인 욕심을 받아줄 수 있을 만큼 지금의 회사를 키우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 회사는 잦은 이직 끝에 만난, 꽤 좋은 곳이긴 하거든요.
생각 나는대로 적다 보니 글이 엄청 길어졌네요. 필력이 부족해 산만한 글이었지만, 한 분이라도 재미있게 보셨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연봉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고요.
올 해는 모두 원하는 만큼 연봉 많이 올리시길 바라며, 저는 아둥바둥 열심히 일 하러 가겠습니다. :)
ps. 다음에 혹시 시간이 된다면, 연봉이 높아지면 찾아오는 변화들도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공급 아파트 청약 취소'같은 신나는 모험이 가득하더라고요. 어휴 내 청약...
지금 연봉, 만족 하시나요?
2022.03.01 | 조회수 9,245
하슬기
Cy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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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아일일않는다
BEST님의 글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8년동안의 연봉인상 폭보다 이후 연봉인상 폭이 더 컸다는 말....
그럼 8년동안의 노력은 헛것이었나 했을 때, 전 아니었다라고 생각합니다.
8년 이후의 연봉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 발판이 되어었을 것 같습니다.
이직을 통해 연봉을 올리고 싶은 이들에게...
지금 가는 곳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역량을 써가며 있아야 하는 곳인지....
아니면 능력과 역량을 키워가며 있을 수 있는 곳인지 한번더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연봉도 많이 받고, 역량이고 능력이고 키울 수 있는 곳은 없으니....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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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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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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