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상은이의 마지막 시간

10월 31일 | 조회수 700
남
남지만작가

이태원의 끝나지 않은 밤 상은(실명/이상은)이가 언제든 찾아와 편히 쉬어가길 바라며 정성껏 정돈해 둔 방이었다. 강민하(실명)는 그 방문 앞에 설 때마다 걸음을 멈추었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 때면, 흐르던 시간이 거꾸로 소슬하게 되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침대 위에는 상은이가 까마득한 날들에 남겨둔 온기가 아직 얹혀 있었고, 책장 한 귀퉁이에는 몇 장의 사진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 속 상은이는 늘 환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비극도 감히 침범할 수 없을 것처럼 맑고 평범하며, 무탈하고 무던한 일상을 담아낸 얼굴. 강민하는 그 미소를 차마 길게 마주하지 못했다. 그 웃음은 살가운 위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숨을 꽉 막히게 만드는 지독한 형벌에 가까웠다. 살아 있는 아이의 생생한 표정을 마주하면서도, 그 아이가 이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냉혹한 진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하는 일. 과연 그보다 더 잔혹한 일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강민하는 차마 마주하지 못한 시선을 무겁게 거두어 책상 위 노트북으로 향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어둠을 가르고 밝은 화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2022년 10월 29일, 그 참혹했던 밤이 다시금 그녀의 눈앞에서 서막을 열었다. 그날 밤, 서울 이태원의 골목길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기이할 만큼 빽빽하게 들이차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이어졌던 코로나19의 방역 굴레가 마침내 크게 풀어지고 맞이한 첫 핼러윈 주말이었다. 억눌렸던 청춘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비좁고 가파른 골목은 이내 사람들의 겹겹이 엉킨 몸짓으로 메워졌다. 화려한 상점 불빛이 빽빽한 머리 위로 번져나갔고, 쿵쿵 울리는 음악 소리와 들뜬 웃음소리가 공중을 맴돌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설레는 축제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비로소 되찾은 보통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밤이 되고 말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골목은 더 이상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앞으로 나가려는 이들과 뒤에서 거세게 밀어붙이는 이들이 서로를 짓눌렀다. 도망쳐 숨을 돌릴 수 있는 한 뼘의 틈새조차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발을 헛디디는 순간, 그를 비켜설 여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지옥의 문이 열리듯, 누군가 무너져 내렸다.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비명이 공기를 찢었다. "사람이 깔렸어요! 살려주세요!" 비명은 이내 다급한 신고 전화로 이어졌다. 119 상황실의 벨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경찰과 소방의 무전망에는 현장의 참담함을 실어 나르는 떨리는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출동을 아우성치는 목소리, 현장 상황을 다급히 묻는 음성,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인파가 몰렸다는 비명 같은 보고, 구조를 갈구하는 처절한 외침. 각기 다른 위치에서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파편화된 정보들이 무전망 속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 혼란 속에서도 시곗바늘은 무심히 흘러갔다. 22시 몇 분, 23시 몇 분. 그 찰나의 몇 분 사이에, 수많은 사람의 운명이 갈라지고 있었다. 상은이 역시 그 비극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어려운 공인회계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뒤, 사회로 나아갈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앞으로 걸어갈 창창한 나날이 한참이나 많이 남아 있던 소중한 아이였다. 언제나 꿈이 많았던 아이는 훗날 결혼도 하고 싶다 했고, 예쁜 아이도 낳아 키우고 싶다고 조곤조곤 속싸개 같은 꿈을 털어놓곤 했다. 당시 강민하가 그 말이 가벼워 웃음을 터뜨리며 받아쳤었다. "그래, 네가 아이 낳으면 이 이모가 다 봐줄게." 그때는 그저 농담처럼 던진 무던한 한마디였다. 너무나 평범하여 굳이 마음에 아로새길 필요조차 없었던 일상의 대화였다. 그러나 2022년 10월 29일 그 밤 이후, 그 나지막한 약속은 강민하의 가슴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겨졌다. 훗날 조카가 아이를 낳으면 보살펴주겠다던 사람. 그 작은 생명을 가슴에 안아주겠다던 사람. 그렇게 서로의 곁에서 함께 늙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삶. 그 평온했던 미래의 끈이 단 한 번의 밤으로 무참히 끊어져 버렸다. 처음에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사망자, 실종자, 이송. 강민하는 언론에 번져가는 그 차가운 단어들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상은이가 죽었다는 절망적인 사실보다 먼저 마음을 짓누르며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가장 먼저 발견했을까? 구급대는 제때 도착했던 걸까? 어느 병원으로 옮겨진 것일까? 그리고 가슴을 짓밟는 마지막 질문. '상은이는 정확히 언제까지 숨을 쉬고 있었을까.' 그 질문은 오랫동안 강민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단지 차가운 사망 시각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숨이 끊어지기 전 그 마지막 찰나에, 상은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진실을 간절히 알고 싶었다. 누군가 상은이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는지, 누군가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주었는지, 구급대원이 상태를 세심히 확인해 주었는지, 어느 장소에서 어떤 긴급 처치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사투의 모든 과정이 단 한 줄이라도 제대로 기록되어 있는지. 강민하는 그것을 반드시 밝혀내야만 했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자신이 조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소명이자 의무라고 믿었다. 계절의 옷이 몇 번이나 갈아입혀졌다. 세상 사람들은 참사의 충격을 딛고 다시 저마다의 일상으로 유유히 돌아갔다. 거리에는 날마다 새로운 뉴스가 흐르고 사람들은 또 다른 이슈들을 소비했다. 그러나 강민하의 시간만큼은 2022년 10월 29일 그 밤에 꽁꽁 묶인 채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상은이가 다니러 오면 편히 쉬라 마련했던 방. 그 온기 있던 공간에 어느 날 차가운 노트북과 묵직한 서류 더미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장에 불과했던 종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박스를 가득 채웠고, 그 상자들은 이내 책상 주변을 요새처럼 에워쌌다. 강민하는 참사 당시의 현장 영상들을 켜두고 밤을 지새웠다. 처음에는 그저 멍하니 영상을 바라보기만 했다. 두 번째 볼 때는 화면 속 시각을 노트에 적어 내렸다. 세 번째 볼 때는 엉켜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일일이 표시했다. 네 번째부터는 소방과 경찰의 무전 녹음 파일을 함께 재생하며 대조했다. 영상 속에서 누군가 작은 움직임을 보이면 무전을 몇 번이고 되돌려 들었다. 무전에서 특정 시각이 언급되면 해당 시각의 영상을 다시 찾아 저위도 고위도를 잡듯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구급활동일지를 펼쳐 들었다. 오후 몇 시 몇 분, 환자의 상태, 구급대원의 소견, 의료지도 내역, 이송 병원. 하나씩 조각을 맞추어 나갔다. 그런데 기이했다. 기록과 기록이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맞물리지 않았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기록된 시간들이 서로 어긋나 있었고, 당연히 있어야 할 항목들은 휑하게 비어 있었다. 어떤 일지는 다른 서류의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강민하는 처음엔 그저 긴박한 현장에서 빚어진 단순한 행정적 실수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오류를 파헤치다 보면 또 다른 의구심이 꼬리를 물고 드러났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또 다른 종류의 자료가 끊임없이 필요했다. 구급활동일지를 확인하려면 무전 기록이 필요했고, 무전을 살피려면 출동 기록이 있어야 했다. 출동 기록의 진위를 따지려면 현장 도착 기록을 찾아야 했고, 현장 도착 기록을 보려면 상황보고서가 필요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상황보고서를 검증하기 위해 다시 영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끝이 없는 굴레였다. 훗날 강민하는 그 아득했던 사투의 과정을 이렇게 회상했다. "큰 뿌리 하나만 캐내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그녀는 쓸쓸한 눈빛으로 잠시 말을 잊었다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 또 서너 개가 있고, 그 밑을 파보니까 실뿌리 수천 개가 사방으로 엉켜 있더라고요." 그때서야 강민하는 깨달았다. 자신이 추적하는 것이 단순한 종이 한 장의 기록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가 피를 말리며 찾고자 한 것은 그 잔인했던 밤의 완벽한 '시간표'였다.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움직였는지, 구조는 제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책임 있는 자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침묵했는지, 그리고 소중한 상은이에게 그 마지막 순간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2024년 9월. 마침내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강민하는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이제는 자신이 골방에 갇혀 홀로 모든 자료를 파헤치며 피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 믿었다. 전문성을 갖춘 조사관들이 정밀하게 파헤칠 것이다. 숨겨진 자료들을 당당히 확보할 것이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이들에게 매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유가족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진실을 설명해 줄 것이다. 강민하는 그동안 가슴속에 빽빽하게 쌓아두었던 질문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차마 완전히 손을 놓지는 못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그날 밤의 어지러운 시간표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참사 당시 긴급구조통제단 가동 시점과 관련한 충격적인 증언이 흘러나왔다. 강민하는 모니터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묵직한 한 문장이 가슴에 날카롭게 찔려왔다. '실제와 보고가 다르다면, 과연 어느 쪽이 진짜란 말인가.' 뒤이어 참사 당시 대통령 주재 긴급상황점검회의 영상이 또 다른 자료로 눈에 들어왔다. 강민하는 다시 노트북을 펼쳐 들었다. 이번에는 국가의 입을 무작정 기다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진실을 스스로 검증하는 '확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 연휴였다. 사람들은 일상의 시름을 잊은 채 늦잠을 자거나 가족들과 도란도란 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강민하는 차가운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 새벽 세 시. 집 안은 적막에 싸여 있었고, 모니터에서 새어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만이 방 안의 고요를 비추고 있었다. 강민하는 엑셀 파일을 열었다. 날짜, 시간, 환자 상태, 구급대원 소견, 의료지도, 이송 병원.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계적으로 내리쳤다. 타닥, 타닥, 타닥. 그러다 손가락이 단단히 굳어버렸다. "왜 이 중요한 항목이 빈칸으로 남아 있지?" 강민하는 서둘러 다른 자료를 열었다. 그리고 정밀하게 대조했다. "이건 왜 앞선 기록과 시간이 확연히 다른 거지?" 하나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기록을 펼쳤고, 의문이 꼬리를 물자 또 다른 서류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의구심은 줄어들기는커녕 거대한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3월, 마침내 특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가 열렸다. 강민하는 망설임 없이 휴가를 냈다. 이틀 내내 식음도 잊은 채 모니터 화면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책상 위에는 그녀가 피와 땀으로 정리해 둔 수많은 자료가 수놓아져 있었다. 빼곡한 시각 표시들, 구급활동일지, 무전 녹음 파일, 영상에서 잘라낸 수많은 캡처 화면들. 그녀는 간절히 기다렸다. 자신이 밤을 새워 찾아낸 이 수많은 이상징후와 오류들이 청문회장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터져 나오기를. 그러나 이틀간 진행된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강민하가 그토록 기다리던 핵심적인 질문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화면이 허무하게 꺼졌다. 강민하는 한동안 멍하니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책상 위에 사막처럼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내려다보았다. 몇 달 동안 밤을 지새우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정리했던 기록들이었다. 그녀는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내가 찾아낸 이 명백한 진실조차... 여기서는 질문조차 되지 못하는구나." 그 순간, 그녀의 내부에서 무언가 기저에서부터 커다랗게 깨어져 나갔다. 타인에게 진실을 구하던 길고 긴 기다림은 끝났다. 이제 스스로 부딪쳐야 할 때였다. 정식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쏟아져 들어온 자료들을 그러모았다. 공공기관의 공식 자료와 국회 제출 자료를 돋보기 들듯 대조했다. 감사원 감사보고서를 파헤쳤고, 화질이 뭉개진 영상 속 사람들의 동선을 극도로 확대해 확인했다. 무전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미세한 목소리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해 들었다. 단 한 문장의 진위를 검증하기 위해 수 시간을 바쳤고, 단 몇 분의 차이를 밝혀내기 위해 수일을 꼬박 새웠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라는 개념은 강민하에게 더 이상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게 되었다. 22시 몇 분, 23시 몇 분. 그 간극 속에서 누군가는 처절하게 움직였고, 누군가는 무책임하게 방관하고 기다렸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고, 누군가는 끝내 그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스러져 갔다. 몇 분, 때로는 몇십 분의 아득한 간격. 강민하는 기록과 기록 사이에 벌어진 그 참담한 틈새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간극 속에 살아 숨 쉬던 사람이 있었고, 스러져간 존엄한 생명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영상을 기계적으로 재생하던 강민하는 갑자기 멈칫하며 마우스를 움켜쥔 손을 멈추었다. "잠깐만..." 화면을 일시 정지시켰다. 몇 초 전으로 되돌렸다. 다시 천천히 재생했다. 화면을 최대로 확대했다. 순간, 강민하는 숨을 멎었다. 상은이었다. 그 아수라장 같던 화면 속에, 그토록 그리웠던 상은이가 서 있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수많은 인파 속을 흘러가는 스쳐 지나가는 모습에 불과했다. 그러나 강민하에게는 그 순간 온 세상의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상은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화면을 향해 손을 뻗으며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차가운 화면 속에서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강민하는 눈물을 훔치며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그다음 장면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또 그다음 장면을 추적했다. 소방 무전 기록을 대조하며 시각을 맞추었고, 구급활동일지를 미친 듯이 뒤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상은이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화면에서도. 서류 기록에서도. 시간표의 흐름 속에서도. 강민하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누구도 확인해 주지 않는 참담한 '어둠의 시간'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강민하는 빛바랜 노트 한가운데에 정갈하게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상은이의 마지막 시간. 그리고 그 글자 아래에 길게 선을 그었다. 선의 오른쪽은 아무런 기록도 없이 비어 있었다. 아주 아득하고 넓게. 7월의 볕이 내리쬐던 날. 강민하는 무전 녹음파일의 복잡한 음성 파형을 모니터에 띄웠다. 이번에는 언니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였다. 서로 다른 경로로 확보한 음성 파일들을 나란히 배치했다. 동일한 시각이라고 표기된 구간을 정밀하게 대조해 나갔다. 위쪽의 음성 파형. 아래쪽의 음성 파형. 강민하는 모니터가 뚫어져라 시선을 고정했다. "언니, 여기 봐." 손가락 끝이 모니터 한구석을 짚었다. "이 구간의 음성이 완전히 다르잖아." 그녀들은 같은 음성 구간을 몇 번이고 고쳐 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작은 파형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종의 왜곡을 의미하는지 당장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제삼자의 개입이나 기록의 변조 가능성을 의심하기에는 충분한 증거였다. 자료를 차곡차곡 정돈했다. 그리고 고소장을 차분히 준비했다. 단지 누구인가를 처벌해 달라는 사적 복수심 때문이 아니었다. 강민하가 정말로 갈구한 것은 기록의 '진위'였다. 누가 옳은지,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따지기에 앞서, 그날 밤 도대체 '무엇이 실제였는가'를 온전히 밝혀내야 했다. 며칠 뒤, 또 다른 결정적인 자료가 그녀의 눈에 포착되었다. 참사 당시 혼란스러웠던 현장에 설치되었던 '재난 발생 현황 상황판'이었다. 그 서류에는 당시 용산소방서장이 23시 8분에 현장에 도착하여 지휘권을 선언한 것으로 명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강민하는 곧바로 다른 현장 기록들을 찾아 시간을 촘촘히 재구성해 보았다. 다시 비교하고 또 맞추어 보았다. 그리고 손을 멈추었다. 실제 현장 도착 시각과 지휘권 선언 시각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시간의 갭이 존재했다. "왜 기록된 시간이 이렇게 의도적으로 바뀌어 있는 거지?" 강민하는 텅 빈 방 안에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물론 찰나의 긴박함 속에서 빚어진 단순한 작성 오류일 수도 있었다. 행정적인 착오이거나 누군가의 혼란스러운 기억이 만든 오차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강민하는 이제 그런 의문들을 결코 유야무야 넘길 수 없었다. 잘못된 기록 하나가 또 다른 허위 기록을 낳고, 그 왜곡된 기록이 훗날 역사와 법정에서 정당한 판단을 방해하는 든든한 핑계가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사람의 기억은 이기적이라 잊힐 수 있어요." 그녀는 조용히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착각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조작할 수도 있죠."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차가운 서류 더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록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남잖아요." 강민하에게 기록은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었다. 그 지옥 같았던 밤, 억울하게 스러져간 영혼들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목소리였다. 그러므로 그 목소리에 거짓이 섞여 있다면, 왜 틀렸는지를 끝까지 추적해 밝혀내야만 했다. 강민하를 비롯한 유가족 37명은 마침내 관계자들을 향한 고발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현장에 실제로 동원된 인원수, 구조 대응 평가보고서의 왜곡, 지휘권 이양 협의서의 조작 의혹. 현장의 실제 상황과 현격히 다르게 작성되었다는 강한 의심을 받는 자료들이었다. 강민하는 단지 관련자들의 형사처벌만을 바라보고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역사에 남을 가치를 원했다. 바로 '공식적인 진실의 기록'. 훗날 누군가 다시 그 비극의 날을 반추하고 조사할 때, "그 당시 유가족들이 이러한 명백한 의문을 제기했었고, 진실은 이러했다."라고 명명백백히 남아있을 흔적. 그녀는 나지막이 다짐했다. "형사처벌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날 기록의 진위만큼은 반드시 가려내야 해요." 그리고 그 다짐을 가슴속 깊은 곳에 다시금 단단히 새겨 넣었다. 무엇이 진짜였는지, 그날의 진실을 반드시 세상 밖으로 끌어내리라. 참사 4주기를 코앞에 둔 어느 날. 특별조사위원회가 피해자들의 참사 기록물 열람을 지원하기 위한 내부 규칙을 의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가슴속에 차오른 차가운 앙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강민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더 이상 국가나 특조위가 모든 정답을 손에 쥐여줄 것이라는 천진난만한 기대를 품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실을 향한 여정을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들이 일을 하게 만들어야죠." 강민하는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정말 제대로 조사하는지, 우리가 눈을 서슬 않게 뜨고 끝까지 지켜볼 겁니다." 그날 밤. 그녀는 또다시 상은이의 방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산더미 같은 서류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구조상황보고서, 1029 녹취록, 현장 지휘 표준작전절차, 구급활동일지,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비밀 자료들, 소방 무전 녹음 파일. 그리고 서류 틈새마다 알록달록하게 붙어있는 색색의 메모지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그것은 강민하가 세상에 던지는 처절한 질문의 기호들이었다. 노트북을 켜자 차가운 모니터 불빛이 방 안을 환히 밝혔다. 다시 2022년 10월 29일. 다시 이태원. 다시 그 지옥 같던 골목길. 다시 혼란스럽게 엉켜있는 수많은 사람. 그리고 그 아수라장 속을 스쳐 지나가는 내 사랑하는 조카, 상은이. 강민하는 멈춤 버튼을 눌렀다. 한참 동안 정적 속에서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었다. 종이 위에 천천히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22시 ○○분.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른 뒤, 다음 줄에 펜촉을 대었다. 그다음에 아이는 어디로 끌려갔는가. 다음 줄.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넘어가는 아이를 발견했는가. 그리고 마지막 줄. 그 절박했던 순간에,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강민하는 펜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방 안은 죽음처럼 적막했다. 이내 서늘한 정적을 깨고 키보드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타닥. 타닥. 타닥. 창밖으로 짙은 어둠을 걷어내며 새벽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날 밤은 이미 흘러가 버린 아득한 과거일 뿐이었다. 달력 위의 한 줄 날짜가 되었고, 해마다 돌아오는 상투적인 기념일이 되었으며, 인터넷 기사의 자극적인 제목이나 통계 수치 속 차가운 숫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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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용정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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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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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개굴개굴개구링
    6시간 전
    불특정, 불가피하게 발생된 사고들이, 특정 정당의 철저하게 계산된 선택적 추모로 소비되는 부분에 진심으로 토악질이 나온다.
    불특정, 불가피하게 발생된 사고들이, 특정 정당의 철저하게 계산된 선택적 추모로 소비되는 부분에 진심으로 토악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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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남
    남지만작가
    작성자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 중
    1시간 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0
    지금 바로 리멤버 회원이 되어
    모든 댓글을 확인하세요
    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회사에서 풀지 못한 고민, 여기서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가 풀지 못한 실무적인 어려움, 사업적인 도움이 필요한 적이 있으셨나요? <리멤버 커뮤니티>는 회원님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입니다. 회원 가입 하고 보다 쉽게 같은 일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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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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