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르르...쾅! 이쁜 이름을 가졌으면 그렇게 내릴 것이지, 봄비는 어울리지 않게 천둥번개까지 함께 데려와 강남을 때리고 있었다. 날이 따듯해지고 있는 요즘, 퇴근시간인 6시면 아직 밝은 시간이었지만 비 때문인지 하늘은 어두웠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이대리의 사무실 분위기도 평소보다 더 우중충했다. 물론 평소에 날씨가 좋다고 해서 분위기가 화창하진 않았지만. "오늘은 다들 약속 없으면 일찍 들어가지. 날씨도 안 좋은데. 나 먼저 갑니다~" 어찌 된 일인지 김부장이 깔끔한 스타트를 끊어주었다. 이대리는 겉으로는 깍듯하게 인사했지만 속으론 기쁨의 주먹을 꽉 쥐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아래 직원들이 바라는 것은 삼겹살 사주시는 것보다 일찍 가주시는 겁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모두가 서둘러 짐을 챙기고 퇴근하기 시작한 사무실, 이대리는 일부러 느릿느릿 짐을 챙겨 다른 선배들보다 5분 정도 늦게 나갔다. 회사 입구에서 이어폰을 끼고 집으로 가는 길, 길거리는 물웅덩이가 곳곳에 고여 있었고,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대리는 순간 건너편에서 걸어오던 남자와 무언의 눈빛 교환을 한 뒤 우산을 아래로 내렸고, 걸어오던 남자는 우산을 위로 올려 서로 우산을 부딪히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좋은 파트너였다...라고 생각하던 이대리에게, 갑자기 긴 줄이 보였다. 잘 살펴보니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기 위한 줄이 길게 서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미친, 서울 인구에 특이점이 왔구나' '선 넘네..' '아무리 퇴근길이라지만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는 게 말이 되나' '조금 있으면 인도도 줄 서서 다니겠구먼' '이거 지금 들어가면 남들 우산에 바지 다 젖겠네..' 지하철로 들어가는 깊은 계단을 보던 이대리는, 나태한 자가 죽고 나면 가게 되는 철도 지옥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긴급] 선로에 낙뢰 떨어져 2호선 운행 차질..' 스마트폰을 본 이대리는 왜 이렇게 줄을 섰는지 알 수 있었다. 2호선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던 이대리는, 이렇게 문제가 생기면 줄줄이 지하철이 밀리고 정상화되기까지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대리는 저녁을 먹고 집에 가기로 했다. -- "이모 여기 목살 김치찌개 하나요~" 이대리는 자신만 알고 있는, 골목에 숨겨진 맛집으로 향했다. 가끔 혼자서만 점심을 먹고 싶은 때 자주 찾는 곳으로, 우연히 들렀지만 너무 맛있어서 나중에는 친구들까지 데려온 곳이었다. 짐과 우산을 대충 내려놓은 이대리는, 화장실을 다녀오며 생각했다. '여긴 삼겹살이 맛있는데.. 아쉽긴 하네. ' 삼겹살을 아쉬워하면 돌아온 이대리는, 어디서 많이 봤던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이대리가 가방을 놓고 갔던 자리,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이대리 팀 임과장이었는데, 임과장도 이대리를 보고 예상 못 했다는 듯 당황스럽게 인사했다. 회사에서도 옆에 앉는 임과장을 여기서까지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 이대리, 집에 간 거 아니었어? " "아, 지하철이 지금 엉망이더라구요.. 그래서 저녁 먹고 가려구요." "나랑 똑같네. 하하. 그런데 이 집은 나만 아는 줄 알았는데 이대리도 알고 있었구나." "네 가끔 친구들이랑 옵니다. " "그럼 우리 같이 앉아서 먹으면 되겠다. 여긴 삼겹살이 맛있거든. 아쉬웠는데 같이 먹자. " "넵 저야 좋죠." -- 이대리는 안 그래도 먹고 싶었던 삼겹살을 먹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넓은 은쟁반에 담긴 채 선홍빛 자태를 뽐내는 삼겹살은, 까만 돌판 위에 김치 약간과 양파 약간, 버섯을 곁들여 구운 뒤 완전히 익을 때쯤 쑹컹쑹컹 썰어서 입에 넣을 때 진정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이었다. 이대리는 지금 고깃집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고기가 익는 소리인지 빗소리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삼겹살을 먹기에 최고의 날씨였다. "이대리가 어디 살더라? " "아, 지금 신림 살고 있습니다. " "아 맞아맞아. 그랬었지. 하하.." 사실 임과장과 이대리는 평소가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은 아니었다. 임과장은 사교적이라기보다는 묵묵히 일만 하는 스타일이었고, 팀 내에서 가장 긴 시간을 일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지만 궃은 일이고 성과도 크게 못 받는 그런 일. 그런 일을 하는 것은 항상 임과장이었고, 팀에 오래 있었던 박차장은 그렇게 힘든 일을 습관적으로 임과장에게 넘겼다. 그때마다 임과장은 기계처럼 일을 해냈고, 허리를 곧게 편 자세로 몇 시간이고 일을 하고 있는 임과장을 보면, 이대리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신문 찍어내는 기계'가 생각났다. 임과장은 밤이고 낮이고 계속 보고서를 찍어냈다. 이 사람 사실 안드로이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임과장은 사석에서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주로 묻는 말에 대답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마 일하는데 연료를 모두 써서 다른 곳에는 쓸 연료가 없어서인 것 같았다. 팀에서 회식을 하더라도 그는 말없이 계속 술만 마시며 자리를 지켰고, 3차, 4차를 가더라도 제일 마지막까지 남는 건 항상 임과장이었다. 기계는 술에 취하지 않으니까. 팀 내 같은 과장인 조과장과 있을 때는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따로 술자리도 몇 번 가지고, 귀한 투자 정보도 들었지만 (..) 임과장과는 그런 유대감이 없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같이 지낸 시절이 4년인데도 둘이서 가진 식사 자리가 이번이 처음인 것도 그래서였다. "이대리, 술도 한잔할까? 부담되면 안 해도 되고. " "아 삼겹살에는 마셔야죠! 이모~ 여기 진로랑 테라 하나요~" "이대리가 술을 좋아했나? 생각해 보니까 단둘이서 술 마신 건 처음인 것 같네." "하하. 그럭저럭 마시긴 하는데.. 삼겹살에는 소주 못 참죠. " "그래그래. 잘 됐네. 이대리한테도 밥 한 번 사주고 싶었는데. " 치이익. 고기는 어느새 먹음직스럽게 익었고, 이대리와 임과장은 술잔을 부딪혔다. 뒤따라 입안에 들어온 삼겹살은 예상대로 완벽한 맛이었다. 이대리는 선로에 벼락이 친 게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으.. 맛있다. 그치? 여기는 삼겹살이 진짜 맛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회식 때도 오고 싶었는데, 괜히 회사 사람들 알게 되면 맨날 얼굴 마주칠까 봐 나만 알고 있었어. " "엇.. 저도 사실 똑같은 생각 했는데.. " "아 그래? 하하. 그럼 지금까지 안 마주친 게 신기하네. 이대리가 고기 먹을 줄 아는구나. 아 너무 맛있다. 한잔하자." "넵." 저녁 술자리에서 만난 임과장은 생각보다 말을 잘 하는 스타일이었고, 이대리는 임과장과 처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에 알던 사람보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고, 이대리는 임과장과 미리 친해지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으므로 앞으로는 이런 자리를 더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하늘에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봄비가 처마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어가는 식탁 위에서 이대리와 임과장은 삼겹살로 속을 채우고 술잔은 비웠다. "아 아쉽네. 이렇게 맛있는 것도 이제 자주 못 먹는다는 게." "네? 왜요? 제가 오는 거 알아서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임과장은 불판의 고기를 집었다. 비계가 거의 없는 부위였다. "이제 곧 말하려고 했는데, 나 이직해. 일단 이직..이라고 말할 거긴 한데, 조금 쉬려고. " "네?!" 이대리는 진심으로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 팀의 기계님이 나가시면 보고서는 누가 찍어내 주시지. 압도적인 업무량을 자랑하는 임과장이 없는 팀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임과장은 회사에 계속 남아있을 것 같았는데. 회식 3차까지 우직하게 남아있던 그 모습처럼. "왜요 과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임과장은 소주를 들이켰다. "크으.. 아니다. 이렇게 우연히 마주친 것도 운명인데, 이대리한테 작은 충고나 해줘야겠다. 나 너무 꼰대 같나? " "아니요. 진짜 아닙니다. " "하하... 사실 이번에 나가게 된 거 말 이야, 나랑 박차장님은 입사 때부터 계속 이 팀에 있었던 거 알지? 박차장님이 내 사수였고. "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 "응 그래서 둘이서 일을 진짜 많이 했는데, 언제였더라.. 이대리 입사하기 전인가.. 아, 이대리 입사하기 직전이었나 보다. 그때 둘이서 일을 맡아서 하나 했는데.. " 후두두두둑.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진 어둠 속에서 빗방울은 계속 떨어졌고, 고깃집 안까지 아스팔트 젖은 냄새가 들어왔다. <다음 편에 계속>
회사생활🎁
초일류 대기업에 다니는 벼락거지 이대리 14
21년 07월 06일 | 조회수 1,155
이
이용자
억대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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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lijlilil
21년 07월 08일
지금 바로 리멤버 회원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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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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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리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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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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