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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 대기업에 다니는 벼락거지 이대리 21

2021.07.15 | 조회수 1,873
이용자
억대 연봉
“그냥 마음을 고쳐먹었지. 그럼 되더라. “ “뭔 개소리야?” 넓고 둥그런 무쇠 철판 위의 닭갈비는 익어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양배추에서 물이 배어 나와 고구마와 닭고기, 양념은 자박자박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대리는 눈은 M에게 고정한 채로, 손은 닭갈비를 계속 저으며 M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이직한다. 지방에 있는 공기업으로. “ “에이, 새끼 또 구라 친다.” “진짜로 ㅋㅋ” "꺼져 병신아. " "ㅋㅋㅋ" "진짜로....?" “어. 저번 주에 면접 봤는데 이번 주에 연락받았어. 너네한텐 미리 말할까 하다가, 뭐 어떻게 될 줄 모르니까.. 확정되면 말해주려고 말 안 했어. 바로 출근하진 않고, 다음 달쯤 내려갈 것 같아.” 이놈이 이직하다니, 이대리는 충격에 빠져 하염없이 닭갈비만 계속 젓기 시작했다. 지방 고등학교에서 서울로 같이 올라와, 퍽퍽한 서울살이 사이사이에 서로가 알게 모르게 의지가 되었던 세월이 벌써 십수 년인 사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M은 다른 친구들보다 취직을 늦게 한 터라 아직 회사에 다닌 지 3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남들보다 늦었던 딱 그만큼, 남들보다 더 간절히 가고 싶었던 회사였고, 높은 연봉과 비례하는 높은 업무 강도에도 M은 묵묵히 회사를 다니며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본인이 정말 원했던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친구. M은 이대리의 주변 인물 중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회사를 다니는 게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M이 이직이라니, 이대리는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의 한길 속도 몰랐음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 아니,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냐. 너 그 회사 엄청 들어가고 싶어 했잖아. 왜 갑자기 이직이야?” 어느새 닭갈비는 그 생것의 색깔을 잃었고, 빨간 양념과 완벽히 합쳐진 닭갈비는 보기만 해도 술이 당기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M은 그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그냥, 아등바등하면서 살기 싫어서. 아이씨. 이거 덜 익었네.” 입에 넣었던 닭갈비를 성급히 다시 빼며, M은 말을 이어갔다. “야 솔직히. 인생 존나 짧잖아. 근데 매일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내 30대가 다 지나가는 것 같아서 너무 짜증 나더라고. 나 한 6개월 전부터 테니스 레슨받는 거 알지. 근데 주 3회인데 주 1회도 못 간 적도 많다? 맨날 야근이고 회식이고.. 빠지면 뭐라 뭐라 뒤에서 말 나오고. 내가 어릴 때부터 진짜 테니스 치고 싶어 했는데, 비싸서 못 치다가 취직하고 나서야 친 거잖아. 그런데 내가 그렇게 원했던 것 하나도 못 하니까 이게 사는 건가 싶더라고. 뭐, 남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 꼴깍꼴깍. M은 막 나온 맥주를 잔에 따랐고, 이대리와 건배를 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빡센 게, 돈도 많이 주지만 열심히 배우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가 좋은 곳이라 그런 거잖아. 실제로 몇 년 있다가 다들 이직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너도 알겠지만, 이직하면서 연봉 천만 원, 2천만 원 올리기가 진짜 어렵잖아. 그리고 돈을 더 받으면, 진짜 그 정도로 일을 시키는 게 이 세상이기도 하고. “ “응. 그렇지. 그래도 예전부터 돈 많이 벌고 싶어 했잖아. 어렸을 때 없이 살아서 다시는 그렇게 돌아가기 싫다고. “ “어. 그랬지 그런데 말이야.. 주변 보면 2천만 원 더 받는다고 해서 인생 안 바뀌더라. 크크 내가 6천만 원 벌고, 네가 8천만 원 벌어도 살림살이 다 똑같아! 3억, 4억씩 버는 거 아니면 사는 거 다 똑같다고. 그런데 삶의 질은 진짜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단 말이야? 뭐 안 그런 직장도 아주 가끔씩 있지만.. 뭐 그건 논외로 하고. 회사가 돈 더 주는 데는 확실한 이유가 있어. 열~심히 굴리려고 주는 거지. 그래. 사실 취업하기 전에는 돈도 많이 주고, 이직도 잘 되는 회사니까 가면 갈수록 내 몸값 높여서 커리어 쌓고 돈 많이 벌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었어. 그런데 그런 것도 내 삶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지. 돈을 벌어도 테니스 하나 못 배우는 삶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 “ 이대리는 어디선가 들었던 노래 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늘 하루 얼마나 일했는지를 계산하다, 더 중요한 걸 놓쳐. 우린 얼만큼을 쉬었나.’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 자기 라이프 다 챙겨 가면서, 일도 잘 하면서, 가족도 잘 챙기고.. 뭐 그런 사람들 가끔 있지. 가끔 있어.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 보면, 사실 내가 모자란 거지. 그런데 어떡하냐. 나는 못 해먹겠는데 ㅋㅋ 그래서 난 적당히 포기했다. 칼퇴만 하면서 살아도 소원이 없겠어. 계속 이렇게 살면 몸 버릴 거야.” “야 그런데, 왜 지방으로 가는 거야. 서울도 그런 곳은 많잖아.” “솔직히, 너나 나나 부모님 지원 없잖냐. 그런데 그렇게 라이프 챙겨서 회사 옮기다 보면 연봉도 깎아야 되고, 그러다 보면 서울서 살기 힘들겠더라고. 뭐 열심히 해보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저녁이 있는 삶 찾아서 찾아서 떠나는 건 떠나는 거지만 그건 세상이 알 바 아니잖냐 ㅋㅋ 그래서 굳이 서울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살 필요 있겠나 싶었지. 이것도 포기한 거야. 5년 전에 나한테 물어봤으면, 지금 나 보고 엄청 나약한 놈이라고 했을 거 같아. 그땐 뭣도 모르고 빡세게만 생각했었지,” “으.. 맞는 말이긴 하지. 야, 그런데 솔직히 나도 그거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가 않다. 사실 서울살이가 너무 익숙해지기도 했고, 무언가 이제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사는 거는 잘 상상이 안가. 딱히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닌데.. 모르겠다. 이것도 그냥 관성인 건가? 그리고 아직 젊어서 그런지, 아직 욕심이 남아있는 거 같기도 하고. 대기업 다니면서 돈도 좀 벌고, 투자도 잘 해서, 뭐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그런 느낌? 그런 걸 포기하기가 쉽지가 않네. “아, 뭐 그렇지. 나도 그랬었어. 그런데 나는 저번에 J한테도 말했듯이, 투자에 온 신경 쏟아가면서 살면 일상생활이 잘 안되기도 하고… 진짜 조상님 영혼까지 모아서 집 산 다음에 그거에 갇혀가지고 살고 싶진 않다. 그냥 은행이 준 펜션에 돈 갚으면서 사는 느낌일 것 같아. 내 성격이 특이한가 봐. 남들 다 이러고 사는데. “ “응.. 네가 좀 븅신이긴 한데.. 이렇게 행동력 있는 븅신인지는 몰랐어..” “ㅋㅋㅋ 고맙다 새끼야. 으, 이런 이야기 오그라들어서 안 하려고 했는데, 최근에 책을 하나 읽었거든? 거기서 나오는 말 중에 ‘오늘이 없다면, 지금 내일을 위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라는 말이 확 와닿더라고. 끝까지 고민했었는데 그 책 읽고 마음 정한 거야. 책 제목이 뭐더라.. <너무 애쓰면 너무 힘들잖아> 였던가.. 그 책은 M과 만나기 전, 이대리가 대충 읽고 쓰레기 같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대상 없는 위로와 대안 없는 문제 제기만이 가득한 책. 예쁘게 꾸미기만 해서 사람들에게 팔아먹으려 하는 책. 퍽퍽한 현대인들에게 공허한 위로만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겐 그게 의미가 있을 수가 있구나. 이대리는 느낌이 이상했다. “지방 가서 신축 아파트 하나 사고, 외제차 한대 뽑아서 서울 구축 아파트 전셋값보다 낮은 거 알지? 난 내려가서 그런 것에 만족하고 살련다. 그런데 사실, 포기와 만족은 이란성 쌍둥이인 것 같아. 언뜻 보면 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곳에서 나온 존재인 거지. 어떤 것에 만족한다는 건 그것 이전에 꿈꿔왔던 것을 포기한다는 거니까…." 그때 갑자기 아르바이트 아주머니가 불쑥 다가와, 테이블 위 불의 세기를 낮추며 말했다. “계속 안 저으시면 타요~” “아 넵. 감사합니다.” M은 꾸벅 인사한 뒤, 불 옆에 있어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ㅋㅋ 너는 서울 계속 살아라. 나 서울 올라와서 만취하면 팬티만 입고 잘 곳은 있어야지. “ “나 곧 결혼할 건데 새끼야...” “제수씨가 그 정돈 이해해 줘야지~ 불쌍한 친군데~” “미친놈인가..” 이대리와 M은 닭갈비에 밥까지 볶아가며 꽤나 긴 시간을 함께 있었고, 취한 이대리는 자기가 옛날에 따릉이를 먼저 생각했다느니, 그걸 시작으로 전기차도 만들 수 있었다느니, 한국에도 테슬라가 생길 수 있었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며 술잔을 비웠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회사가 폭발하지 않는다면 출근을 해야 할 테지만,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니 그런 일쯤은 아무렇게나 되더라고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오랜 친구와 술을 마시는 건 그래서 좋았다. -- “들어가라~ “ “그래, 가라~ J랑 다음 주 금요일에 같이 보자. 그때 걔한테 말하려고.” “어 그래 그러던가~” 이대리와 M은 기분 좋게 취한 뒤 헤어졌고, 올 때 따릉이를 타고 왔던 이대리는 술도 깰 겸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적당히 서늘한 봄의 밤공기가 상쾌해서 기분이 좋았다. ‘계속 안 저으시면 타요~’ 참 열심히 일을 하시던 닭갈비집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가 했던 말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왜 떠올랐는지 이대리는 알 수 없었다. ‘계속 안 저으면.. 타지.. 계속 저어야지.. 안 타게. 열심히 저어야 돼. 대충 저으면 안 되고’ M은 하루하루를 좀 천천히 젓고 싶은 마음에 이직을 결심했을 것이었다. -- 사거리의 횡단보도에 멈춰 선 이대리는 멍하니 건너편 건물을 바라봤다. 4층짜리 다이소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창가엔 갖가지 인형이나 세제, 샴푸, 그릇, 빗자루 등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중에는 지금 이대리의 집에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이대리 살림살이는 대부분이 저곳에서 나왔다. ‘근데 그 새끼가 그렇게 갑자기 그럴 줄은 몰랐네..’ 이대리는 신호를 기다리며 친구의 결정을 다시 곱씹어 봤다. M이 했던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었고, 사실 이대리도 매일 느끼는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대리 본인도 그런 결정을 내리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생활한 이곳, 처음엔 낯선 땅이었던 이곳이 어느새 삶의 전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골목, 익숙한 식당, 연락하는 사람들, 단골 미용실, 2호선의 차가운 은색 의자와 1호선의 털 달린 의자, 경기도에 갈 때면 타는 4자릿수 빨간 버스,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서울에 흐르는 파란 피 같은 버스들, 집 앞에 파는 타코야끼, 재활용을 수거하는 화요일 목요일, 여름밤이면 자연이 주는 에어컨을 맞기 위해 한강에 가득한 사람들, 열병처럼 번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대만 카스텔라, 버블티, 코인노래방, 마라탕 집, 언제부턴가 미세먼지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남산타워, 평소엔 줄지어 있다가도 술 마시고 난 뒤엔 잡기 힘든 주황색 택시, 대학로에 가득한 연극과 타로, 사주카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비둘기, 현금만 받는 붕어빵 아주머니, 4번 출구 나가기 전 코를 찌르는 델리만쥬냄새, 오후 3시부터 막히기 시작하는 경부고속도로, 메뉴가 하나밖에 없는 닭갈비집까지. 이젠 고향을 내려갈 때면 되려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 이대리였다. “삐비비비. 삐비비비.” 사거리의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면서 신호음이 울렸고, 이대리는 평소보다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훨씬 여유 있긴 하겠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다른 곳에 가서 사냐..’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던 이대리 앞으로 배달부의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갔다. 깜짝 놀란 이대리는 신호등을 확인했지만, 분명 파란불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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