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눈에 차지 않는 직원. 버럭 소리부터 치는 리더가 태반이다. 그런 리더에 대한 직원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반발하거나 주눅들거나. 성과 제고에 도움이 안 되긴 매한가지다.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도덕경 43장 구절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말 달리듯 부린다. 카리스마 리더가 조직을 호령하던 시대는 끝났다. 찍어 눌러서 될 일이 아니다. 직원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젓는 줄 모르듯 마음의 문을 시나브로 열어야 한다.
도덕경에 답이 있다. ‘무유입무간(無有入無間)’이다. ‘무유(無有)’는 ‘형태가 없음’을 의미한다. ‘무간(無間)’은 ‘사이가 없음’이니 아주 작은 틈을 가리킨다. 일정한 크기를 가진 일정한 부피의 물체는 동일한 모양과 동일한 사이즈의 공간이 나오지 않으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나를 고집하니 생기는 일이다. 고정된 형식이 없어야 한다. 유연해야 한다. 그래야 바늘 만한 틈으로도 스며들 수 있다. 나를 비워야 가능한 일이다.
영화 ‘터미네이터2’의 빌런 ‘T-1000’. 인류의 지도자로 자라날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미래로부터 파견된 로봇이다. 주인공인 터미네이터 T-800보다 진일보한 모델로서 전신이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사물이나 다른 사람으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이유다. 작은 틈이나 막힌 공간도 물 흐르듯 드나든다. 온 몸이 분쇄될 정도의 외부 충격을 받아도 산개한 부위들이 재조합되어 원상 복구가 되니 준(準) 불사신 급이다. 상황에 맞추어 몸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의 힘이다.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무유’의 능력을 발판 삼아 T-1000은 영화 내내 가공할 위력을 선보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 영화 같은 가상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무유할 수 있는 방법은? 나의 형태와 크기와 부피를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바로 경청이다. 대부분의 리더는 듣지 않는다. 말하기 바쁘다. ‘귀’가 아닌 ‘입’으로 나를 내세우니 조직에 스며들지 못한다.
“직원들이 말을 안 합니다.” 수많은 리더들이 내뱉는 하소연이다. 직원들이 리더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말을 해도 듣지를 않으니 말하지 않는 거다. 말을 하면 더 많은 말이 되돌아오니 말하지 않는 거다. 무늬만 경청이다. 그걸 아는 직원들은, 그래서 말하지 않는다.
정성껏 들어야 한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했다. 들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얻는 거다. 직원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방법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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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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